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상 12장 1-5절 사무엘의 유언
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2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4 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 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 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며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날 증거하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그가 증거하시나이다
사무엘상서의 중반에 까지 왔는데 사무엘이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아마 한 70세나 60세 넘어 이렇게 연세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으게 됐는데 그것은 이제 그 사울 왕을 온 백성에게 다시 한 번 천거하는 형식으로 백성들에게 유언처럼 자기가 이제 전체를 나라를 이끌어 갈 사울 왕을 세웠기 때문에 자기가 그저 한 2선 정도로 당장 뭐 은퇴라기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사무엘 자신은 2선 3선으로 물러나는 거 같은 그런 장면이라고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지도자가 되는 입장이 되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독제를 하는 것이고 하나는 또 백성들의 의견들을 들어서 정책에 반영하는 그런 것인데 그것도 뭐든지 다 좀 지나치게 되면 문제가 된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그냥 일방적으로 백성이 말을 안 듣고 막 밀어붙이면 독제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독선이라든지 독제란 말을 듣게 되는 거죠.
반면에 백성의 말만 너무 들어서 끌려 다니면 줏대머리가 없고 지도력이 없다는 말을 또 듣게 됩니다.
이거 적당하는 게 쉽지가 않다는 거예요.
사무엘은 백성에게 끌려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백성들 하자 하는 데로 다 따라주는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게 좀 잘 해왔죠.
단 문제는 자기 아들들이 말썽을 일으킨 것이지 사무엘 자신으로서는 백성의 말을 들을 때는 들었습니다.
전혀 하나님 뜻도 아니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백성들이 기어이 왕을 세우자고 막 그렇게 할 때 거기 맞서서 그게 옳지 않다고 막 또 싸워 가지고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그 소원과 감정이 이렇게 고조되어 있을 때는요 대화가 안 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왕을 세우자고 할 때 이제 왕을 세우게 했죠.
그 우리 이게 지금 전부 정치적인 얘기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정치에 아무 무관심하다.
그거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어떤 분이 저한테 와서 아주 신신 당부해요.
그 목회자는 정치에는 무색, 무취, 무언이 잘하는 겁니다.
아무 색깔이 없어야 되고 빨간 색이나 파란색이나 그 다음에 말이 없어야 되고 정치 냄새도 안 나야 된다.
뭐 그것이 우리 한국 사회에 거의 불 문물 비슷하게 목사는 뭐 일절 정치적인 발언도 하면 안 되고 냄새도 나면 안 되고 뭐 그런 얘기를 더러 해요.
사람은 어차피 정치적 동물입니다.
사람이 투표하는 동물이잖아요.
세상에 어떤 동물도 투표하는 동물이 없는데 사람만 이게 투표하는 동물이야.
그러니까 여러분 교회도, 교회도 작은 정치예요. 이게.
헌법이잖아요, 헌법이.
그리고 그 헌법 안에 제일 났는 법이 정치입니다. 정치.
교회 정치.
그 다음 조례, 권징 조례, 예배모범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피 할래도 피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정치적인 성향이 없을 수가 없는데 그때 이제 배울 게 있는데 사무엘에게 우리가 배울 게 있고 또 사울이 잘못 하는 것을 보고도 우리가 깨달을 바가 있다는 거야.
그래서 정치적인 그런, 정치적 역사적인 그런 교훈들도 성경에 있는 것을 잘 배워서 국민들이 특히 깨어나야 돼.
민주사회가 될수록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정치꾼이 되자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정치를 바르게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 백성들이 왕을 세우자고 쫄라 데는 거 전혀 선한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지만 백성들의 소원과 감정이 너무 고조 돼있을 때 지도자가 꼭 그 백성하고 맞서거나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왕을 세우기는 했기만 그거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였고 사무엘도 기뻐하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렇지만 내게 맞지 않다 할지라도 백성들의 소동이 너무 지나치면요 들어 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참 정치의 어려운 점이라는 거죠. 그래서.
