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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표현 2001년 1/2월호 시조평
한국적인 것과 사이버 시조의 도약
이재창 (시인)
1.
각종 문예지들에 발표되는 시조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현대시조인가, 아니면 시조의 형식을 갖춘 아류인가. 그에 대한 논란들이 한 해를 저물면서 별다른 성과 없이 지나가고 있다. 성급한 결론을 도출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그러한 논의를 벌이면서 시조는 발전한다고 생각된다.
한해를 마무리 하며 나타나는 작품은 수없이 많다. 시조 전문잡지와 그 외 종합지나 시전문잡지에 발표되는 시조의 양은 예년보다 상당히 많아졌다. 시 전문잡지의 끼위넣기식 시조부문 할애는 긍적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시조시인들의 발표지면이 넓어졌다는 것과 경영난 타개를 위한 잡지사의 타장르 고객확보를 위한 방법의 측면, 그만큼 시조의 위상이 점차 높아져 간다는 것 등등이 어우러져 있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21세기는 진정 시조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형식적 특징의 제약을 뛰어넘어 국민들의 가슴에 항상 애송되는 시조, 누구나 시조 몇 수를 짓고 읊을 수 있는 국민문학의 시대가 올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와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가락과 리듬은 역시 시조의 리듬과 가락이 가장 가깝다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민족정서 속에서 또다시 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의 시대는 멀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우리 문화정책의 기본 전략이 되다시피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들이 유행하며 각종 문화술행사에 단골 언어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적인 문예행사와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수없이 쏟아내는 문예행사들을 보면서 우리 민족문학적 성향을 가장 많이 지닌 시조가 한국적인 문학이며 세계적인 문학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상당한 의문점이 생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행사들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기 저기 정부예산을 지원받아 호들갑을 떨며 행사를 치르는 것은 어쩌면 지방자치 단체장들의 업적을 위한 행사수준에 불과한 것들이 너무도 많아 볼성사나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수없이 많은 문예행사들이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두드러져 나타나는 행사들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거나 타 자지단체와 경쟁하듯 행사를 부풀려 지원된 예산 바닥내기에 불과하고, 그 분야도 타예술장르에 집중되어 있어서 우리 민족문학인 시조의 전통계승과 발전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간혹 문예진흥원에서 시조분야에 지원하는 그 액수도 자유시나 소설 등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그들의 쥐꼬리에 불과하다. 어쩌다 지원받는 경우도 자유시나 소설 타장르와 비교해 구색을 맞추기 위해 끼워넣기식 지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것들만 보더라도 정책입안자들이나 문화예술계 지도층 인사들은 시조란 장르를 아주 모르고 있거나 이조시대의 문학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무지한 생각까지 든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의식수준이 그 만큼 낮다는 말도 된다. 지자체가 경쟁하듯 서로서로 예산을 따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그러한 문화예술행사에 시조행사를 끼워 넣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
지자체들의 각종행사에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까지 예산을 지원해 주고 얻는 결과는 무엇인가. 실제로 그것들에 대한 평가는 시행지자체나 지원하는 평가부서에서 맡아 하겠지만 모두다 한결같이 이번 행사에 관광객이 몇 명 찾아왔고, 순익이 얼마가 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이 어떻게 문예행사인가. 장사에 불과한 것이다.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 예산을 지원하면서도 우리것을 살리고 보존하는 것에 해당하는 민족시인 시조의 계승발전에는 외면하듯이 일푼도 없다. 정말 한탄할 일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내부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시조가 소외되어 왔던 현대시조 1백년이 무덤덤이 흘러온 과정에는 그만큼 우리 자신 스스로의 현실기피증과 시조의 역할과 영역확장을 위한 피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타 장르의 창작자들이 당시대의 중심에서 온몸을 던지며 피땀 흘리며 자기 영역을 개척하고 확장하고 있는 동안 자기안위나 배설위주의 작품을 생산해온 시조단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현실안위의 서경에 심취해 있었을 뿐이었다. 21세기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이러한 시조창작자들이 태반으로 존재하는 이상 앞으로도 시조라는 장르는 타 장르의 사이에서 고립되고 소외되는 사실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마구잡이로 생산해 내는 그들의 수가 ‘젊은시조’보다 훨씬 더 많고 시조단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한 그들의 노인네적 인해전술의 속성이 아직까지 수그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장파의 한편에서는 그들의 역할과 영역은 그들 나름대로 인정해 주고 또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힘을 쌓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타 장르 창작자들이나 시조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수용되지 않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들의 요소가 진정한 문학적 관계에서의 인식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될 수 있어서 정책입안자들이나 문화예술계 지도층들은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인가. 만약 시조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면 그들에게서 한마디의 정책적 시안마저 나오지 않고 뒷전에 머물러 있는지.
