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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역시 환상과 꿈으로서 하나님께서 미래적인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나아갔습니다. 그의 전도여행은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가진 바울에게 신령한 통로를 열어주셨습니다.
고린도 후서에서 그는 삼층천에 세계에 다녀왔음을 부득불 자랑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10)
바울은 극히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을 조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득불 주의 환상과 계시를 자랑하겠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을 제3자로 빗대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사람 즉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어 하늘의 영적세계를 볼 수 있는 귀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육체이탈을 한 것이죠. 그는 또 다른 믿음의 실상을 볼 수 있는 은혜가 있었기에 보이는 현상세계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14)
부르심의 상을 향해 나갈 수 있었던 것과, 그가 수고하고 애썼던것은 삼층 천의 세계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지간한 것을 자랑하지 않았으나 이것을 자랑하였습니다. 몸은 여기 있으나 속사람은 영의 세계에 끌려갔습니다. 그는 이끌려 셋째 하늘에 다녀왔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름과 공기가 있는 푸른 하늘을 보통 하늘이라고 칭하지만 바울은 그 하늘 너머 또 다른 하늘의 세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하늘이란 흔히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구름과 대기가 있는 현실세계의 하늘입니다.
둘째하늘은 사단이 장악하고 있는 공간하늘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와 하늘에 있는 악한영이라는 표현을 써서 둘째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늘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2장에 공중에 권세 잡은 자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도 바울 뿐 아니라 다니엘서에도 이 둘째하늘공간에 역사하는 영을 표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기도의 응답을 첫날부터 내리셨으나 바사국군이 이십일일동안 막았다고 했습니다. 바사국군이란 당시 페르시아지역을 장악하던 메데바사국을 말하는데 이 메데바사를 영적으로 주관하고 있고 하늘의 악한 영을 의미합니다.(단 10:12-14) 이 영은 현실세계나 하늘나라의 중간세계인 2층천에 머물러서 사람들의 마음을 혼돈, 공허, 흑암으로 미혹합니다. 세상에 속해 세속적인 삶으로 범죄하며 방황케 합니다. 헛된 욕망과 미혹을 가져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2)
이렇듯 둘째하늘은 하늘의 악한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셋째하늘은 하나님과 천사와 구원받은 사람들이 거하는 천국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 역시 성령에 감동으로 셋째하늘을 보고 계시 받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삼층천의 계시가 지극히 크고 너무도 귀하므로 주님께서는 바울이 교만하지 않게 그의 육체에 가시 곧 질병을 주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 세차례나 기도했으나 은혜의 족함을 알고, 약한 것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얻어 온전하여짐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렇듯 그는 환상을 통하여 셋째하늘을 보았고 그가 가진 귀한 환상을 통해 그는 구령의 열정을 갖게 됩니다.
요즘도 입신하여 지옥과 천국을 경험한 분들이 있습니다. 근래에 하워드피트만이라는 목사님의 입신경험을 대했습니다. 그분도 사도바울과 같은 삼층천의 세계를 자세히 보고 오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주관자인 마귀의 실체를 모릅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요일 5:19)
사단은 세상권세를 장악하고 있고,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 조차도 미혹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권세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세상임금을 멸하러 오신 분이 십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눅 4:5-7)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세상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지요. 오직 영의 속한 삶을 살때에 세상권세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사단을 물리치신것 처럼 사도바울도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겨 나갔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요 12:31)
바울은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고난과 핍박, 환란을 겪었습니다. 여러 번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돌로 맞고,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해서 주리고 목마르기도 하고, 춥고, 헐벗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복음전도를 멈추지 않음은 바로 삼층천의 세계를 보고서 그는 영의 눈이 떠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였고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3차의 선교여행을 마치고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예루살렘교회에 헌금을 전달하는 것이 그의 이유였지만 두로의 제자와 아가보 예언자는 그곳에 가면 힘들고 결박당할 것을 말하며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 예수를 위해 결박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순교할 것까지 각오합니다.(행 21:1-14) 바로 영혼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였습니다. 물론 바울에게도 성령이 보여주시어 이미 예루살렘에 가도 힘들 것임을 그 역시도 알고 있었지만 삼층천의 비밀을 보았기에 그는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환상을 통하여 영의 세계를 경험하면 현실의 세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나타나는 현상보다는 문제 너머의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또한 영의 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성령께서는 미래적 현실을 환상을 통하여 미리 알려주십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늦가을에 로마로 이송되던 바울이 도중에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몰타에서 3개월 동안 발이 묶인 사건이 나옵니다.
