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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스포츠제전 통영트라이애슬론대회 후기
부제 : 달빛을 달리며...
현석은 동이 트기 전 새벽알람소리에 잠이 깨었다.
평소 잠이 많은 그였기에
허공을 가르는 짧고 둔탁한 파열음이
귓 볼을 때리고 대뇌에 전달되어
몸을 움직이기까지는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어제 밤늦게까지 아내의
가게일로 인해 잠을 설친 그는
촉수 잘린 해파리처럼 흐느적 거리는 모습이
마치 전장터에서 총을 거꾸로 든 패잔병 같아 보였다.
징징대는 알람소리는
새벽안개에 부딪혀 현석의 옆에서
뱃가죽을 축 늘어뜨린 채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은정의 고막을 자극했다.
은정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리더니
산만한 노루 궁둥이를 몇 번 움직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현석을 향해 쏘아붙이듯 투덜거렸다.
"알람 자명종 빨리 안꺼고 뭐하노. 그냥 조용히 대회에
나가면 되지 남 잠도 못자게 만들어"
고요한 방안 공기는
전염된 똥파리처럼 웽웽거리는
은정의 신경질적인 잔소리에 발광하는
세상의 모든 어둠의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도 그럴 것이
1년에 수 차례 마라톤대회며
트라이애슬론대회를 나간답시고
이른 새벽마다 밤잠을 깨우는 이 짓을 해야 하는
현석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이다.
은정은 처음부터 현석이
주말 새벽마다 대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은정은 현석을 따라 철인대회장을 누비며
전국을 관광하는 것을 즐겼었다.
남쪽바다 끝 통영에서
서울은 물론이며
그들의 신혼여행지인 제주도,
바다 땅끝 해남, 지평선이 아름다운 김제,
화순이 대한민국 어디 땅에 붙었는지도 몰랐던
고인돌 마라톤 등 현석이 이런 취미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평생 가보지도 못할 대한민국 요소요소를 구경하고
그 곳의 지역 음식을 맛보며 젊은 날
화려한 인생의 참 맛도 느끼곤 하였던 것이다.
현석이 한참 철인경기에 나가고
취미생활로서 자리잡고 있을 때 은정도
현석과 함께 수영을 배우고 마라톤대회도
부부동반으로 여러 번 참가하였다.
비록 10km 미니 마라톤대회였지만
항상 현석과 함께 대회분위기에 들떠
오늘 새벽처럼 대회 당일 날
어떤 이쁜 유니폼을 입고 대회를 나갈까
행복한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자기야. 이정도 반바지면 괜찮겠지. 너무 짧은 거 야냐?.
웃옷은 나도 선수들 처럼 탱크탑을 입어볼까"
하면서 이른 새벽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현석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너스레를 피우곤 했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변한 건
지난 10여년간 집안일만 도맡아 하면서
갖은 스트레스에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점차 잃어 가고 있다는 냉소적 성향이
친구와 주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작용하였으리라 생각했다.
또래의 친구들은 30대 중반까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미 사회적 지위를 누리거나
금전적으로 부의 축적을 바라보며
은정은 억눌렸던 감정을 털어 내기 위해 백화점에
작은 가게를 하나 내게 되었던 것이다.
주말도 없는 쉼 없는 세상을
헤치고 살아가기 위해 은정은 매일 밤 늦은
퇴근을 하였고
오늘도 고객들과 진흙탕 싸움을 하며
지쳐 버린 생존의 끈을 쓸어 담으며
파노라마처럼 흘러 지나간 과거를 잊어버리기 위해
깊은 수면 속에 빠져 든 것이다.
천공을 뚫고 울려 퍼지는
은정의 잔소리에도 현석은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은정의 거친 성격과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방안에 갇힌 얌전한 암고양이처럼
허물해진 그녀의 이중적 모습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조심스레 알람 자명종을 누르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렇게 시끄럽게 굉음을 내던
쇳덩어리도 시계버튼 하나에 다시 방안은
고요 속 정적이 흘렀다.
