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해야 할 때 (욜 2:12-18)
이 시간에 “기도해야 할 때”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의 위기, 국가의 재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위기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우리 각 개인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아시는 대로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위협으로 국가안보에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전쟁을 하자니 그 결과가 너무 참혹하고, 대화를 하자니 북에 의해 완전히 코가 꿰어져서 끌려 다니다가 결국은 적화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방법은 없을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107에 보면 바다에 배를 띄우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광풍을 만나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구원해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산헤립의 18만 5천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도 히스기아 왕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서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이나 되는 산헤립의 군대를 죽이므로 위경에서 구원해주었습니다.
기도하되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1.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합니다.
12절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말씀하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신약에서 주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합니다.
롬10:13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구원의 놀라운 조건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찌 그 자녀의 기도를 외면하시겠습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이 도우시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나의 주시니 우리는 주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실 책임이 있고, 또 나의 모든 문제도 하나님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돌보아 주실 책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을 보면 두 맹인이 주님을 만나서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면 메시아를 말하고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 즉 주님이십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냥 지나가지 않으시고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주의 이름이 그렇게 위대합니다.
2. 회개하면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13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마음을 찢으라는 것은 회개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참회의 표시로 옷을 찢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찢지 않고 옷만 찢어서는 가납될 수 없습니다. 회개란 잘못을 후회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것을 버리고 올바른 길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큰 시험을 만났습니다. 온갖 잡다한 종교를 다 모아서 무당 푸닥거리하는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 교회 협의회) 총회가 올 년 말에 우리나라 부산에서 열립니다.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는 우리 기독교 신앙에 다원주의 WCC가 웬말입니까?
그들은 WCC가 성경적이냐 물어보면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기독교의 특징을 포기하고 모든 종교들을 아우르고 하나로 묶는 종교단체에 합류하여 어쩌자는 것인지, 그것이 한국 교회를 분열할 만큼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입니다.
거기 함께 하지 않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라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신앙을 변질시킬 손해밖에는 무익한 이단에 우리가 춤추거나 목숨 걸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징계가 이 나라에 임하면 그 누구도 막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회개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잘못된 신앙, 미지근한 신앙, 세속적인 죄악,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십니다.
3. 구원해 주실 것을 시인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14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본 절은 회개로 인한 결과를 제시합니다. 땅의 모든 소출이 가뭄과 메뚜기 재앙으로 끊어졌지만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면 땅이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도와주실 것이라고 시인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한 후에 불신의 말로 응답을 까먹지 않아야 합니다. 롬10:10에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자기를 복되게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말에 달렸습니다.
4. 겸손하면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15-17절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백성들도 관리들도 어린이도 신랑도 신부도 제사장도 모두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내가 누군데 하는 거드름 피우는 사람 없어야 합니다. 시149:4에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겸손한 자의 소원과 부르짖음을 들어주십니다. 자기를 낮추며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5.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르짖어야 합니다.
17절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나라 잃은 백성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고 아시지요?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갈 곳을 잃고 바다에 떠돌아다니는 선상난민(船上難民)을 일컫는 말입니다. 국외로 탈출한 베트남인은 대략 400만~500만 명이었는데 그 중에 바다로 탈출한 사람만도 150만 명이었습니다. 이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낡고 조그만 목선(木船)을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다 다른 나라가 받아주지 않자 거센 풍랑에 침몰되거나 해적의 약탈에 희생당하는 비참한 운명을 겪었습니다.
나라가 어려우면 신앙도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시107:13-14에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돌 벽과 쇠문도 거미줄처럼 약하나,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도 철문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절에 노라 팰릭스라는 교회 지도자가 한 말입니다.
관원들이 그를 체포하려 하자 그는 산 속에로 들어가 어느 굴속에 숨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굴 앞에 당도한 수색대원들이 왔다 갔다만 하고 굴 안으로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살펴보니까 그가 있던 굴 입구에 거미줄이 쳐져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에 거미 몇 마리가 쏜살같이 그 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놓았던 것입니다.
그 때 그가 한 말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돌 벽과 쇠문도 거미줄처럼 약하나,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도 철문보다 강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 중에 있습니까?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는 고통의 줄을 끊으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부르짖을 때 나라와 민족의 어려움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되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회개하며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겸손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의 돌보심을 받는 은혜가 우리와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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