2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정말 사무엘은 젊다 못해 어리다 싶을 정도로 온 백성에게 알려진바 된 인물이죠.
오늘까지 라는 게 몇 살 때까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떻든 사울 왕을 세울 때까지 출입을 했다.
3 내가 여기 있나니
Here I am.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어디 도망 간 게 아니고 일생을 여러분과 함께 살아온 내가 여기 있다 하면서 그리고 여러분 앞에 있고 여호와 앞에 있고 그 기름 부어서 세운 왕 앞에 지금 내가 있다.
내가 어디 도망 간 것도 아니고 있는데 여기서 증거 해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그걸 다 변상하고 내가 물러나기를 바란다.
이렇게 이제 사무엘이 말 합니다.
제가 성경을 꽤 여러 차례 읽어 봤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를.
아무도 물러날 때 이렇게 말 한 사람이 없고 사무엘 혼자만 이렇게 말 했어요.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그 지도자의 자리에 있을 때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게 욕심과 탐심이죠.
누구의 소나 나귀나 물질이나 뇌물이나 이렇게 불법 무슨 정치자금이나 이렇게 탐욕이나 이런데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사회가 요즘도 계속 떠들썩한 게 그 돈 봉투 사건 아닙니까?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 돈 봉투 그런 거 해가지고 이렇게 나라가 어려워 지느냐 말 이예요.
그 정도 되는 사람이 그거 뭐 받으면 뭐하며 그 줘 가지고 참 창피 나라면 창피할 거 같아요.
좀 넣으라면 많이 넣던지 말 이예요.
그 쬐끔 넣어 가지고 주고받고 해가지고.
그 우리 사회에 박희태?
그리고 그 둘이 그 박 희태 씨하고 두 사람이 박상천 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혹 기억나세요?
아마 호남 출신인거 같은데 그 두 분이 아주 맞수거든.
진짜 영원한 맞수라고 그렇게 했는데 어지간히 오래도록 출타기 잘했습니다.
별 큰 문제없이.
근데 박상천씨는 그렇게 권력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직 큰 무리가 없었어요.
그 내가 볼 때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진짜.
뭐 얼마만큼 깨끗한지 그거는 하나님만 알지 딴사람 사람은 모르는 거고 어떻든 구설수에 안 올랐다는 거예요.
또 제가 생각하기로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 아니지만 그 박희태씨도 그거 자기가 지금 뭐 국회의장 한번 해먹으려고 돈 봉투 뿌리고 한 것 같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박희태씨 얼굴이 굉장히 기분 나빠 하는 어ㄹ굴이라.
물러나면서도.
미안해하는 거 별로 안 보여 보니까.
그래서 박희태씨를 국회의장을 만들면 누가 덕 볼만한 배후가 있었다는 거죠.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하면서 이렇게 얼굴이 비춰지는데 정말 일평생에 오점을 남기고 물러섰는데 그게 바로 탐욕, 물욕 이런 거.
그 다음에 속임수를 쓰고 있데요.
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속임수를 쓴다는 거야.
누구를 속였느냐?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누구를 압제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이 압제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네 번째는 뇌물을 받을 수 있어요.
이 네 가지에서 내가 잘못 한 게 있으면 증거 해라.
여러분 정책 이란 것은요 잘 세울 수 있고 잘 세운다고 세우는데 결과적으로 잘못 될 수도 있습니다.
정책에 대해서는 정책에 실패 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뭐 잘했으면 좋겠지만 그것 가지고 뭐 그거 평가나 할 수 있지만 정책이란 것은 더러 오점을 남길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것은 정책이 아니거든요?
그 탐욕을 품었다.
속임수를 썼다.
이거 정책이 아니잖아요.
압제했다, 뇌물을 받았다.
이거는 정책하고 다른 문제야.
