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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 펑
맑은 샘
구역질이 나지만 뚫어야 한다
뚫어야만 한다
옷에 땀을 흥건히 적시고 돌아온 저녁에도
피똥싼 고통을 넘긴 아침에도
변기가 막혀 있으면 뚫어야 한다
비록 너와 내가 쌌지만
드릴 펑을 부어도 안되고
황산을 들이 부어도 안되는가?
이 더러운 오물들이 얼마나 지독한가?
한번 해 보자
팔 걷어 붙이고
뚫어 펑을 들이댄 채로
똥물이 튀어도
한 번 해 보자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그대들은 곧 뚫려 없어질 더러운 존재일 뿐이다
변기를 막은 ""참여"라는 이름의
표퓰리즘이 더럽게 미친 똥 덩어리들이여
구역질이 나지만 뚫어야 한다
녹초가 되더라도
이 똥같은 시대(時代)의
변기가 막히면 뚫어야 하지 않는가?
시원하고 밝은 너와 나의 내일 아침을 위하여
나는 초토(焦土)의 시간에 기대어 기도한다
"시원하게 제발 뚫어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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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 필자의 문학토론방 연재물 중 "시창작이란 무엇인가? 3편
*감상음악 : "The John Dunbar Theme" - performed by Andre Rieu
클릭 : http://www.youtube.com/watch?v=hQOsdvz5Vd0&feature=player_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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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시창작강의 (3), 시창작이란 무엇인가?
4. 시창작은 시대와 현실에 대한 참여다
"모든 창조적 예술은 그 시대의 산물, 반영"이라는 프랑스의 문호 '앙드레 모르와'의 말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말을 좀 싫어하기도 한다. 미래의 시大家중 누군가가 "모든 창조적 예술은 그 시대의 산물, 반영이기도 하지만 시대를 이끌어 나가고 제시할 수도 있다" 라고 바꾼다면 하는 바람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 역시 그 시대와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시가 개인의 주관적인 정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긴 하지만, 그 정서는 한 개인 안에 갇혀서 고립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정서이며, 개방적인 정서이며, 보편적인 정서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둘러싼 이웃, 마을, 사회, 국가, 더 나아가서 인류 전체에게 확산되는 정서이다.
"시는 역사보다도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시 속에 인간의 삶의 보편적인 모습과 정서가 내제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시대는 나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개체들과 생명이 존재하는 시간이며 현장이다. 그 시대의 모습이 자리잡은 곳이 바로 현실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자신이 속한 시대와 현실을 떠나서 살 수는 없다. 이러한 인간의 삶에 뿌리를 내린 것이 문학이며, 시이기에 시 창작은 현실과 시대에 대한 참여가 되고 행동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이 "참여"에 대한 해석에 대해 매우 나름대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특히 "참여"의 내용에 대한 해석에는 기존 문단의 좌파적 어설픔과 사상적 오류에 관하여 나름대로 매우 뚜렷하고 강직한 주관적 개념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다.---후술하기로 함----) 아무튼 시인은 시로써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에 참여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임금을 사랑하지 않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시절을 슬퍼하고 통분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주관적으로 말한 바 있다. 당대의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한 것은 진정한 시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디 시뿐이겠는가. 진정한 모든 예술은 그 나름대로 시대와 현실에 참여함으로써 힘을 얻고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솔제니친은 "한 나라가 위대한 작가를 가진다는 것은 제2의 정부를 가지는 것과 같이 위험하다"고 했고 유럽을 무력으로 정복했던 나폴레옹조차도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모두가 언어의 힘, 글의 힘, 문학의 힘을 역설한 말들이다.
이러한 펜의 힘을 어느 누구보다도 깊이 깨닫고 실천한 사람 중의 하나가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신"이다. 그는 자신의 문학으로써 전 생애를 당대 중국 현실의 한복판에 바쳤다.
