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동 무궁화공원 뒤에 살고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살고 있는 동네를 둘러 보고 있네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입니다.
제가 상주 근무하는 곳입니다. 대략 2012년에는 계속 있을 것 같습니다.
원룸 바로 앞에서 4 일 9일 장이 열립니다. 실제론 9일 장인듯 합니다.
원룸을 나오면 안골포 해안 입니다.
안골포 해안 뒷길로 가면 마산과 창원이 나옵니다.
서울의 겨울과는 많이 다릅니다.
해안을 끼고 달리면 안골포 굴강이 보입니다.
군사적으로 중요성을 띤 배의 수리나 보수 등을 맡았던 군사시설로, 방파제와 선착장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문구가 있네요. 이순신 장군이 왜구 격파! 갑자기 독도가 생각난다는.......
출근 하면서 사진만 찰칵 시간 될때 다시 와서 사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안골 왜성 관광안내도? 안보관광?
웅천 안골왜성(熊川安骨倭城)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산27외에 있는 일본식 성곽(왜성) 동망산 정상 위에 만들어졌다.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1938년 5월 3일 사적 제53호 『안골리성』으로 지정되었지만 그 후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 재평가에 의해 1997년 1월 1일에 국가지정문화재에서 해제되었고 1998년 11월 13일 지방 문화재자료 제275호로 지정되었다.
성의 둘레는 594m이며, 성벽의 높이는 4∼7m 정도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왜성으로 협반안치, 가등가명, 구귀가룡 등이 쌓아서 1년씩 교대로 수비한 일본 수군의 본거지이다.
해전에서 거듭 타격을 입고 일본으로부터 보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우리의 수군을 막기 위한 최후의 기지로 삼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산의 지형을 3등분으로 나누어 부분적으로 정상을 평평하게 깎은 뒤 본성, 제1외곽, 제2외곽을 나누어서 따로 돌로 쌓고, 외곽으로 각 부분을 연결하였는데, 외곽의 일부는 흙으로 쌓았다. 성의 남쪽과 서쪽은 만을 끼고 있는데, 이는 바닷길을 이용하기 쉽도록 해변까지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제포진의 첨절제사 진영을 안골왜성에 두었다가 1625년(인조 3)에 옮겨가고, 다시 가덕진 소속의 수군만호 진영을 두었다. 안골왜성은 조선 수군이 이곳에서 철수한 뒤에는 폐성이 되어 현재는 일부만 남아있다.
웅천과 웅동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해안이기에 임진왜란 당시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 가기도 하였답니다.
용원항 입구입니다.
강원도 설악에 있는 대포항과 흡사 합니다. 대구가 한창이더니 요새는 청어가 많이 보입니다. 노상에서는 바로 썰어주지는 않고 안쪽으로 가면 회로 장만해서 먹을 수 있고 또 탕종류도 고기값은 따로 받고 요리를 해줍니다.
가덕에서 잡히는 대구 입니다. 2011년12월 22일 지인이 선물로 준 대구가 (중급 활어로 마리당 5만원) 서울로 올라 가는데 어찌나 애들이 몸부림을 치는지 무지 무서웠다는.......
즉석에서 회떠서 먹을 수 있다.
곳곳에 말린대구. 공장에서 쓰는 커다란 선풍기를 틀어서 말리는 곳도 보인다.
이것을보고
달근대 그렇게 부르는데 맛있는거고 구워서 먹고 매운탕으로도 먹어도 된다는 말에 24마리 만원에 구매.
원룸으로가서 손질후 말렸슴. ㅋㅋ 요번주에 올라가면 숯불에 구워 먹을 예정 2주정도 말렸는데 동네 슈퍼에서 파는 코다리 정도
딱 구워서 맥주 한캔 원샷!
두마리는 샘풀로 라면 끓여먹는 남비에 지리 탕( 무반에 반쪽, 급하게 집앞에서 산 청량고추, 양파반쪽 , 소금 , 마늘 갈은것 )
별 <---- 먹으면서 세번 울었슴. 첫째 너무 맛있어서 울고, 둘째 너무 매워서 울고, 너무 뜨거워서 울고(입천장 한 꺼플 떼어냈다는......