바울은 미항을 떠나 뵈닉스로 항해하려할 때 바울은 영의 눈이 열렸기에 미리 유라굴로 광풍을 보고 그들에게 재난을 당할 것을 충고합니다. (행 27:14)
여기에서 바울은 엄청난 폭풍이 올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18절에서 바울이 마음의 눈이 열려있으면 성령 안에서 미래적 현실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죄수들을 호송하는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지식과 경험을 더 신뢰하여 출항을 강행합니다. 출항 후 때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어 처음에는 그들이 옳은듯 하지만 얼마 안되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서 큰 재난을 당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운행하려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여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백부장이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알려 주신 바울의 계시를 무시하고 선주의 지식과, 선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항해를 결정하여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큰 낭패를 보듯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이 광풍을 만나서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영적 지각이 열렸기에 광풍을 보았듯이 우리도 영의 눈이 열려 성령님께서 보여주시고 알려주시면 광풍을 보고 알아서 피할 수 있습니다.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밤에 내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행 27:23-24)
풍랑을 만났으나 바울이 로마에 가서 가이사 앞에 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주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라는 계시를 받습니다. 큰 재난을 당한 백부장은 그제서야 바울의 말을 믿고 따릅니다. 그래서 배에 있던 276명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로마에 다다를수 있었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은 인생이 자신 뜻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도 내 뜻대로 행할 때에 그 결과는 좌절과 실패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알려주시는대로 행할 때만이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우리를 이끄십니다.
5. 꿈과 환상에 대한 해석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꿈을 꿉니다. 그들의 꿈은 대체적으로 생활과 삶 속에 여러 가지 의식들을 마음속 의식의 세계에 담고 있다가 잠을 잘 때 무의식적으로 발로되어집니다.
꿈을 통하여 인생의 거울이 투영되어집니다.
평상시 자신에게 눌림을 주는 자가 꿈에 악의 존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악을 물리치는 승리자의 모습으로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 친구, 원수 등이 등장하면서 감정, 욕구, 후회, 안타까움 등이 표출되어집니다. 깨어나 보면 꿈속에 있었던 상황이 실제같이 온 몸이 땀에 젖어 있기도 하고 놀라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은 겉으로 떠오르는 의식의 일부분만 드러내 놓지만 잠을 잘 때에는 꿈을 통하여 인간 내부에 감추어진 다양한 부분까지도 전부 들출 수 있습니다. 심령 속에 있는 감추어진 부분들이 드러나게 되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정신적인 문제, 객관적인 상황, 여러 가지 사건 … 등이 표출되어집니다.
특별히 꿈의 특징 중에 하나가 상징성입니다. 상징은 우주적인 언어입니다. 꿈과 환상을 통하여 보여지는 다양한 영상의 세계는 이상을 초월하는 풍요로움이 표출됩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양, 영생수, 포도나무, 목자 …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셨습니다. 꿈은 이 상징의 세계 속에서 다양하고 풍성한 시공간의 여행을 하게 합니다.
에니메이션 영화나 프로그램 제작자, 만화가들이 보는 사고는 논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이같은 상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물을 다양한 언어와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상의 세계를 펼쳐보입니다. 근래에 헤리포터의 영화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영화 모두가 현실세계라기 보다는 상징적 이상의 세계를 표출한 모습이지요.
