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의 노란바다
-작천면 구상마을 성매산 답사
가을바람에 노란 벼이삭의 바다를 가르고 구상마을에 다녀왔다.
오늘의 목표는 성매산에 올라 마한시대의 성의 여겨지는 성유적을 찾아보는 것이다.
먼저 죽산마을회관에 갔더니 산을 찾는 이가 없어 길이 없어졌다고 했다. 한 할머니가 구상마을 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하셔서, 차를 돌려 용동마을과 용정마을을 돌아 구상마을을 찾았다. 용정마을은 용이 나왔다는 용샘에서 유래한다. 마을 앞엔 연못을 만들고, 술보장자가 바위 두 개로 놓았다는 술보다리를 앉혔다. 원래의 바위일지 모르나 술보다리 바위는 선돌같이 생각되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용정마을에 선독거리가 있고, 거기 있던 선돌을 경지정리하며 지금의 마을 입구로 이동시켰다고 하는데, 주변에 선돌과 고인돌로 보이는 바위들이 있지만 옮겨진 것이라 진위를 선돌 외엔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병영과 작천의 마을들은 마을입구에 크고 작은 선돌을 세우는 전통을 이어왔고, 그것이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되었다. 용정마을은 용상리의 척동골짜기 입구에 있는 마을이고 중간에 구상마을이, 그리고 제일 안쪽에 척동마을이 있다. 용정마을에 입석이 있고, 구상마을엔 고인돌 21기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양건당의 애마총 전설이 깃든 말무덤이 있다.
용정도 구상도 마을에 사람을 통 만날 수 없었다. 길을 찾다가 만난 마을샘은 샘+빨래터+미나리꽝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반가웠다. 겨우 구상마을 끝집에서 산길을 오르려니 목줄 없이 개 세 마리와 산책을 하고 내려오는 한 분이 있었다. 내려올 때 괜찮을까요 물었더니 우리 개는 순해요 한다. 길은 없지만 능선을 따라 쭉 올라가면 산정에 이른다고 했다. 다행히 200~300미터를 걸으니 해발 140미터의 산정이 나왔다. 허무했다. 집을 지으며 돌을 파하고, 트럭까지 대놓고 성돌을 실어갔다는 기록대로 평평단 단이 보이긴 해도 돌이 통 보이지 않았다. 북쪽 비탈에 겨우 1.5~2미터의 두께의 성곽돌이 10여 미터 이어진 모습이 보였다. 다소 가파른 지형인지라 북쪽 비탈 성곽일부만이 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산 중간 몇 개의 화강암들이 박혀 있었다.
청동기시대와 마한시대부터 이어진 마을의 흔적을 찾고 돌아오는 길은 노란 벼이삭의 바다였다. 2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이곳의 풍경은 노란바다였고, 사람들은 시대마다 이런저런 전설을 덮으며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