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조씨(昌寧曺氏) 김천(金泉) 입향내력
창녕조씨의 김천 입향조는 조심(曺深)으로 고려말에 고려의 국운이 쇠잔하여
다함을 한탄하여 당시 김산(金山) 즉, 현재의 김천으로 낙향하였으며 병조참의가
증직되었다.
입향조의 아버지는 고려 단성좌명공신으로 서성군(瑞成君)에 봉(封)해진 밀직부사
추봉의정부좌찬성 조경수(曺敬修)로서 고려 문하시중 조민수(曺敏修)가 맏형이고
고려 경상도병마절제사 조익수(曺益修)가 둘째형이다.
입향조의 할아버지는 고려 정순대부(正順大夫) 판전의시사 증 문하시중 창성부원군
조우희(曺遇禧)로서 묘소는 경상남도 기념물제60호로 지정되어있다.
입향조의 맏형은 대호군(大護軍)과 예조참판등을 지낸 조혼(曺渾)이고 둘째형은
조항(曺沆)으로 전라감사등을 지내고 공신에 올랐으며 증직(贈職)으로 영의정이
내려졌다.
맏형 조혼(曺渾)의 아들로 조카인 조효문(曺孝門)은 대사헌,평안도관찰사,예조참판등을
지내고 좌익공신에 록훈되었으며 창성군(昌城君)에 봉(封)해졌고 시호(諡號)는 성도공
(成度公)이다.
둘째형 조항(曺沆)의 아들로 조카인 조석문(曺錫文)은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으로
시호(諡號)는 충간공(忠簡公)이고 도승지,이조참판,호조판서,영의정등을 지냈다.
입향조의 아들은 조승중(曺承重)은 선무랑(宣務郞)등을 지냈으며 조계문(曺繼門)은
울진현령등을 지내고 증직으로 이조참판이 내려졌고 손자로는 조선조 김천의 대표적
인물인 문장공 매계 조위(曺偉)선생과 효강공 적암 조신(曺伸),그리고 고양군수등을
지낸 조척(曺倜)등이있다.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등을 지낸 죽산(竹山) 조봉암
(曺奉岩)은 입향조의 17대손이다.
유택(幽宅)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선돌 방목산에 있다.
◆. 문중인물
가. 문장공 매계 조위(文莊公 梅溪 曺偉)
자(字)는 대허(大虛)요 호(號)는 매계(梅溪)이며 시호(諡號)는 문장공(文莊公)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1454년(단종2년)에 경북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鳳溪)
마을에서 울진현령 조계문(曺繼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영남사림의 종사(宗師)이자 매형인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선생에게서 글을
배웠고 종숙부(從叔父)인 영의정 충간공(忠簡公) 조석문(曺錫文)에게서 소학을 친수
받았으며 18세에 성균관 생원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고 21세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주요 벼슬로는 홍문관 수찬,사헌부 지평,세자시강원문학,함양군수,도승지,호조참판,
충청도관찰사,동지춘추관사,전라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성균관대사성등이며 증직
(贈職)으로 이조판서,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등이 내려졌다.
주요 업적으로는 1481년(성종12년)에 왕명으로 두시언해를 25권17책으로 완성하고
그 서문을 썼으며 1493년(성종24년)에 왕명으로 점필재 김종직선생 문집편찬, 1495년
(연산원년) 왕명으로 성종실록 편찬.
무오사화로 전남 순천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우라나라 유배가사의 효시인 만분가
(萬憤歌)를 집필하였으며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7호인 임청대(臨淸臺)를 세웠음.
선생의 문집은 1718년(숙종44년) 10권5책 목판본으로 매계문집이 발간됨. 문집 구성은
권두:서문,연보. 1권:시99수, 2권:시188수,3권:시99수, 4권:각종 기문(記文),서문
(序文)등, 5권:부록(선생행록,묘지명,묘표,매계당기,서원봉안문,문집발문등).
경북 김천의 경렴서원, 충북 영동군의 송계서원, 전남 순천의 옥천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유택(幽宅)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 말개미에있고 신도비(神道碑)는 율수재(聿修齋)
앞에 세워져있다.
나. 효강공 적암 조신(孝康公 適庵 曺伸)
김천입향조의 손자이자 매계조위선생의 동생으로 자(字)는 숙분(叔奮)이요 호(號)는 적암(適庵)이며 시호(諡號)는 효강공(孝康公)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경북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鳳溪)마을에서 태어났다.
내시교관으로 재직시 일본 통신사 신숙주(申叔舟)를 수행하여 유창한 일본어와 도도한 문장(文章)과시(詩)로 그곳 사람들을 놀라게하였다고 하며 곧바로 사역원정(司譯院正)에 발탁되었고 사신으로 중국에 7차례, 일본에 3번 다녀왔음.
