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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섬에 바람이니 눈 흩날리고/술 사사서 돌아와 뜸집에 배 매놓았네
몇 가락 피리소리, 강물에
달빛 밝아오고/잠자던 새도 물가 안개 속에서 날아오르네
蘆洲風颭雪漫空 沽酒歸來繫短蓬 橫笛數聲江月白 宿鳥飛起渚煙中
시는 임진난
전라도 의병장인 전 동래 부사(東萊府使) 고경명(高敬命 1533 중종28~1592 선조25)이 읊은 것이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체없이
가장 먼저 광주(光州)의 의병 6천여 명을 이끌고 금산(錦山)에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그의 나이 60세였다.
그를 두고
전라도인의 기질을 나타내며 '전라도 사람을 의리의 사나이'라는 말을 남기게 한 인물로 학문이나 문장으로 세상에 알려진 재행(才行)으로 당대에
드러난 이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할 만큼 할 말이 많은 인물이다
조선시대 지배 이념인 유교의 덕목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그것을 실천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요체가 “不義”에
굽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실천적 행위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
국난을 당했을 때 선비들은 붓 대신에 무기를 들고 노비들까지 참여한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웠다.
그를 두고 아직도 건장하여
씩씩한 노인을 뜻하는 말로 확삭옹(矍鑠翁)이라고 부른다. 동한(東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6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에
뛰어올라 용맹을 보이자, 광무제(光武帝)가 “이 노인네가 참으로 씩씩하기도 하다.[矍鑠哉是翁也]”고 찬탄했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타 지역 의병은 지역 방어에 급급한데 반해 호남지역 의병은 충청도에서 진주 등 다른 지역까지
출전하여 싸우며 수 많은 호남인이 순절하였는데 전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천일,
고경명, 최경회 등이다.
삼도 수군을 통제하던 이순신은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남이 아니었더라면 나라는 없는 것과 같았을 것(若無湖南
是無國家)’라 할 정도로 호남 의병과 곡창의 군량미 덕분과
호남 사람의 애국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 인물중에 고경명
유적중에 정자로는 광주 남구 이장동 266 양과동정(良瓜洞亭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2)이 있다.
양고부곡(良苽部曲)이었던 이곳은 그의 옛
집터인 후손의 고가 고원희 가옥(高元熙家屋)에서 광주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왼쪽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방문한 날, 할머니의 젓무덤 마냥
두덩이에 젖꼭지 같은 형상으로 자리하고 불같은 고경멍의 충혼 같은 뜨거운 여름의 열정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시주만 즐겼던 것은 결코
아니다. 道는 ‘忠’, ‘恕’일 뿐이다.道 忠恕而已矣.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여 ‘仁’을 저버리지
않으며
스스로 몸을 죽여서 ‘仁’을 이룬다.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춘추시대, 인(仁)을 이상적 덕목으로
삼는 공자(孔子)의 언행을 수록한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한 구절을 수 없이 암송하며 가슴에 새겼다. 그래서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린 살신성인(殺身成仁) 을 실천했다.
고경명은 임진왜란이 일어나 서울이 함락되고 왕이 의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각처에서
도망쳐온 관군을 모았다. 난중잡록 1(亂中雜錄一), 전라 감사 이광(李洸)이 전 부사 고경명(高敬命)에게 보낸 서한에, "대가가 서쪽으로
순행하고 서울은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나라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통곡하고 또 통곡할 일입니다. 오늘 할 일이 있다면, 오직 애통하고
절박한 취지로 격문을 띄워가지고 사방의 충의있는 동지를 불러 유시하여 지체없이 군사를 일으킴으로써 하늘에 사무치는 통분을 씻기나
바라야겠습니다....." 전하고 있다. 벼슬은 공조 참의(工曹參議)였는데 좌찬성을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사어(舍魚)의 비유 떠오르는 지사(志士)의 몸 바친다. 志士捐軀比舍魚"라는 말이 있다. 즉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 요리도 내가 먹고 싶고, 곰 발바닥 요리도 내가 먹고 싶다. 하지만 한 가지만 택하라면, 나는 물고기를
버리고[舍魚] 곰 발바닥을 취할 것이다. 나는 살고도 싶고, 의리를 행하고도 싶다. 하지만 한 가지만 택하라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할
것이다. 舍生而取義者也 ”라 했다. 그들은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를 흠모하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 단면이 노란 국화와 하얀 국화(詠黃白二菊)를 두고 읊은 시에서 나타내고 있다.
