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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감이당 수업의 내용과 동일해서 서울수업 후기로 대신합니다.
출가
고민은 자기 자신의 기반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고민한다는 것은 답은 보이지 않지만 그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냥 한발 한발 내 딛는 것이다. 지금, 이 현 상태로 고민을 해결하지 않고는 더 이상 살수가 없어서 시작 하는 것이다.
불교는 석가모니의 출가로부터 시작 되었다. 출가를 한다는 것의 시작은 머리를 깎는 것이었다. 이 시기 인도사회의 머리는 신분을 나타내는 키워드라 할 수 있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은 브라만 사제의 신분을 나타냈다. 부처 시대 마가다국은 작은 싯다다 국가시대에서 큰 나라의 등장으로 지배 이데오르기가 저항 받기 시작했다. 시대의 대변을 하지 못해서 사유체계를 대변 했던 것이다. 석가는 브라만에 반대한 사문 무리로 출발했다. 세계는 100년의 지구적 단위로 변하고 있다. internation 국가를 전재로 세계화로 자본가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국가도 불편해지면서 global이 형성 되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국가란 경제 체계가 허물어지는 사유로 흐르고 있어 사유가 변해야 했다. 변하지 않고 기존의 방법으로 어쩔 수 없어서 변하는 것이다. 미생물에게 포도당만을 주다가 젖당을 같이 주면 처음에는 미생물이 포도당만 먹고 몸집이 커져간다. 그러다가 포도당이 떨어지면 성장을 멈추고 사라지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한다. 미생물이 내부를 살피기 시작하면서 DNA 상에서 포도당 먹기에 대한 기억 스위치를 끄고, 젖당이 나올 경우 젖당을 먹는 스위치를 켠다. 다시 살기도 한다. 자기 안에서 소화능력, 기능이 없어서 정보를 조합해서 젖당을 화하는 기능을 만든다. 1997년 IMF 경제 지표사태에 반강제적 경제에 대한 생각이 들게 되었다. 전 세계는 디폴트를 선언했던 말레이시아, IMF요구사항을 받아들인 우리나라로 나눠졌다. 20년 가까이 지나면서 우리나라는 부의 격차가 급격하게 나타났다.
소규모 경제질서로 가는 것이 맞는 방법인가? 라는 의문이 나오기 시작 했다. global- internation 사건으로 다가오는 상황이 전에는 그냥 지나갔지만 지금은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주는 것이다.
사건이 사유를 만든다. 부처에게 사건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고민이었다. 싯닷다 태자였던 그가 병들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 한 것이다. 죽지 않는 법에 대한 해답? 이것에 대한 고민을 만약 다가오는 과정에서 가기를 끌어가는 힘이 강했다면 청소년기의 한 양상으로 지나갔겠지만 석가는 그것 보다 훨씬 더 강했다. 첫 번째로 석가는 숨쉬기 관찰한다. 그러다 보면 이래적 경험으로 외부 감각이 끈어 지는데 이것을 삼매라고 한다. 이것이 보리수 아래서 깨닫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석가의 부모는 욕망으로 하여금 석가 자신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한다. 실존의 존재를 못 보게 했다.
慾望은 유기적 생명체의 기본으로 생명체가 같이 존재한다. 즉 욕망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존의 방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망은 근원의 욕망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가진 것이 기반 경제 조건이지만 가진 삶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뒤틀린 욕망이 되기 시작한다.