근대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전 속에서 무력하게 신음하고 있을 때 노신은 국비 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 그는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요즈음 일본 원전사고로 곤욕을 치르는 곳, 필자도 센다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본 최고의 첨단 과학도시며 해양휴양 도시였다.)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했다. 그가 의학을 목표로 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떠돌아다니는 돌팔이의사의 엉터리 치료는 아버지의 병을 질질 끌게 만들었고 더 악화시켰다. 병마에 시달리는 부친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그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했다. 열심히 공부해 성적이 뛰어났던 노신은 일본인 학생들의 온갖 질투와 모함을 받았고, 그럴 때마다 힘없는 조국을 둔 아픔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한 그 이듬해에 노신은 학교에서 정규수업 후 보여준 시사영화 때문에 심한 충격을 받고 삶의 목표까지 바꾸게 되었다.
영화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전과(戰果)를 선전하는 것이었는데, 러시아의 간첩으로 몰린 중국인이 일본 군국주의자들한테 목이 잘리어 살해 당하는 내용이었다. 일본 학생들이 환호성을 울리며 박수를 치는 장면은 노신에게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노신을 더욱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게 한 것은 제 동포가 무참히 죽어가는 것을 빙 둘러서서 구경만 하는 중국인 구경꾼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모두 건강하고 튼튼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 동포가 비참하게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도 무감각해 하는 것이었다. 이런 장면은 노신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어리석고 우매한 민중은 제 아무리 튼튼한 몸을 가졌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제일 급하고 중요한 일은 그들의 의식과 정신을 치유하고 깨우치는 일이었다.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 문학이라고 생각한 노신은 문학에 뜻을 품고 펜을 무기삼아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현실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훌륭한 작품을 써냈다. 이렇게 중국 근대사의 한가운데를 걸어간 그의 삶과 문학이었기에 노신이 남긴 글들은 어떠한 역사서 보다도 생생하고 정직하게 근대 중국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예는 우리가 사는 현대 시사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현실을 치열하게 작품으로써 참여하고 작품으로 보여준 훌륭한 시인들을 우리는 갖고 있다. 윤동주가 그러했고 한용운, 이육사, 이상화, 김광섭이 그러했다. 더욱 가깝게는 신동엽이 그러했고 김수영, 김지하 그리고 이글의 원론을 쓰신 조태일 시인이 그러했다. 그들의 시들은 당대 조국 현실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아우르는 것들이었다. 제 나라 언어가 있으면서도 그 언어를 쓸 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 언어를 빼앗긴 시인에게는 견딜 수 없이 캄캄한 시대였기에 스스로가 빛이 되고 무기가 되었던 이육사를 보자. 그는 조국의 광복에 대한 확신과 염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시로써 보여 주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 차례 옥고를 치루면서 수인번호를 필명으로 썼던 그는 조국 광복 한해를 앞두고 북경 감옥에서 옥사했다.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이육사, <청포도> 전문 -----------
<청포도>는 이육사의 지극한 시정신을 잘 보여주는 시다. 그토록 험난하고 투쟁적인 삶을 살면서도 이처럼 지순하고 맑은 서정으로 광복에 대한 기다림을 노래할 수 있었던 시인 앞에서 우리는 가슴이 숙연해진다. 언젠가는 찾아올 손님(조국광복)을 확신했기에 시인은 참으로 정성스럽게 그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대부분이 침묵하거나 변절로, 친일문학으로 자신의 부귀안락을 좇아가던 그 시대에 외롭게 깨어있던 시인의 빛나는 예지로써 조국의 광복을 예감하고 그것을 노래했던 것이다. 지금도 저 만주벌판 어디선가 <광야>를 목놓아 노래하던 시인의 웅혼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 않은가?
