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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이 불렀던 지리산 (哭)
문화유격대 최순희 작사,작곡
철쭉이 피고지던 반야봉 기슭엔
오늘도 옛같이 안개만이 서렸구나
피아골 바람속에 연하천 가슴속에
아직도 맺힌 한을 풀 길 없어 헤맸나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반야봉엔 궂은비만 내린다.
써래봉 달빛 속에 치밭목 산죽 속에
눈을 뜬 채 묻혀져간 잊지 못할 동무들아
시루봉 바라보며 누워있는 쑥밭재야
잊었느냐 피의 노래, 통곡하던 물소리를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써래봉엔 단풍잎만 휘날린다.
추성동 감도는 칠선의 여울속에
굽이굽이 서린 한이 깊이도 잠겼구나
거림아 대성골아 잔돌의 넓은 들아
너는 알지 눈보라가 울부짖는 그 밤들을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님아
오늘도 천왕봉엔 하염없는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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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평화를 기원하며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 보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지리산 싸움에서 죽은 군경이나 빨치산에게 물어보라
공산주의를 위해 죽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죽었다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
그들은 왜 죽었는지
영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이 싸움에서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사이에 끼여 벌어진
부질없는 골육상쟁
동족상잔이었다고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제2연대장 차일혁 총경
(前 공주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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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1906년 충남 금산(당시 전북)에서 5백석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때인 1925년 조선공산당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7년 보성전문학교 법과(현 고대)에 입학한 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산하 학생부원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반일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일제의 대규모 공산당 검거 때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출옥 후 박헌영·김삼룡 등과 함께 경성콤그룹을 결성하였다. 일제 말기에는 지리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였고, 8·15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하였다.
공산당이 남조선노동당으로 개편된 뒤 연락부장 등의 요직을 맡아 활동하다가 남한에서 공산당 활동이 불법화되자 월북하였다.
1948년 북조선노동당의 결정에 따라 다시 남한으로 내려왔다. 지리산으로 들어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빨치산 투쟁을 전개하였다. 1951년 북한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남한 빨치산의 조직인 남부군南部軍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각 도당 유격대를 남부군 사령부에 소속시키는 등 조직적인 투쟁을 전개하다가 1953년 휴전 이후 군경 합동으로 실시된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때 사살 당하였다.
남한 빨치산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이현상... 그는 그가 남긴 수다한 전설'과는 달리 현대사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대표한 남한 빨치산의 운명처럼 지구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이루지 못할 집념 속에 죽어갔고, 그 주검조차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비극적인 인물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원래가 과묵했던 그가 더구나 그 때의 환경 속에서 어떤 반권적 언동을 내색한 적은 물론 없었을 것이다. 방랑객처럼 산맥을 표류하다 전남유격대의 총탄에 쓰러진 남해여단장 그 사람처럼 지금에 와서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일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외로운 방랑자였다는 것이며 그것을 추정할 수있는 몇 가지 객관적 사실들은 있다.
이현상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두가지 평가가 있다. 대체로 해방이후 부상한 기본계급 출신의 엘리트 당원들과 지역적으로 그들 영향하에 있던 전라남북도 대원들 14연대 출신 군사간부와 제 2병단시절부터 구빨치, 콤클럽 이래의 동지들과 그 영향하에 있던 경남북, 충남북 대원들은 이현상에게 매우 충실했고 그를 흠모했었다.
남과 북에서 악역의 대명사처럼 불리어진 이현상은 그러나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조차 정이 많고 자상한 사람이었고 일생을 자기희생으로 살다간 헉명가라는 평가에는 인색하지 않고 있다. 그는 산중에서 때로는 병약한 말단대원의 등짐을 대신 져주는 인정어린 풍모와 생포한 군경들을 곱게 돌려보내는 인간미 넘치는 일화를 많이 남기고 있다. 도대체 그에게는 군경 포로에 대해 적이라는 인식이 없는 듯이 보였다.
