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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 스포츠클라이밍 써니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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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원정 스크랩 월간 산 10월호
김재순 추천 0 조회 251 11.11.11 19: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해외등반] 알프스 돌로미테
호텔방 같은 비박지의 유혹에 넘어가다
서니사이드 팀, 돌로미테의 맹주 치마 그란데 등반
▲ 드라이친네를 등반하며 바라본 돌로미테 산군. 아래 보이는 건물이 아우론조 산장이다. 그 뒤로 미주리나 호수 양쪽으로 돌로미테의 첨봉들이 솟구쳐 있다.

 “오버행이야. 못 올라가겠어!”


상황 확인을 위해 하강로프에 프루지크 매듭을 하고 클라이밍 다운을 한다. 낙석에 손상된 로프를 클라이밍 테이프로 두어 번 감고 다시 다운한다. 허공에 무언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정확한 위치 파악이 안 된다.
1935년 리카르도 카신(Riccardo Cassin)과 비토리오 라티(Vittorio Ratti)가 3일 동안 50개의 피톤을 이용해서 올라갔다는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 북벽이 보이는 허공에서 하강 실패로 쓴맛을 보고 있었다.


불광동 서니사이드 클라이밍센터 산악회 회원으로 결성된 원정대는 유럽 알프스산군과 이탈리아 돌로미테산군 등반을 계획하고 왔지만, 기상 악화로 몽블랑(4,807m)은 구테산장에서, 마터호른(4,477m)은 솔베이산장에서 철수했고, 아이거는 시작도 못한 채 서부 알프스 산군을 뒤로하고 동부 알프스 돌로미테산군으로 왔다.


구경 나섰다가 치마 그란데 남벽 완등
이탈리아 북부의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강에서 피아베강 사이를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있는 돌로미테국립공원은 계곡과 숲이 자연의 순수함을 지녀, 이를 보전하고자 2009년 6월 유네스코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돌로미테는 백운암 산맥으로 이 지역을 연구했던 18세기 프랑스 지질학자 디외도네 돌로미외(Dieudonne Dolomieu)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지질학에서 사용되는 백운암(돌로마이트·Dolomite)이라는 용어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암봉들은 거의 수직의 경사를 이루고 있고 최고봉 마르몰라다(Marmolada·3,343m)는 남쪽 벽의 높이가 610m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암봉들이 18개에 달하고 41개의 빙하가 있다. 돌로미테국립공원의 동쪽 산군에 200여 개, 서쪽 산군에 약 246개의 등반대상지가 있는 산군으로 암벽등반의 천국이다.


▲ 두 번째 첨봉을 등반중인 지미란, 김한진 대원.

공원 북쪽 드라이친네(Drei Zinnen)의 뾰족하게 우뚝 솟은 암봉 세 개는 돌로미테국립공원을 대표하는 바위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벌어진 산악전투 현장으로, 부서진 건물과 바위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세 봉우리 중 가장 작은 치마 피콜라(Cima piccola·2,857m)와 서쪽을 뜻하는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2,973m), 큰 봉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치마 그란데(Cima Grande·2,999m)는 돌로미테의 맹주로 꼽힌다.


1933년 에밀리오 코미치(Emilio Comici)는 550m 중 180m가 오버행으로 이루어진 치마 그란데 북벽을 80개의 피톤을 사용해 올랐으며, 1937년에는 3시간30분 만에 단독등반으로 올라 세상을 놀라게 한다. 드라이친네의 북면들은 오랫동안 등반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고, 수많은 클라이머들의 끈질긴 도전으로 아탈리아 국민의 우상인 에밀리오 코미치, 리카르도 카신(Riccardo Cassin)과 뒬퍼지츠 기술의 창안자인 독일의 뒬퍼 한스(Dulfer Hans), 자유등반의 기수인 오스트리아의 프로이스 파울(Preuss Paul) 등에 의해 등정되었다. 이러한 등반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암군의 방대한 규모와 난이도, 기상요건, 높이 등을 보면 돌로미테산군의 바위들은 최고의 등반대상지다.


원정대가 비를 몰고 다니는 건 아닌지, 등반이 계획된 날에는 비가 오고 이동하거나 관광하는 날은 해가 쨍쨍했다. 등반 당일, 역시 날씨는 좋지 않다. 밤새 비가 와서 바닥이 젖어 있다. 등반은 포기하더라도 드라이친네라는 바위가 어떤 놈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볍게 입고, 등반장비 챙겨서 출발한다.


