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세계에서는 144년: 인도, 간다라 미술 전성 174년: 로마, 아우렐리우스 황제 "자성록"
지금도 역사가들은 그노시스 정신, 또는 신지학의 시대하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 운동은 그 당시로 끝났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후에는 같은 성격의 사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노시스란 인식이란 뜻과 통한다. 인식의 주체는 이성이어야 하며 이성은 합리적 사유를 근거로 한다. 그런데 이 당시의 인식은 종교적 인식이며 신앙을 수용해야 하는 요구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이성의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연히 정서적인 면은 물론, 신비주의적 성격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어진다. 신비주의는 사이비 신앙의 내용도 배척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이 당시의 그노시스는 후일의 기독교적인 면에서 본다면 미신적인 사상이 되고, 철학적 위치에서 본다면 황당무계한 속화된 세계관으로 퇴락한 것이었다. 인격 및 도덕성이 결핍된 잡동사니식의 유혹적인 삶을 이끌어내기도했다. 사실 그 지도자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종교행사와 미신을 퍼뜨리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플로티노스의 철학을 여러 종교의 우주론과 합치시키려는 운동이 그 대표적인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3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가르친 바질에이데스(Basileides)는 우주를 365단계로 설명하기 위해 공상적인 체계 속에 종교관을 삽입시키기도 했다. 누스(nous)는 구원의 힘이며, 그리스도는 그 대표자라는 설명도 가한다. 그의 뒤를 따르다가 로마로 교육장소를 옮긴 발렌티누스(Valentinus)는 만물의 근원은 영원 미완성의 통일, 이름지을 수 없는 심연, 완성된 아이온(aion: 영적 존재자)이다. 그것이 아버지 또는 조부로서 사랑에 대한 욕망을 갖고 거기에서 태어난 것이 누스(정신),즉 진리가 된다고 보았다. 누스에서 로고스(이성)가 산출되고 생명이 주어진다. 그 생명을 갖춘 이가 이상적인 인간이며, 그것이 교회로 확장된다고 설명했다. 인간에게도 물적인 요소, 심적인 요소, 영적인 요소, 지적(Gnosis)인 요소가 있어, 최고의 단계인 그노시스에 도달하는 것이 인식의 목표인 동시에 구원이 된다고 보았다. 구원은 참된인식이며 존재 근원으로의 복귀인 것이다. 심지어는 물질은 지옥에 해당하고, 마음은 연옥에 해당하나, 지는 천국의 단계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 마침내는 숫자를 가지고 세계를 설명하려는 비이성적인 설명을 제창하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사상은 받아들일 수 없는 미신적 종교성을 띠고 나타났다가 이윽고 사회에서 버림을 받게 되는가 하면,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으로 흡수되어 그 종적을 감추기에 이른다. 대부분 공상이나 신화적인 내용을 따르던 그노시스파 사람들이 마법사, 예언자, 무술가, 거짓 성인, 심지어는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그노시스는 명예롭지 못한 종말을 고하게 된다. 기독교가 그들을 배척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성적인 건전한 사유를 앞세우는 철학적 영역에서도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어졌다. 그러면 누가 이 잡다했고 일반화되었던 그노시스 사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정신계를 개척하기에 이르렀는가? 그것이 기독교의 호교적 책임을 담당한 교부(신앙적 father)들이었다. 그 교부들의 뜻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기독교 중심의 중세기가 정착되는 당계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교부들의 노력은 처음에는 신앙적 이단이나 기독교와 반대되는 사상을 배척하며 기독교의 정당성을 수립하는 일로 시작된다. 호교란 기독교의 교리와 정신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 단계가 지나면 기독교의 교리와 주장이 정착되는 단계로 확대되어간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진리성이 교회 내외에 인정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기독교 사상과 정신의 우위성이 인정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되어 기독교의 교세가 강해지고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대표적인 신앙이 되면서는 점차로 기독교가 사회를 정신적으로 지배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기독교가 유일한 신앙의 대명사로 진전한다. 명실 공히 중세기가 정착되며 마침내는 기독교가 국교로 정해지는 결과에까지 이른다. 불과 1세기 반 동안에 기독교는 배척과 순교의 가시밭 길을 걷다가 사회 국가적 공인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국교의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힘이 된 것은 기독교의 사상이나 철학보다도 생명력 있 는 신앙과, 그리스도 인들의 윤리 도덕적인 활력이 새로운 힘이 되었기 때문이 다. 신앙이 사상을 좌우했으며 실천력이 철학을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이성과 신앙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