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베소서 4장 1절 ~ 12절
서론: 부르심의 저울, 그리고 다윗의 열망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날마다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유익과 철학이 부딪히며 사회는 파편화되고, 심지어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도 하나 됨을 이루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절에서 이렇게 포문을 엽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여기서 ‘합당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악시오스(ἀξίως)’는 고대 그리스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수평 저울(Scale)에서 온 개념입니다. 저울 양쪽의 무게가 완전하게 같아서 수평을 이룰 때 이를 ‘악시오스’하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부르심)’와 우리의 ‘실제적 삶(행함)’이 저울의 양쪽처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삶 전체로 이 ‘악시오스’의 균형을 이루고자 열망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 왕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궁에 거할 때 하나님의 언약궤가 휘장 속에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을 위한 집(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왕으로서의 부르심에 삶의 무게를 맞추려 했던 다윗의 그 마음이 바로 ‘악시오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지을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 것이다"(삼하 7장)라는 반전의 약속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다윗의 집, 즉 ‘우리의 공동체(교회)’를 친히 세워가시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윗의 생애를 거울삼아 에베소서 4장의 메시지에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1. 이미 이루어진 하나 됨을 목숨 걸고 지켜라
3절에서 바울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하며 ‘하나 됨’, 즉 ‘헤노테스(ἑνότης)’를 제시합니다.
헬라 철학(플로티노스 등)에서 우주의 근원인 ‘일자(The One)’는 차갑고 추상적인 원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헤노테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이미 성취된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유대(Bond)입니다. 바울은 하나 됨을 ‘만들라’고 하지 않고, 이미 성령이 이루신 ‘헤노테스’를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다윗은 십여 년간 자신을 죽이려 쫓아다닌 사울 왕을 향해 끝까지 복수하지 않고 참아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12지파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던 바탕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낮아짐과 인내가 있었습니다. 시편 133편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다윗이 경험한 참된 연합(헤노테스)은 인간적인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울을 참아내고 품었을 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교회의 하나 됨(헤노테스)은 우리의 노력으로 새로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이미 완성해 놓으신 선물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내 주장과 자존심을 내려놓는 겸손과 참음으로 이미 성령님이 묶어주신 하나 됨을 단단히 지켜내시길 바랍니다.
2.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라
바울은 9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채우시기 위해 먼저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고 말하는데, 이 단어가 ‘카타바스(καταβάς)’입니다.
플라톤주의나 영지주의 등 고대 헬라 철학에서는 '신적 존재는 절대 더러운 땅(육체)으로 내려올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놀라운 신비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가장 낮고 천한 곳으로 ‘카타바스(낮아지심)’ 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낮아지셨기에 승리자가 되셨고, 그 승리의 전리품으로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의 선물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구약의 시편 68편은 승리한 왕이 전쟁의 전리품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다윗의 생애에서도 이 장면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아말렉을 쳐부수고 모든 것을 도로 찾았을 때, 다윗은 피곤하여 전쟁터에 나가지 못하고 물건 뒤에 남아 있던 약한 자들에게도 전리품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습니다(삼상 30장 24절).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물건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다윗은 승리의 영광이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기에, 거저 받은 것을 가장 약한 자들에게까지 카타바스의 정신으로 나누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 안에서 가진 직분과 은사는 나의 우월함이나 공로가 아닙니다. 가장 낮은 곳까지 카타바스 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나에게 주신 은사로 이웃을 섬기고 높이는 '은혜의 유통자'가 되십시오.
3. 각자의 제자리를 찾아 함께 몸을 세우라
12절에서 바울은 직분을 주신 목적을 밝힙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오이코도메) 하심이라" ‘오이코도메(οἰκοδομή)’는 문자 그대로 ‘집을 지어 올리다(House-building)’라는 건축 용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사회의 도덕적 성장을 중요하게 보았지만, 성경의 ‘오이코도메’는 단순히 개인의 인격을 닦는 것이 아니라, 성도라는 거룩한 돌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함께 건축되어 가는 유기적 신비를 의미합니다.
다윗 인생 막바지의 핵심 과업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재료를 준비하고 제사장과 찬양대의 직분을 제자리에 정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 자신은 피를 많이 흘려 직접 성전을 건축(오이코도메)하지 못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자재를 준비했습니다. 다윗이 준비한 자재와 정비된 직분자들을 통해 마침내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이 오이코도메(건축)되었듯, 하나님 나라의 직분은 성도 각자가 제자리를 찾아 성전을 세워가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자의 역할은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각자의 은사대로 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상처를 치유받고 제자리를 찾아 저마다의 사역을 감당할 때, 비로소 교회는 오이코도메(완전한 성전)로 세워집니다. 관객으로 머물지 마시고,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거룩한 건축자로 일어서십시오.
결론: 부르심에 합당한 성전으로서의 삶
다윗은 평생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가문(집)을 영원히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결정체로 오신 분이 바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채우시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고(카타바스), 십자가 승리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으며, 성령으로 우리를 이미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헤노테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이미 이루신 하나 됨(헤노테스. ἑνότης)을 겸손히 지켜내십시오.
나를 위해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신 주님의 은혜(카타바스, καταβάς)를 기억하며, 내게 주신 은사를 기꺼이 나누십시오.
방관자가 아닌 섬기는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아름다운 성전으로 함께 세워가십시오(오이코도메, οἰκοδομή).
이 세 가지 기둥을 붙들고 우리의 삶과 부르심의 무게를 맞추어(악시오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