생물체가 살면서 내 삶은 어떻게 할까? 결정하는 시기에 어떤 환경에 노출되는가? 이런 환경에서 내 삶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 아이가 출산되면 A회사의 분유를 준다. 그러면 아이는 미각중추로 처음 맛본 분유 맛을 지각해 살기위해서는 A회사 분유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다고 한다. 또 다는 예는 큰길이 나도록 욕망하도록 자본가들은 광고를 통해 만들고 있다. 생각하지 말라고 광고를 노출 시킨다. 미국백화점은 소비자들의 충동적 소비유도하기 위한 음악도 틀어 준다고 한다. 노출(팔실)들어서지 않는 의식세계, 대대적으로 별로 쓸데없는 데도 욕망을 부추기는 것 이것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 우리에게 출가라고 할 수 있겠다. 내재적 욕망의 지배로부터 떠나는 것이 출가다. 사회적으로 이탈이 출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개념적 유혹으로 자신의 삶의 욕망으로 벗어나는 것이 출가인 것이다.
비슈겐 슈타인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또한 언어는 만물의 척도가 된다. 집 안에서만 생각하게 한다. 말은 강력한 것이다. 사물의 존재성을 파악할 수 있다.
직관적으로 시간은 관찰되지 않는다. 시간은 기억을 통해서만 사유된다. 관찰되는 것은 공간의 조각조각만 4차원에서 3차원을 기억하고 산다. 지구의 시대적 변화는 1초에 서울에서 대전을 가는 것 같은 속도를 갖고 있다고 한다. 고대 시대로부터 시간의 변화 속에서 사물의 변화는 어렵다. 분별된 양적 언어를 통해서 각자 같이 살면서 따로 따로 언어는 양적으로 되는 것이다.
삭발
삭발은 자유 추구이다. 신분 질서를 규정하는 것은 베다경전이다. 양적 기준으로 판단한다.
나와 너의 존재성,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동일성으로 성립해야 한다. 언어로 파악된 존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변화란 존재성, 아리아인이 인도 사회 지배과정에서 아리안족의 질서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드라비다족은 분열, 사회 해소 만들기 시작했다.
남성(아리아인, 존재), 여성(드라비다족, 비존재) 여성은 신분질서의 근원적 불변의 질서가 없어 졌다. 여성은 존재가 아닌 비존재가 된다. 존재성의 규정은 브라만 신이 내안에 어떻게 내재되었는가? 로 존재를 규정한다. 신분질서를 규정하는 신체성은
1. 언어 사용:입과 머리-브라만 2. 감성을 통한 신성 : 가슴-크샤트리아 3.허벅지-
4. 손발을 사용하는 노예
불가촉천민(손발의 속성이 있느냐? 없느냐?), 언어를 통해 존재를 규정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동물 사회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지만 힘없다고 내친 경험은 없다. 떼어내면 와해되기 때문에 유기적 생명체를 인정했다. 사회전체 통합, 인류전체통합이 언어의 추상화가 강해지면서 어려워 졌다. 인도사회 유기적 사람다운 사람과 사람답지 않은 사람 조화롭게 책임지지 않았다. 노예란 말할 줄 아는 도구라고 했다.
생명체 조직이 분화 되서 불합리해보이지만 한 부분의 근원적 분별이 인간사회적인 질서가 근원적 질서와 어긋나게 된다. 처녀와 총각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만든 말이다. 한사람은 과정을 통해서 규정성을 갖는다. 어린아이, 청소년기, 이는 하나의 삶으로 시간성을 갖게 되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신분은 만들어 진 것을 아는 것이 근원적 신체가 아닌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문-자유 사상가-
석가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기반으로 생각했는가? 근원적 분별이 강력한 베다경전으로 사유를 시작했다. 믿는다. 이것은 그 사상체계로 내가 들어간다. 부자유를 돈을 사기도 한다. 다른 소리를 하면 쫒겨나거나 마귀 취급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다.
김수형 시인의 ‘생각의 자유’에서 자유를 박통시절에 광화문에서 공산주의를 찬양할 수 있는 것이라고 ... 어느 유명한 힌두교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힌두교다. 힌두교란 우물을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다”라고. 그러나 세상에는 힌두교란는 우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IMF결과 자본의 자유를 보장한 대신에 20대의 돈 많은 가문의 돈은 20억 인구가 가진 돈이 같아 졌다고 한다. 부자가 되려는 순간 부자가 되지 못한다. 의문을 던져야 자유다.
