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거울을 가지자
2006년 8월 최영수 소장
어제는 무척 긴 하루였다. 노령의 친정어머님의 병환 앞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이 당신 스스로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무력함과 내도록 마주한 날이기도 했다. 생각이 흘러가는 중에, 의사인 남동생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친 더 큰 무력감과의 싸움에 기력을 소진하여 정작 환자 돌보기가 소홀할까 눈치 보는 하루이기도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무력함이나 분노보다는 눈 꼭 감고 계신 단아한 당신 모습을 보면서 나도 편안하려 애쓸 수가 있었고 간간히 눈뜨신 당신에게 ‘아직은 가실 때가 아니예요.’라는 말씀도 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초조한 이들의 마음을 환자에 대한 믿음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의식회복을 기다리면서 나를 돌아볼 귀한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평소의 나눔이, 일상의 자기관리가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일깨움을 얻은 날이기도 하였다.
되돌아보니, 그래도 나는 스스로 약속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나름대로 적절히 잘 조화시켜 왔던 것 같다. 평소에 나눈 것들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한 몫을 잘 해냈음을 의식을 되찾은 당신으로부터 경험할 수 있었다.
평소에 어머님은 고고하고 고결함이 지나쳐 독선적으로까지 보였다. 누구에게도 의지 않고 TV나 신문을 열심히 봄으로써 스스로 노력해 얻은 정보를 소중하게 여김은 물론 적극적으로 실천을 하고 자식인 내게도 그 유익한 정보를 나누어 주고 그렇게 하도록 추달을 하곤 하셨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확실한 ‘자기거울’을 가지셔서, 당신의 생활 형태와 당신의 모습을 스스로 가꾸심이 스스로 만들어 입으시던 옷만큼이나 고품질로 기품 있고 우아한 부드러움으로 늘 당신을 감싸고 계셨다.
어머니는 부드럽지만 확실한 당신의 의사표현, 단호하지만 긍정적인 몸짓, 지독한 홀로서기에의 부단한 낙천적 방어로 자초한 고독과 생활의 고단에도 불구하고 특히 장녀인 나에게는 출가외인이라는 특혜로 주1회 방문과 하루 한 번의 전화소통이라는 효도상품권을 주셨고 나는 당신에 대한 믿음과 당신의 배려로 그 상품권의 사용을 꾸준히 해올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의 거울은 어느새 ‘바로 당신’으로 자리매김하는 나를 느낀다.
내 마음에는 ‘큰바위 얼굴’이라는 나의 거울이 있다. 중2때 형성된 나의 거울은 참으로 오랜 세월 나를 키워 주고, 지켜 주고, 힘이 되어준 거울이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짧아진 이즈음, 나는 ‘나의 거울’을 보면서 이런 다짐을 한다. 살아오면서 세상에 만든 나의 때 묻은 흔적들을 되도록 잘 지워서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이 세상에 올 때는 “앙”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왔지만, 노년에는 저 지지대의 노송처럼 그저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떠나야할 때에는 저절로 떨어지는 낙엽처럼 자연스런 모습으로 떠날 수 있는 천복을 누리고 싶다.
이제 나는 먼저 간 시어머님과 언젠가 돌아가실 친정어머님이란 거울 앞에서 나를 가다듬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는 진정 행복한 시간들임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다.
우리 모두 평소에 ‘자기거울’을 잘 닦아서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나를 가다듬고 나를 가꾸는 행복한 시간들을 늘여 나가자. 그래서 행복도 습관이 되게 우리 모두 GO! GO! <행가래로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