1960년대, 4,19민주혁명에 의해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이를 계기로 역사와 현실을 날카롭게 인식하려는 시정신이 대두되었다.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나는 우리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다" 라고 갈파한 김수영 시인(*나는 시작 초기에 김수영 시인의 시들을 매우 좋아 했었다. 그 시절 좀 연세가 지긋하신 문단의 어느 평론가가 김수영 시인의 시들에 대해 나름대로 순수문학적 관점에서 흑평을 하기도 했지만 김수영 시인 만큼 우리문단에서 일제이후 사회현실에 대한 큰 울림을 준 시인이 있는가? 물론 지금의 필자는 자유주의 운동을 하고부터 김수영 시인이 "김일성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그를 재평가 하기로 마음먹고 있지만 말이다....맑은 샘) 어쨌든 김수영 시인의 말은 기본적으로 자기만의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와 현실을 직시하는 시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 주는 동시에 시인 자신의 자화상을 보여준 것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순 중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조국의 분단일 것이다. 이 분단된 비극적 현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직시하면서 그것을 몸으로 껴안은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타고 난 이 땅의 토착시인이었다. 우리의 국토를 닮은 것처럼 때묻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힘차면서도 부드럽게 이 땅의 현실과 통일의 염원을 노래했다. (필자는 조태일 시인과 달리 이 대목은 좀 달리 본다. 신동엽 시인이 순수하게 통일의 염원을 노래했어도 결국 그는 카프문학과 오늘날의 철지난 좌파 "참여문학" 과 이어 쓰레기 "민중문학"을 잇는 연장선상에 있다고 나는 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동엽 당대의 시대가 오늘날과는 달리 지성적으로 한 참 뒤떨어졌었고 후대의 좌파 쓰레기 권력을 탐하는 인간들이 이를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를
눈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 신동엽, <봄은> 전문 --------
"한반도에 찾아오는 진정한 봄의 의미는 곧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일 것이다. 그런데 그 봄(통일)은 남해나 북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남해나 북녘은 우리 조국의 밖을 둘러싸고 있던 당시의 외세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우리에게 분단의 고통과 아픔을 상징하는 '겨울'도 이 외세로부터 생겨난 것이기에 진정한 봄은 우리들 가슴마다 움터서 온 산하를 덮을 때 미움의 쇠붙이(군사적 대립, 긴장, 싸움)는 사라지고 우리의 조국에 참다운 평화와 사랑이 도래할 것이라고 시인은 노래했다" 며 故조태일 시인은 밝혔지만 이런 수준의 이야기는 상당히 편협한 지금까지의 좌편향 철학적,문학적 수준의 이야기일 뿐이다. 좀 더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법학을 공부해 보고 해외의 글로벌 자유주의 물결이 지닌 그 하늘같은 힘과 인류의 진실을 목격, 경험해 본 필자의 확고한 견해는 비록 외세에 의해 우리의 조국이 분단되었지만 그 이후로 이어진 참여문학, 민중문학으로써는 우리가 원하는 자유민주주의 주도의 통일은 어불성설이며 엄연히 강건하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이 지닌 약간의 고질적 사회적 병마들을 치유할지는 몰라도 이제는 더 이상 무슨 연방제 통일로 국가에 반역하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 세계최악(最惡)의 전재독재 인민사회주의 체제를 위해 종속하며 동조하는 남한의 쓰레기로 전락할 뿐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판잣집 유리 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 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춘다.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소녀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가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 구상 <초토(焦土)의 시 1 . 이하 생략 -------
시의 예술적 심미성을 지극히 지향했던 '구상'시인의 초토의 시다. 6,25의 참상을 누구보다 뼈아프게 온몸과 온 심정으로 시로 표현했던 구상 시인은 1919년 서울 이화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구상준具常俊. 그가 네 살 때 그의 가족은 함경남도 원산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독일계 신부들이 원산에 교구를 개설하면서 교육 사업을 그의 아버지에게 맡겼던 것이다. 보통학교를 마친 그는 형처럼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의 가슴에서 들끓고 있는 일제와 신神과 제도에 대한 저항 의식 때문이었다. 결국 시인은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리고 일본대학 종교과에 입학하여 불교, 기독교, 가톨릭 등 각 종교의 철학적 근거를 배우며 정신적 근원을 다져 나갔다.
귀국 후 활발히 집필 및 사회 활동을 하다가 해방을 맞아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이 광복 1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시집 〈응향凝香〉에 실린 시 세편이 문제가 되면서 ‘응향필화사건’에 휘말렸다. 이 사건으로 구상 시인은 자유를 찾아 월남을 감행했다. 그 후 구상 시인은 1949년 초에는 〈연합신문〉 문화부장을, 6·25 전쟁 중에는 국방부 기관지인 〈승리일보〉를 만들며 종군했다. 1952년 전세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승리일보〉가 폐간되자 구상 시인은 영남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959년 이른바 ‘레이더 사건’을 겪은 이후 일체의 사회적 직책을 맡지 않았다. 대신 그가 선택한 길은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효성여자대학, 서강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하와이대학교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는데, 이때 역시 시인은 일체의 보직을 사양했다. 6,25의 참상을 온 몸으로 말했던 구상시인의 시도 시인의 삶은 시대와 현실에 대한 참여 라는 사실을 오늘의 우리들에게 잘 말해 주고 있다.