바른 빛이라 노랑을 귀하다
하지만/ 타고난 풍취는 흰색 또한 뛰어나구나.
세상 사람들 자연히 다르게 보지만/모두 서리에 굴하지 않는 가지라네
正色黃爲貴
天姿白亦奇 世人看自別 均是傲霜枝
"무등산의 규봉과 서석봉은 응당히 추위 속에 솟아 있겠지,/하늘 높이 나는 푸른 난새를 혹시라도
타고 갈 수 있을까! 圭峯瑞石應涼落, 天外靑鸞倘可驂" 그의 기질은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무등의 산기운을 담았다.그리고 무등산을 바라보며
읊기를
붓끝처럼 뾰쪽뾰쪽하고/둥글둥글 뭉친 구름 같기도 하구나
지령(地靈)도 역시 보배로 여기나/낮에는 언제나 구름으로
가려주니
한후에 더 가치를 더하는 고경명의 삶의 흔적,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대학자였지만 생애 전부가 격동기를
겪어야 했던 백운처사 정의림(鄭義林 1845 헌종 11∼1910)의 피력과 일치하고 있다.
때를 타는것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지조
지키는 것을 어찌 가볍다고 하리
인간세상 천 갈래 길인데 /느슷하게 지나가니 일선이 밝네
乘時非所重 守操䛯云輕 人世千岐路
捱過一線明
병조좌랑, 사간을 지낸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 1620 광해군 12~1674 현종 15)가 외증조인 고경명을 기억하며
읊은 시에서
서석산 높은 곳에 가을 해 밝고 /구름 걷힌 남명(南溟)에 푸른 하늘
아득하네
유풍(遺風)은 원공의 편액에 모자람이 부끄러워 / 붓 잡고 공연히 온갖 경치나 그려 내었네
瑞石山高秋日白 南溟雲盡碧天遙
遺風愧欠袁公額 握管空令萬景驕
豈曰無重纊 誰與同歲寒 歲寒無與同 어찌 솜이불이 없다 하랴만, 누구와 이 추운 겨울을 나리... 아직
양과동정에서 떠도는 고경명의 혼의 세한심(寒後心)이 가지와 잎이 차가운 겨울철에도 변하지 않는 한후송(寒後松)으로 정자옆을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南道의 바람 속엔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난다"고....
"나는 지금도 유효한 말인가!"
되묻고 있다.
후손이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교리였던 지고(止皐) 고의상(高儀相 1833 순조 33 ~1906 광무
10)가 들렸을 때도 그랬다.
쌀쌀하기 그지없는 옛마을 빈터 위에/외로운 한 정자가 드높이 솟아있네.
흰 구름 돌아가니 높은
산세 고요하고/메벼나락 기름지니 온 들녘이 푸르르네.
寥落舊墟里 特高此一亭 雲歸峰自在 秔膩野全靑
아름다운 좋은 경치
천석(泉石)까지 겸하였고/ 한가로운 이 내마음 술병으로 만족하네.
수풀속을 헤치면서 자주 자주 오고 가니/노는 새도 나를 알아 놀란 모습
안보이네.
勝槪兼泉石 閒情足酒甁 穿林來往熟 禽鳥渾忘形
순조 대왕 행장(行狀) ) 행장(行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략) ……신묘년 ∙ ∙ ∙ ∙ ∙ ∙ 충렬공(忠烈公) 송상현(宋象賢)· 문열공(文烈公) 조헌(趙憲) · 충렬공(忠烈公) 고경명(高敬命)
·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순절(殉節)한 곳과 함께 순국한 장사(將士)들을 위하여 단(壇)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주되 제관(祭官)은
본도(本道))의 수령들 가운데 품질(品秩))이 높은 사람을 가려서 차임하라.
고경명은 조선뢍조신록에 이런 문구에 주인공 중에
한 사람이 됐다. 겨울의 길목의 햇볕은 가늘다. 요즘 세태의 정(精) 만큼이나, 그래서 이곳은 을씨년 스럽게 외롭다. 그래서 고경명의
언중유골(言中有骨)의 다음 시가 더 처절(悽絶)하고 부끄럽게 만든다.