이거는 완전히 도덕적인 문제거든요.
그래서 정책을 잘못 편 거 같으면 그런 거 여기에 언급이 없고 만약에 비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 된 거 있으면 내가 변상 할 수 있는 거 있으면 이 자리에서 이야기해라.
이렇게 이제 사무엘이 이야기 했는데 그.
4 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 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 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 하시며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날 증거하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그가 증거하시나이다
그래서 이제 사무엘이 정치하는 동안에 어려서부터 젊어서부터 백성에게 출입 했지만 은퇴 하는 날 2선 3선으로 물러나면서까지 그런 오점을 남기지 않았다.
하는 아주 참 좋은 선례를 남겨서 오늘 까지 사무엘, 사무엘 이렇게 이런 말을 하는 거죠.
자 여기까지 하는 거는 자기 변백, 자기변명이라 할 수 있겠고 6절 이하는요 지금은 이제 그 백성들의 소원이나 또 감정은 고조되었던 감정은 다 가라 앉았어요.
그래서 전에 백성들의 소원과 감정이 막 이리 고조 되었을 때는 필역할 수 없었던 얘기를 지금 감정이 다 가라앉고 난 후에 백성들이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을 때쯤 돼가지고 꺼냅니다.
이야기해요.
그냥 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 하느냐.
6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시니
7 그런즉 가만히 섰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할 말이 있다.
담론하리라.
여러분 이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요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그 의로우심과 선하심에 대해서 그 바르게 전해야 될 의무가 있는 거죠.
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 하리라.
담담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
8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열조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곳에 거하게 하셨으나
9 그들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장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붙이셨더니 그들이 치매
10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기므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11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이 여룹바알은 기드온이죠?
베단과
베단이란 사사는 사사기에 나오지 않는데 우리가 모르는 사사가 있었는지 아니면 바락 이라는 사사를 그 별명이 베단 이였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뭐 그런 학설이 있으니까요.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사 너희로 안전히 거하게 하셨거늘
12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의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지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너희가 왕을 세우기를 그렇게까지 졸라 뎄다는 거죠.
13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14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좇으면 좋으니라마는
만약에 왕을 세운 이후라도,
15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16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17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
18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뢰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그러니까 지난번에 백성들의 소원과 그런 욕심이 막 감정이 고조될 때는 말이 안 통하니까 전혀 말씀을 안 하시고 있다가 이제 그런 감정들 다 가라앉고 나니까 너희가 왕을 구한 게 잘못 됐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너희에게 알게 하실 것인데 지금은 밀 베는 때이고 보리 베는 때라서 비가 오면 안 되는 땝니다.
그런데 너희가 그때 잘못 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확실히 보여 주려고 내가 말해도 너희가 안 믿을 거 아니냐 말이죠.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말 한대로 너희가 왕을 구한 거 자체가 잘못 된 것 이였다.
그거 때문에 하나님이 물러났지 않느냐?
하면서 이때에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고 우레와 비를 내리게 해가지고 너희가 왕을 구한 것이 잘못 된 것이 였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나님이 친히 증거 하실 것이다.
이렇게 했는데 바로 그 밀 베고 할 때 비가 내리고 우레가 치고 번개가 치고 이랬단 말 이예요.
그 백성이 이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감정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그런 욕심과 소원과 감정이 가라 안았기 때문에 맑은 정신으로 들어보니까 생가해 보니까 잘못 됐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항상 좀 더 냉정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항상.
그 속임수를 쓰던 부흥강사들은 계속해서 냉정이 아니고 감정을 부추겨 가지고 감정 부흥해놓고 심령부흥회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요 그 소원과 욕심과 감정이 고조돼서 바른 분별이 안 돼요.
그래서 더 차분하게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경건하게 생각을 해 봐야 하는데 감정을 이렇게 막 부추겨 가지고 속임수를 쓰는 거 그거는 저는 목회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거 속임수야. 속임수.