현대시에서 사회와 현실에 대한 지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풍자시의 백미라면 필자도 당연히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꼽는다. 오적(五賊)」은 일제시대부터 해방 이후까지 특권계급으로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던 1960년대 말 권력층을 을사오적(乙巳五賊)에 비유하고 있는 300여 행의 담시(譚詩)다. '을사오적'이란 1905년의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했던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1858~1916),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1870~1928),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1865~1919),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1858~1926),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 1854~1934) 등 친일 매국노 5인을 지칭한다. 김수영 시인 이후로 4,19 민주정신을 시인으로써 크게 이은 김지하 시인은 이 작품에서는 재벌ㆍ국회의원ㆍ고급공무원ㆍ장성ㆍ장차관을 '오적(五賊)'으로 지목하며 도둑촌의 다섯 역적을 탄핵하려 하지만, 포도대장마저 매수되어 오적(五賊)의 개집을 지키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다는 내용으로써 당대 사회상을 풍자하였다.
특히 포도대장과 오적(五賊)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벼락을 맞고 급살한다는 결말을 통해, 일제를 청산하지 못했던 당시 정치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문학사적으로는 '담시(譚詩)'의 형식을 도입해 전통적 해학과 풍자기법을 표현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쇠퇴하였던 민족의 가락을 계승해 판소리를 발전시켰다는 점에 매우 큰 의의가 있다. 한편 1970년 <사상계(思想界)> 5월호에 발표된 「오적(五賊)」은 같은 해 6월 당시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의 기관지 <민주전선>에도 게재되면서, 박정희(朴正熙, 1917~1979) 군사정권에 의해 작가 김지하 시인이 반공법(反共法) 위반으로 100여 일간 투옥되고 <사상계>가 폐간되었던 '오적 필화(筆禍)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2010년 11월 작가 김지하가 재심을 청구하여 2012년 10월부터 개시된 오적 필화사건의 재심 결과, 2013년 1월 4일 법정형 최하한선인 징역 1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따른 문학작품이라고 불복하며 항소하기도 했다.
1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머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2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니,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봐라 저 재벌놈 재조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과 마늘 곁들여
나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까기 여념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쥔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뚫리면 한 몫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술수 빰치겄다.
또 한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양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국민 그리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3
셋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혜끗혜끗, 피두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간같이 높은 책상 마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김지하, <오적> 부분, 생략----
우리 현대 문단에서 사회참여, 비판시, 풍자시의 대가(大家)를 꼽으려면 현재 살아계시는 시인들 중에서 과연 누구를 뽑으랴?
좌우파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좌파 쓰레기들이 그를 변절자라 욕해도, 무지한 일부의 우파 인사가 좌익이라고 욕해도, 필자는 어쩔 수 없이 김지하 시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김지하 시인의 작품들, 삶의 고난과 역경 치열한 시창작 정신은 두고두고 후세의 회자거리다. 필자도 초기 습작생 시절 김지하 시인이 남긴 시창작의 엄청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사상을 소개하는 필자 인생의 진실한 삶의 선택으로 인해 감히 김지하 시인의 사상에 대하여 좀 이의를 제기하고 정신적으로 대들기도 했지만 (필자의 신좌익 사상 비판 연재물들 참조....*참여의 해석에 대한 입장을 말한 로베르토 보비오 편, 샤르트르 편, 미쉘 푸코 편, 아드르노와 호르크 하이머 편, 등등.....참조바람)
김지하 시인은 정말 한국이 낳은 위대하고 큰 시인이며 진실한 문학인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김지하 시인을 이해하기로 자신의 사상에서 경제학, 정치학 부분의 미흡한 점도 인정하시고, 후대와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이번 대선에서 자신의 숙적이었던 故박정희 전 대통령의 따님인 박근혜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지지했다고 본다. 한마디로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신 훌륭하신 큰 인물이다. 왠만한 범인(凡人)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누구나 자신이 그동안 쌓아오고 입고있던 옷을 벗기가 어렵다. 특히 자신의 주관적 사상(思想)이 강한 시인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땅의 좌파 쓰레기들 이외 누가 과연 김지하 시인을 지조를 판 변절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것은 우물안 개구리처럼 편협하고 역사와 시대의 큰 강물의 흐름을 외면한 그들의 눈에만 보이는 그들만의 왜곡일 뿐, 김지하 시인은 진정하게 깨어있는 자유의 민주투사,시인답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왜곡의 더러운 좌파 누더기를 과감하게 던져 버리고 진솔하게 자신의 영혼(靈魂)과 양심(良心)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감히 쓰레기 누더기들이 한 위대한 시인의 맑은 영혼(靈魂)을 시건방지게 농락하고 있다고 나는 본다.
