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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힘 르포문학](12)박영희의 독고다이 르포(하) | ||||||||||||
르포취재, 현장에 젖어야…드러내놓고 메모하지 않고 같은 처지로 만나서 듣기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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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인터뷰와 르포취재는 달라야 한다는 거예요. 적어도 르포는 그 사람의 멘트를 뽑아내는 게 아니라는 거죠. 비정규직 아줌마를 그냥 비추면 기사지만, 그 아줌마를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면 르포가 되는 거죠."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겨울 재래시장에서 얼굴이 빨갛게 얼어버린 채 장사하는 할머니를 만났어요. 아, 그런데 저한테 뭐라는 줄 아세요? - 남들 다 화장해야 되는데, 난 안 해도 돼. 봐, 빨갛잖아! 어디, 좀 예쁘다고 해봐. - 르포 취재는 그렇게 젖어드는 거예요. 그 사람의 말투, 표정, 흥얼거리는 노래 한 자락까지 옮기는 거죠." ◇취재원과 진정 교감하는 일 = 들이대지 않는, 취재원과 먼저 교감하는 그의 취재 스타일은 지난 7일 오후 대구시 교동 금은방골목 현장취재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화려한 금은방 사이에 대조적으로 음침한 지하 계단을 내려가 둔탁한 출입구를 열고 금은 세공점인 '빛광사'에 들어섰다. 문을 열었을 때, 교도소의 철문 소리가 났다. 그야말로 지상의 금은방, 지하의 세공점이었다. 중졸 후 1981년부터 손으로 세공을 해온 업주 김광주(42) 씨는 무뚝뚝했다. 지난해 박 작가가 썼던 <사라져 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 취재 때 만나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됐지만, 여전히 곰살맞지는 않다. 몇 마디 말만 건네고 자리에 앉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왔다"고 인사를 한 기자는 무안했다. 그러나 작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30분, 한 시간을 기다려주었다. 한 시간 쯤 지나서 작가가 김 씨에게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권했고, "예" 해놓은 김 씨가 20분 쯤 지나서 "가지예!" 하며 일어섰다. 전날 밤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작가로서 사람을 만나지 않아요. 그냥 같은 처지에서 만나 술먹고 담배피우지…" 전날 밤 술자리에서 박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길에서 만난 세상>도 그렇고,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도 그렇고, 모두 취재원들 처지에서는 단편적인 이야기 아닙니까? 책 자체도 짧은 글을 모은 거고…" 의외로 그는 흔쾌히 수긍했다. "맞아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몇 가지 구상 중인 게 있죠. 심층적인 취재와 집필이 필요한…." 굳이 이름을 붙이면 '심층 르포'나 '전문 르포'라고 할까. 특정한 주제와 분야를 정해서 장기간 취재하고, 장편의 르포를 쓰겠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 내용도 그는 죄다 털어놓았다. 우선, 방북에 감옥까지 가면서 그가 일생을 걸고 천착해왔던 한국사회의 식민지 잔재 문제. 그는 이 주제를 항일운동가의 전기에 관한 팩션(팩트와 픽션의 합성어)과 만주, 시베리아와 러시아 등 식민지 조선인들의 이주현장 기행 등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또 하나는 집창촌 문제였다. 그는 이 문제를 근시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서울이든 동두천이든, 대전이든 그곳에 있는 집창촌의 역사와 변화, 오늘날의 모습을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그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야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는 살아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
첫댓글 '남들은 다 화장해야 되는데, 난 안 해도 돼. 봐, 빨갛잖아! 어디, 좀 예쁘다고 해봐.' 사람에게 취하는 박영희님께 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