아까 여기 탐심이나 그 속임수를 쓰는 감정을 고조시키는 거 뭐냐고,
그런 거 많이 시키려고 하는 거야 다.
그런 거 속임수야 속임수 다.
그 속임수요 탐심이요 아니면 EH 압제를 한다든지.
이거 다 잘못 된 거거든요?
그리고 우리 성도들도 분별력이 있어야 되요.
속이는 사람도 나쁘지만 속이면 속는 사람도 문제가 있다는 거야.
분별력이 없이.
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이제사 감정이 다 가라앉고 나니까 하나님 말씀을 들어 보니까 사무엘이 하는 말을 잘 들어 보니까 자기들의 모든 죄 위에 그것도 왕을 구하는 죄까지 더했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 깨닫는 거예요.
지난번에 그런 욕심과 소원과 감정이 고조 됐을 때는 전혀 말이 안 통하던 사람들이야.
이거 다 가라앉고 나서 들어 보니까 우리가 확실히 잘못 됐습니다.
그 사무엘이 두려워하고 겸허하게 하니까.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지금부터 라도.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21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아주 굉장히 단호하고 준엄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까지가 이제 사무엘의 유언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 성경에는 여러 사람들의 유언이 있습니다.
아마 대표적인 유언이 있다면 모세의 유언이 있는데 여러분 우리가 지난번에 신명기 볼 때 보신 데로 신명기란 책 자체가 모세의 유언이고 또 다른 말로 하면 오경 자체가 다 모세의 유언이라 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 여기 이제 여호수아의 유언이 우리가 여호수아 끝에 보았을 겁니다.
여호수아의 유언이 있고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사무엘의 유언을 봤습니다.
그리고 이따 이제 우리가 사무엘하서에 가서 보면요 다윗의 유언이 나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기는 유언이 있고 그리고 나서는 이제 그 유명한 예수님 유언이 있죠.
예수님 유언은 신약성경 칼라로 된 성경에 예수님, 예수께서 가라사데 한 거는 다 예수님 유언 이예요.
꼭 그저 28절 20절 18절 20절 그것만 유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은 전부 다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산상보훈에서부터 시작해가지고 마태복음 28장까지 요한복음에 있는 거까지 다 예수님께서 하신 유언이죠.
그 다음에 디모데후서 감은데 보면요 사도바울의 유언이라 할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물론 뭐 바울이 남긴 바울서가 다 유언이죠.
그리고 요한사도의 유언이 있고,
베드로후서는 베드로 사도의 유언입니다.
아니 좀 더 광범위하게 말하면요 성경 신구약 66권이 다 유언 이예요.
우리게 끼친 말씀 아니 예요. 남긴 말씀.
그래서 모든 말씀을 들을 때 이게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유언이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삼가 성실히 조심스럽게 읽어서 또 그 참 뜻을 깨닫고 헤아려서 그대로 실천해야 돼.
최선을 다 해서.
이게 다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유언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해야 됩니다.
134장입니다.
13장
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년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산에 있게 하고 일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상비군처럼 왕의 친위대처럼 이렇게 있는 사람이 한 삼천명 정도는 항상 그저 사울 왕과 요나단 손에 있게 하고 나머지는 전쟁 났을 때 소집하고 평상에 또 집에 가서 농사짓고 하는 거죠?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의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가증히 여김이 되었다 함을 듣고 길갈로 모여 사울을 좇으니라
5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대단하죠?
이 병거라고 하는 것은 전쟁터에 나가서 그 법 생긴 거는 우리나라의 리어커처럼 생겼습니다.
리어커처럼 생겼는데 그 리어커를 말아다가 달아 가지고 말 위에 올라타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리어카 같은데 타고 말이 끄는 거기 이제 타는 뭐 영화에 더러 보셨을 거예요.
이게 병거입니다.
말 한 마리가 리어커 만한 걸 끌고 달아나는 그런 스타일이죠.
