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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백화점의 전신, 화신상회
개화기, 을지로 입구에 들어선 청국인의 2층 상회, 안합호(安合號)
1880년대 개화기 때 청나라 원세개가 통상관계 전권대사로 조선 땅에 머무르면서 서울 장안에 「덕흥호」 「이타호」 「안창호」 「안합호(安合號)」(을지로 입구 : 전일 개성상회 자리) 등이 2층으로 된 상회를 열었다. 이 상회는 한 사람이 경영하면서도 백화 일용품을 팔아 백화점 구실을 단단히 했다. 당시 장안에 2층 건물이라고 하면 청국인 상회의 소유로, 한국인으로 2층 건물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이 가운데도 「안합호」의 규모는 제일 커서 연쇄상점가와 같은 인상을 던져 주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사동(寺洞) 입구에 최남이 경영하는 「동아 부인상회」가 탄생, 여자종업원 10여 명을 점원으로 두었다.
여자점원들이 물건을 판다고 이른바 부인상회란 명칭을 붙였는데 단층 백화점으로 많은 고객들이 모여들었고, 바로 이웃집에 금은상 「화신(和信)상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申)태화의 「화신상회」는 금·은·보석을 비롯한 「액세서리」 일체를 팔아 장안 귀족들의 출입이 가장 잦았던 곳이다.
1920년대 당시의 여자들은 거리를 다닐 땐 자기의 액세서리를 모두 동원하여 화려한 자태를 자랑했다. 액세서리가 요란한 여자들을 가리켜 “어이! 저기 화신상회가 지나간다.-”라고 하면서 ‘화신상회’란 별명을 붙여 부르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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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종로의 화신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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