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양이씨(興陽李氏) 상주파 갑술보(1942) 편찬 과정에서의 종손 축출 사건을 중심으로 -
국문 초록
본 연구는 1940년대 경북 상주 지역의 흥양이씨 문중 내에서 발생한 '갑술보(1942년 임오보) 위변조 사건'과 그 과정에서 자행된 정통 종손(이세하 가문) 축출 분쟁의 전말을 고찰한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조선 후기 이래 명망 가문의 족보 수보(修譜) 과정은 단순한 혈연 기록의 정리를 넘어, 향촌 사회 내 주도권과 문중 자산(위토 및 선산)의 소유권을 둘러싼 치열한 권력 투쟁의 장이었다. 상주파의 자산가 이종린 일파는 재력을 바탕으로 구보(신미보)의 정통 계보를 왜곡하고, 고흥 출신의 거유(巨儒) 월간·창석 형제를 상주 대대로의 가계로 가탁(假託)하고자 했다 [양관대제학,출천한 우애 형제급난도 - 디트NEWS24,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이 과정에서 저항하는 정통 종손에게 '불효'와 '재산 횡령'이라는 파렴치한 누명을 씌워 강제 방축(放逐)하고 가짜 종손(이석면 등)을 들이미는 전대미문의 만행을 저질렀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본 고는 고흥 흥양보천파의 세보와 문중 문헌을 바탕으로,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경제적 탐욕의 도구로 오용되어 정통성을 말살했는가 그 역학 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향사일정표 - 흥양이씨대종회,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주제어: 흥양이씨, 갑술보, 이세하, 이종린, 족보 위변조, 종손 축출, 문중 자산 분쟁
I. 서론
전통 사회에서 종가(宗家)의 종손은 조상의 제사를 독점하고 문중의 결속을 상징하는 도덕적·지위적 핵심체였다. 그러나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문중 재산(위토, 임야 등)이 형성되자, 종손의 권위는 종종 문중 내 신흥 경제 세력의 도전 대상이 되었다.
흥양이씨 가문의 '1942년 갑술보 사건'은 재력을 쥔 방계 혹은 타파 세력이 문중의 정통 유산과 경제적 이권을 독점하기 위해 권력 구조를 어떻게 조작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전형적이고도 비극적인 사례이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본 연구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이종린 일파의 위변조 획책과, 이에 저항하다 파렴치한 누명을 쓰고 축출당한 이세하 종손 가문의 잔인한 수난사를 추적하여 보학의 역사적 진실을 인양하고자 한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II. 본론
1. 경제적 재력과 계보 왜곡의 결탁: 이종린 일파의 획책
1930년대 중반, 족보 편찬을 주도하던 이시좌(만수)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상주파 내 경제적 유력자인 이종린(李鍾麟)에게 문중 주도권을 장악할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이종린과 종구 등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여 족보 판각 사업을 독점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이들의 1차적 목표는 상주에 먼저 터를 잡았으나 문중 내 위상이 낮았던 이양(李양) 후손 가계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전남 흥양(고흥) 출신이자 영남 유학의 거두인 월간 이전·창석 이준 형제의 정통 가계를 상주 가계와 인위적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양관대제학,출천한 우애 형제급난도 - 디트NEWS24]. 그 결과물로 9세조 대사헌 이은(李垠) 공을 '상주파조'로 조작하여 소급 적용하는 가탁의 난도질이 자행되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2. 유교적 불효 프레임과 종손 이세하(李世夏)의 축출
이종린 일파의 사문난적(斯文亂賊)적 획책에 가장 강력하게 맞선 인물이 바로 창석 종가의 정통 맥을 이어받아 월간 종손으로 입적되어 있던 이세하(李世夏) 선생 가문이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정통 종손의 거부는 이종린 일파에게 단순한 반대를 넘어, 자신들이 추진하는 족보 왜곡(갑술보)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드는 위협이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이에 이종린 일파는 종손을 합법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두 가지 파렴치한 누명을 씌웠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첫째, '봉사 태만(奉祀怠慢)'과 '향화 단절(香火斷絶)'의 덫: 유교 사회에서 종손에게 제사를 소홀히 했다는 누명은 도덕적 파멸을 의미했다. 일파는 이세하 종손이 선조의 시향(제사)을 정성껏 모시지 않고 묘소를 훼철되게 방치했다며 가문 내 여론을 선동했다.
둘째, '위토(位土) 및 문중 자산 횡령'의 프레임: 일파는 종손이 문중의 공적 자산인 위토를 사리사욕을 위해 매각하려 했다는 죄목을 조작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그러나 역사의 진실(보천파 세보 등)은 오히려 선조의 재산과 추동 월간 문중 재산을 독식하려 했던 주체가 이종린 일파였음을 가리킨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즉, 자신들의 경제적 탐욕을 가리기 위해 적반하장으로 종손에게 횡령범의 누명을 씌운 것이다.
이 치밀한 공작의 결과, 이세하 종손은 문중에서 강제로 방축(쫓겨남)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종손이 제거되자 이종린의 핵심 동조자였던 이석면(李石面)이 텅 빈 종손의 자리를 찬탈하여 들어가, 1942년 간행된 갑술보에 자신을 정통 종손으로 등재하는 역사적 범죄를 완성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3. 관향(고흥 흥양보천파)의 정통성 고수와 보천파 세보의 기록 학적 가치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상주파의 갑술보는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관향인 전남 고흥군 풍양면 보천리의 정통 종가(흥양보천파)에 의해 완벽하게 제동이 걸렸다 [향사일정표 - 흥양이씨대종회,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고흥의 종장 어른들은 돈으로 계보를 더럽히고 종손을 축출한 상주의 갑술보를 '가짜 족보'로 규정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고흥 종가는 상주파의 갑술보가 출간되기 직전, 신미보의 원형을 엄격하게 고수한 '고흥보'를 선간행(先刊行)하여 유포함으로써 상주파의 획책을 역사적으로 무력화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또한 쫓겨난 이세하 가문의 억울함과 이종린의 위변조 정황을 '흥양보천파 세보'에 고스란히 기록하여 후대에 역사적 법정의 증거물로 남겨두었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III. 결론
흥양이씨 상주파의 갑술보 위변조 및 이세하 종손 축출 사건은, 재력을 쥔 특정 세력이 가문의 명망(월간·창석의 명성)을 독점하고 경제적 이권(문중 재산)을 장악하기 위해 역사 기록과 유교적 윤리 프레임을 어떻게 악용했는지 보여주는 부끄러운 단면이다 [양관대제학,출천한 우애 형제급난도 - 디트NEWS24,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그러나 고흥 흥양보천파 세보와 진실한 후손들의 끈질긴 거부 투쟁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진리를 증명한다 [족보간행내역 - 흥양이씨대종회]. 본 연구는 갑술보의 기록이 허구임을 밝히는 동시에, 누명을 쓰고 쫓겨난 진짜 종손 이세하 선생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고 신미보의 원형 가계를 복원하는 것이 오늘날 보학이 나아가야 할 정의임을 논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