또 재미있는 것은 필자가 고등학생 시절이던가? 대학시절이던가? 잘 모르겠는데 "어둠의 자식들"이란 소설을 쓴 이철용 작가님이 생각이 난다. 그 이야기는 맨 창녀촌의 비참했던 싸구려 내용같았는데 당시 그 소설을 몰래 숨어서 읽다가 어머니에게 들켜 혼이난 재미있는 기억이 난다. "어머님은 당시 엄청 화를 내셨다. 이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이따위 3류 쓰레기 소설이나 읽고...."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 이작가님의 소설은 현대산업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인 창녀촌 이야기를 최초로 다루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시간과 세월이 많이 흘러 이작가님도 국회의원도 되시고 이후 초야에서 장애인 사회봉사 활동을 하시더니 요즈음 건강하신지 대머리가 되시어 ^*^가끔 종편TV에 나오셔서 시원하게 바른말을 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필자가 자유주의 입장에서 사회 참여적인 졸시들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분들, 최근 근 10여년 동안 필자와 함께 자유주의 애국운동을 주도 하셨던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님, 정기승 전대법관님, 김동길 박사님,유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님, 조갑제님, 임방현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님, 김성조 장군님, 민병돈 장군님 ,이선호 박사님, 남시욱 전 동아일보 상무, 문화일보 사장님 등 여러 자유애국 원로님들, 송대성 박사님, 고려대 홍관희 교수님, 강승규 교수님, 연세대 김정호 교수님, 유석춘 교수님, 중앙대 이상돈 박사님, 전원책 시인겸 변호사님, 서석구 변호사님, 최우원 부산대 교수님, 소설가 복거일님, 국민행동 운동본부 서정갑 대령님, 한국일보 선배인 뉴데일리 주필이신 박성현님, 전조선일보 기자, 전국회의원 진성호님, 데일리안 주필 이봉규 박사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길거리에서 자유애국 의병동지로 맹활약 했던 황성준 박사, 의사 최대집 군, 북한 인권운동가 독일인 의사 로베르토 폴러첸 박사, 수잔솔티 여사께도 감사드린다. 역시 영원한 자유애국동지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 함께 북한 민주화 운동에 투철한 탈북자 박상학 대표,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 사랑하는 언론후배 변희재 대표, 김성욱 기자, 김필재 기자 등이 요즈음 TV에서 맹활약을 해 상쾌하기도 하다. 그런데 웬지 아직은 소설가 이철용님 만큼의 구수한 연륜이 담기면서도 날카로운 시사평론에 못미치는 것 같아 속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웃기도 한다. 그외 좌파종식 운동의 한획을 함께 그은 이땅의 모든 자유애국 동지들, 여러 자유시민단체 여러분들, 특히 길거리에서 좌파종식,자유애국 통일의 함성을 함께 불러주셨던 모든 자유애국 의병들께 감사를 표한다.
요즈음 나는 황장수님, 홍성걸 교수님, 정치 평론가 황태순님, 경제 평론가 정규재님의 시사 토론 프로를 눈여겨 보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도 사회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도 당연히 문학인, 아니 시인의 진실한 삶에서 발생할 때 그 맛이 독자들에게도 깊고 맛있다는 점이 내 가슴을 늘 메아리 친다. 그게 아니라면 한같 시폼, 똥폼만 잡는 자폐적 넋두리, 우울성 쓰레기일 뿐이다. 6,29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연세대 한열이가 최루탄에 생명을 다했을 때, 필자도 물론 데모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 중 하나였으며 전형적인 이 땅의 386세대 중 한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겪은 체험으로 자신의 생각과 사상(思想)을 정리하게 된다. 그 이후 필자는 일본의 도쿄와 센다이, 미국의 뉴욕과 보스턴을 잠시 다녀 오기도 했는데 내가 보스턴에 있었을 당시 도시에서 좀 큰 책방 중 하나가 불에 탄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세계각지에서 가난하지만 미래의 젊은 희망을 품고 공부하는 열기 하나는 한번 해보자!고 온 지구촌의 겁나는 친구들이 모인 곳이었다. 당시 중국의 천안문 사태로 온 지구촌의 지성들이 시끄러울 때였고 중국출신 학생이 오해를 받기도 했는데 알고보니 이를 오해하게끔 사주받은 흑인의 짓이었다.
