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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여행다니면서 사진은 많이 찍었는데 직접 여행기 올리는건 이번이 처음이군요 ^^;;
첫번째 여행기는 9월 30일의 익산-군산-장항 여행기입니다~
*다른 카페에서 쓴 걸 그대로 긁어 온 관계로 반말입니다.... 너그러이 양해를.... ㅡㅡㅋ
만약 사진이 안 보인다면 주소를 직접 주소창에 써 넣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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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추석 연휴는 원래 수요일에서 끝난다.
그러나 위대한 大광명고등학교는 특별히 학교장 재량으로 9월 30일을 임시 휴교일로 지정해 주었다.(교장선생님이 가을만 되면 갑자기 체육선생답게 화끈해지신다....)
원래 9월 19일에는 익산을 갈 생각이었다.
이미 #1473, #2167, #1398로 표까지 모두 끊어 둔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구절리 운행이 9월 21일로 종료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고....
결국 깊은 번뇌와 고민 속에서 갈팡질팡 하던 끝에 9월 19일의 익산행은 엄청난(!) 수수료와 함께 무산되었다.... ㅠ.ㅠ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휴일.
추석때가 되면 돈도 생기겠다....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그래, 이번 한번만 눈 딱 감고 갔다 와서 빡세게 공부하자....라는 말도 안되는 결심을 뒤로 하고....
결국 표를 끊어버렸다....
수수료가 아까워서라도 이번만은 절대 포기 못한다!!!!
#1. 영등포-익산
엄마한텐 죄송하지만 이번에도 도서관 신공을 사용했다.
천지: 엄니 나 내일 도서관 일찍 가유~
엄니: 어야~
사실 이날 동생은 학교를 가야 하는 탓에 말 안해도 난 일찍 깨워질 터였다.... ㅡ.ㅡㅋ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일부러 면도까지 정성들여 하고 집을 나섰다.
도서관과는 정 반대, 북쪽의 영등포역으로 가는 11-1번을 타고 20분만에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아직 내가 탈 여수행 #1473은 개표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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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와 함께 플랫폼으로 나가 서성인지 한 5분쯤 후....
8시 57분이 되자 드디어 내가 탈 #1473 열차의 7329호 기관차가 영등포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473은 전량 리미트인가, 지난번에 대전 내려갈 때에는 2호차였고 이번엔 6호차인데 둘 다 리미트가 걸렸다.
열차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구간인 경부선 영등포-천안 구간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왜 싫어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글쎄, 너무 식상해서일까.... 이 구간에서는 사진도 찍지 않고 바깥 감상도 하지 않는다. buSMapia의 부곡영업소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그냥 포기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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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잠시 전의역에 정차했다.
바로 옆 철로를 보니 침목 콘크리트가 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거 저대로 놔두면 열차 사고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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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창일까? 경부선을 타고 가면 대창인지 금방 알아보는데 호남선을 타면 대창인지 아닌지 잘 구분이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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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셀카 놀이.... ㅡ.ㅡㅋ
역겨워도 그냥 봐 주시길 바란다.... ㅡㅡ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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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두계역에 정차했다.
초라한 역 주변과 삐까뻔쩍한 역사....
뭔가 부조화스럽다.
여기서 군인 손님이 몇 명 탔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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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계역에서 좀 더 서쪽으로 와서 한창 개발중인 계룡시가지를 찍었다.
아무리 봐도 '시'라고 하기엔 어색하기 그지 없는 동네다.
그러고보니.... 제작년엔가, '계룡출장소가 계룡시란 이름으로 승격되는 것을 막아주십시오.'라는 내용의 메일이 발송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글쎄.... 과연 이 도시의 사람들은 '계룡시'라는 지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만일 신행정수도 입지가 계룡면으로 선정되었다면 좀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정석대로라면 계룡면에 들어서는 신행정수도는 '계룡시'가 되어야 할텐데, 이미 계룡시는 저기서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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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푸릇푸릇한 호남의 논이다.
9월 19일에 갔었던 정선의 논에서는 이미 추수에 여념이 없었는데 이곳은 여태 푸른 빛이라니....
세상은 좁으면서도 넓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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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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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내를 생각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것이 지하차도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지하차도에서 그 시퍼런 시내버스가 기어나와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그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가끔씩 우리는 외갓집에 가던 중에 논산읍에 들러 장을 봐 갔다.
그 논산읍이 시가 된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어리둥절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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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워도 그냥 봐 주시길....
내 평생에 이런 역광 받아 본 적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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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역, 그리고 열차에서 찍은 강경시내....
아직 통일호를 타고 외갓집에 가던 시절, 강경이라는 도시는 내게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논산군 강경읍'이라는 존재가, '또 다른 읍'이라는 존재 자체가 내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것이 아닐까.