당시 세인들은 '일문삼강(一門三綱)'이라고 칭송했다. '일문의 충효는 만고에 변하지 않는 근본一門孝萬古綱常'이라고 조선 말기의 비운의 왕족으로
살아 남아야 했던 고종의 아들 의친왕(義親王) 춘암(春菴) 이강(李堈; 1877-1955)이 칭송하는 글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1603년 사액을 받아 충렬공 고경명(忠烈公 高敬命)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고,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高從厚)·고인후(高因厚)와
유팽로(柳彭老)·안영(安瑛)을 함께 배향하고 있는 광주 포충사(光州 褒忠祠)에 남아 있다.
일대에 고씨 삼강문은 고경명 선생
일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문으로 1충(忠) 3효(孝) 2열(烈) 1절의(節義)의 7명이 정려되어 있다. 1충(忠)은 고경명,
3효(孝)는 장남 종후, 차남 인후, 손자 부금이며, 2열(烈)은 그의 딸 장흥 고씨 (노상용의 처)와 조카며느리 광산 정씨,
1절의(節義)은 그으 동생 경형이다.
현대 유학자이자 한학자.서예가로 이승만 대통령의 한학, 서예 스승이며 1930년 정인보
한용운 선생과 교류하며 한 시대 암울했던 세태를 보듬고 전남 구례로 이거 토지면 금내리에 수암정(修巖亭) 서재를 짓고 은거하며 깊은 학문을
닦으며 생을 마감했던 고당(顧堂) 김규태(顧堂 金奎泰, 1902~1966)가 포충사에 들려 이렇게 기리고 있는 감흥이 오히려
가볍다.
옛 서당에 아득한 감회 일어나는데/하늘과 땅에는 어느덧 석양
천추에 보기 드문 절의시여/그 명성 역사에
향기로워라
古祠起達感 天地忽斜陽 節義千秋少 性名史冊香
이들은 노자 도덕경의 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 '대장부는 중후함에 처하지
얄팍한 곳에 거하지 않는다.'는 성인의 말을 실천하고 떠났던 인물이다.
고경명은 "차라리 내가 먼저 죽어서 너로 하여금 나를
그리워하게 하면 너를 못 잊고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네가 알리겠다'며 당시 조선의 조정과 나라꼴을 한탄하며 갈등하며 작은 육신을 조국에 바쳐야만
했던 심사로 한후(寒後)를 택한 그의 소회가 나그네를 먹먹하게 만들게 한다.
보거든 슬믜거나 못 보거든 잇치거나
네 나지
말거나 내 너를 모로거나
차라리 내 몬져 스러져 네 그리게 하리라
즉, 보면 싫거나 밉던지, 못 보면 잊혀지던지
내가
생겨나지 말던지 내 너를 모르던지
차라리 내 먼저 없어져 네가 날 그리게 하리라....
고경명 다운 생각이다. 그리고
실천했다. 그가 추앙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사(不死)의 신선이라는 말이 있다. 은(殷)나라 말기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말한다. 처음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칠 적에는 무왕의 말고삐를 끌어당기며 간하였고, 무왕이 끝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차지한 뒤에는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은거하였다.
그때 “저 서산에 올라가서, 고사리를 캐도다.[登彼西山兮 采其薇矣]”라는 노래를 불렀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여기서는 두 현자가 비록 죽기는
하였으나 그 명성은 천고에 남아 영원하다고 해서 표현한 것이다. 고경명도 이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일찍 죽거나 오래 살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가운데 자기 몸을 닦으면서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자기의 목숨을 온전히
바치는 도리이다. 殀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 ”했다. “자신이 할 도리를 옳게 다하고 죽는 것을 바로 정명이라고 한다. 盡其道而死者 正命也
” 한다. 그들은 그렇게 죽는것을 가장 명예롭게 여겼다.
본바탕과 아름다운 문채를 지녔던 고경명, 즉 내용과 형식이 훌륭하게
조화된 군자라는 말로 논어 태백(泰伯)에 “생사의 큰일에 당해서도 그 뜻을 뺏을 수 없다면, 군자다운 사람이다.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君子人也”했다. 공자(孔子) 옹야(雍也)에 “바탕이 문채를 압도하면 촌스럽게 되고, 문채가 바탕을 압도하면 겉만 번드르르해지나니, 문채와
바탕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君子
적어도 고경명은 그것을 실천하고 떠났던
인물이었다. 우리에게도 진정 통하고 있는 말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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