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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크라이스트처치 나눔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좋은향기
<겸손에 대하여 - 김석균>
우리 주변에는 분명 성공했음에도
예전의 어려웠을 때의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를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겸손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어 자랑하지 않는 것.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것.
누구를 만나든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그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는 것,
많이 가졌어도 안 가진 것처럼,
높은 지위를 가졌어도
낮은 자 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
좀 모자란 듯 살아가는 것,
겉으로 보이는 겸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겉으로 보이는 겸손의 모습은 얼굴을 바꾸고 맙니다.
누군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
오만불손한 자와 한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할 때,
자신을 화나게 할 때, 누군가 거칠게 나를 비판할 때,
갑자기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속사람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겸손은
겉 사람이 드러나지 않고
속사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겸손은 진실로 하나님을 알 때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정할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슬픔 속에서도 울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슬픔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고 믿기에
그는 <왜 이런 일이, 내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는데...> 하며
억울해서 울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며 품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용서하여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화내지 않고 끝까지 참는 사람,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조건에서도
감사하며 사는 사람,
어떤 칭찬이나 비난 가운데서도
침묵하며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에게서 해답을 찾는 사람들...
그들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이미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내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이 아니면
비난하는 사람 앞에서 침묵할 수 있겠습니까.
슬픔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참을 수 있겠습니까.
겸손은 내가 나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겸손의 모습을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다스려
내 속사람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보여주는 것,
즉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이렇게 말했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즉 티끌만도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겸손은 공허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 아무 것도 없어지는 것이다.
나에게 나의 소유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다>
겸손은 비움입니다.
나를 비우니 그 비워진 자리에
<겸손>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보입니다.
겉과 속이 같아지기 시작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리고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어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도록 하는 것,
그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
그가 곧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한 페이지씩 인생이라는 책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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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하여 - 김석균>
누군가 인생을 한권의 책에 비유했습니다.
인생이라는 책은 한 권밖에 없고, 한 권밖에 쓸 수가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책은 초판밖에 없으며, 첫 책이 곧 마지막 책입니다.
일반적인 책은 수정판이 나오고 개정판도 나오지만
인생이라는 책은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만일 인생을 개작하고 수정할 수만 있다면
역사상 그토록 많은 악인은 생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 그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여러분은 그 한 페이지를 쓸 것입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 <세 가지 의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최선을 다해 선을 베푸는 일>이다.
우리는
<바로 오늘>,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과 <내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인생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오늘 작성하는 한 페이지에 뭐라고 쓰고 싶습니까?
<아! 오늘도 나는 불행한 하루를 보냈다. 죽고 싶다>그렇게 쓰시렵니까?
아니면 <오늘 하루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일이 기다려진다>라고 쓰시렵니까.
여러분, 인생이라는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면
아마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책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행복론>에서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것,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어떤 희망을 가질 것...
그의 말을 빌리면 일, 사랑, 소망이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과 대화를 하면서 확인을 했습니다.
무슨 말 끝에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선교사님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아프리카 그 오지에서 10년 동안(비참하게 살았다)을 산 선교사님에게
무엇이 그토록 행복하게 만들었습니까?>
선교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행복한 세 가지 이유는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현지인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사역을 하지만)
생명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에)
선교사님을 통해서 중요한 것을 배웁니다.
사람 탓하지 마라, 환경 탓하지 마라, 직업을 탓하지 마라(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으면 행복할 텐데...)
매일 매일 행복한 사람은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 모든 환경과 조건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 때문에 행복하십니까?
지금 고난과 역경으로 인해 희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행복하십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여러분이 쓰고 있는 <인생>이라는 책안에
<행복한 하루였다>라고
마무리 하는 하루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격렬했던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 갈 무렵 샌디에고의 외곽지대에 있는 화려한 어느 저택에 전화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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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 김석균>
예화 하나 소개합니다.
집주인 되는 부인이 전화를 받았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
< 엄마, 저예요. 제가 죽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전쟁에 나갔던 아들의 음성이다.
어머니는 지금 당장 그 아들이 보고 싶어 재촉을 한다.
<당장에 달려오지 않고 전화는 무슨 전화냐!> 그러자 아들은 심각하게 말한다.
<이제 곧 가겠습니다. 그런데 불쌍한 내 친구와 함께 갈까 합니다.