이때부터 종교성과 사상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 했다.
불교의 사문들은 시체를 싸고 버리는 옷을 입었다. 옷이 가진 신분질서의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했다. 자이나 교도들은 옷을 벗는다.
이제 “이 세계는 아니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달콤한 유도나 요구 성공책을 무시하고 성공이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생각으로 만든 의식 속으로 남편가두기도 같은 것이다. 살피지 않으면 유리한 사유의 자기 삶에 사유가 없어 지지 않는다.
20세기 혼란 문리적 혼란 언어가 물질을 규정, 궁극적 불변의 요소로 있어 하는데 20세기 전후로 물질의 속성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선으로 나타나기 시작 그 이전에는 들어 났지만 입자와 파동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데 실험하다보면 하나의 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수 억 개의 광자를 쏠 수 있는 기술 2개를 지나서 상쇄 되면서 스크린에 조건이란 완벽한 규정의 분별성을 다른 양성을 바뀌면 안 된다. 빛의 속도 전 과정을 입자로 바꾼다. 현재의 관찰이 빛의 과거를 바꾼다. 나타나는 현상만 입자의 파동으로 나타나고 관찰시점이 확실해야 한다. 이것은 고전이다. 보어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을 죽을 때 까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달은 보지 않으면 달이 없다고 어찌 증면할 수 있는가? 19-20세기 초 물질의 성질을 규정 안 봐도 있는 것이 아니네 하고 어느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일뿐 의식이 나를 관찰하는 것처럼 물질에 대해 보이지만 더 발달하면 고전으로 갈 수 있다고 아인슈타인은 생각했다. 물질을 속성은 사유, 관찰을 통해 어떤 실험도 양자물리학을 통과하지 못한다. 생물: 끈임없이 변화한다. 물생: 고정된 것으로 안정적 상태로 보이지만 정보화 기억화 되어있다.
양성자+-가 자유롭게 다니려면 온도가 높아야 한다. 조금 바뀌면 수소를 빨리 만드는 속성이 있다. 또 외곽 전자의 숫자가 채워 지지 않으면 새로운 분자를 만들어 안정적으로 가려 한다. 분자구조 유동적 분자활동을 하는 생물 드러난 속성 연결성 타고난 중추적 언어는 다 구분한다. 끈임없이 언어가 사라지는 가운데 언어적 중추적 언어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중주에 맞는 언어의 패턴화가 되기 시작 한다. 국지적 조건에서의 약속이다. 엄마란 공기 떨림에 대한 것 심어주기는 냄새, 밥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말을 듣기의 시기에 구별한 능력이 필요 없어서 감춰 뒀다가 생기기 시작한다.(20%) 독서를 얼마나 했느냐?(-80%,) 정보는 고정되어있다. 사건은 달려 도는데 고정되면 문제가 생겨서 생명체는 자기를 바꾸기 시작한다. 유기적 생명은 불안정성과 화해다.
다세포 생물의 등장과정에서 보면 큰 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가 생성되면 두 세포 끼리 네트워크(언어)가 없어서 죽었을 것이지만 언어활동을 하면서 잘 잘기 시작한다. DNA를 주고 받으면서 살기 시작하고 시아노 박테리아(녹조)가 가득 찬다. 엽록체 CO2 동물은 탄소를 받아들이면 산소를 만드는 기술이 없지만 식물은 산소 만들기 기술이 있다. 시아노박테리아가 많은데 공기 중 바닷 속에 산소가 많았다 그전에는 없었지만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생명체는 자신을 바꾸는데 그중에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를 에너지화 할 능력을 바꾼다.