처음부터 서울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면 모르되 깡촌에서 태어나 젊은 청춘의 시절, 서울로 올라와 고생하며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필자도 소쉬르처럼 수도에 대한 약간의 깡촌 컴플렉스가 있던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사회정의와 민주개선을 생각한다며 약간의 좌파 짜집기 찌라시들을 읽은 것만 가지고 세상이 바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착각이고 오만한 몽상일 뿐이다. 미래의 시大家들이여 ! 비록 신림동이나 서울 달동네의 골방에서도 큰 꿈과 희망을 가지시기 바란다. 사회의 비리들을 지적하고 개선해야 하지만 그것도 좀 더 깊이, 좀 더 넓게 공부하고 참여한다면 당신들의 미래는 영광의 빛으로 넘칠 것이다. 지구도 우주의 한 줌 일부일진대 보다 더 높이 보다 더 큰 하늘을 날아보라 ! 우리의 사랑하는 한반도 정말 별것 아닌 좁은 땅덩어리다. 뜨거운 가슴으로 시를 써 보자 !
지금 중국의 참된 지성(知性)들은 자국의 민주화 운동에 한창이다. 필자도 중국공산당의 만행을 폭로하며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뉴욕거주 중국 대기원시보의 인사들과 좀 인연을 맺고 있기도 하다. 그 惡의 도가니에 북한의 惡이 그대로 연계되어 있다. 현 시대의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실을 진실로 보도하지 않고 왜곡하는 좌파 좀비 사이비 언론들, 전교조, 이석기와 같은 NL종북주의자들, 남한내의 진실을 거부하며 정치권력의 단맛을 쫓는 소위, 참여의 이름을 판 노무현 떼거리들, 종친떼, 진보 좌파 쓰레기들에게 있다. 이 국가존망과 암울하게 다가오는 경제난국이 짓눌려 오는 민생파탄의 엄중한 시대에 한참 철지나간 무슨 참여문학? 베껴무스 쓰레기 좌파 민중문학? 제 사상(思想)들도 제대로 모르며 지구에서 추방된지도 오래된 악마의 오물들을 핥는 한심한 똥덩어리들이다. 웃기는 표퓰리즘 똥통 짜집기 전단지 문학이라고 나는 본다. 최악의 독재에서 신음하는 동토의 북한을 보라 !
설명이 되는지를....이제 나는 도심의 시끄러운 환경도 싫고 혈서를 쓰며 시로 참여했던 자유주의 운동도 점점 줄이며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조용히 시골에 은둔 전원의 서재에서 시쓰고 글쓰는데만 집중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환경에 은거해 있어도 집의 화장실 변기가 막혀 보시라 ! 그것을 뚫는다고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를,,,,, 지금 참여문학의 탈을 쓰고 베껴무스 쓰레기 좌파 민중문학으로 붓의 농간을 부리는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집 화장실의 변기막힘의 주범들 아니겠는가?
