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7월9일) 엥겔레스구치소 이송
오전10경 어떤 사람이 와서 나보고 옷을 갈아입고
소지품 등 가방을 챙기라 한다.
그러면서 필리핀 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무엇이라 설명하는 것 같은데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는 석방되는 것으로 알아듣고 드디어 석방이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챙겼다.
10여분 정도 짐을 정리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그 사람은 나를 데리고 수사관 사무실로 데리고 간다
수사관 사무실에 도착하여 10여분 기다리면서
또 다른 사람이 나에게 설명을 해 준다.
그때까지 나는 석방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기분 좋게 영어로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옆 책상에 볼펜과 종이를 가지고와서
무어라 영어로 쓴 다음 나에게 보여줬다
영어로 쓴 단어를 보니 내가 지금 구치소로 넘어간다는 단어였다
그 영어 단어를 읽으면서 믿겨지지가 안했다.
석방이 아니라,,,,
구치소로 이송 수감되는 것이다
참으로 허탈하고 허탈하고 허탈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노라게 보인다.
맨붕 상태이다.
결국 나는 그 한국사람 이 말한 무기징역이란 말인가
약1시간정도 이송절차를 마치고 잠시 후 수사관3명이
나를 대동하고 산포로난도 nbi에서 엥겔레스구치소로 이송되었다
처음 딱 구치소 문을 들어오는 순간 비좁고 답답하고 낙후되어 있는 건물 모습을 보았다
12시쯤 엥겔레스 구치소에 들어와 또 약1시간30분 정도
입소절차를 밟고 있을 때에는 그렇게 많은 수감자들이 있는 줄 몰랐다.
구치소 입소절차를 밟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안했다
손바닥 손가락 지문 등 사진 찍고
옆면 앞면 또 팻말들고 찍는 등
여러번의 사진을 찍는다
특히 손가락지문을 찍을 때에는 너무나 긴장을 했던지
손가락이 굳어서 펴지지가 안했다.
나는 연신 “ 코리안 콜~~ 코리안 콜” 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한국사람 좀 있으면 불러달라는 뜻 이였다.
지문을 찍는 교도관이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손까락도 굳어버리고
좀 답답했던지 뭐 이런 사람 처음 본다는 식으로 짜증을 내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 교도관은 체격이 건장한 40대 남자를 대동하고
들어온다 척보니 한국 사람이다.
나는 속으로 반가워다.
아~~~ 여기에도 한국분이 계시는구나.
나중에 알았지만...
그 당시 한국 사람이 14명이 있는 것을 알고 또 가슴아파 울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한국사람들이 14명씩이나 있을까.
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 교도소에 들어와 있을까
참으로 마음이 아파왔다.
내가 구치소에서 지내왔던 4년5개월 동안 한국사람 약35명이상을 만났다. 이 숫자는 필리핀주재 한국대사관에도 기록되어있다.
나의 또 다른 이야기 “ 구치소실태보고” 란 이야기에 구치소에서 만난30여명의 한국 사람들 중에 몇명의 사연이 나온다.
나는 그 건장한 한국 사람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 네~~ 저는 한국의 목사입니다.
그리고 저는 영어를 할줄 모르고 필리핀 언어도 할 줄 모름니다.
저를 좀 도와서 통역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약 40여분 정도 절차를 다 마무리 할 때까지
내 옆에서 통역을 했다
이윽고 내가 가야할 감방이 배정되었다 2층 11번 방이다
엘겔레스 구치소는 비좁고 낙후된 콘크리트 건물이다
구치소 전체 총 수용인원이 600명인데 정원에 5배가 넘는
3.000명 이상이 수용되어 있다.
다른 지역 구치소에 비하면 이것은 양반이라고 한다.
현제 필리핀 실정이다.
감방은 총24개이며 감방은 3평 정도에서~6평정도이며
내가 소속된 11번 방은 6평 정도이다
감방정원이 약30명인데 100명~120명 정도 수용되어있다.
잘 이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람으로 꽉 찬 만원버스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감방 안에 나무로 칸막이를 2층 3층 다락같이 만들어놓고
최대한 공간을 활용하여 생활한다.
나는 한국에서 칼잠이라는 것을 자본적은 있는데
여기서는 그 정도를 넘어서 사람들이 포개서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나는 그 한국인 과 함께 배정된 2층 11번 방으로 갔고
그 한국인 과 11번 방으로 가면서 나에게 하는 말
목사님은 돈 있습니까?
여기는 필리핀은 돈을 내고 수감생활을 해야 합니다
먹는거 자는거 입는거 보는거 모든 것이 돈입니다.
예 ~~ 알겠습니다
한국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하면 될 겁니다
한국에 전화 할려면 교도관들에게 돈을 줘야 하고
교도관들이 판매하는 전화카드를 사야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11번 방장하고 잘 이야기를 해서 돈이 많이 안들어 가도록 사정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네~~고맙습니다
이 한국인 친구는 나보다 8개월 정도
먼저 구치소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구치소 돌아가는 상황을 잘알고 있었다.
이윽고 11번방에 들어왔다
참으로 숨이 턱 턱 막힌다.
숨을 쉴수 없을 정도로 덥고 답답하다.
나는 꽉 찬 사람들 틈에 끼어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한국인 친구는 11번 방장하고 10여분 정도 이야기 하고
결정을 보았는지 나에게 와서 통역을 해준다.
나는 맨 안쪽 끝 습하고 더운 곳에서도 제일 더운 곳
나무칸막이 2층이고 보증금 5천페소 (한화약15만원정도)
그리고 일주일에 300페소 (한화약9천원정도) 씩
내야 한다고 결정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4년5개월을 이 돈을 내고 생활을 했고
한달 에 많게는 20번 적게는 10번정도 기부금명복으로 방장들이
외국사람들 에게 돈을 뜯어낸다.
그리고 빌려달라는 명목으로 하루에 20여명이
매일같이 4년이 넘도록 나를 찿아와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먹을 것을 사 달라
빵을 사 달라
커피를 사 달라
음료수를 사 달라
옷을 사 달라
등 등 헤아릴 수 없는 이들에 요구에 응해줘야 했고
방장 요구에 들어주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고 만다
한국 속담에 울며 겨자먹는 다는 말이 있다.
나는 4년이 넘도록 울며 겨자를 먹었다.
교도관은 교도관 대로 부정부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현제 필리핀의 현주소이다.
나는 구치소 수감생활을 통해서 압축된 필리핀의 정체성과
국민성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되었다.
“구치소 실태보고” 란 나의 또 다른 이야기에는
엥겔레스구치소 내부 의 옆기적인 내용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나는 2013년7월9일부터 엥겔레스 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