이현상은 결국 김일성에 의해 완전히 '적'으로 간주됐다. 적의 적은 우군이라는 등식을 인정한다면 이때의 이현상의 위상은 어찌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적의 적도 또한 적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연전에 대성골을 거쳐 세석평전에 오르는 산행을 하면서 지금은 취락개선사업으로 전혀 모습이 달라진 의신 마을에서 하룻밤 민박을 한 적이 있다. 빗점골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의신 마을이지만 기록에 나오는 '갈매기봉'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전사에 나오는 갈매기봉은 어디일까?
그러나 놀라운 일로는 민박집 주인인 초로의 내외는 이현상에 관해 아주 소상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거기서 2십리쯤 되는 면소재지 화개장 밖으로는 일생동안 나가본 적이 없다는 최라는 그 촌로 내외는 영지버섯으로 담갔다는 약주를 권하면서 사변 당시의 회고담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토벌대의 소개 명령으로 마을이 소각됐지요 그러나 산전이나 붙여먹던 우리가 가면 어딜 갑니까? 얼마 후 슬금슬금 기어들어와 초막을 짓고 사는데 다시 소각 명령이 내려 또 마을을 떠나야 했지요. 두 번 불탄 셈이지요. "
"빨치산들이 들어 왔을 텐데 그땐 어땠어요?" "어쩌다 산사람들이 들어와 감자나 수수 같은 것을 거둬갔지만 그 밖에 별 해코지는 안했어요. 한번은 그해 가을 무렵인데 뒷산에서 산 사람들 습격을 받아 토벌대가 13명이 죽고 5명이 포로로 잡혔는데 포로로 잡힌 토벌대원들이 발가벗긴 채 늘어서 있는 것을 봤지요."
(이 것은 51년 9횔 말경 남부군의 서남부 지리산 주변 작전 때의 일로
그 촌로의 기억이 너무나 정확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
"이현상이라는 아주 높은 빨치산 대장이 있었는데 나도 한 번 악수를 한 적이 있어요." 주인아주머니의 얘기다. "무섭지 않았어요 ? "
"그땐 열여섯 살 배니까 어려서 무서운지 어쩐지 몰랐어요, 그냥 사람 좋은 아저씨 같았어요."
"시중드는 여자는 없었나요?"
"그런 여자는 없었고 아주 잘 생긴 남자 호위병이 꼭 붙어 다녔는데 음식물을 주면 그 호위병이-반드시 먼저 먹어보고 나서 얼마 후에야 이현상에게 갖다 바치곤 하더군요. "
"그 이현상이 빗점골 어디선가 사살됐다고 하던데요?"
"예, 빗점골 합수내 근처의 절터골 돌밭 어귀에서 맞아 죽었다더군요.
그 근처에 가면 지금도 귀신 우는소리가 들린다 해서 사람들이 잘 안 가지요. "
영감이 핀잔을 긴다.
"귀신은 무슨 귀신... 거기가 워낙 험한 곳이 돼서 자칫하면 길을 잃고
큰 고생을 하니까 사람들이 범접하지 않는 거지."
사실 빗점골에서 주능선인 토끼봉으로 오르는 루트는 지금도 등산로도 나 있지 않은 전인미답의 비경이다.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사령관이던 '공화국 영웅' 이현상은 그 곳에서 그 전설적 생애를 마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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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전고등학교 노은동문회
2013 추계등반대회를
준비하신
박희석 회장님
김승환 총무님
참가하신 모든 회원님과 가족 여러분
차량을 찬조해주신
김종구 전회장님과
금전과 현물을 찬조해주신 회원님
사정상 참가 못하신 모든 회원님
지리산 天王峰의
氣를 받아
늘 건강하십시요.
내년 춘계 등반대회 장소인
설악산?이
벌써 그립습니다.
6기 하헌주 올림
첫댓글 넘 좋다
남노회 화팅
총무님 준비하시느랴 수고 많았습니다.
헌주형님, 이끄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계룡산 단풍산행 해야지요.
국사봉-531봉-숫용추-머리봉-황적능선으로 이어지는 계룡단풍 볼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