공생언어 만들기는 신경 감각이 60-100조개의 세포로 세포 네트워크에서 자아를 생성하는데 이식 수술했을 경우 면역체계가 형성해서 만들어 지면 나를 만들지만 아니면 공격한다. 내부화 내부언어를 만든다. 밖에서 들어오면 바이러스인데 바이러스는 다른 생물체의 자물쇠를 잘 여는 기술이 있다.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자기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만든다. 자기를 안정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유연성 담보한 고정된 정보를 다른 것으로 바꾼다.
후성유전체DNA 자체를 어떤 것을 발현시킬 것인가 결정한 것 (열쇠 켜 놓기) 자식한데는 완전히 open시킨다. 그러나 엄마뱃속과 할머니 뱃속은 모두 다른 환경이다. 달라진 음식습관과 여러 가지 현상들로 태아의 성질이 바뀐다. 지구의 환경변화 등으로 지각이 아닌 냄새 같은 것으로 안에서 결정할 것은 결정한다. 외부와 소통하면서 만들어 간다. 한마디로 니가 알아서 취사선택해라 하는 것이리라.
메틸화 open 시킨 것 중에 차압딱지 같은 것을 붙인다. 히스톤 단백질 세포 핵 속의 정보 길이는 2m로 감을 때 어떤 놈을 단단히 감을까 경정한다. 그 때 나온 녀석이 mRNA(마이크로 단백질)이 작용면에서 세상과 겨루면서 DNA를 바꾼다.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 첫 번째 열쇠가 열리면 밖을 못 열리게 해서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현행 유전자가 고정적으로 되지 않아서 바꾸고 있다. 정보를 바꿔야 뭔가가 있다. 주류(브라만)신성이 결정해주는 불변의 요소 비뇨와 베버(인도의 성자)청상노예 바가바기타“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교육은 힌두고 질소의 바탕이 된다. 1.전변설(본성) 2. 인도 유물론 학파 물질성이 실체성 이세상의 근본이다. 힌두교 근본은 결정론이다. 생명체는 근원적으로 항상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연기
불교는 마음의 종교가 아니다. 마음도 작용할 때 만 있다. 의식은 깊은 잠으로 가면 의식이 없다. 마음은 잠복이 아니라 아예 없는 것이다. 참선 수도 지각되는 대상이 눈으로 오면 빛의 파장이 온다.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 20%와 내부에서 만든 작용80% 주객을 서로 교환하면서 만든다. 안에서 만들어진 주객이 시각으로 나타난다. 신호 안 받기 외부 신호는 끈 겼지만 집중하면서 안에서 만드는 시작 패턴이 발생한다. 계속 집중하면 주객이 나눠지지 않고 온전한 상태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형식 변화 속으로 자신이 들어간다. 변화를 객관화 하지 않는다. 내가 심리적 조건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일어나는 시 지각이 달라진다. 나라고 할 것 조차 없는데 나와 너는 누구인가? 불안정성과의 화세 확대된 자신을 보는 것을 ‘연기’ 바른 깨달음 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지혜다.
내 삶 속에 온갖 것들이 끼어들어 있다. 세계를 이루는 것은 외부에서 함께 나를 이루고 있다. 나의 근원적 속성이다. 내외 구분 없이 이기와 이타가 맞물려 있다. 이타적 행위가 자기를 살리는 것이다. 이야기만 듣고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스위치가 켜지면서 위안 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꿈을 좋은 쪽을 꾸도록 삶의 다른 양상이 생기는 것을 ‘연기’라 한다. 세레토닉이 나온다. 기쁨이 나온다. 고요한 기쁨이 나온다.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개인이 사회 세계를 바꿀 힘이 있다. 이것이 ‘연기’다. 함께 사는 삶을 꿈꾸고 지혜와 사랑이 수행자의 삶이다.
10월 28일
튜터: 이소은
참석자: 이흥선, 문호성, 안은숙, 오정윤, 박은영, 최혜정, 정은경, 박영진, 윤효선
서미경, 박용순, 이은향, 박지희,이영순
교재: 아함경
다음 주 과제입니다. 아함경 읽고 암송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