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6장 강해 (행26:8-18)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무슨 죄인지 아십니까?
보통은 살인죄라고 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살인보다 더 무서운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편견입니다.
편견이 무슨 죄냐라고 하실수 있겠지만, 사실 편견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죕니다.
왜냐?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죄지만 편견은 영혼을 파멸시키는 죄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지 아십니까?
편견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독한 편견을 가진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자기 간증을 하는 장면입니다.
사도바울도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던 사람 중에 하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왜 그토록 예수님을 미워하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사람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습니까? 자기들이 믿는 유대교 신앙을 혼란케 하고, 미혹케 하는 자들이라는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편견을 가진 사례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가르켜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그 구절이 마13:53-55절에 나옵니다.
마13: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마13: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마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마13: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마13: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마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그 당대에 목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별 볼일 없는 직업군에 속했습니다.
그 별 볼일 없는 천한 목수의 아들 예수가 메시아라고?....선지자라고?....랍비라고? 비웃었던 겁니다.
뭡니까? 직업에 대한 편견으로 예수님을 평가했다는 겁니다.
또 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할 때 나다나엘이 한 말입니다. 요1:46절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지역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사렛이라는 곳은 작은 동네요. 평이 그다지 좋지 못한 동네였습니다.
지저분한 동네요. 거친 사람들이 사는 동네, 요즘 말하면 빈민촌 정도로 평가받는
그리 좋은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뭐 그런데서 선한 것이 날 수 있냐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겁니다.
지역에 대한 편견이죠.
저는 경상도 사람입니다. 제가 어릴 때, 광주나 전라도분들이 사는 지역에 대한 좋지 못한 소리를 수도 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뒷 통수를 잘 친다. 믿을게 못된다. 김대중이는 빨갱이다...
제가 전라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긍정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선친께서는 주구장창 조선일보 중앙일보만 보시면서 사셨고,
거기에 나오는 것만 믿고 사셨습니다.
광주민주항쟁도 다 빨갱이 짓이라고 아셨고, 그렇게 말씀하셔서 저도 그런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편견에서 조금씩 깨어난건 논산훈련소에서 군생활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제가 논산훈련소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광주쪽 전라도 쪽 사람들과 같이 군복무를 했습니다.
근데 제가 가장 치를 떨었던 사람은 서울 사람들과 같은 경상도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못되게 하고, 괴롭힘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또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신대원에서 공부할 때, 한 방에 7명이 같이 사용했는데
전라도분이 4분 경상도 사람이 저를 포함해서 3명 이렇게 생활했는데
전라도분들은 서로 돕고 서로 챙기고 그러는데 경상도 사람들은 전부 제 각각이었습니다. 다 자기 똑똑이들만 있지, 서로 돕고 함께 뭔가를 하고 하는게 없었습니다.
전라도 분들은 인간적이고 서로 간에 정이 많았습니다.
경상도는 의리를 주장하는데 의리는 개뿔입니다.
자기하고 이해관계가 있을때만 의리 찾고 조금만 자기 하고 다르면 차별합니다.
왕따 시킵니다.
물론, 경상도 사람이라고 다 의리가 있는건 아니다라는 겁니다.
전라도 사람이라고 다 좋은 사람만 있겠습니까? 아닐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부를 놓고 지역감정을 가지는건 편견의 결과라는 겁니다.
이건 죄악입니다.
제가 좀 커가면서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야가 넓어지니까.
시민의식이 가장 높은 지역이 전라도 지역 사람들인걸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우물안 개구리로 살았구나.....
내가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 살았구나...그걸 깨닫고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지금도 대구경북 사람들은 민주당 사람들을 빨갱이로 알고 있고,
자칭 보수주의자라는 사람들 중에는 5.18민주항쟁을 빨갱이 소행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유튜버 중에서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유튜브도 조심해서 가려가면서 봐야 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거기에 자꾸 빠지면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다는 겁니다.
항상 어떤 정보를 들으면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이 있죠?
반드시 팩트를 체크해라....그리고 모르면 함부러 판단하지 말고 믿지 마라...그랬죠.
왠지 아십니까? 그렇게 편향된 생각만 가지면 편견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목회 초년생때였습니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 부임해서 가게 되었는데, 부임하자마자, 어떤 집사님이 절 찾아오셔서, 목사님 이 교회에 대해서 잘 모르시죠? 이런 이런 집사, 장로, 권사 조심하십시오.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그 나쁘다는 분들을 만날 때 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듣고 선입견이 생겼고, 편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니, 나에게 정보를 줬던 그 집사님이 그 교회에서 가장 문제 집사였다는걸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다짐한게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 어떤 사람이 내게 무슨 말을 해도 함부러 쉽게 판단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정보를 믿으면 선입견이 생기고 편견이 생긴다는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된 겁니다.
그렇습니다.
편견은 선입견을 생기게 하고, 오해를 낳고, 차별을 낳고, 잘못된 관념을 가지게 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심지어 폭력을 낳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편견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함부러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7:24]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많은 편견을 가지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사람의 행색, 외모로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판단합니다.
그 사람이 탄 차로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좋은 차를 타면 좋게 보고, 별볼일 없는 차를 타면 우습게 여깁니다.
그 사람이 사는 집평수, 지역으로 판단합니다.
넓은 평수에 좋은 학군에 살면 좋게 보고, 아니면 우습게 여깁니다.
또 그 사람의 학벌로 판단합니다.
좋은 명문 대학을 나오면 좋게 보고, 지방대에 나오면 우습게 여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이런 외형적인 것으로 상대방을 저울질 하는
그런 아주 나쁜 편견을 가지고 사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봅니다.
이것은 나라를 망조로 만드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좀 못살면 어떻습니까?
차가 좀 작고, 오래되면 어떻고, 행색이 남루하면 어떻습니까?
좀 못 배웠으면 어떻습니까?
아무리 잘 입고, 좋은 차에, 좋은 집에 살아도, 많이 배워도
사람답지 못하고, 인격이 안 된 사람은 돼지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 논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데, 우리는 내면의 인격보다는 외면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외형만 번지르러 하면 다 좋은 줄 압니다. 이게 편견입니다.
그러니 편견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모든 사람은 평등합니다. 다 주님 앞에서는 죄인이고, 똑같습니다.‘
사도바울이 오늘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고백을 보면,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인에 대한 심각한 편견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편견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편견이 없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편견이 있습니까?
그 편견을 깨뜨리시기 바랍니다.
저도 토요무료급식 봉사를 하면서 편견을 깨트린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은 행색이 초라한 분이 오셨는데 잘 걷지도 못하시고 온 몸에는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발을 해 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머리도 엉망이었습니다. 제가 이발하면서 몇마디 이야기를 건네면서 느낀게
행색을 그렇지만 말투가 좀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원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대답이 없던 분이 이발을 하신후에 자기는 공군전투기 조종사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 다리에 마비가 와서 퇴역하고 집에서 지내다가 가장으로서의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걸 알고 집을 나와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거였습니다.
행색만 보고 그분을 판단했던 제가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누구에게나 편견없이 차별없이 공평하게 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편견은 이렇게 무서운 범죄에 해당합니다.
편견은 사람을 함부러 판단하게 하고, 차별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편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과연 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편견을 줄이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편견은 오만입니다. 그것은 나 중심에서 나오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의 죄입니다.
편견이 아니라, 평등과 존중의 시각으로 상대방을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낮은 곳에 임하는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고, 축복이 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우리 두란노교회 모든 성도들이 편견의 시각이 아니라,
평등과 존중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멋진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