1992년 그 시절, 어린 유치원생이던 나는 신갈도, 태안도, 소래도 몰랐으니까....
강경역에서 잠시 머물렀다.
용산발 목포행 새마을호 #1061 열차를 먼저 보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었는데 어디로 팔아먹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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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난 이상하리만치 지평선에 집착을 보인다.
단 한번도 보지 못한 것, 이 나라 밖에 가야 볼 수 있다는 그것....
땅과 하늘이 맞닿는다는 것.... 과연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웃기게도 내가 매년 여름과 겨울에 지나다니던 이 곳에서 그 지평선을 만났다.
느낌은.... 글쎄....
그냥 말하자면.... 내가 상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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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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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 시내....
아직 익산군과 이리시가 따로 놀던 시절....
어느 세월엔가 갑자기 익산군청이 함열로 가버렸다.
함열.... 철도로 지나다니기만 한 도시. 한번도 길로는 와 보지 못한 도시.
철이 들어서 다시 와 본 이 도시에 대한 감상은....
역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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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길 하나를 찍었다.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미자의 '아씨'....
저 길을 내려다 보면서 잠시 그 노래를 떠올렸다.
<옛날에 이길은 꽃가마 타고 말탄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옛날에 이 길은....
외할머니를 보러 갔던 그 길이다.
저기 황등에서 우회전해.... 그대로 군산 서수면으로 들어간다.
초록색 줄무늬 도색을 한 이리여객 30번 버스가 고단한 몸을 쉬는 농협 창고 옆 하장곤 종점을 거쳐 방앗간 앞에서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내려간다.
논바닥 사이를 길을 따라 뱀처럼 기어다니던 우리 차는, 마룡리 상장곤 마을의 맨 끝에 있는 어느 기와집의 넓은 마당 한 구석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내려 할머니를 부르면.... 거기서 외할머니가 나오신다.
어이구 우리 강아지들 여그까지 오느라 욕봤쟈~
최서방 여그까지 오느라고 욕봤어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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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이리역의 표지판을 보면
<-황등 | 동이리
이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와 우리 가족을 태운 통일호 열차는 단 한번도 이곳에 정차하지 않았다.
바로 여기가 그 황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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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의 귀환....
드디어 익산으로 들어왔다.
#2. 익산, 아무것도 아닌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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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 플랫폼. 5년만이다.
1992년에 아버지께서 차를 사신 이후로 이 곳에 올 기회는 전혀 없었다. 다만 1999년, 중학교 1학년 여름에는 아버지께서 일이 생겨 나와 어머니, 동생 셋이서만 통일호를 타고 이곳에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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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통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려가 본 적이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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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 광장에서 내려다 본 익산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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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 광장에 새로 지어진 환승시설....
전주와 군산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이곳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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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 앞 지하도의 입구....
이 지하도에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의 한 조각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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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를 건너가 보기로 했다.
잠시, 내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있다가 다시 이 곳을 지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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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익산여객이 된 이리여객의 30번 입석버스....
어렸을 적, 심심해서 상장곤의 윗동네 구멍가게로 놀러가 있으면 이따금씩 그 버스를 볼 수 있었다.
그 시절에 내가 외삼촌댁을 가기 위해 철산동에서 신도림역까지 갈 때 탔던 버스가 공교롭게도 상신교통 30번이었다.
내가 사는 곳의 버스와 똑같은 번호를 한 버스가 우리 외갓집 마을에도 있다니....
어린 내게 그것은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아직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아버지의 짧은 휴가를 빌어 매년 영등포역에서 통일호를 타고 이리역으로, 다시 이리역에서 택시를 타고 외갓집으로 놀러왔다.
1주일동안 꿈만 같은 나날을 보내고, 칠순이 되신 늙으신 외할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러 구멍가게 건너편, 방앗간 앞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동산동<->장곤리'라는 행선판을 단 30번 버스가 오면.... 짐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버스에 오른 우리를 향해 할머니는 버스가 커브길을 돌아 논공단지로 사라질 때 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니, 그 후에도 계속 우리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셨을지도....
그 버스를 타고 이 곳, 새마을금고 앞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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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을 건너 지하도 입구로 들어간다.
아직 어리고 가벼웠던 나를 아버지와 어머니가 양쪽에서 손을 잡고 들어올린다.
내가 발을 구른다. 무릎을 한껏 오므린다. 그럼 나는 지하도 안을 날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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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하도 안이다.
10년이 넘게 지워지지 않은 나의 추억이 담긴 어둠의 공간....