아주 교분이 깊었든 월산대군(月山大君)은 시를 지어주며 " 신(伸)은 풍월객(風月客)이요 시명(詩名) 또한 뛰어나도다. 홀로 능히 고율(古律)을 겸할수 있으니 어찌 아름다운 구슬이 아니랴, 시(詩)속에 생각이 무궁무진하여 한가로운 가운데 기망(期望)있음을 기뻐하노라. 서로 만나 한통 술로 담소하니 흥취가 진진하도다." 라 하였듯이 시(詩)에 뛰어나 "직지사운"을 비롯한 많은 시를 남겼으며
중종의 명으로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를 편찬하여 뒷날 "오륜행실도"를 완성하는데 대본을 마련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저서로는 "적암시고(適庵詩稿)", "수문쇄록", "백년록(百年錄)",등이있으며 공조판서(工曹判書)가 증직되었고 유택(幽宅)은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있고 신도비(神道碑)는 율수재앞 매계선생 신도비와 나란히 세워져있다.
매계 조위선생과 더불어 나란히 두형제가 시호(諡號)를 받은 김천의 조선조 대표적인 인물이라할수있다.
다. 문과에 장원급제한 조효창(曺孝昌)
김천 입향조의 6대손이자 매계 조위(曺偉)선생의 현손(玄孫)으로 1623년에 김천시 봉산면 봉계(鳳溪)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자(字)는 행원(行源)이요 호(號)는 계양(桂陽)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1678년(숙종4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적(典籍), 공조좌랑, 춘추관기사관, 예조좌랑등을 지내고 요절하여 그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였다.
어려서 부터 시와 서예,그림,천문지리,음악등 전분야에 뛰어나 세인들이 "삼절천재(三絶天才)"라 하였다.
라. 조 임(曺 霖)
김천 입향조 조심(曺深)의 10대손이자 문장공 매계 조위(曺偉)선생의 8대손으로 자(字)는 상보(商輔)요 호는 신재(新齋)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박학다식(博學多識)하고 행의돈독(行誼敦篤)하여 사림(士林)의 추중(推重)함이 크고 깊이 성리학을 연구하고 벼슬을 멀리하여 "산림숙덕지사(山林宿德之士)"라 칭송되었다.
정조8년(1784년)에 대신들의 천거로 감역(監役),경연관(經筵官),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별제(別提),장령(掌令),형조참의(刑曹參議)등으로 소명이 내려졌으나 모두 불취하였다.
정조가 고려지명(顧廬之命)을 내려 친히 행행(行幸)하고자 어로(御路)를 닦고 다리를 놓게 하였으나
왕세자의 급서(急逝)로 중단되었다.
정조임금이 공(公)의 학덕을 생각하여 "대궐안 숲속 맑은 매미소리 듣고 경의 높은 덕(德)을 생각하노라"
하고 말을 타고 올라 오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정조가 예관(禮官)을 보내 8차례나 국사(國事)를 구의(救議)하였으니 공(公)의 높은 학문과 덕행을 알수가 있다.
저서로는 "의례집성(疑禮集成)", "신재문집(新齋文集)"이 있다.
마. 관찰사 후계 조시영(觀察使 後溪 曺始永)
김천입향조 참의공 조심(曺深)의 14대손이자 문장공 매계 조위(曺偉)선생의 12대손으로 1843년(헌종9년)에 동돈녕부사(同敦寧府事) 조진구(曺鎭九)의 아들로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鳳溪)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자(字)는 치극(致克)이요 호(號)는 후계(後溪)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1882년(고종1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교리,응교,사헌부지평,장령,성균관사성,병조정랑,병조참의,형조참의,동부승지,흥양부사,고령부사,여산부사,경상도소모사,경상남도관찰사등을 지냈다.
1894년에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경상도소모사(慶尙道召募使)로 임명되어 동학군을 완전 진압하였고 진압의 공으로 "갑오공신록에 올랐다.
3개군에 부사로 재직시 선치(善治)로 송덕비(頌德碑)가 각각 세워졌고 경상남도 관찰사로 재직시 많은 치적과 선정(善政)으로 진주에 청덕선정비(淸德善政碑)가 세워졌으며 합천해인사에도 선정비가 세워져있다.
경남 진주에 세워진 "관찰사조공시영청덕선정비(觀察使曺公始永淸德善政碑)"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봉황우비 우아분성. 옥호정감 무원불명. 사춘사난 여수지청. 아아촉석 여흘치성(鳳凰于飛 于我汾城.
玉壺精鑑 無遠不明. 似春斯暖 如水之淸. 峨峨矗石 與屹治聲)"
해석 : "그대는 새중의 봉황새, 인연있어 진주(분성)에 날았습니다. 옥같이 티없는 밝은 거울, 어느곳 하나 비추지 않음이 없었소. 온정은 부모의 품속 봄과도 같은 것. 청렴은 물처름 맑아 만대(萬代)의 본보기.
위엄있고 성(盛)한 모양 촉석(矗石)을 닮았으니, 어진 정치 들난 이름 산(山)과 함께 견주네".
저서로는 "상례제요(喪禮提要)", "후계집(後溪集)"이있다.
출처:한국국학진흥원 참여마당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