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인형이 되어
제1기 참선수행학림 수료자 법은(단출 14기)
3월 23일, 갈마 결과 39명 모두를 받아들인다는 발표와 수행자의 호칭을 ‘선재’로 한다는 학감스님의 선언이다. 입학고불식과 참선법에 대한 법문,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에 대해 상세하고 알기 쉽게 일러주시고 무아를 바탕으로 하는 무소유의 본질을 거쳐 마음의 고향 無心을 말씀하시며, 우리가 찾아 가야할 길로 안내한다.
이틀째, 본격적인 참선 정진에 앞서 발우공양습의와 탁발공양을 체험하였는데, 막상 학감 스님을 선두로 발걸음을 떼자 금강경의 제일 법회인유분, 부처님께서 탁발에 나서는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공양의 참 뜻을 체득하는 순간이다. 참선수행의 동기를 부여하는 법석의 서막이다.
긴장과 기대감 속에 모든 선재가 벽을 등지고 마주보고 앉았다. 입승스님이 소개되고 입선죽비가 세 번 울린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잡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화두는 간데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도 내 몸이 아니다. 걱정이 앞선다.
소임 맡은 서별당의 스님 욕실을 청소하면서도 수행학림 참석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으로 일관하였다. ‘너무 경솔한 판단은 아니었을까?’, ‘이 과정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등의 극단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을 생각하자.’, ‘죽기로 마음먹고 한번 해보자’는 결의를 다지면서 저녁 정진에 들었다.
이번에는 의외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분별심이 끊어진 그 자리 무심에 집중하였다. 혼침이다. 때로는 법륜전의 바닥 무늬가 곳곳에서 발광을 하고 온갖 무늬가 무리를 지어 흘러가는 형상이 펼쳐진다. 기분도 좋아지고 시간도 잘 간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답답한 마음은 나만이 아닌 듯하다. 일과를 종료하면서 여기 저기 청중스님께 호소어린 항의가 빗발이다. 다음 날 입승스님과의 상담을 주선해본다고 한다.
사흘째 아침, 기상과 세면, 죽비에 맞추어 삼배로 예불을 모시고 정진에 들어간다. 어제와 달리 몸도 가볍고 마음도 상쾌하다. 그러나 잠깐이다. 그리고는 망상이다.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시간여행 하느라 분주하다. 입승스님과의 상담을 기대해 본다.
상담을 희망하는 선재들을 대상으로 점검을 한다. 너 댓 명이 조를 이루어 입승 스님과 마주하였다. 개별적 상담에 이어 모두에게 용기를 주신다.「자세를 바르게 하되 자세에 얽매이지 마라. 초심자에게 망념과 혼침은 당연한 것이다. 여러 가지의 수인이 있지만 선정인으로 하고 엄지손가락 끝의 위치를 유념하라. 수인은 화두 의심의 지속여부를 가름한다. 의정이 생길 때까지 지속적으로 의심의 느낌을 이어가라. 어떠한 幻影에도 혹하지 마라. 모두가 幻이다.」스님의 지도와 격려에 힘을 얻어 다시 정진에 든다.
마음으로 화두를 간단(間斷)없이 중얼거려 본다. 잠깐의 틈새에도 여지없이 망상이 스며든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훨씬 또렷하게 느껴지고 시간의 흐름도 전과 같지 않다. 그러면서도 순간의 화두 들림에 혹하여 오는 자만심은 수시로 깊은 망상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가부좌를 틀고 입선-망상-혼침-포행을 반복하는 사이 철야정진 수행이 있는 닷새째를 맞았다. 힘이 들었는지 입술 주변이 많이 부르텄다. 철야정진이라 특별하게 생각하였지만 특별할 것 없이 참선과 포행의 반복으로 저녁 아홉시에 시작해서 아침 여섯시까지 이어졌다. 자정이 넘어서면서 혼침과 망상이 전부가 된다. 몸이 다 무너져 내리고 화두는 물론 아무것도 없다. 혼침과 망상에게 내준 몸집만이 바람인형이 되어 법륜전 바닥에 앉아 춤을 추는 형상이다. 그것도 마지막 입선에 들어 겨우 보이는 내 모습이다. 여섯시, 죽비 소리와 함께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혼침이 사라진다. 망상도 함께 사라지고 모든 것이 또렷 또렷해 진다. 화두를 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