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7년 윤 10월 10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약원(藥院)에서 입진하고 중궁전(中宮殿)의 태후(胎候)와 관련하여 산실청(産室廳)을 설치하도록 아뢰는 장면이 나온다. 도제조 이유원이 아뢰기를, “중궁전의 태후가 지금 일곱 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의관이 진찰하고 산실청을 설치하는 것을 모두 택일하여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아뢴다.
다시 말해 출산 3개월 전부터 왕비의 출산을 위해 산실청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실제 고종 8년 10월 7일의 ‘왕조실록’에서도 도제조 이유원이 아뢰기를, “산실청은 매번 해산하기 석 달 전에 설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약원의 세 제조가 산실청을 설치하면서부터 돌아가며 입직하였다가 해산달이 되면 으레 모두 직숙하였습니다”라고 말하여, 출산 3개월 전부터 왕비의 출산을 준비하는 기구가 설치되는 것이 법도임을 말하였다.
왕비의 출산은 왕의 대통을 잇는 중요한 일이기에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와 같이 철저하게 미리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고종 7년 10월 22일과 23일에는 각 신하들이, 입진한 의관이 “왕비의 맥박이 평온하여 탕제를 쓸 필요가 없다”라고 전한 말을 언급하면서, 고종에게 축하인사를 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임신을 한 왕비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오히려 탕약을 처방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우리가 흔히 임신했을 때는 한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방금 ‘왕조실록’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왕비는 매일 어의의 진맥을 받으면서 필요한 경우 처방을 받아 한약을 복용했던 것이다. 만약 예비엄마가 임신 중에 어떠한 증상으로 고생한다면, 당연히 배 속에 있는 아이도 엄마와 함께 그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에, 빨리 한약을 복용해야만 한다. 사실 임신한 예비엄마들은 이미 매일 한약을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보리차 둥굴레차 결명자차도 일종의 한약이며, 심지어 쌀 보리 등 곡식도 일종의 한약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효능이 아주 미미하기 때문에 식품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임신했을 때는 반드시 한의원에 가서 정확한 진찰을 받고 한약을 복용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약 복용이 가능한 임신 증상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다. 입덧 기침감기 태동불안 출혈 복통 부종 등의 증상인데, 한의사는 체질과 증상에 따라 알맞게 처방을 내린다.
그렇다면 이때의 왕비인 명성황후는 어떠한 한약을 복용했을까? ‘왕조실록’에 정확하게 어떠한 처방을 투약했다는 기록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다음에 나오는 구절들이 치료처방을 유추해볼 수 있게 해준다. 고종 28년 6월 26일 약원에서 구전으로 아뢰기를, “중전께서 더위에 조금 체한 증상이 있으시니 입진하게 해 주소서”라고 청하는 장면이 나오며, 같은 해 10월 25일에는 담체(痰滯) 증상이 있으므로 입진할 것을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서 고종 30년 5월 6일에도 약원에서 중궁전의 담이 뭉치는 증상에 대해 입진을 청하는 장면이 나오며, 같은 해 7월 2일에는 다시 더위로 인한 체증을 언급하며, 같은 해 9월 9일에는 왕비가 담체증으로 고생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왕비는 여름 더위에 약하며, 평소 기(氣)가 잘 막히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입덧 증상이 있었으며, 몸도 잘 부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동의보감’에는 당연히 그러한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이 나온다. 임신했을 때 복용하는 한약 처방은 수천 년 동안 수천 수백만 명에게 검증되어온 안전한 처방이며, 왕비가 처방받던 최고급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