이 친구는 함께 싸우던 전우인데 지금은 눈이 하나가 없고 팔 하나가 없으며 다리 하나가 없습니다.
하지만 갈 데가 없는 친구라서 저와 같이 있으려고 데려왔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며칠동안만 있으려므나> 엄마의 말에 아들이 대꾸한다.
<아니에요. 오랫동안 입니다> 그러면 한 일년쯤 함께 있으려므나.
처음에는 그럭저럭 함께 지낼 수 있겠지만 세월이 가면 무거운 짐이 되어 괴로울 것이다>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이 말에 아들이 말한다 <아니에요. 일생동안 같이 살 겁니다>
어머니가 화를 버럭내며 <너 전쟁에 나가더니 감상주의자가 되었구나.
그런 사람을 오랜 시간동안 사랑하기가 쉬운 줄 아느냐?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아도 얼마간 지내다 보면 싫증이 나고, 그리고 나중에는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어머니의 이 말에 <그럴까요?>하고 아들은 수화기를 놓고 만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군 본부로부터 발송된 한 통의 전보가 날아왔다.
전보의 내용은 청천벽력이었다.
<당신의 아들이 호텔 12층에서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시체를 찾아 가십시오>
어머니는 허겁지겁 달려가 시체를 확인했다. 틀림없는 자기 아들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눈이 하나 없고, 팔 하나가 없고 다리 하나가 없었다.
이토록 불구자가 된 나를 어머니가 어떻게 사랑해 줄 것인가를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았건만
결국은 <짐이 될 것이다>라는 어머니의 말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인간의 사랑은 이렇듯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행복하게 살던 집에 어느날, 눈이 하나 없고, 다리가 하나 없고 팔이 하나 없는 아들이 나타났을 때...
그때부터 그 가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숨과 불평과 원망과 눈물이 쏟아지고...
그래서 자식이 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런데 여러분...
이 예화를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을 해 보십시오.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자기 인생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방탕한 생활로 인해 가정은 깨어졌고,
병들어 몸은 죽어가고 있으며...
그의 영혼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거부하던,
만신창이가 된 한 인간이 하나님에게 전화를 했다고 칩시다.
<하나님, 저요!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몸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으나 돌 볼 사람도 없는 쓸모없는 인간입니다.
온갖 죄를 저지르면 살아온 탕자입니다.
모두가 나를 떠났습니다.
그런 나를 사랑해 주실 건가요?>
하나님이 뭐라 말씀하실까요.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아느냐>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아느냐>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는 아느냐>
<내가 너를 살리려 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사랑을 너는 아느냐>
하나님은 방송가족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병든 자, 실패한 자, 가난한 자, 무지한 자,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아느냐>
<내가 너를 끝까지 사랑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나는 곳이 없다>
오늘은 눈물나도록 하나님의 사랑이 감동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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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 김석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저서에서 <사면초가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느날, 한 나그네가 산길을 가다가 사나운 짐승을 만났다.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짐승을 피하여 줄행랑을 쳤다.
짐승은 계속 따라오고...너무 급하여 마을 입구에 있는 우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것은 죽는 일이다.
그런데...우물 안으로 떨어지면서 나무뿌리를 붙잡게 되고,
그 순간 <우지직>하는 소리를 듣고 위를 올려다보니
하얀 쥐와 검은 쥐가 나무뿌리를 양쪽에서 갉아먹는데 십분의 구가 갉아먹힌 상태이다.
더 견딜 힘이 없는 나무뿌리가 끊어지려고 하는 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물 아래에는 독을 품은 뱀(독사) 이 가득 머리를 쳐들고
나그네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위로 올라갈 수도, 아래도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
톨스토이는 이런 상황을 <사면초가에 처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표현을 했다.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어느 한쪽이 막혀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는 성도님이 이 방송을 보고 있을 수 있다.
두 문이 막혀 눈물만 나오는 성도님도 있을 수 있다.
동, 서, 남쪽이 막혀 죽는 것 외엔 살 희망이 안 보이는 분도 있을 수 있다.
헬렌 켈러가 말을 했다.
<앞문이 막히고 옆문이 막히고 뒷문이 막힐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신다>라고...
아직 포기하기에 이르다.
군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이해가 갈 것이다. 훈련소에서 6주간의 군사 훈련, 얼마나 힘이드는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대에 배속이 되어 3년간의 군생활을 하면서 어떤 일을 했는가.