그게 삼만이야. 삼만.
대단한 숫자입니다.
사람 삼 만만 해도 대단한데 그 병거가 삼 만이요.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그래 워낙 블레셋 군대가 너무 막강 하니까 떨 수밖에요.
8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무엘이 좀 빨리 오면 될텐데 그래 뭐 어디 멀리 가 있었는지 칠일 후에 온다고 하는데 사울에게 군대가 모였다가 사무엘이 빨리 안 오고 그 블레셋 군대를 보니까 어마어마하고 하니까 백성이 떨면서 백성이 스물스물 자고나면 몇 사람 없어지고 자고나면 없어지고 막 이렇게 합바지 방구 세듯이 설설설설 해 가지고 사라지는 거예요. 이제.
9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그냥 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조금하게 자기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10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그러면 한 나절만 더 기다렸으면 될텐데 그렇죠?
여러분요 사람이 참을 때는요 끝까지 참아야 돼.
더는 못 참겠다.
거기서 더 참아야 돼.
더는 못 참겠다.
그때 참아야 된다고.
그 앞에는 참은 게 아니고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
이제 그 때를 참아야 고비를 남기는 건데 대게 그걸 못 참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 보면요 네가 언어에 조급한 자를 보느냐.
말을 참지 못하고 더는 못 참겠다고 이제 언어의 조급한 자를 보느냐.
차라리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기대할 것이 있다.
그런 말이 있어.
제가 그 처음에 사천군 정동면 송옥이란 곳에 가서 이제 전도사로 왔다갔다 학교 왔다갔다 할 때 직행버스는 거기 안서고 직행버스는 대게 초록색으로 되어 있고 완행버스는 벌그렇게 된건데 그 완행버스만 서그던요.
그 대게 한 시간마다 대체로 이제 그 때만해도 시간을 정확하게 안 지키고 대채로 한 시간마다 한 대씩 오니까 나가서 이제 많이 기다리면 한 시간 기다려야 되고 어떤 때는 한 10분 기다려도 오고 이제 이리 하는데 한 대가 빠져 버리면 한 시간 이상 기다리는 거요.
근데 덥거나 춥거나 하면요 한 시간 기다리는 것도 어떻게 그리 긴지.
한 시간이 막 한 나절 가는 거 같아.
그 차가 가끔 빠지기 때문에 에이 안 올란가 보다 하고 못 참고 집으로 가면 집에 들어갈라 하는데 차가 내려 오는 거예요.
조금만 더 참았으면 그 영광을 볼텐데.
그 조금 못 참아 가지고 그때는 뛰어가도 늦어요.
집에서 차 타는데 까지 500메다 이상 넘는데 그런 거 몇 번 그리 경험해.
그러니까 그 몇 번 경험해 보면요 한참 참아보고 기다려보고 그럴 때 덜덜덜덜 하는 그런 고물딱지 같은 차가 하나 가면 저런 거 하나 사면 얼마나 좋겠는가.
별 생각이 다 들었어.
어떻든 더는 못 참겠다 할 때 그 좀 더 참아야 돼.
그리고 참으려면요 끝까지 참는 게 잘하는 겁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런 말이 있어요.
인내를 온전히 이뤄야 돼.
아 그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될텐데 그만 조급해 가지고 자기 권한도 아닌 제사를 사울 왕이 드린 거예요.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 하매
1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이때 벌써 딱 이 한번 결정적 실수 한 번에 가 버린 거야. 그냥.
이런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
아주 이 사울 같은 경우는 첫 임금이 돼가지고 첫 케이스로 시범 케이스로 걸려들었어.
이때 이 이미 버린거나 마찬 가지입니다.
그 한번 실수에 갑니다. 그냥.
한번 실수에.
여러분 이 사람의 명령이 아니고 하나님 명령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걸 거역했을 때 한번 실수에 그냥 가 버린다는 거야.
