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담배
우리 엄마는 담배를 피셨다.
태어나 눈 뜨면서 익숙해진 까닭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그 시절 여자들의 흡연이 흔한 것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생각해 보니 친구 엄마들은 술은 마셨어도, 담배는 안피웠는데 말이다.
어느 겨울.
나랑 언니가 나란히 친정 나들이를 한 어느 날,
뜨끈한 아랫목엔 아버지께서 코를 골며 곤한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고 세 모녀,
윗목에서 고구마 묻어 논 화롯가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끝에 담배 얘기가 나왔다.
엄만 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으며, 그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우리 엄마, 씩~ 웃으시더니
"그 맛이야 기가 맥히지. 내가 담배 없었으면 벌써 속병나서 죽었을 거여 "
하시며 담배 한 대를 물더니 얘기를 시작하신다.
"내가 왜 담배를 배웠겠니? 다 늬 아부지 바람 땜에 그랬지. 늬 아부지 인물 좋구 풍채 좋구 그래니 어딜 가든 지집들이 따라 댕겼다.
그래두 난 늬 아부지한테 말 한마디두 못했어.
지금 같으면 뭐라구 한마디래두 핼텐데 그 땐 바보 천치모냥 말두 못해구....
그래니 내 속이 성하겠니?
내가 하두 속을 태우구 얼굴이 노래지니까 어느 날은 늬 할머니가 지~다란 장죽에 담배가루를 가득 채워 들구와선 피워보라구 해시더라.
아, 그래 내가 깜짝 놀래선 어무니 뭔 담배여유~ 담배가...?
놀래서 펄쩍 뛰었더니 속병엔 이게 젤 이래더라, 그래면서 장죽을 방에 놓고 나가시더라.
한 메칠 그냥 뒀다가 하 속이 아프고 애려서 이게 진짠가 싶어 물구 불을 댕겼지.
한 모금 쭉~ 빨구는 아차~ 싶드라.
담배연기를 기냥 넴길순 없잖어?
내 생전 담배가 츰인데.....
그래 나도 모르게 숨이 맥혀서 푸~ 해구 내뱉으니까 아, 글쎄 희한두 해지.
기냥 속이 시원~해지면서 속에서 썩어 문드러지던게 글쎄 연기따라 다 나온거 모냥 후련해지잖니?
그래서 속이 답답할 때마다 한 모금 한 모금 빨다보니 아주 인이 배겼다.
담배 없었음 난 벌써 홧병나서 죽었을거여"
그 담부터 아버지는 외박하고 새벽에 오실때면 방문을 열고, 얼굴보다 담배를 먼저 쑥~ 내미셨단다.
아버진 술은 드셨어도 담배는 안 태우셨으면서.....
그게 언제부터였냐고 묻자 언니 태어나기 전부터라고 한다. 그렇다면 30대 초반일텐데 그때부터 힘든 세월을 우리 엄만 담배로 버티셨나 싶어, 아랫목에 누워 주무시는 아버지를 향해 두 자매, 눈을 힘껏 흘겼다.
아이를 배태하고도 담배를 피운 우리 엄마,
분기탱천한 두 자매가 엄만 왜 가만 있었냐고, 아버지한테 따지기도하고 그것들 집에가서 패악 좀 부리지 그랬냐고 막 화를 냈더니 우리 엄마,
더욱 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낸들 안 그러고 싶었겠냐고, 그래도 내가 그랬어봐라.
늬 아부지, 동네에서 얼굴 깎여서 어떻게 다니시냐고 하신다.
대처같으면 몰라도 조그만 시골 동네서 안 그래도 남들이 먼저 알아서 뒤에서 수근댈 텐데, 나까지 나서서 늬아부지 체면 깎기 싫었다.
그러면서 뒤이어 하시는 말씀에 두 자매,
뒤로 벌렁 나가 자빠졌다.
"늬 아부지 바람 피던 것들 중엔 그래두 가끔 이쁜 것들이 있어서 내가 저고리 감두 끊어주구 그랬다"
"엄마~~~! 기가 막혀.
그런 것들이 뭐가 이쁘다구?"