이후로 물메기(물텀벙?) 만원에 4마리, 고등어 만원에 6마리 , 일단 냉장고에 꽉 채웠다는....... 혼자 다 어떡하냥?
망산도와 유주암
앞에있는 작은 돌섬이 유주암, 오른쪽 뒤에 나무가 좀보이는 작은 섬이 망산도 부산 신항만 공사로 매립되어 호수 처럼 느껴진다.
망산도
용원동 앞 바다에 잡목으로 뒤덮인 섬 망산도, 이 섬의 동남쪽 70m 해상의 바위섬이 유주암이다.
모두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태후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 곳이다.
가락국의 수로왕이 도읍을 정한 지 7년만에 신하들이 왕비를 맞아들일 것을 얘기하자 ‘짐이 이땅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뜻이며, 왕비 또한 하늘이 주실 것’이라 하였다.
신하들에게 바닷가에 나가 기다릴 것을 명령하여 기다리니, 서남쪽 해상에서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배 한 척이 다가왔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태후 일행으로 이들이 처음 내린 곳이 망산도이며, 허태후 일행이 타고 온 배가 뒤집혀 유주암이 되었다고 한다.
더 찾아 봐야 할곳 !
1.유주각
유주암과 망산도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는 허태후의 전설을 전하고 있는 유주비각이 있다.
2.백제정승 도미의 묘 (진해시 웅동 2동 청천리 청천마을 뒤산)
도미와 도미부인의 설화
백제의 개루왕은 성품이 방탕하여 정사는 돌보지 않고 주지육림(酒池肉林)속에 빠져 지냈다.
자연히 간신의 무리가 들끓었고 국력은 날로 쇠퇴하여 갔다.
정승 도미는 기울어가는 국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왕에게 나아가 간(諫)하였으나 번번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왕과 간신배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한편 도미부인은 백제에서 제일가는 미인이었고, 두 사람의 금슬 또한 모두가 부러워 할 지경으로 좋았다. 이러한 소문이 개루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느 날 왕은 도미정승을 대궐 안에 붙들어 놓은 채 도미정승의 집으로 갔다.
왕의 눈에 비친 도미정승의 아내는 듣던 대로 천하절색이라, 왕이 음심이 발동하였다.
왕은 즉시 시침할 것을 명령하였다.
당시 백제의 국법은 왕명을 거역하는 자는, 일가멸족의 중벌로 다스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하나의 기지가 떠올랐다.
왕에게 방안의 불을 끄게 한 다음 밖으로 나와서 급히 여종을 단장시켜 시침을 들게 하였다.
어둠 속에서 여종을 도미부인으로 알고 하룻밤을 밝혔으나 날이 밝자 왕은 도미 부인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분노 하였다.
왕은 도미정승의 두 눈을 뽑아 버리고 조각배에 태워서 백마강에 띄워 버렸다.
조각배는 흘러 흘러 서해바다에 이르자 때마침 불어오는 북서풍에 실려 남쪽으로 떠내려갔다.
그러나 이 배는 다시 해상에서 조류를 만나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천성도(泉城島)의 해안으로 밀려오게 되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어부를 만나 구출되었다.
한편 도미부인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안타까움으로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다.
그녀는 결국 남편을 찾아 백마강에 조각배를 띄웠으며, 하늘이 도왔음일까. 그녀가 탄 배도 역시 같은 경로를 거쳐서 머나먼 남쪽 땅 천성도(泉城島) 해안에 표착하게 되었다.
도미정승 부부는 여기에서 극적으로 해후하여 마을 사람의 도움으로 살다가 이곳에 합장(合葬)을 하였다 한다.
첫댓글 한시적인 터전이 대박이라는....
취미인 낚시, 여행, 맛기행까지 일거 삼득에
거칠 것 없는 싱글의 자유는 보너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