여러분 그런 성경에 그런 사례가 더러 있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
한번 그런 일은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 일벌 백개 형식으로 한번 실수에 그냥 완전히 끝장 나버리는 그런 시범케이스에 걸려든 거예요. 그래서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명
밖에 남은 게 없습니다.
다 흐터져 버리고.
16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17 노략군들이 삼대로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로 말미암아 수알 땅에 이르렀고
18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를 향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경 길로 향하였더라
지 그때는 요 얼마나 이스라엘이 그 무력이 약했느냐 하면 그때 이스라엘은요 철공도 없었어.
철공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었는데
벼린다 하는 말이 버린다 말이 아닙니다.
벼린다는 것은 괭이나 무슨 연장을 쓰다 보면요 무디어 져서 뭉퉁 해져서 쓰지 못하게 되면요 그걸 다시 그 풀무불에 넣어 가지고 풀무불에 넣고는 이제 모이루에 넣고 해 맑아 가지고 두둘겨 팹니다.
두둘겨 패서 그 날이 더 날카롭게 하는 걸 벼린다고 해요. 벼리.
버리는 것이 아니고 벼린다.
그래서 칼 벼리러 간다.
도끼 벼리러 간다.
그런 말 어릴 때 많이 쓰던 말인데 요즘 우리 잘 안 쓰는 말이죠?
그 날카롭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는 충분히 날카롭게 두둘겨서 만든 다음에 그 다음에 다시 담금질 합니다.
되게 차가운 물에다가 별그렇던 거를 갖다가 바로 갑자기 팍 집어넣으면 퓨웅 하면서 강도가 이제 높아지는 거예요.
그걸 이제 일본 사람들 야끼라 그래요. 야끼.
열처리 한다 그러는데 기름에다 집어넣으면 아브라야끼 그러면서 이제 기름에 집어넣으면 더 빨리 강화되는 그런 방법을 썼는데 그것을 그런 기술이 없어요. 이스라엘은요.
그래 가지고 농기구 하나 벼리러 가는 것도 블레셋 사람들 땅에 가서 해야 돼.
그 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라는 무기가 없으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라.
게임도 안 돼.
그 이스라엘 무기를 무기나 농기구를 벼리기 위해서 블레셋 가야 되는 입장이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설 수 없는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이야.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전쟁을 하려 할 때요 무기가 어느 정도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그러니까 딴 사람은 무기가 없어.
뭐를 가지고 맨 주먹 가지고 할라 했나.
삼일운동 하려고 했는가 모르겠어.
그러니 뭐 그 하나님이 안 도우면요 설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블레셋 나라가.
그러니까 그 당시에 블레셋 사람들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리고 헷 족속 이라고 하는 그 히타이트 족속이 철기 문화는 가장 일찍 발전시킨 그런 문명인데 그 가나안 족속 gpt족속 이 팔레스타인족속들이 전부 다 철기를 갖고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만 철이 없는 거야. 아직도.
철 다룰 줄도 모르고.
그래서 이제 그 이스라엘 백성 심어 놓은 그 지증학적 정치적 그런 위치가 어디냐 하면요 외적은 다 강해.
모압도 강하고 그 아람도 강하고 블레셋도 강하고 헷족속도 강하고 아모리족속 여부스 다 강하디 강한 민족 틈에 있어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데다 심어 놨어.
그 조금만 겁나면 하나님 품에 안기도록 그런데 심어놓고 신앙 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유대인들은요 그런 항상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훈련을 출애굽 때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그 받아 왔어요.
몇 천년간.
한 삼천년 이상을 늘 최악의 상황에서만 그런 환경에서만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두가지 지혜가 늘었는데 참 지혜도 늘었구요 처세술에 있어서 유대인을 따라 갈 사람이 없어요.