영적으로 상징적인 표현이 많은 성경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과 같은 말씀은 논리적 사고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다양한 상징적 표현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려면 상당히 난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징적 언어를 깨닫기 원한다면 그 상징의 의미를 기도로써 더 힘쓰는 가운데 깊은 영적 상태 속에서 성령의 조명을 받고 영감을 얻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조차도 다양하게 표현되는데, 한가지로 표현되어지더라도 또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묘사했다면 이사야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7)
반면에 사도 요한은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 5:12)
뱀은 대체적으로 사단을 묘사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반면에 모세 시대에 높이 올린 놋뱀은 치유의 상징으로 달라집니다. 예수님 자신도 그 놋뱀처럼 높이 들리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꿈과 환상에 나타나는 다양한 동물, 환경, 물질 세계도 상징적인 표현으로 구사되어져 있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 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계 12:1-9)
구약의 선지자들도 역시나 많은 상징적 표현을 했습니다.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단 7:1-8)
결국 꿈과 환상의 언어는 성령의 조명 속에 주시는 영감을 통하여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신령한 환상과 꿈에 대한 이해를 소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몇 가지 꿈과 환상에 대한 내용을 풀어줌으로써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 중에 남편의 외도를 근심하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불신자들도 있지만 교회에서 몇 가지 직분을 가진 분들 조차도 음란의 영에 사로잡혀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음란의 영으로 역사하는 것을 보여주실 때에는 뱀이나 징그러운 벌레들을 보여주십니다. 뱀이 그 사람의 몸을 감고 있는 모습이나,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온 몸을 뜯어먹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안타까운 실상을 보지 못하고 악한 영의 사슬에 묶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한 자매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호텔에는 낮이나 밤이나 아내 아닌 다른 여자, 남편 아닌 다른 남자들과 함께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데 본인은 그들의 모습을 볼 때 시집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호텔에서 부부가 만나서 간음하는 문제로 싸우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기도생활을 한다고 하는 직분자들도 초신자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신다는 분들도 이 간음죄를 이기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께 죄를 이길 수 있는 성결의 영(롬 1:4)을 달라는 안타까움이 있어야 합니다.
쥐와 박쥐는 더러운 영이 역사하는 모습인데 중․고 청소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컴퓨터 중독, 음란사이트나 게임 중독, 술, 담배 등을 끊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보입니다. 학생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혼돈케 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보지 못하게 사단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휴학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아예 컴퓨터에 중독되어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음란 사이트나 폭력적 프로그램, 혹은 인터넷 도박과 같은 게임을 하면서 생활합니다. 술, 담배에 중독되어진 사람보다 더욱 심할 정도로 안타까운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8)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서 늘 깨어 기도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지는 은혜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개구리는 삶에 시끄러운 재앙이 있음을 말합니다. 자기는 편안하게 살고 싶지만 시댁이나 친정 식구들과 같은 주변 환경으로 인해서 시끄럽게 어지럽히는 악한 영들이 역사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어느 성도님은 대기업에 성실히 다니면서 잘 살고 있었는데 누나가 사업을 한다고 보증을 서 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1년만에 사업이 망하게 되고 망한 누나의 빚 4억천만원을 하루아침에 짊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월급이 차압을 당하고 경매로 집도 쫓겨나게 되면서 아내와 그 자녀들이 많은 고통을 당하고 좋은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어서 퇴직한 후 혼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어려운 일들을 겪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그리하겠느냐” (잠22:26-27)
잠자리가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모습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방황하는 영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런 영혼들은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닙니다. 요즘에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교회를 옮겨 다니는 모습을 봅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가 안된다고, 저 성도가 나를 괴롭힌다고,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큰 교회에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잠자리처럼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입니다. 어떤 성도는 온전한 교회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온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모두 내면을 들여다보면 흠과 허물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전한 지체가 되어질 수 있도록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지 무조건 완벽한 교회만 찾으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혹시라도 온전한 교회를 찾았다면 당신은 그 교회에 가면 안됩니다. 당신 때문에 그 온전한 모습이 깨어질 수 있으니까요.
파리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더럽다는 뜻인데 사업이 잘 안되어질 때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환상과 꿈에 파리가 보이면 영적으로 회개하며 거룩함을 가져야 하겠고 육적으로는 ‘파리와 같은 더러운 영은 떠나갈찌어다!’ 물리쳐야만 자기의 하는 모든 일들이 잘 풀어질 수 있습니다.