아우론조산장으로 올라가는 길부터 짙은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아 상당히 위험하다. 산장 주위에서 바위를 확인하는데 상단의 바위는 안개로 전혀 보이지 않고, 하단은 선명하게 잘 보인다. 대원들을 이끌고 “한두 피치만 등반하자”며 2개 팀으로 나눠 출발한다. 우리 팀은 고민 끝에 1869년 프란츠 이너코플러(Franz Innerkofler)가 초등정한 치마 그란데 남벽 노멀루트로 등반을 시작했다.


▲ 치마 그란데 남벽 노멀 루트 개념도

노멀루트는 아우론조산장과 라바레도산장 사이에 있는 예배당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치마 그란데와 치마 피콜라 사이 협곡 80m 지점에서 시작된다. 등반 난이도가 낮고 피치의 구분이 없어 안자일렌으로 등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주변 경치가 좋아 인기코스로 초급자들도 등반이 가능하다. 위험구간은 확보지점과 하강 링이 설치되어 있다. 바위에 등반 흔적이 남아 있어 등반로 찾기는 쉬운 반면, 하강은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위험하므로 등반로를 따라 되돌아 내려오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4명이 등반에 3~4시간, 하산에 약 3시간 걸린다.


안자일렌 시스템으로 김한진, 지미란, 김재순, 서대원 순으로 출발한다. 첫 번째 협곡을 따라 언덕에 올라섰지만, 안개가 가로막아 전체적인 코스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 번째 협곡을 지나 세 번째 협곡 언덕에서는 치마 그란데가 전모를 드러낸다. 간식을 먹으며 계속 진행할 것인지 철수할 것인지를 상의한다. 남은 등반거리와 난이도를 고려해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다시 등반을 시작한다. 등반을 하다 보면 해외원정에서 선등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방대한 바위규모 때문에 등반로에서 벗어나 막다른 길이 나온다.


“뒤로 가야겠어요! 여기는 길 아닌 것 같아!”


“그럼 내가 먼저 갈게!”


마지막에 있던 서대원 대원의 선등으로 순서가 뒤집히지만 얼마가지 못해 머뭇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지나쳐간 바위에 등반로를 표시한 페인트 자국이 보인다.


“형! 거기 아니야. 뒤돌아와!”


하강 루트 잘못 접어들어
프루지크 매듭으로 40m 등반
지긋지긋한 안개를 밀며 올라가는 것처럼 올라갈수록 날씨는 점점 좋아진다. 바위 상단은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아래는 점점 선명하게 맑아진다. 노멀루트에서 유일하게 확보등반이 필요한 구간이 나온다. 약 20m 침니 구간으로 확실한 볼트와 확보지점이 있다. 등반을 계속 하다 보니 오른쪽으로 치마 피콜라 정상의 십자가가 보인다. 개념도에 링밴드라고 표기된 트레킹 코스처럼 잘 닦여 있는 길이 왼쪽으로 있고, 비박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 위로 정상이 보이고, 잠시 후 정상에 도착했다.


▲ 푸르지크 매듭으로 오르고 있는 서대원 대원. 바위가 날카로워 암벽화로 로프로 받치고 있다.

오후 1시 40분 등반을 시작해 오후 5시 도착했으니 3시간20분 걸린 셈이다. 정상 도착 시간이 늦어 빨리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정상 직전에서 철수만 거듭하다가 이루어낸 첫 등정인지라 온갖 포즈를 취해 가면서 인증사진을 남기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입국 후 원정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100장 정도 됐다). 정상에 도착하니 날씨는 더욱 좋아져 등반하는 동안 보이지 않았던 치마 피콜라와 치마 오베스트의 봉우리 전체가 보이고, 주변 산군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치마그란데 정상 십자가에는 방명록이 있다. 한글을 찾아보니 지난해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팀 기록도 있다. 정상 등정은 생각도 못 하고 온 탓에 산악회기를 챙겨 오지도 못해 볼펜으로 즉석에서 방명록에 산악회기를 만든다. 서대원 대원의 배낭에서 매직펜이 나온다. 산악회기도 못 챙겼는데 매직펜이 왜 배낭에 있는지 미스터리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하산을 시작한다. 안개가 바닥에서부터 올라와 바위 전체를 뒤덮는다. 클라이밍 다운으로 비박지가 있던 링밴드까지 내려가니 치마 그란데와 치마 오베스트 사이로 내려가는 하강 흔적들이 보인다. 쌍볼트 지점에서 30m 하강하고 나니 다시 쌍볼트가 나온다. 먼저 하강한 서대원 대원이 잠시 바닥이 보였다며 다음 하강은 60m면 된다고 한다.