그 유대인들이 써 놓은 탈무드란 책은 우리 장정이 짊어지고 겨우 일어날 만큼 75k 그런 정도 되는 탈무드라는 책이 있는데 그게 전부 다 세상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인을 당할 수가 없어요. 아무도.
우리가 보통 뭐 환경 탓을 하고 하는데 적어도 유대인은요 한 가지는 확실 합니다.
절대 환경 탓 하지 않습니다.
항상 그 열악한 최악의 환경을 최선의 환경으로 만들어서 자기들이 유리하게 환경까지 만들어서 살아가는 거야.
그래서 이 프로들은요 역경에 강한 거야.
프로들 실력 있는 사람들은 남이 안 될 때 된다는 거예요. 항상.
그만큼 강도 높은 연단을 받아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 가다가 역경이나 어려움이 있다 해가지고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거기서 지혜가 나옵니다.
거기서.
제가 전에 한번 그 오래전부터 쓰다가 중단된 원고를 다시 챙겨서 겨울이니까 이제 바깥 활동을 못하고 그 원고들 정리 하는 중에 보니까 그 현저해요.
항상 유대인들은요 역경일 때 빛을 발하는 거예요.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때 유대인 돈 버는 시기입니다. 그 때가.
그 추수 때야 추수 때.
전쟁 나면 돈 더 벌어요.
이 사람들은.
전쟁나면 망하는 게 아닙니다.
전쟁나면 돈을 더 벌고 주식 시장이 팍 떨어지면요 그 동안 저축 해 놓은 거 가지고 그 떨어진 걸 팍 사 버려 그냥.
그니까 항상 유대인들은요 역경일 때 강하다는 거예요.
순탄하고 평안할 때 잘 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잘 안될수록 유대인이 잘 되요.
그래서 그들이 다 주무르게 된 겁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블레셋 사람요 병거라고 하는 것은 철이 없이는 병거가 만들 수 없는 겁니다.
블레셋 병거가 삼만인데 이스라엘 군대는요 칼 같은 거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울 왕하고 요나단 들 밖에 없데요.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이 지금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 환경 뭐 분위기 이런 거 탓하지 말고 그 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일을 해 낼 것인가.
그걸 연구해야 돼.
그러면 이제 정말 이 세상을 이긴 사람 되는 것이고 뭐 환경 탓하고 누구 탓하고 누구 원망하고 누구 뭐 누구 불평하고 이래 가지고는 그런 인생을 살 수 없는 거야.
지난번에 제가 외환위기 처음에 왔을 때 그때 어떤 장로님을 만났는데 그때 안부가 그거죠.
이 어려운 때 장로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 노회가면 인사가 전부 그건데 그 어떤 장로님 그 인사를 했더니 아 이 참 딴 사람 다 어려워서 나만 잘 되는 거 같아서 민망해서 어디 얘기를 못합니다.
다를 다 안 되서 망해 버리고 나 혼자 하니까 나만 잘 되니까 민망하다고.
그렇게 말 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 평소 실력을 쌓아 왔다는 거죠. 평소에.
그런 평소에 저력을 길러 온 사람들은 역경일 때 어려울 때 더 잘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리가 배울 점이죠.
하나님이 절대로 환경을 좋게 만들어 놓지 않습니다.
환경을 아주 최악의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거기서 연단 훈련을 받아 가지고 강한 돌 위에 갖다 놓아도 살아 남을 수 있는 그런 민족으로 컸다는 거예요.
그래서 환경까지도 바꿔 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하나님아버지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했던 그 어려운 환경을 잠간 둘러보았고 또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했다가 실수하는 사울의 모습을 봤습니다.
한편 사무엘이 일생동안 어려서부터 늘 은퇴할 때까지 출입했지만 백성들의 물질을 탐하지 아니했고 그리고 속이지 아니했고 압제하지 아니했고 뇌물 받지 않고 깨끗한 삶을 살았던 그런 정치인의 참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도 죽음 앞에 하나님 앞에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우리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