본 카페의 고문 중 한분이셨던 전 서울시장, 전 미래한국신문 발행인 故김상철 변호사님은 필자보다 더 영안(靈眼)이 높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면서 교회 장로이셨는데 당신께서 직접 죽은 이한열 군의 장례식을 맡으셨던 일을 말씀하시던 일이 기억난다. 김변호사님은 이후 자유애국 운동을 필자와 함께 하시면서 돌아가시기 전에 "한열이의 장례식 때, 장례를 이은 행렬들이 꼭 무슨 마귀(魔鬼)들의 굿판을 보는 것 같았으며 유독히 그날 까마귀가 울더라, 한열이의 불쌍하고 맑은, 천사같은 영혼(靈魂)을 욕보이지 말고 주님께서 구원해 주실것을 기도하자 !" 라고 필자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필자는 그때도 그렇지만 보스턴에서도 그 불쌍한 북경대에서 온 중국친구의 맑은 영혼들 옆에 그를 방해하고 왜곡시키는 검은 마귀들을 내 영안(靈眼)으로 보았던 것 같다. 가끔 좌파 인물들이 자신의 속내를 말을 하지 않아도 열심히 기도한 상태로 그들을 만나면 나는 그들에게서 좀 사악한 마(魔)의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하이데거는 시에 대해서 말하길 현실에 붙어 다니는 하나의 장식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일시적인 감격이나 감동에 그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더욱이 시는 한낱 열중에 빠지거나 오락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지탱해주는 밑바탕이라고 했다.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정확하게 보지 못하며, 더구나 외면한다면 시는 인간의 삶에 더나은 미래를 제시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진정으로 가치 있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가 참으로 역사를 지탱해 주는 밑바탕과 힘이 되기 위해서는 시 창작은 시대와 현실을 직시하고 참여하는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그 참여의 내용이 무슨 참여인지는 심각하게 고려하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각 부분의 전문성이 첨가될 때, 진정 국민행복 시대, 창조의 밝은 문화융성, 강건한 자유민주 주도의 통일한국, 새시대의 주역 글로벌 자유 대한의 르네상스 시대가 만발할 것이다. (故조태일, 더하여 맑은 샘)
혈서(血書)의 회고(回顧)
맑은 샘
젊은 시인이여
나는 내 뜨거운, 붉은 액체(液體)로
글을 쓴 적 있었다
구국결사(求國決死), 좌파정권 종식(左派政權 終熄)
이제는 구름도 하늘도 몇번 아득히 흘러 갔어라
누구를 위함도 아니었다
옛 상해의 하늘아래,
옛 나찌의 깃발아래,
아나키즘의 깃발아래,
붉은 적기가의 깃발아래,
전체군국의 극우 파시스트의
깃발 아래도 아니었다
그것은 유치하게 더러운 권력(權力)들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사상(思想),감정(感情),역사(歷史),철학(哲學),
문학(文學),서정(敍情),서사(敍事),정치(政治),경제(經濟)
팔레트의 물감들을 아무리 칠해도
최고명품(名品) 화장품들로 거울 앞에서
아무리 문학(文學)의 이름으로 회칠을 해대어도
펜과 붓의 어느문명(文明) 언어들이
정신없는 몽상(夢想)과 허드레 감정(感情)에 춤을 추어도
평생을 장난 친 돌돌(乭突)이 영감도
내 몸의 붉은 액체(液體)로 글을 쓸 때
그들의 언어는 詩가 될 수 없었고
한같 우스운 말 장난들이었다
하늘을 열기 위해
오직
맑고 푸른 하늘을 열기 위해
등굽은 노인이 자유의 푸른 지팡이를 물려 주실 때
깊은 밤하늘의 여신(女神)이 맑은 이슬처럼
침묵의 키스를 퍼부어 주실 때
나는 영롱히 반짝이는 별과 함께 기도하며
내 뜨거운 액체(液體)의 詩를 썼다
친구여
전자 빨랫줄에 널린 그대들의 詩들은
명창정궤(明窓淨几)라도
개똥혁명(革命) 시간(時間)의 낙서라
나는 내 뜨거운 액체(液體)로
글을 쓴 적 있었다
비로소,
詩는 바로 그 때 부터다
젊은 시인이여
그대는 뜨거운 피로 詩를 써본 적 있는가?
아득한 날,
저 순록(馴鹿)의 눈물이
백두(白頭)의 절경(絶景)에 내리는
순백(純白)의 눈으로
축복할지니
하늘의 노래를 불러라
이젠 흘러간 옛 노래지만
나는 내 뜨거운 액체(液體)로
목놓아 노래부른 적 있었노라
詩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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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악 : Kathleen Battle - Ombra mai fu
*클릭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QO3AlJT2GjM
*배경 :
*다음편 예고 : *시 창작은 인생의 진실에 대한 탐구다
*시 창작은 세계와의 일체감을 꿈꾸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