현석은 시계 앞에 높여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헝컬어진 머리칼이
마치 치열한 삶이 교차하는
깊고 푸른 바다 위 외로운 촌부의
머리결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한
두 눈 사이로 깊은 주름이 패였고
길고 갸름한 얼굴에 토끼 앞니처럼 툭 튀어 나온 이빨,
햇빛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얼굴과 깡마른 그의 몸,
하지만 외소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눈빛은
카리스마 넘쳐 보였고 잘게 찢어 놓은 마른 육포처럼
가늘고 단단한 근육은 이 대회를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여름 내내 현석은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서가 아닌 트라이애슬론대회의 완주를 위해
자신도 모르게 몸을 혹사시키고 풍요로운 만추의 세월 대신
푸석푸석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멍든 시간을
인내하고 참아 왔던 것이다.
현석은 오늘 대회출전을 위한
물품들을 하나씩 점검하기 시작했다.
다년간 대회를 다니며 쌓아 왔던 경력들이
이른 새벽의 여유로움으로 보답하고 있었다.
초보시절 사이클 신발을 챙기지 못해
운동화 차림으로 사이클을 탓던 추억,
배번과 칩을 잃어버려 시합을 뛰어 보지도 못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들이 지금은 추억이 되고
평범한 일상에서 화젯거리가 되어버린
아픈 과거의 기억을 곱씹어 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흘려 보았다.
물품 정리가 다 끝나고
현석은 이른 아침을 먹기 위해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현석의 아침을 준비해 줄
그의 아내는 아직도 꿈속의 별을 헤아리고 있었고
현석은 사랑하는 아내를 더 이상 깨우지 않은 채
어제 마트에서 준비해 둔 전복 죽과 김치 한 조각을
씹어 먹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현석의 대회 날 아침 풍경은
매번 이렇게 혼자만의 고독한 삶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현석이 은정을
미워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아침을 챙겨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깊은 커피향처럼
현석의 몸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詩 달빛을 달리며 / 장현석]
가슴 시리도록 차디찬 달빛이 나를 유혹한다.
태양은 어둠 속에 내일을 기약하고
별빛은 잠시 달빛 아래 길을 잃었다.
오늘 밤은 저 밝은 달빛 아래 무욕의 시간을 달려 보자.
파도 위를 쓸어 내리는 비릿한 밤바람은
육체의 고통을 달래고 달빛 고요한 영혼의 세상이
내게로 펼쳐진다.
그리움도슬픔도노여움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아픈 기억들은
잠시 달빛에 맡겨 두고땀에 흠뻑 젖은 내면의
쓰레기를 토해낸다.
달빛 속을 달리며 난 잠시 꿈을 꾼다.///
날은 밝아 하늘에선
보라 빛 구름이 점점 엷어지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은
햇볕의 잔해 속에 신음하고
옅은 안개는 막 잠에서 깨어나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현석은 한산한 통영시내를 가로질러
대회장에 도착했다.
대회장은 이미 행사준비로 분주했다.
발광하듯 뿜어내는 신나는 노랫소리가
주변의 모든 소음을 흡수해버렸고
바다는 호수보다 잔잔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가끔 퇴락한 바다 내음이
그의 코를 의심케 하였지만
수많은 철인들이 품어 내는 열기 속에
현석은 경직되었던 긴장이 슬그머니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현석은 하나씩 가져온
대회물품들을 바쿰터에 가져다 놓았다.
먼저 사이클물통에 물을 채우고
양말,수건,운동화,사이클화,고글,모자,번호표 등을
사각 파란색 광주리에 하나씩 담았다.
분주한 철인들이 바쿰터를 가득 메운 채
트라이애슬론 광장은 시골장터처럼 북적거렸다.