10억 정도의 재산을 갖고 계신 분이 다단계 사업을 하다가 3억을 잃었습니다. 다시 채우려는 마음으로 건물을 샀는데 오히려 사기를 당해서 지금은 오히려 빚만 3억원이나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돈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분을 보며 10억이 있어도 만족함이 없어서 더 벌고자 하다가 넘어진 모습을 보면서 현재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6-10)
기린은 성품이 악하지는 않지만 목이 곧고 교만함을 뜻합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16:5)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16:18)
교회를 나오지 않는 남편들을 기도할 때에 기린을 많이 보여 주십니다. 세상적으로는 인품이 좋고 예의가 바르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하나님 앞에는 자기의 교만 때문에 나오지 못함을 봅니다. 하나님 앞에도 겸손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교만의 영이 역사하면 내가 잘나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합니다. 건강을 주신 것도, 물질을 주신 것도, 구원을 주신 것도 주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119 소방관들을 보여주심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어렵고 힘든 성도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을 구원해 주라는 말씀이신데 교회 안에 이러한 성도들이 많을수록 교회가 부흥합니다. 물질이 없어서 이사를 하려고 하지만 이사비용이 없고 도배, 장판도 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찾아가서 섬기고 도우면 많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주의 일을 하면서 교회 봉고차로 목사님과 함께 이사를 해 주었던 일들이 여러 번 있었고 교회 성도들과 도배와 장판을 깔아주고 길에 깨끗한 가구나 가전들이 있으면 성도들 집에 옮겨다 주면서 도움을 주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선을 행할 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기쁨은 놀랍습니다.
교회가 부흥이 되면서 내가 해야 될 일들이 너무나 많다보니 이제는 병들어서 누워 계시는 성도님 집에 자주 심방을 가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어려운 성도들과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성도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면은 이중인격의 모습을 뜻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겉과 속이 다르게 말하고 행동할 때가 참 많습니다. 제가 영안이 열려서 예수님을 만나고 고쳐진 점이 있다면 마음에도 없으면서 지나치게 아부했던 모습을 발견하고 고치게 되었습니다. 아부하는 모습 보다는 내 속사람에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서 한마디의 말이라도 진심으로 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교회에 성도로 가장해서 등록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돈 거래를 통해서 교회와 성도들을 이용하고 훼방하려는 일들입니다.
지난 주에도 한 성도님이 토요일 저녁에 교회에 찾아오셨는데 자기의 속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모 세무서에 수십년을 근무해서 퇴임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남양주에 사놓은 9천평의 땅이 지금 60억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데 부인이 도박 중독에 빠졌는데 자기 부인 도박 중독을 고쳐 주기만 하면 자기 재산의 3분의 1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캐나다에서 의사 공부하고 있다고 하며 그 가족 이야기를 길게 말하는데 우리 성도들이 그 말을 듣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 날 교회에 등록하셨고 다음날 주일 아침에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저는 오후에 청주에 있는 교회에 부흥회를 갔다가 새벽 3시에 도착했는데 수요일이 되어서야 우리 교회 전도사님이 3만원을 빌려 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그 후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이중인격을 하고 교회에 나타나는 사기꾼같은 늑대들을 늘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금으로 만든 큰 검은 정금같은 믿음으로 악한 영을 대적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환상이 처음 열렸을 때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자기에 대해서 환상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 우리 목사님에 대해서 환상을 보여주세요.” 기도했더니 정금으로 된 큰 검을 들고 서 계셨습니다. 하늘에는 수천마리의 까마귀가 새까맣게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검도하는 선수들처럼 자세만 취한 상태로 검을 휘두르지 않고 들고만 서 있는데도 그 까마귀떼들이 스스로 날아와 그 칼에 맞고 머리와 몸통이 두 조각으로 나누어지면서 땅바닥에 피를 쏟으면서 떨어졌습니다. 땅바닥은 온통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환상을 보고 목사님에게 말씀의 권세를 주셔서 악한 어둠의 영들을 물리치는 능력이 임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로 보여 주신 환상은 목사님이 큰 나무들 앞에 하늘을 보고 서 계셨는데 입김을 불듯이 ‘화’ 하고 입을 열었더니 입속에서 불이 활활 하늘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TV에서 마술을 보았는데 그 마술사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입에서 불을 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그런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이 성령의 불과 같은 은혜가 있을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부흥회나 목요집회에 참석하시어 말씀을 듣고 성령의 뜨거운 불의 체험도 하게 되었고 몸의 진동도 느끼고 성령의 전류를 느끼는 성령의 나타남을 고백합니다. 대개 목사님들의 환상을 보면 말씀의 검이 임한 분에게 이같은 환상이 보여집니다.