잠시 후 서대원 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진아! 로프가 바닥에 안 닿아!”


“그럼 다시 올라오세요!”


하강로프에 확보를 하고 클라이밍 다운으로 오버행 턱까지 내려간다.


호텔방 같은 비박지의 유혹에 넘어가다
서니사이드 팀, 돌로미테의 맹주 치마 그란데 등반
▲ 두 번째 첨봉 등반을 위해 로프를 정리중인 서대원 대원. 뒤에 보이는 암봉이 치마 오베스트다.

“형! 프루지크 매듭 해서 올라올 수 있겠네!”


오버행 턱에서 보니 힘은 들겠지만 가능할 것 같았다.


“프루지크 매듭 등반을 안 해봤어! 코드 슬링도 하나뿐이야!”


“프루지크 오르기가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잖아?”


“알기야 알지! 하지만 이런 실전에서는 처음이야!”


프루지크 매듭으로 오르는 방법만 알고,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그 방법뿐이에요!”


코드 슬링을 하나 내려주고 오르는 방법을 설명한다. 위쪽 손상된 로프가 걱정돼 확보물을 설치해야만 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손가락 두 개만 한 돌부리와 로프 건너에 작은 포켓이 보인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 캠 장비와 슬링으로 확보지점을 마련한 뒤 로프를 고정한다.


오버행 끝부분에 로프가 쓸리지 않도록 신발을 받쳐두고 추위에 떨며 올라오기만을 기다린다.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온도도 많이 떨어졌다. 프루지크로 올라오는 것이 처음이고 약 40m의 허공이라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어 다른 두 대원에게 보온의류와 랜턴을 준비하라고 한다.


“형, 할 만 해요?”


“힘들어 죽겠다. 그냥 구조대 부르면 안 되냐?”


“나 구조대 전화번호 몰라! 그냥 올라와요!”


오버행은 올라오지만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다. 랜턴 없이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고, 하강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하강은 위험하다. 결국 30m 하강한 코스로 다시 올라가 등반했던 코스로 내려가야 했다.


프랑스 등반가 리오넬 테레이(Lionel Terray)는 돌로미테를 등반하고 이렇게 표현했다. ‘등반보다 하강이 어렵다’고, 대원들은 어둠과 추위 속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비몽사몽 간에 서머블랑켓 다섯 조각으로 찢어져
하강 실패로 우리는 등반 코스를 따라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밑에서 기다리는 대원들 생각이 났다. 숙소에 있을 김재순 대원의 딸에게 “늦겠다”며 먼저 자라고 전화한다.


“휴대폰은 성민이 아저씨에게 전해드리고, 늦으니깐 기다리지 말고 자!”


▲ 1 호텔급 비박지에서 하룻밤 지낸 뒤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미란, 김재순, 김한진 대원. 2 치마그란데 정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원들. 서대원, 지미란, 김재순.

혹시 모를 상황에 연락원으로 김성민 대원에게 휴대폰을 전하라고 한다. 올라왔던 곳으로 이동하다가 누군가 비박했던 장소가 있었다. 훌륭한 처마에 돌로 담을 쌓아 만든 호텔 규모에 버금가는 비박지……. 오늘따라 저 비박지가 너무나도 포근하고 아늑해 보인다. 등반코스라 하강과 클라이밍 다운을 해야 하는데 아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만만치 않다.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다 김재순 대원이 “다들 피곤해 보이는데 아까 봤던 비박지에서 비박하고 날이 밝아지면 내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비박지 안에 매트도 있고, 사용한 서머블랑켓도 있다며. ‘아니 이 사람들이 내려가자고 할 땐 언제고 오면서 어떻게 그걸 봤지?’


“그러자.”


“그렇게 하죠!”