유격훈련, 주야간 사격, 행군, 구보, 정신교육... 쉴 틈이 없이 훈련을 거듭한다.
왜 그런가? 강한 군사를 만들어야 전시에 국가를 지키고 자신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훈련(훈련소)은 오합지졸을 만들 뿐이다. 군사는 국가의 위기상황에 필요한(전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군사로서 임무를 수행하기를 원하신다.
구원받고 교회만 다니는 교인이 아니라
(훈련소 교인)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맡겨진 일을 완수하는 사도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영적 군사는 고난의 훈련을 반복해 가면서 만들어진다.
마치 군사훈련을 받듯이...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라,
한결같이 고난의 학교(삼년이상)를 졸업한 사람들이다.
사면초가에 처한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고난 중에도 찬송을 하고 기뻐하며 감사를 하는 것이다.
내가 당하는 고난이 나를 훈련시키고 사용하실 하나님의 비전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영혼에 호스를 꼽으시고 한없는 힘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십니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래서 고난을 즐긴다.
시인 테니슨은 이렇게 노래했다.
<고난이 깊을수록 내 가슴은 뛰노라>
가슴이 뛰지는 않아도 절망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 43장 2~3절을 읽어보라>
왜 이렇게 도우실까.
<너로 하여금 나를 증거하도록...>
이것이 답이다.
고난의 환경은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 자라는 곳이다.
고난을 통해서 얻어진 비전은 나의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이다.
내 꿈이 아닌 하나님의 꿈을, 내 비전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을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신다.
기대가 되지 않는가...
오늘도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가, 뒷걸음질치지 말고 선두에서 싸우라.
하나님이 후방에서 아낌없이 당신을 지원하실 것이다.
이제 고난 때문에 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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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삶 - 김석균>
우리는 미켈란젤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늘이 낳은 조각가요 미술가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유모의 젖을 빨 때부터 석공의 연장을 흠모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가 걸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 첫 작품을 만들었을 때가
고작 21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모든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서른도 되기 전에
세계적인 명작 <피에타>와 <다비드상>을 완성해 넣을 정도였습니다.
30대 초반에 그는 마침내 교황 줄리우스 2세로부터 바티칸의 교회 천장에
열두명의 제자들을 그려 넣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됩니다.
그는 원래 조각에 관심이 많고 소질이 있었으므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거절하고도 싶었지만
거듭되는 바티칸의 요청으로 인해 그 부탁을 수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단 맡은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헌신했습니다.
무려 4년이란 긴 세월동안
그는 어두컴컴한 시스틴 성당의 천장에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창세기에 나오는 아홉장면을 뽑아
무려 400명의 그림을 그려 넣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처럼 장대한 그림을 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왔을 때에는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무척 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된 작업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을 상실했고, 기력은 완전히 쇠잔해졌습니다.
그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아무도 보지 않는 시스틴 성당 구석에서
무엇 때문에 그토록 오랜 세월 정력을 다 허비했느냐?>고 질문을 하자
미켈란젤로는 짤막하게 한마디로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신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말대로 그의 헌신과 노력과 땀에 대한 보상은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기고 간 그 걸작품들은
이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역사 속에서도 길이 남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발자취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렵고 혼자서만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이 땅의 후손들이 알아줄 수 있는 그런 흔적을 남기는 삶,
우리는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남기기 위해 사는 삶을
우리는 헌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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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 김석균>
어느 가정의 이야기이다.
조실부모하고 어렵게 자란 남편, 착한 아내를 만나 가진 것은 없어도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날, 친구를 따라가 도박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모은 재산을 몽땅 날리고 말았다.
한숨만 나오는 남편은 매일 술로 살았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의처증까지 있어서 툭하면 아내를 구타하기 일쑤였다.
매일 울면서 신앙생활을 하던 아내...
수없이 도망치고 싶고, 죽어버리고 싶고...
<하나님!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세요> 눈물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날,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자식 때문에,
또 하나 더 있다면 <아직 하나님이 내 남편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믿기 때문에...>
그러던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당신 남편은 폐암 말기입니다> 의사로부터 이날을 듣게 되었을 때
정작 기뻐해야할 아내, 그동안 얼마나 시달렸던가, 또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가,
저 인간은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얼마나 미워했던가...
그런데 이제 시한부 인생?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눈물만 나왔다.
