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조선초기의 官人 朴碩輔에 대한 실기이다. 朴碩輔의 본관은 밀양이다. 그의 생몰년은 불확실한데, 1396년(태조5) 왜구를 물리치는 한편 대마도를 정벌한 공으로 龜山君(義興)에 봉해졌다. 尹奎範 및 鄭宗魯가 쓴 實紀의 序文(1819년)과 跋文에 의하면 1812년 의흥에서 姓이 朴氏인 한 향리가 자신의 집안에서 朴碩輔에 관한 자료를 발견하자, 그에 대한 자료가 《朝野記聞》이나 《龜城邑誌》 또는 《家乘》에 약간씩 남 아 있는 것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朴碩輔의 후손인 朴慶文과 함께 발견된 敎旨와 家乘 자료들을 정리하고 또 여러사람에게 발문 및 서문 등을 받아 1819년(純祖19) 실기 한권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實紀의 순서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朝野記聞》에서 朴碩輔에 대한 史實을 抄錄하였다. 이어서 李尙眞이 撰(1771년:영조47)한 書 朴氏家承後로, 그가 義興郡에 부임하였는데 朴碩輔의 후손인 朴慶後가 家承 一卷을 보 여주어, 朴碩輔의 史蹟이 훌륭하였음을 알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1727년 李秀泰가 撰한 朴碩輔의 遺事와 申體仁(1814)과 韓致應 등이 撰한 墓表가 있다. 다음 鄭鴻慶이 쓴 誥命錄後敍(1812년:純祖12)는 朴碩輔의 후손인 朴斗明이 朴碩輔의 敎旨가 지금의 제도와 달라 그 眞僞 與否가 의심된다고 물어 오자 제도의 新舊式이 다르니 이를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답한 내용이다. 이후 몇 편의 上樑文과 奉安文 (景賢祠奉安文 李秀 泰 撰, 世德祠移安時申告文, 掌享祝 申體仁 撰, 龜陰書院陞號告由文 金土宏 撰, 龜陰書院上樑文 鄭宗魯 撰, 世德祠講堂上樑文移建時 申體仁 撰, 附景賢祠上樑文 李秀泰 撰)이 있고 마지막으로 尹奎範가 쓴 實紀序(1819년)와 鄭宗魯가 쓴 實紀 跋文(1816년)이 있다. (김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