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2년 초상화의 대가인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초상화의 대가,1606~1669,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이 그린 "야경(The Company of Frans Banning Cocq and Willem van Ruytenburch, known as the 'Night Watch', 야간 순찰대)".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렘브란트"의 "야경"은 자경단(자치 경찰) 대장 "프란스 반닝코크 대위"의 요청(한 사람당 100길더씩 갹출하여 총 1,600길러를 그림 값으로 지불함. 당시 100길더는 평균 근로자 4개월치 월급)으로 자경단원 16명의 초상화를 그린 그림인데, 당시에는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렘브란트 삶이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초상화가로 인기가 많아 결혼도 하고 집도 마련하는 등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야경"의 혹독한 대가로 인기가 떨어지며 빚더미 위에 올라 앉게 되었고 부인 "사스키아" 마저 세상을 떠나고,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아들 "티투스" 마저 먼저 보낸다. 그로부터 11개월뒤 죽을 때 남은 것은 헌 옷가지와 그림 도구가 전부였다. 1659년 작품 램브란트 "자화상"을 보면 고단했던 그의 인생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1669년 작 "돌아온 탕아"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렘브란트"의 1632년 작품 "니콜라스 튤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The Anatomy Lecture of Dr. Nicolaes Tulp)".
"렘브란트"의 1633년 작품 "갈릴리 바다 위 폭풍 속의 그리스도(Christ In 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렘브란트"의 1636년 작품 "삼손의 눈부심(The Blinding of Samson)".
"렘브란트"의 1655년 작품 "가죽을 벗긴 소(The Carcass of an Ox (Slaughtered Ox), 도살된 소)". 이 그림은 소를 도축한 뒤, 걸어 놓은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