신랑과 신부가 예식하는 모습은 우리가 늘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준비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지방에 있는 작은 개척교회에 집회를 갔었는데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 환상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교회가 아름다운 예식장이 되어서 예수님과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작고 부족한 교회의 모습이겠지만 주님께서 보실 때에는 아름다운 교회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을 뵈면서 몇 명의 성도들과 함께 기쁨으로 주의 길을 가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늘 신부 단장하는 삶을 준비합시다.
청주에 있는 교회에 갔었습니다. 환상을 보니 큰 버스에 예수님이 운전을 하시고 성도들은 의자에 앉아서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교회가 구원의 방주이듯 예수님이 그 교회의 주인이 되어서 우리들을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가 버스를 탈 때 이 버스가 사고가 날 것이라는 것을 미리 걱정하고서 타지는 않습니다. 나를 목적지에 안전하게 데려다 줄 것을 믿고 타는 것처럼 주님의 교회도 주님께 맡기고 달려가야겠습니다.
큰 성경책을 보여주심은 그 사람에게 말씀의 은사가 강하게 부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주의 종의 사명이 있는 분들에게 이 환상을 자주 보여주십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을 만나서 상담을 했는데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목회적 사명이 있는지가 궁금하다며 확인하러 찾아오셨습니다. 한국 교계에 큰 문제를 하나 꼬집으라면 많은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에게 “당신은 사명이 있어”, “왜 일찍 주의 길을 가지 않았어?”, “더 늦기 전에 빨리 가서 하나님께 혼나지 말어”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업이 안된다고, 자식이 아프다고, 어떤 질병에 걸렸다고 해서 그 모든 문제를 주의 종이 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해석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평신도들이 이런 목회자의 조언을 받고 정말로 신학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오히려 평신도들이 스스로의 소명의식도 없이 신학교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느라 하나님 앞에 헌신하지 못하고 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목회자가 된다고 해서 얼마나 많이 그 문제가 해결되고 풀릴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는 모든 문제의 해답을 그런 식으로 해결해 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평신도 중에서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신 분들은 스스로가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 저러한 삶의 고단함 속에 예전에 조언 받았던 말을 떠올려서 뒤늦게 신학을 하는 분들은 대개가 자기 생각입니다. 대체로 50세가 넘어서 이런 상담을 해 오시는 분들은 거의가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의 종으로 부르셨다면 일찍부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성, 영성, 감성, 인성를 개발하시고 준비시키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전혀 준비되어지지 않은 상황 속에 뒤늦게 주의 길을 간다고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이겠습니까? 세상일을 하는 분들도 어떤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고 이름이 알려지기 까지는 수십년간 경험과 인내가 있었기에 명인이라는 칭호도 받고 전문인이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하물며 주의 종은 영혼을 살리는 가장 귀한 전문인입니다. 평신도들이 뒤늦게 자기의 감정으로 신학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주의 종들 중에서 대부분 늦게 신학을 한 후 목회를 시작한 분들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았어도 영력이 없다 보니 교회를 개척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전도도 안됩니다.
얼마 전에 69세가 되신 장로님이 찾아오셔서 어떤 목사님에게 기도를 받았는데 신학을 해서 목회자가 되라고 기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너무 고민이 되어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75세쯤에 신학을 마치고 그 때부터 목회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저는 끝까지 장로님으로 그 교회에 충성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개구리는 삶의 환경이 여러 가지로 시끄러운 상황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는 믿음 안에서 차분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자기의 뜻과 상관없이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로 어지럽고 시끄럽습니다. 남편의 사업문제로 물질의 부도가 나서 그 빚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많은 고초와 시달림을 겪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형제나 친구들에게 보증을 서 주었다가 실패를 보고 가정의 참담한 일을 겪는 분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으로 온 가족이 고통을 겪습니다.