<저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면서 왜 그렇게도 모질게 사람을 괴롭혔는가. 불쌍한 사람 같으니라고...>
병원에 있는 그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어느날... 남편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여보 미안하다, 내가 잘못 살았다, 미안하다> 계속 우는 남편.
아내는 그런 그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고 남편은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죽음의 순간, 그는 평화롭게 주님 품안에 안겼다.
장례식을 치른 후 아내가 이렇게 고백을 했다.
<내가 저 남자 버리고 떠났으면 저 남자 얼마나 불쌍했겠는가.
인생 끝자락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니
그 사람의 마지막 행복을 내가 선물할 수 있었던 것,
하나님의 은혜이다>
남편, 아내, 자녀, 가족 때문에 힘드십니까?
조금 만 더 참으십시오. 하나님이 아직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내가 이 땅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맡겨주셨지 않습니까, 바로 가족 사랑...
사람은 사람을 포기해도 하나님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이 직접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더욱 신나는 일이다>-헬렌 켈러
가족은 남이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신나게 사십시다.
오늘도 가족 모두가 손을 잡고 이 찬양을 부르십시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보면서 감사하세요...
(중략)~~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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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기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 김석균>
요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스포츠 경기밖에 없는 것 같다.
열광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야구경기를 떠 올려 본다.
9회 말, 1:0... 지고 있는 팀의 공격, 주자는 1루, 투 아웃에 투 스트라익 스리볼...
공 하나로 게임은 끝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공하나가 홈런이 되었고 역전 드라마는 그렇게 완성이 되었다.
왜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는지를 보여준 경기였다.
예기치 않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는 현장이 스포츠 경기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야구의 전설적 인물 <요기 베라>는 <끝나지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이런 일을 흔하게 경험한다.
거친 풍랑을 만나 앞이 안 보이는 상황,
그러나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다.
죽을 것이라고, 희망이라고는 전혀 안 보이는...
그런데 그는 그상황에서 살아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것을 잃었고, 모든 것이 떠났고...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아직 삶을 포기하기가 너무 이르다.
<상황이 끝나기 전까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9회말 대 역전극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태계 세균학자로서 매독을 치료하는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약을 만들어낸 <폴 애를리히>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적인 성취를 위해 나는 7년동안 605번이나 실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번 더하여 606번째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치료약의 이름을 606이라고 지었습니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성공의 열쇠는 실패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좌절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골드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데 있다”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말라. 당신이 지금 9회 말 투 아웃 상황이라 할지라도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 자주 개입하신다.
그 상황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자인하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힘이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주 사용하시는 대역전 드라마...
오늘은 당신이 그 주인공이다.
이제 얼마 후에 당신은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드라마의 완성이다.
지금 당신을 그토록 힘들게 하는 문제,
당신을 지치게 하는 상황들 앞에서 외쳐라.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니야><난 할 수 있어>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는가.
세상일에 실패했어도 너는 절망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중략)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크게 사용하리라
너로 하여금 나를 증거하도록 내가 너를 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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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음악가 베토벤 ^^
그의 아버지는 항상 술독에 빠져 살았고, 점점 심해지는 아버지의 술주정은 날이 갈수록
가정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베토벤은
어린 나이에 극장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가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는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죽게 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그래서 그는 여동생을 돌봐야만 했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는
작곡가의 생명인 귀에 그만 이상이 생기면서 소리까지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절망하여 이렇게 외쳤다.
“나는 왜 이렇게 슬픔과 고통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나의 귀로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작곡에 전념했다.
결국 그 유명한 교향곡 9번을 작곡하여 연주를 마쳤을 때
장내는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다.
한마디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하지만 그는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옆에 있던 단원이 장내를 향해 그를 돌려 세운 뒤에야
자신의 작품이 대성공이었음을 알았다.
가장 불운한 삶의 조건들...
그리고 천재적인 작곡가...
뭔가 통하는 것이 있잖은가.
인간의 고통은 언제나 뜻이 있다.
인간의 위대함은 슬픔과 절망과 고통중에서 만들어진다.
인간을 가장 솔직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만드는 장소는
바로 고난과 역경과 고통의 현장이다.
인생의 보화는 슬픔과 고통의 자리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고된 훈련을 시키신다.
훈련의 결과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를 <졸업장>을 받고 졸업을 한다.
고난의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은 이런 노래를 부른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이하 생략
*찬양사역을 하고 계신, 김석균 선교사님의 믿음의 좋은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