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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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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말한다 ! 자유로서의 공성
잊지않기 추천 0 조회 269 09.12.05 14:3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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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2.05 15:49

    첫댓글 서양인들의 저술은... 뭐랄까... 자아(self)를 중심에 두고 빙빙 도는 편이고, 자유등 "대"한 무엇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약이라 할 수 있는데요. 물론 자유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 거구요... 하지만 방향성을 살필 때,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서양쪽 계열의 저술들이 좀 그런 편입니다... . . 중론의 사고가, 속박 즉 조건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구요... 속박 즉 조건을 긍정하는데, 속박 즉 조건에 따른 드러남은 자성이 없다는 점을 보이는 거죠... 어떠한 실체는 아니란 건데요... 속박 즉 조건을 부정한다면, 일체개고를 부정하는 것이고...그러면 고성제를 부정하는 것이라서 가능하지 않거든요...

  • 09.12.05 15:58

    본글과 같은 내용의 글들은...아무래도 부처를 상상한 다음, 부처에 대해 설명하려는 자세가 강합니다. 그렇죠? 근래 다른 곳에서 이중표님의 견해에 대해서 그와 같은 비판을 한 적이 있단 말이죠... 그런데 불교는, 부처나 열반에 대해 입을 대지 않습니다. 확고하거든요. 불자는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해야지, 부처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단 말이죠... 중생은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을 뿐, 부처를 이해할 순 없단 말이예요. 이러한 기본 자세등에서, 사고등 마음의 행위에 있어서의 방향성도 결정되거든요. . . 방향성으로 따질 때, 중생에게 흡족한 것은 괴로움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거의 맞아요... 뭐...틀림 없거든요...

  • 09.12.05 16:05

    형상이 있을 때, 형상이 있음을 안다... 그런데 있음이 어떠한 실체로 있음이 아니라는 거죠... 실체로 있는 것이 아니니...다른 무엇이 변화해서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 없다가 실제 생긴 것도 아니고, 무엇이 있다가 실제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다른 무엇이 변화해서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말은, 첫번째 원인이 있어서 그 원인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 . 서양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반야부가 이해를 다룬다고 볼 수는 있는데요. 티벳불교도 그렇게 본단 말이죠... 그 이해가 밑도 끝도 없는 그냥 머리로만 이해가 아니라, 알아차림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견해의 다스림을 위한 이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아요...

  • 09.12.06 13:12

    이제는 방문객님이 말씀하시는 거 조금씩 이해가 되요 ...그 전에도 이해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머리로만 이해했다고 할 수 있어요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방문객님 완소

  • 09.12.06 17:37

    "비약이라 이름할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내용을 잊지않기님이 올려주셨는데요. 32번 본글과 그 이후의 본글들을, 사고의 "결(방향성)"에 주의하면서 살펴 보면..."괴로움을 떠나려고만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런 측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쪽에 안목이 분명하게 생기면, 역류문을 떠나는 일이 없게 되고, 보다 바르게 불법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위에 적혀 있는 제 말에 동의가 안되는 분들이 많을 수는 있지만 말이죠... 얼핏보면 같은 말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런다구요... 하지만 그런 "결"에 민감해지려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그러면 소위 일상에서도 사뭇 달라지게 되거든요...

  • 09.12.06 17:45

    좀 부연설명하자면, 32번 본글은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소위 "공성"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삼매와 사띠입니다. 집중과 자각이죠... . . ①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그 현상 자체를 떠나지 않고 바라보는 집중으로 파악되는 공성... ②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그 현상의 인과를 살핌으로서 파악되는 공성... 그리고 ③ 이러한 두가지 논의가 초점이 된 "어떤 현상"을 떠나서 말해지고 있지 않단 말이죠... . . 잘 읽어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어요... 법을 바라보는 안목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저도 나이롱이긴 하지만, 저 정도의 나이롱은 저리 가라고 하는 완전 나이롱도 무지 많아요... 바로 우리의 성향에 보비위만 맞추는 나이롱들요...

  • 09.12.06 17:59

    그리고 위에 적었듯...우리 성향에 보비위만 맞춘다면, 역류문인 불법이 아닙니다. 그럴 수 없죠... . .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32번 본글은..."색즉시공(형상은 공성)"은 '삼매(집중)'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고..."공즉시색(공성은 형상)"은 '사띠(자각)'에 따른 '비빠싸나(위빠싸나, 통찰)'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렇단 말이죠... 불교 특히 대승불교에서 가장 전통적인 서술 방식의 하나입니다. 대충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대충 하는게 아니라구요. 같은 말 같지만, 같은 말이 아니고 그런 경우가 많아요. . . 불자들이, 불법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보다 온전하게, 불법에 다가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09.12.06 18:13

    기왕 말이 나왔으니, 적어 봅시다. 위에 보면, [불교 특히 대승불교에서 가장 전통적인 서술 방식의 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등도 없는 뻥이 아니구요... 과거 말한 바 있지만, 중국 화엄종 법장조사의 반야심경 주석을 봐도, 소위 지관수행과 관련하여...색즉시공을 "지(그침, 집중)"에 대응시키고...공즉시색을 "관(위빠싸나, 통찰)"에 대응시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 지관을 함께 행한단 말이죠.... 두가지 방식으로 접근한 다음, 그 둘을 또다시 통합하는 것이죠?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이 따로 국밥인 것만은 아니라구요... 그러니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러한 논의에서 과거에 적은 바 있는, 무자게 멋진 표현이 나와요.

  • 09.12.06 18:27

    [색즉시공을 알 때, 큰 지혜가 일어나 생사를 여의고...공즉시색을 알 때, 큰 슬픔이 일어나 열반을 여읜다.] 무자게 멋진 표현이죠? 제가 해당 표현을 읽었을 때, 정말 감동했었단 말이죠... 지금도 그렇구요... 해당 표현의 취지는, 상좌불교에서도 동일합니다. 상좌불교에서도, 소위 자비행과 관련하여 관법을 중시한다구요... 물론 관법이란 표현을 쓰기 보다는, "자비심을 배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편이긴 하지만요... 어쨌든...해당 표현에서 "열반을 여읜다"의 '열반'은, 중국 화엄종의 네가지 법계 중 이법계로 제한하여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구요... 그게 무난하다는 거죠...

  • 09.12.09 20:00

    꼬리글 읽고 32번 본글 여러번 읽었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표현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해가 어려웠어요 ...전체적인 의미는 대충 알겠는데 ...만약 제가 어느 정도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읽었다면 ...무슨 의미인지 몰랐을거 같아요 ...그만큼 불법을 바르게 이해하기가 어려워서겠죠 ...? 방문객님 설명을 읽고 다시 읽어도... 좀 어려웠어요 ...차라리 방문객님 설명만 읽는 것이 더 이해가 잘 된다고 할 수 있어요 ... ... ... [색즉시공을 알 때, 큰 지혜가 일어나 생사를 여의고 ...공즉시색을 알 때. 큰 슬픔이 일어나 열반을 여읜다.] 이 표현을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요 ...조금 아리다고 해야 하나 ...그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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