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솔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10월의 첫날, 베란다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이 잔잔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없는 듯해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듯 한마디 던졌다.
“오늘은 하늘도 맑고 바람도 잔잔해서 하늘 구경하기 좋겠네.”
평소 아내가 타 보고 싶어 하던 열기구를 타러 가기로 마음먹은 참이었다.
날씨가 이 정도면 별문제 없겠거니 싶었다. 미리 운행 여부를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차를 몰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어쩐지 분위기가 썰렁했다. 넓은 광장은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의 발길도 뜸했다. 의아한 마음으로 매표소에 가 보니 직원은 보이지 않고, ‘오늘 운행 불가’라는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바람 때문에 열기구를 띄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출발하기 전 플라잉수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운행 여부만 확인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누구를 탓하랴. 괜한 자신감이 부른 낭패였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바로 곁에 수원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蒼龍門)이 있었다. 열기구 대신 화성이라도 둘러보자는 생각에 문루에 올라 주변을 살펴본 뒤 성곽을 따라 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으며, 바람은 걷기에 더없이 상쾌했다. 성곽의 돌을 손으로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근총안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성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성벽에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창룡문의 ‘창(蒼)’은 푸른빛을 뜻한다. 동쪽을 수호하는 신령한 청룡을 상징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의 유래를 떠올리며 문루를 다시 바라보니, 동쪽 하늘을 지키는 수호신의 기운이 깃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열기구를 타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뜻밖에 수원 화성의 일부를 둘러보며 걷는 즐거움을 얻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원하게 펼쳐진 수원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풍경에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사진이라도 실컷 찍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창룡문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열기구는 타지 못했지만, 사진 속에서는 그 못지않게 신나게 놀아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 뒤 인계동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었다. 수원청소년청년재단 앞에서도 잠시 산책을 즐기고,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 누린 뒤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약속했다.
다음에는 미리 운행 여부도 확인하고, 날씨도 꼼꼼히 살펴 다시 오자고.
열기구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려던 계획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아내와 함께 성곽길을 걷고, 사진을 찍으며 웃었던 시간은 또 다른 선물이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여행까지 빗나간 것은 아니다. 때로는 뜻밖의 길에서 예상하지 못한 풍경과 마주하는 법이다.
이번 수원 나들이가 그랬다.
첫댓글 수원에서도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는 행사가 있었네요. 아쉽지만 즐거운 데이트였겠습니다. 축복합니다.
행사는 아니고 상시 탈 수 있는데, 하필 강풍 부는 날 가는 바람에 그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