짙푸른 하늘과 약간의 하얀구름,
바닷바람이 밀물처럼 불어왔고
아직은 푸른 초록을 두른 선선한 바람이
현석의 허파를 파고들었다.
넘실거리는 푸른 바닷물 위에
올려진 하얀 도심의 풍경,
마치 어느 유럽의 작은 도시와 같은 느낌을 주는
통영의 바닷가,
현석은 오늘 자신이 치루어야 할
삶의 값진 인생을 여기서 불태울 것을 다짐했다.
긴장의 순간이 흐르고
출발시작을 알리는 메아리가 울렸다.
현석은 길고 가느다란 호흡을 몇 번 들이켰다.
수십 번을 참가한 대회이지만
자신이 수많은 무리 속 소설 같은
주인공이란 사실을 인지했을 즈음 현석은
늘 긴장의 눈빛을 감출 수 없었다.
저 멀리 해안선의 노란 부표가
푸른 물결 위에 넘실거리고 사각형의 라인이
마치 우리 혼탁한 삶을 이어 줄 생명 줄 같이
가녀린 소녀의 땋은 머리처럼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평온한 바다는
아침 햇살 속에 순백의
자두꽃잎처럼 흩날리고
시커먼 슈트를 입은 3백여명의
철인들이 마치 펭귄떼가 육지 위에서
악마의 강을 건너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마침내 바다가 열렸다.
먹이를 찾아 눈부신 창공 위에서
바다로 내려꽂는 도요새처럼
모두들 멋진 다이빙으로 입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석은 아직 다이빙 입수가 두려웠다,
다이빙 입수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디이빙 후 매번 벗겨진 수경을 다시 써야만 했고 그
로 인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는 남들보다 조금 더 늦더라도
안전하게 수영하길 원했던 것이다.
비록 남에게는
어설픈 연주자의 음악처럼
초라하고 볼품 없을지라도
그는 동료철인이나 관중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모두가 출발하고 난 후
몇 초 후 현석은 낡은 삶의 외투를
벗어 버리듯 몸뚱아리를 바다에 꾸역꾸역 쳐 넣었다.
여름이지만
지난밤 가열되었던
바닷물은 밤의 한기에 이미 식어 있었다.
차가운 기운이 발끝에 스며들었다.
온몸을 감싸는 싸늘한 액체는 목덜미를 타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맑게 흘렀다.
한팔 한팔 스트록할 때마다
느껴지는 느릿한 물살의 감촉이
야릇한 쾌감을 느끼게 했다.
물 속은 물 밖에서 생각한 것 보다 많이 탁해 있었다.
30cm 물 속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부유물로
가득 찼고 누런 곰팡이 색을 띤 퇴색한
액체들로 바다 속은 범벅이 되어 있었다.
현석은 이번엔 수영에서
몸싸움을 피하려 일부러 가장자리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후미 그룹의 선두주자들이
현석의 몸을 덮쳤다.
거대한 파도가
현석을 집어삼킬 듯이
그 기세는 무서웠다.
머리는 쇠뭉치로
한대 얻어 맞은 듯 정신이 없었고
그의 허리를 짓 누를 때마다
댓잎이 바람결에 파르르 떨리 듯
온 몸은 경련을 일으켰다.
비릿한 바닷물이
목구멍을 타고 쑥 들어왔다.
순간 현석의 얼굴은
초조한 눈빛과 붉은 숱덩이처럼
변해버린 잿빛 머리카락이 쭈볏쭈볏 서는 것을 느꼈다.
서른 여덟
젊은 현석의 머리 속에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은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전장터이기 때문에
멈출 수도 뒤로 후진할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현석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는 건 쉬지 않고 팔과 다리를 허우적
거리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현석은 지금 수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소굴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빠져 나오기 위해
무리로부터 점점 더 멀리 달아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한 동안의 소용돌이가 휘 몰아간 후
현석은 가까스로 안정을 취했다.
매번 대회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현석은
수영에서의 몸싸움은 진절머리가 났다.
