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위 / 노래로 듣는 한국근대사 / ≪한강문학≫ 31호 권두칼럼
노래로 듣는 한국근대사
김 중 위 _ 헌정회 홍보편찬위원장, 영토문제 특별위원회 위원장,
12∼ 15대 국회의원, 전 환경부 장관, UN 환경계획 한국부총재, 한강문학회 상임고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장
우리의 역사를 드려다 보면 우리 민족은 참으로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신라시대에 이미 우리는 3명의 여왕을 경험했고 서양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시대에 우리는 삼국통일 즉 민족통일을 이루어 냈다. 이異민족으로부터도 수많은 외침을 받으면서 꿋꿋이 견뎌낸 저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침략하여 약탈하고 굴복은 시켰어도 온전히 다스리지는 못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병탄한지 10년째 되는 1919년에 이미 우리는 해외에 민립民立 정부를 세우고 일본과 싸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우리민족이 갖는 이런 끈질김과 저항정신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끊임없는 외침外侵이 가져다 준 담금질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거론 하고 싶은 것은 우리민족의 예지라고도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비상한 사태에 직면하면 언제나 번득이는 예지로 노래를 불렀다. 참요讖謠다. 조선조 숙종 때에는 장희빈의 농간으로 인현왕후가 폐비가 되자 백성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일세/ 철을 잃은 호랑나비/ 오락가락 노닐더니/ 제철가면 어이 놀까”
장희빈이 아무리 그래봤자 한때 뿐 결국은 폐비가 다시 돌아오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와 미래에 대한 예측을 노래하였던 것이다. 결국 역사는 그대로 되었다.
한말에 한창 서양세력이 판을 치기 시작할 무렵 우리 민중은 느닷없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연평도 바다에/ 갈바람이 분다/ 엘화에야 네야 에헤야/ 나이리 이허리/ 매화로구나”
경기민요인 매화 타령이다. 그러나 단순한 민요만은 아니다. 1866년(고종3년)에 있었던 병인양요丙寅洋擾를 예언한 참요였다.
병인년은 당시 조선은 물론 서양 사람에게도 끔직한 한 해였다. 그해 7월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 - 해적선이라 하는 학자도 있다 - 라는 미국상선이 대동강을 타고 올라와 평양주민들을 살해하고 약탈하자 화가 난 주민들은 배를 불사르고 선원 모두를 살해하였다. 당시 정부에서는 서양 사람들이 천주교도를 앞세워 조선을 침략하는 것으로 알고 그때부터 국내에 있는 9명의 프랑스 신부와 남종상 등 8천명에 달하는 신자들을 처형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 정부는 그해 9월 천진에 있는 극동함대와 천여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강화도를 점령하고 40일 동안이나 체류하면서 강화도에 있는 궁궐을 불태우고 그곳에 보관되어있던 각종 보물과 도서들을 약탈하고 물러났다. 이런 변란이 있을 것을 우리 백성들은 미리 알아차리고 매화타령을 불렀던 것이다.
동학 농민운동이 있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1894년 갑오년에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심한 가렴주구苛斂誅求로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때 동학의 고부접주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봉준全琫準이 농민군을 진두지휘하면서 고부를 점령하고 전라북도 일대를 석권하였다. 이때 나온 노래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였다. 여기서 “파랑새”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건너온 청나라 군과 청군 출현에 뒤따라 들어온 일본군을 지칭하는 것이었고 “녹두밭”은 농민군을, 청포장수는 조선민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노래는 다음의 노래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보리”
이 노래는 무슨 뜻인가! 우선 “가보세”는 갑오년을 말한다. “가보세 갑오세甲午歲”다. 갑오년에 일어난 농민운동을 민중들은 이렇게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갑오년에 일으킨 농민운동을 갑오년(1894)에 성공시키지 못하고 을미년(1895)으로 넘어가면 병신년(1896)에 모든 것이 끝난다는 민중의 예지적 호소였다.
을미년은 어떤 해요 병신년은 어떤 해인가! 을미년은 일본군에 의해 민비가 살해된 해요, 병신년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해다. 한 나라의 군주가 자기 나라 안에 있는 남의 나라 대사관저로 망명하여 숨어 지내는 형국의 한해였으니 “병신되면 못가리”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해방되던 해에는 이런 말이 떠돌아 다녔다.
“조선아 조선아/ 소련 놈에게 속지 말고/ 미국 놈 믿지 말고/ 조선은 조심해라/ 일본 놈 일어선다”
어쩌면 이리도 운율이 척척 맞을 수 있을까!
-《노래로 듣는 한국 근대사》(한강문학),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