관은 군림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관이다. 국민의 혈세를 녹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역할이 바로 서지 못할 때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고, 진정한 세계로 향하는 한국적인 것들은 어둠에 묻혀 버리고 빛을 발하지 못한다.
소규모의 예산을 들이고도 가장 많은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장점을 뒷전에 처박아 놓는 그들의 시안은 감겨 있고, 제대로 앞을 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인식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넓은 안목과 혜안을 가진 자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갈 길은 요원할 따름이다. 그러나 시조의 세계화를 위한 시조시인들의 문학적 역할과 영역확대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2.
2000년의 한 해는 많은 예술분야에서 새롭게 태어나려는 몸부림의 시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시조단은 일발의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사이버문학이 태동한 시기라고 여겨진다. 비록 초기적 증상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 사이버시조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데 동조한다.
인쇄매체인 문학잡지에서 담당할 수 없는 역할을 그들은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독자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는 잡지 매체보다 사이버시조의 역할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계층과 계급, 나이에 상관없이 무한대로 개방되어 있어 시조의 대중적 측면과 국민문학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잡지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초등학생부터 칠순노인까지 구태여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서 시간를 소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만 있다면 검색엔진을 통해 무엇이든지 정보의 바다에서 클릭하나로 원하는 정보를 획득할 수 있고, 쉽게 시조에 접근 할 수 있어 사이버시조의 장점이 잡지매체의 장점보다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초중고생들이 인쇄매체인 시조잡지를 얼마나 구입해 볼지는 의심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해 있는 초중고생들은 수없이 접속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지금 개설되어 있는 시조사이트들의 대부분은 현대시조와 옛시조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 그 사이트의 옛시조 코너를 클릭하면 엄청난 방문객에 쉽게 놀라고 만다. 그것이 비록 학교공부를 위한 클릭이었다 할지라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시조의 대중화와 보급을 위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초중고생들이 학교 공부를 위하여 잡지매체를 찾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잡지 매체는 일정한 독자에 대한 만족은 충족시켜주지만 시조의 보급과 대중화를 위한 역할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시조문학의 인터넷시대를 예고한 시조사이트를 들여다 보자. 현재 인터넷 시조전문사이트는 기존의 신웅순 교수의 <시조박물관>, 이재창 시인의 <시조대학>, 신후식 시인의 <시조세상>, 김주석 시인의 <시조아카데미>, 등이 있었으나 올해 후반들어 추창호 시인의 <시조사랑>, 손상철 시인의 <시조신춘>, 미주 시인들과 김호길 시인의 <시조월드>, 열린시조의 <우리시>, 이영지 시인의 <문예창작교실> 등의 사이트들이 생겨났고, 시조시인 개인의 홈페이지 성격을 지닌 사이트로 윤금초 시인의 <시조여행>, 이우걸시인의 <이우걸 시세계>, 강세화 시인의 <시가 있는 페이지>, 권기택 시인의 <초강에 배를 띄우고>, 장용복 시인의 <시조세상>, 송철용 시인의 <달가람 시조시인닷컴>과 민병도, 최진경, 송정란, 송명호, 송길자, 최언진, 임성규 시인의 사이트 등이 있으며, 그리고 고교생 사이트인 <시조이야기>가 있다.
타장르에 비해 양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지만 시조전문사이트들은 나름대로 역할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분들의 노력은 잡지이상의 엄청난 시간과 자신을 볼모로 한 헌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역할을 스스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시조박물관>의 운영주체인 현대시조연구회는 현재 인터넷 시조사이트에서 가장 활성화된 선두주자다. 그들의 인화와 문학적인 연대감은 앞으로 시조단에 뚜렷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성과 아마추어를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시조보급과 창작지도에 열심이다. 특히 <시조웹진>은 시조 대중화운동의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좋은 예라고 말하고 싶다.