트라이애슬론경기가 격투기나 레슬링,
유도와 같이 타인과의 몸을 부대끼면서
우위를 점하는 경기가 아닐진대
그보다도 더 겪한 몸싸움을 치러야 하는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현석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이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지 타인과 싸워 가며
몸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운동환경으로
지옥의 장이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을
현석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초보 수영자나,
오픈워터 수영이 처음인 선수에겐
이 몸싸움은 대회를 완주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공포를 느끼고
짜릿한 스릴 대신 생명의 크기를 가늠할
아주 중대한 사안이었다.
만일 초보수영자가
심한 몸싸움으로 인해
당황하여 호흡곤란이나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싸늘한 시신으로 바다 한가운데서
떠오른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현석은 이미 몇 번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적이 있었다.
다리 경련으로 인해 물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일,
앞 선수의 평형 발차기에 수경알이 빠져
수경없이 완주하였던 일,
냉수대를 만나 갑자기 온 몸이 경직되어
헤어나올 수 없었던 일,
이러한 경험으로 현석은 철인경기에서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수영을 완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물론 아직까지
국내 철인경기에서 한 번도
수영에서 사망사고 소식이 없었던게
다행이지만 언제든지 출발지역에 있어서
위험한 요소를 항상 내포하고 있었다.
사각레인을 한 바퀴 다 돌 무렵
스트록하는 오른손바닥에서 물살처럼
떨어지는 물 알갱이들이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꽃을 마구 피워 댔다.
요동치는 가슴도
벼랑 끝에 걸린 달처럼
숨소리를 멈추었다.
육지에서 그리고 바다로
또다시 육지로 올라온 10여분 남짓한
시간을 다시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면
현석은 지나간 과거의 영욕을 씻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지나쳐버린 삶의 존재를 찾고 싶었다.
이번 대회의
수영경기는 500m 사각레인을 3바퀴를 돌아야 했다.
처음 출발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세 번째 입수도 수채구멍에 얼굴을
틀어박듯 마구 쑤셔 넣었다.
현석은 치열한 전투 후 맞이하는
휴전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허물 벗겨진 연꽃이
진흙탕 속에 뿌리를 내리고
화려한 꽃 잎사귀를 만들어 내듯
현석은 물 속에서 평온을 느꼈다.
이젠 몸이 허락하는 대로
마냥 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고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처럼 그의 팔과 다리는
자동으로 움직였다.
1.5km수영은 겨우 마쳤지만
아직도 바다한가운데서 허우적 거리는
펭귄떼는 많이 있었다.
비록 그 동안 수영장에서
땀 흘린 대가만큼의 기록은 나오지 않았지만
현석은 바꿈터를 향해 바삐 뛰었다.
수영에서의 기록을 만회하기 위해 현석은
바꿈터에서의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바꿈터에서 그의 솜씨는 노련했다.
먼저 고글,헬멧,양말,사이클화를 빠른 속도로
신고 사이클 안장에 올랐다.
[詩 천천히 달리며 행복을 배우자 / 장현석]
조금 늦는다고정말 늦는 건 아냐
정말 늦는 건 멈추는 일이고시작하지 않는 거야
조급해 하지 말고오늘을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 봐
행복해 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
후후 하하, 후후 하하
가뿐하게 4박자 호흡을 한 번 해 봐
달리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해져 있는지
그리고 앞만 보지 말고 옆을 한 번 쳐다봐
누가 내 곁에 다가와 있는지,예전엔 몰랐을걸
산과 들이 이렇게 아름다웠는지지나가는 행인이
나를 향해 방긋 웃어 주는 표정을 바라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졌다는 걸 느낄 거야
대회에 나가 주로에 어린 자원봉사자에게 말을 건네 본적 있니
이제부터 그들에게 수고해, 안녕! "반가워" 라고 말을 건네봐
넌 이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행복을 가진 거야
물론 걔네들은 너의 말 한마디에 인생이
한층 더 아름다워졌겠지
1등을 못했다고 안타까워 하지마
철인경기는 꼴등에게 더 큰 박수를 쳐주잖니
경찰차 에스코트 받아 가며 말야.///
아직 축축한 바닷물이
현석의 몸에 베어 있었다.