고민도 안 하고 모두 찬성을 하고 비박지로 이동을 한다. 가벼운 복장이지만 배낭에 있는 고어텍스 재킷과 덧바지로 영상 10도는 버틸 만하다. 김재순 대원의 배낭에 있던 서머블랑켓은 지미란 대원과 같이 사용하고, 서대원 대원과 나는 비박지에 있던 서머블랑켓만으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추웠지만 잠이 들었다. 2009년 요세미티 등반 중 했던 비박에 비한다면 여기는 호텔 수준이다. 하프돔에서는 눕지도 못하고 울퉁불퉁한 바위에 엉덩이만 걸쳐놓은 채 잠을 청했고, 엘캐피탄에서는 등을 붙일 장소는 있었지만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서 자다 보면 어느새 바위 끝으로 몰려 잠을 깨기도 했었다. 결국 다리를 확보물에 고정하고 잠을 잤던 기억이 났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소리에 깨어났다기보단 추워서 깼다. 잠결에 서대원 대원이 서머블랑켓을 스르르 당긴다. 나도 당긴다. 서로 비몽사몽간에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석 장으로 분해되어버렸다. 시끄러운 소리에 모두들 깨어난다.


“한진아, 몇 시니?”


“1시30분….”


▲ 코스믹 리지 등반중 에귀디미디 전망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서대원, 김성민, 지미란 대원(왼쪽부터).

분해가 되어버린 서머블랑켓을 사이좋게 나누어 덮고 다시 잠이 들었다가 또 잠에서 깬다. 웅크리고 자다 보니 경련이 일어난 것이다. 방향을 반대로 돌리는 순간 서머블랑켓은 다섯 장으로 분해되어 버렸다. 또 모두들 깨어난다.


“한진아, 몇 시니?”


“3시30분.”


결국 자다 깨다 반복하다 드디어 날이 밝아온다.


“형 코고는 소리에 하나도 못 잤네!”


“너는 머리가 땅에 닿는 순간 코골면서 이 갈더라!”


“아 유 오케이?”


아침에도 역시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등반했던 길이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하강과 클라이밍 다운을 반복해 출발지점에 도착한다. 등반장비를 배낭에 집어넣고 걸어서 하산하는데 밑에서 누군가 망원경으로 우리를 보는 듯하다. 그때 아차! 혹시 밑에서 다른 대원이 신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유 오케이(Are  you ok)?”


역시나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던 산악경찰들이다. 원정을 준비하다 돌로미테 등반 후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들에도 “아 유 오케이?”, “노 프라블럼”이 있던 게 생각났다. 그들이 태워주는 지프를 타고 산장으로 이동해 이름, 주소 등등 간단하게 신상에 대해 적고 기다리던 대원들에게 인계되었다.


전화연락을 했는데 왜 신고를 했을까? 다른 대원들은 숙소에 들르지 않고 산장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무사히 내려와서 고맙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산장 앞에서 밤을 지샌 이남규 등반대장과 김성민, 양준희 대원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산장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차 안에선 등반 팀의 위급했던 상황, 비박한 이야기와 위쪽 상황을 모르고 기다린 대원들의 불안과 걱정, 기다리다 밤을 지새운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하다 어느새 잠이 든다.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대원들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추위 속에서 비박을 했다. 원정 출발 전 조언을 해준 원종민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원정등반뿐만 아니라 국내등반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보고 느끼며 경험했다. 치마 그란데 등반을 끝으로 19일간의 알프스산군과 돌로미테산군의 등반일정을 마무리지었다.


항공 돌로미테산군에서 가까운 국제선이 취항하는 도시로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독일 뮌헨, 이탈리아 밀라노, 스위스 취리히 등이 있다. 인스브루크가 가장 가까우며 도비아코까지 차량으로 약 2시간, 밀라노 약 6시간.
차량 소규모 팀이라면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지만, 대중교통편이 흔치 않다. 인원이 많다면 렌탈을 하는 것이 주변 지역을 다니기도 편하여 권장할 만하다.
숙박 도비아코/코르티나에서 숙박하는 것이 좋으며, 드라이친네 등반만을 원한다면 아우론조/라바레도 산장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공원입장료 차량 1대당 22유로). 산장비는 숙박과 아침저녁 식사를 포함해 47유로다. UIAA 마크가 있는 패스를 소지하면 10유로 할인된다.
볼자노 유스호스텔  1인당 20유로(조식 포함)
도비아코 유스호스텔  1인당 21유로(조식 포함)
등반대상지 드라이친네(Drei Zinnen), 토파나(Tofana), 마르몰라다(Marmolada), 크리스타로(Cristallo), 보스코네로(Bosconero), 치베타(Civeta), 파라(Pala), 브렌타(Brenta), 셀라(Sella), 로젠가르텐(Rogengarten) 등 10여 개의 그룹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코스가 있으며, 각 그룹별로 클래식 루트는 멋진 경관으로 인기 코스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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