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밥그릇/ 주석희극한의 밥그릇 주석희그의 등은 고산지대에 핀 들꽃의 눈높이로 낮아지고,검게 그을린 이마는 새들의 풍향계인 마른 풀처럼 겸손하다그가 무릎을 꿇고 두 손바닥으로 산등성이를 샅샅이 더듬어 오른다무리를 지어 산맥을 넘어가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천길 골짜기를 순서대로 호명할 때날카로운 메아리가 눈사태를 부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죽음의 그림자가 헐벗cafe.daum.net
[시]극한의 밥그릇/ 주석희
강인한|17.12.08|379
극한의 밥그릇
주석희
그의 등은 고산지대에 핀 들꽃의 눈높이로 낮아지고,
검게 그을린 이마는 새들의 풍향계인 마른 풀처럼 겸손하다
그가 무릎을 꿇고 두 손바닥으로 산등성이를 샅샅이 더듬어 오른다
무리를 지어 산맥을 넘어가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천길 골짜기를 순서대로 호명할 때
날카로운 메아리가 눈사태를 부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죽음의 그림자가 헐벗은 발뒤꿈치를 붙잡아 또 하나의 돌무덤이 솟아나기도 한다
바람과 구름을 손수 빚어 수시로 만찬을 즐기는 신의 마을과
양껏 먹어도 내일이면 어김없이 배가 고픈 인간의 영역이
동물성 겨울과 식물성 여름이 공생하는 비탈진 경계에서 그가 극한의 밥그릇을 캐내고 있다
그가 찾는 황금열쇠는 해발 사천 미터에서 오천 미터 사이에서 은밀하게 웅크리고 있다
야차굼바*를 쉽게 내놓지 않는 고원의 하루는 누에걸음처럼 느리고 지루해서
낡은 영사기에서 풀려나오는 흑백필름 같다
두 달을 벌어 일 년을 연명하기 위해 돌포*에서는 누구나 두 눈에 쌍심지를 켜야 한다
가족이라는 척박한 영토에 뿌리를 내린 침낭 속 그의 잠은
빈 가슴으로 추위를 껴안아야 하는 어쩔 수 없이 번데기 잠이다
몇 알 삶은 감자 앞에서 그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온몸으로 가난을 사는 자는
차려진 식탁 앞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을 줄 안다
* 야차굼바 : 티베트 고원에서 자란 동충하초
** 돌포 : 티베트 고원 동충하초를 채집하는 지역
?《포엠포엠》201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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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희 / 1966년 경남 하동 출생. 2013년 《포엠포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