달릴 때마다 흘러내리는 바닷물이
땀방울과 뒤섞여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했다.
첫 오르막의 숨가쁜 영혼이
그의 가슴을 옥죄여 오지만 이내 다가올
내리막에선 행복의 여유를 찾는다.
그렇게 오르막 내리막을 달리다
현석은 통영대교 위를 지나친다.
통영8경중의 하나인 통영대교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멋진 풍경,
가난한 달의 영혼이 태양의 바다를 집어 삼키듯
올망졸망하게 눈부신 바위섬,
그리고 이탈리아 섹시 여배우
모니카벨루치의 잘록한 허리 모양을 한
통영운하에서 소나기 퍼붓듯 부셔지는 반짝이는
금빛 물결이 현석의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었다.
수km나 이어지는 해안가에
장엄하게 펼쳐진 사이클선수들의 멋진 모습은
박진감 넘쳐 보였고 현석 또한
그 무리 속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쉼 없이
패달을 저었다.
한평생 나그네길로 살아가야 하는
기나긴 인생행로 속에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을 용기와,
지금 현재까지 기적처럼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기적처럼 살아갈 날들이 훨씬 더 많이 남은
그의 삶은 사이클 안장에 올라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고독한 질주자처럼 의연했다.
비록 천형(天刑)같은
악질적인 죄를 짓고 산 것은 아니지만
현석은 지난날 자신이 무심코 저지른 과오를 반성했다.
맞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때면
힘에 부친 자신을 발견하고 앞서 지나간
동료의 사이클 뒤에 자신의 몸뚱아리를 의지하며
몇 백미터 혹은 몇 km인지도 모를 거리를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도움으로 완주한
시간들을 되돌려 놓고 싶었다.
한 때 죄의식인지도 모를
일련의 행동이 지금 그의 자존심과
양심을 팔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현석은 지금 자신에게 당당하고 떳떳한 존재였다.
속도가 비슷한 동료가
앞을 가로막을라치면 현석은
의식적으로 핸들을 틀었다.
텁텁한 여름 공기가
현석의 몸 안에서 부서지며
휑한 바람 한줄기가 아린 가슴을 훓으며 지나갔다.
어느 듯 비껴 내리는 햇살은
한껏 부풀어 올랐고 뺨을 때리듯 스치는
바람 냄새는 신선했으며 하얀 양떼처럼 몽글몽글한
구름은 드넓게 펼쳐진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은
모든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듯
이마를 타고 콧잔등 위에서 뚝뚝 낙하를 시도하고
마치 질곡(桎梏)의 삶을 살아간 옛 우리 선조들이 일구어 낸
자유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을 현석은
사이클을 타고 있는 1시간 17분여 동안 느끼고 있었다.
40km의 사이클도
울퉁불퉁 고불고불 이어진
현석의 험란한 인생을 되새김질 하듯
나이의 무게만큼 그렇게 끝이나 있었고
이젠 골인지점을 향한 마지막 발악을 시작했다.
그러나 힘들게 여기까지 온
그의 모든 시련들을 헛되지 않게하기 위해
현석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이클 거치대엔
더문더문 사이클이 빨래 줄에 걸려진
주검처럼 널 부러져 있었고 눈부신 햇살아래
베고니아 꽃잎처럼 빨강 그의 사이클이 반짝이고 있었다.
다시 들어선 바꿈터에서
달리기를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사이클과 달리 달리기엔
별다른 장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이클신발에서 런닝화로 교체하고
지난번 박병훈 선수가 직접 사인한 하얀색 바탕 위에
두터운 검정 줄무늬가 인쇄된 모자를 쓰고는
곧바로 용수철 튀어나가 듯 달렸다.