"아녀, 가끔 이쁜 거뜨리 있어서 옷 해입으라구 옷감두 끊어주구 장두 퍼주구 그랬다"
하긴 우리 집 장맛은 온 동네 소문 났었으니까~~
그 시절,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남자들이 농사일에 지치거나 시원한 막걸리라도 한 잔 생각날 땐, 동네 한 구석에 있던 주막으로 갔을테고, 거기에 있던 들병이들과 가끔은 풋정분도 나고 그랬겠지.
어릴 적 엄마 심부름으로 가끔 주막에 갈때가 있었다.
"저 위에 주막에 가서 아버지 저녁 진지 드시라구 해라"
그럴 때 엄마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말투도 딱딱하니 여늬 때 엄마가 아니었다.
그 심부름은 엄마의 간접적인 질투의 표현임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부지, 엄마가 진지 드시러 오시래유. 얼릉유~"
"..... 어, 그래. 곧 간다구 해라, 흠~흠.... "
그 와중에도 어린 딸 앞에서 당신의 술취한 모습과 다른 여자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지, 애써 허리를 곧추 세우며 자못 엄숙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대답하시는 아버지가 어린 맘에도 미웠다.
왜 엄마속을 아프게 할까.... 하고.
그렇지만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에 호롱불 밑에서 본 주막의 그네들은 시골 촌 계집애의 눈에는 꽤 예뻐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울긋불긋 유치했지만~
그러니 술 취한 남정네들은 오죽했을까~?
나중에 가만 생각해보니 엄마 말대로 그네들 중에 우리 엄마를 보고, 당신이 본처냐 싶어 고개 빳빳이 들고 지나치는 것들은 미웠을테고, 농사가 많아 안팎으로
늘 손이 달리던 우리 집에 와서 형님, 형님 해가며 부엌일이라도 거들어 주던 것들은 예쁘고 뭐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 말따나 '조강지처의 미덕 '을 멍에처럼 쓰고 살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선사품 중에
( 우리 엄만 선물을 꼭 선사품이라고 하셨다)
난 그저 담배가 젤 반갑다던 우리 엄마,
말년에 혈압이 높으니 담배를 끊으라던 의사의 권유도 마다하고 피시던 엄마의 담배는 88 노란색 이었다.
🍒
세 모녀의 아버지 뒷담화 에피소드,
화롯가에서 아버지의 흉을 보는 세 모녀는 신납니다.
시작은 엄마의 한이 맺힌 성토로 시작됩니다.
주막에 여자가 새로 오면 늬아부지한테 젤 먼저 기별이 온다는 둥, 자다가 허전해서 눈떠보면 그 새 어딜갔는지 안보이다가 새벽에야 온다는 둥, 엄마의 한맺힌 하소연이 이어집니다.
그러면 딸들은 더 역성을 들며 엄마편을 들지요. 그야말로 분기탱천~ 주무시는 아버질 향해 눈화살에 독을 잔뜩 발라 쏘아대구요 ㅋ
어느 새 아버지는 천하의 역적이 되어버리는데 그때부터 점점 엄마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이건 아니다 싶은가 봅니다.
아무리 속을 썩인 남편이지만 딸들까지 합세해서 성토를 해대니 엄마는 그게 싫었나봅니다.
남편 흉은 부인인 당신만 봐야 하는 건데 말이죠.
눈빛과 낯빛이 달라진 엄마가 마지막 한마디를 하십니다.
아주 억울하다는 말투로요.
"얘, 그래두 늬아부지가 바람을 그렇게 폈어두 재물은 안 퍼냈다" ㅋㅋㅋ
여자에 미쳐서 돈같은 건 안갖다 바쳤다는 얘기죠.
두 자매, 웃다가 웃다가 포복절도 방바닥을 뒹굽니다.
바람 폈어두 재물은 안퍼냈대~ 하면서요 ㅎ
그렇게라도 당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또 아버지께 면죄부(?)를 주고 싶은 엄마가 우스워서 웃다가 나중에는 그런 엄마가 가여워 눈물을 찔끔이기도 합니다.
딸들이 그런 아버지를 우습게 보거나 업신여길까, 혹은 그렇게 참고 산 당신이 너무 비참하게 보일까 염려되셨을까요?
딴 건 몰라도 곳간은 지켜가며 한 눈 판 아버지가 마음만큼은 당신한테 굳건했다는 가당찮은 믿음을 신앙처럼 지니고 산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