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생동 25번지에 모여
-인천여상 24회 동기들에게
유 인 채
(인천문인협회 시분과회장, 협성대학교 출강)
30년 전 겨울의 끝자락에서 훌훌
신생동 25번지를 날아간 백조들이
여기 한자리에 모였구나!
어디 갔다 이제 왔니?
그동안 무논이나 저수지나 호수나 늪지대
축축한 곳에서 살아야 했던 겨울새.
긴 세월을 떠돌며 짝을 짓고 번식하고
때로는 헤어지는 연습도 하면서,
어쩌면 시베리아 땅을 한 바퀴 돌아
여기까지 날아온 게 분명하구나!
그래, 지나간 세월을 한꺼번에 말하지 말자.
적당히 살이 오르고 눈가에 잔주름이 진 채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려 반쯤만 웃어주렴.
내가 시시하고 유치한 말을 해도
넉넉히 들어주고
푸근한 얼굴로 맞장구라도 쳐주면
너는 오늘 내게 특별한 선물이 되는 거란다.
친구야,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지.
빙빙 돌아가는 우주 한가운데서
현기증은 또 얼마나 느꼈던가.
그 울렁거림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니.
네가 마음을 열면
나는 그저 두툼해진 양 날개로
잔등을 쓸어줄게.
그러면 어제 만났던 것처럼
우린 금방 익숙해지겠지.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세월을 다 읽을 수 있겠구나.
행여 우울하고 지친 마음이라면
친구야, 지금 해맑게 웃어봐.
그러면 순간,
교문 앞 분식집에서 가래떡튀김을 맛있게 먹던
그 기집애가 될 거야.
밤을 지새도 못 다 할 사연은
두고두고 풀어가자꾸나.
다시 30년이 흐르고
또 몇 년을 더 볼지 모르지만
우리 잊지 말자.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하고
등나무 밑 벤취에서 흥얼거리던 그 노래를,
플레어스커트 자락을 팔랑거리며
구름다리를 건너다니던
단발머리의 재잘거림과 꿈과 설레임을.
(2011. 9. 17. 제24회 인천여상 홈커밍데이 낭송시)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시인, 류인채
Heyh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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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9
11.09.19 11:1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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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채가 낭독할때도 가슴이 뭉클하더니 지금 다시 읽어도 우리들의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한 것 같아 가슴이 짠하고, 눈가가 촉촉해 지네...*^^*
나두 시를 쓰면서 알았단다. 내가 무의식 중에 얼마나 인천여상과 옛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반백의 세월을 넘기고보니 가장 소중한게 뭔지 알겠더구나.
그날은..수다떠느라 잘 듣지도 못했는데..가슴에 닿아오게 정말 잘 표현한 당신은 진정 아름다운 시인..^^
칭구에 낭송시 다시 한번 듣고싶네요 넘 좋은 자리였읍니다 ~~~~
친구들이 응원해 주니 앞으로 더 좋은 시 많이 써서 울 인천여상 친구들을 기쁘게 해줘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