때로는 자기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파서 그 가정의 모든 생활리듬이 깨져 버립니다. 병원에 심방을 가보면 한 사람의 아픔을 통해서 온 가족이 잠도 자지 못하고 식욕을 잃고 괴로움을 겪고 있는 모습들을 봅니다. 노부모를 모시면서 누가 모시느냐로 형제 간에 가정불화가 생기고 시끄러워집니다. 노부모를 모시지 않으려고 형제들 끼리 서로 싸우고 때로는 유산 문제로 법적 소송까지 해가며 남보다 더 못하게 의가 상할대로 상하는 일도 종종 대하는 장면입니다. 결혼을 한 부부가 친정이나 시댁에서 들려오는 문제를 통해서 참된 행복을 갖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 모습들을 보았는데 하나님께 “나의 삶속에 개구리와 같은 시끄러운 재앙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갈 찌어다” 기도해야 겠습니다.
가짜 성탄 추리를 보여 주신 적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자 같지만 그 안에 예수의 생명이 없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일이 되면 성경책을 들고 교회로 예배 드리러 가지만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도 많습니다. 교회 밖의 불신자들에게도 전도해야겠지만 교회 안에서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어야겠습니다.
검은 안경을 보여주심은 말씀이 없이 살면 소경이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믿음 생활을 하지만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믿음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허영을 따라서 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때문에 자기의 영혼을 돌보지 못하고 영적으로 어두운 삶을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성도인 것 같은데 교회 밖을 나가면 말씀과 생활이 분리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심령에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그 모습 자체가 불완전한 것처럼 성령으로 거듭나지도 않은 자가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일을 하게 되면 그 맡겨진 일을 온전히 감당하겠습니까?
긴 유리병은 눈물 병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할 때에 천사들은 우리의 눈물을 다 보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눈물의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목격합니다. 가족이 구원되고 물질이 회복되고 자녀들이 바로 서며 질병이 치유되는 등 많은 은혜와 간증들을 대하다 보면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 간절히 사모하여 흐르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은 아들이 예수를 안믿어서 1년 동안 아침 금식을 하며 기도 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지금은 교회에 나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권사님은 금식을 많이 해서 머리에 탈모증이 생기고 아프고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자식을 구원하고자 주님께 매달리며 수고했더니 아름다운 열매로 주님은 역사하셨습니다.
당나귀가 무거운 짐을 싣고 힘들게 가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 그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움을 갖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답답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대로 살면서 건강을 잃어버려서, 부부의 외도 때문에, 자식 문제로 인해 눈물을 흘립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정의 행복과 사랑이 없어서 슬퍼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의 가난한 형편 때문에 늘 물질에 시달리고,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 주지 못하는 것 때문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카드빚과 생활고에 시달려서 죽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물질이 많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와 안식이 없으면 불행하게 사는 자들도 부지기수입니다.
큰 바위가 깨지는 모습은 우리의 인생이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고 있는 모습을 뜻하는데 산 위에서 큰 바위가 깨질 때에는 뾰족뾰족하고 날카로운 모습들이지만 땅 아래로 굴러 내려오면서 서로 부딪히고 깎이면서 둥글둥글한 자갈이 되어지고 부드러운 모래가 되는 것처럼 우리도 처음 예수를 믿을 때에는 모난 부분들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말씀과 기도로 다듬어 집니다. 때로는 성도들과의 부딪힘을 통해서 자기의 부족한 성격들이 다듬어지는 가운데 주님의 모습으로 바꾸어 가는 것을 봅니다.
환상과 꿈은 내 마음의 거울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상징적 언어를 통하여 나에게 다가 오십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영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꿈을 심리학적인 차원으로 바라봅니다.
본인은 성령께서 꿈과 환상을 통해 조명해 주십니다. 그리고 지혜의 영이 임하여 보여지는 동물이나 물체 또는 환경에서 역사하는 어떤 상황들을 순간순간 깨닫게 하십니다. 2006년 1년동안 축복교회에 찾아오신 분들을 통하여 본 중요한 환상들을 ‘환상을 통한 영적 진단과 해석’ 란에다가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영적 진단한 내용들을 참고 하셔서 많은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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