그러나 현석은 몇 십 미터도 못 가서
배를 움켜잡고 주저 앉아야만 했다.
매번 대회 때마다 당하는
현석의 일상적인 대회풍경이었다.
현석은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한 이래
달리기에서 매번 복통을 일으켰다.
현석은 자기 실력보다 더 빠른
스피드로 달리지 않았는데도 복통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걸어서 완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늘도 그는 호흡을 깊게 가다듬으며 아픈 배를 부여잡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토악질을 해대며
속물처럼 올라오는 토사물들을
햇빛 그을린 불타는 도롯가에 앙금처럼 남겨 두었다.
물과 엉겨 붙은 에너지젤,
아침에 먹었던 전복 죽과 갖가지 반찬들이
심한 악취와 더불어 새까맣게 범벅되어 있었다.
고개 숙여 바다를 향해
내용물을 모두 발산 하고 서야
그의 얼굴에선 핏기가 사라졌다.
이제 긴장감이 풀어지고
현석은 일정한 스피드로 달렸다.
도남동 트라이애슬론 달리기 코스가 장엄하게 펼쳐졌다.
도남동에서 산양면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달리기코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깍아지는 절벽 사이로
푸른 해송이 에머럴드 빛 바다와 어우러져
탄성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밀조밀 섬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수평선,
그리고 바다 밑 물고기를 낚아채기 위해
낮게 고공을 날고 있는 갈매기들,
달리면서 현석은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감정에 몰입했다.
뙤악볕에 온 몸을 내던지고
세월 저편에 머물러 있는 과거 속
진실을 피폐해진 육신을 통해 발견했다.
안일한 삶 속에 투영된
그의 삶은 마치 배부른 자들의
낭만고양이처럼 여유로 왔다.
그러나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해
뼛속까지 시린 고난을 이기기 위해
마지막 영혼을 태울 수 있는 지금 이순간을
그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그의 마음은 뜨거웠다.
결승점 앞에서는
수많은 관람객이 손을 흔들고
대회에서 승리한 자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현석도 내색은 안했지만
결승점 한켠에 자신을 위로해 줄 아내와
가족이 없다는 것에 대해 석양에 지는
노을만큼이나 아쉬움이 컸다.
현석의 뒤에선
아직도 많은 철인들이
환희의 미소를 지으며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었다.
두 손을 뻔쩍 치켜세우며
승리의 개선장군처럼 환호하는 철인들,
아픈 두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목단꽃처럼 해 맑은 웃음을 잃지 않은 철인들,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개개인마다 달림의 철학을 담고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움푹 패인 고목의 옹이에서
새싹을 틔우듯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철인들은
그렇게 8월의 뜨거운 여름을 달리고 있었다.
P/S : 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형식의 대회후기입니다
따뜻한 남쪽나라 통영에서...
첫댓글 같이 달리구 같이 수영하는 것 같은 후기입니다,,,표현이 남다르신거 같아여,,,님의 글이 항상 기다려 집니다,,,글구 뛰실때의 고통,구토,,배앓이등은 병원을 한번 가 보심이 어떨지 걱정되네여,,,또,,가족들의 무관심을 서운해 하지 마세여,,같은 취미를 가지구 있으면 같이 즐겁지만 그렇지 않으면 고통이잖아여,,,쉬는 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세여,,,,더운데 즐달하시구,,건강하세여...ㅎㅎ
감동의 소설 한편을 실감있게 잘 읽었습니다. 달릴때 마다 복통으로 고생 하신다고 했는데... 정밀검사 한번 받아 보세요. 달리기는 누구나 할수 있지만 철인3종은 아무나 할수 없는거 같네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감동적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펀런 하시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간만에 님글 즐겨봅니다.새삼 철인3종 전국체전 출전했던것도 떠오르고요^^정말 멋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