시조창작 전문사이트인 <시조대학>과 <시조아카데미>는 시조를 배우는 아마추어들에게 습작작품에 대한 품평 지도 등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시조대학>은 전국적으로 교수요원을 위촉 각 지역별로 창작지도와 세미나 등을 개최함과 동시에 창작지도와 전문화에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 문을 연 미주의 <시조월드>도 해외에서의 우리문학 자존심을 내걸고 시조의 세계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시조시인들이 개인사이트나 전문사이트를 개설하기 위해 준비중인 사실은 앞으로 시조가 잡지보다는 컴퓨터와 인터넷 속에서의 보급과 대중화 역할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시조의 대중화에 있어서 가지는 단점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을 인터넷에서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
올해들어 또 하나의 관심사는 단시조의 집중적인 발표와 논의이다. 그것은 새 세기를 맞이하면서 현대인들의 심리적 특성상 길고 복잡하고 사설이 많고 시간과 사고를 요하는 이미지의 작품들은 배척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단시조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지면을 통해서 발표된 단시조는 연시조가 보여주지 못하는 시조 고유의 특징을 잘 나타내 준다. 간결하고 함축적이고 긴장된 시적 묘사는 극히 타 장르가 넘볼 수 없는 시조만의 영역이며 불멸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시조 중에서도 단시조가 한국적인 서정시의 원형이며, 간결함을 원하는 현대인의 심리적 특성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잡지에 쏟아져 나오는 작품들을 일일이 파악하거나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필자가 보았던 작품 중에서 단시조 몇 편을 추려 보았다.
올해 단시조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허영자 시인의 두 편의 시조였다. 많은 사람들이 허영자 시인을 시조시인으로 생각지 않지만 그녀가 발표한 시조에 더 많은 매력이 끌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충격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시조시인들은 모두 들러리인가. 단 한 명의 자유시인의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복잡 미묘하다. 이만큼의 작품을 시조시인들은 왜 능가하지 못하는가. 한낱 고시조적 서경이나 일삼는 대다수의 시조를 대하면서 반문해보는 말이다.
그리고 홍성란 시인의 사설 한편을 덧붙여 보았다. 홍시인이 사설시조에 대해 줄기차고 옹골차게 한 길을 파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일부에서 사설시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며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또다른 반론을 제기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이 빛나고 있다. 홍시인의 사설시조「또드락 딱딱-구룡산 詩篇 7」은 근래보기 드문 사설시조의 으뜸이다.
오승철 시인의「고추잠자리」, 이달균 시인의「아버지의 청춘」, 최양숙 시인의「無心中」이 눈길을 끌만했다. 이들의 작품을 음미하며 글을 끝맺고자 한다.
욕심에 쓰는 연서는 분홍빛이 아닙니다
한숨도 가쁜 숨결도 불면의 밤도 아닙니다
새벽빛 수묵화 한 점 공손히 올립니다.
-허영자「연서」전문
이순의 나날은 맑고도 푸릅니다
천둥 울고 번개 치던 하늘은 잠잠해져
법열의 연꽃 한 송이 향기로이 벙급니다.
-허영자「이순(耳順)」전문
누군들 속잎 같은 인연이고 싶지 않겠나
수많은 갈잎 중에 신갈나무 마른 잎새 何必 이 한 잎에 이끌려 오래 같이 걷는다 손장단 맞춘다 어느 먼 옛적 애틋한 이별이었을까 몇 군데 벌레 머물다 간 자리 윤나는 잎철 있기나 했는지 생각의 갈래길이 관다발 손금 위로 바스락바스락 줄글 읽는 소리함께 지나간다 소맷자락 달라붙은 도깨비바늘 뿌리치며 넌들 왜 한 갈피 따뜻한 연분이고 싶지 않겠나
그대는 어느 손에 붙들려, 虛! 마음가락 좇는가.
-홍성란「또드락 딱딱-구룡산 詩篇 7」전문
하늘이 점지했나 삼백예순 제주오름
가을엔 나도 잠시 생명을 놓고 싶다
물음도 대답도 없이 섬에 뜬 헛봉분들
-오승철「고추잠자리」전문
아버지의 청춘을 들은 적은 별반 없다
살기 위해 무작정 북만주 가서 얻어온
모래만 하얗게 갈앉던 물종지와 해소병
-이달균「아버지의 청춘」전문
산감나무 우듬지에 올라앉은 청설모
떫은 알을 깨물다 무심코 던지는데
들찔레 가슴에 덜컥 맞아 흰꽃잎만 바르르
-최양숙「無心中」전문
*이재창 /
1979년 시조문학 2회 천료,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거울論’ 당선, 1991년 심상 신인상 시 당선으로 문단 활동.
시조집 <거울論>, 시집 <달빛 누드>, 6인 시조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문학평론집 <아름다운 고뇌> 등이 있으며, 현재 광주매일신문 지역사회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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