어렸을 때, 마주편에서 다가오는 차가 우리 차를 들이받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바로 그 지하도....
이제 나는 이곳을 나간다.
여기에....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는, 그러나 눈물이 글썽여지는 그 기억을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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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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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여고.
여기 후문에 있는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1500원짜리 라면을 시켰는데 조개 셋과 엄청난 양의 오징어가 들어간 해물라면이 나와서 당황했다. 굉장히 배부르다. 500원짜리 햄버거도 사먹을까 했지만 그냥 관뒀다.
이리여고는 외출이 금지되어 있는 탓에(그런 듯 했다.) 담벼락 너머로 아이들이 고개를 내밀고 아주머니에게 배달 주문을 하는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갔을 때가 점심시간이라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인데, 그보다 더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몰래 밖으로 나왔다가 학생부장에게 들키지 않으려 주방으로 꼭꼭 숨은 여학생들이었다.... ㅡㅡ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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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장....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익산시장일수도 있고 중앙시장일수도 있고....
그런건 사실 상관없다. 어머니에게, 내게, 이 시장 이름은 '이리시장'이다. 그냥 그거 하나면 족하다.
1년에 한두번 외갓집에 갈 때면 언제나 이 곳에서 고기를 사고, 수박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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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거리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서 이 사거리 너머는 휑하디 휑한 거주지구일 뿐이다.
휑한 기억을 더듬고 싶지는 않았다.
여행자 '주제에'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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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역 앞 도로로 되돌아간다.
그러니까.... 말이다
지금 이 도시는 익산시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도, 이모도, 외가 식구들도
모두 이곳을 이리라 부른다.
내게도 여전히 이곳은 이리다.
'이리'가 일인들이 붙인, 비하의 의미를 담은 이름인 것은 이미 들었다.
그러나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이젠 이 도시에 사는 아이들마저 저 멀리 기억의 저편으로 던져버린 '이리'라는 이름을 외지인인 내가 여태까지 쓰고 있으니....
이리, 아니 익산은 내게 그 무엇도 아니다.
할머니나 외할머니께서 사시는 곳도 아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런 곳도 아니다.
그저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댁에 가기 위해 1년에 많으면 네번 지나가던 도시....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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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가던 도중에 구형 버스 한 대를 만났다.
번호는.... 번호를 까먹었다.
아마 1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전라북도 시내버스 도색이 초록줄무늬 - 부산의 구도색과 비슷한 그것 - 였던 시절, D모 자동차의 신형모델과 이 구모델의 '폼' 차이는 정말 심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저 멀리 터덜거리며 지나가는 구모델 초록줄무늬에게 내가 붙인 별명이 '아기코끼리'였다.... ㅡ.ㅡㅋ
반면에 D사 신형모델이 초록줄무늬를 두른 채 지나다니는 모습에는 왠지 위풍당당함마저 느껴졌다. 그것은 특히 코 앞에서 버스를 보면 더더욱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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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익산역으로 돌아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 역에 왔을 때와는 모습이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 때의 모습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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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 대합실.... 뭉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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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이 환승통로는 처음 들어와본다.
어렸을 때 익산역에 내리면 '전주, 군산 방면'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보면서 "엄마, 저거 군산가는 기차래~!"라고 떼 비슷한 것을 쓴 적이 있었다.
아마 어머니는 그 말을 들으면서, 국민학교 소풍날에 임피역에서 장곤리까지 고갯길을 두시간 넘게 걸어다녀야 했던 그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셨을지도....
어렸을 때 이 역까지 통일호를 타고 오면서 정차하는 역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
영등포-수원-평택-천안-조치원-서대전-논산-강경-함열-이리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분명 표지판은 멀쩡히 있는데 서지는 않는 내판역을 보면서 의아해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엄마한테 "왜 이 기차는 대전 안 가?"하고 물어보던 것도
아직 조치원에 도착하기 전에 엄마, 동생과 함께 노란 한국야쿠르트 도시락통에 싸 온 김밥을 열어 먹던 기억도
엄마한테 홍익회 아저씨가 끌고 다니는 과자를 사 달라고 조르던 기억도....
황등, 이정표에는 있는데 서지는 않는 그 역이 대체 어디일까 궁금했다.
한번은 아빠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유딩천지: 아빠, 황등이 어디야?
아빠: 이리 위에가 황등이야.
유딩천지: 그럼 황등 다음엔?
아빠: 황등 다음엔.... 서수
유딩천지: 서수 다음엔?
아빠: 서수 다음엔 마룡리
유딩천지: 마룡리 다음엔?
아빠: 장곤리
유딩천지: 우와~! 장곤리 다음엔?
아빠: 외할머니네에서 끝이야.
철이 심각하게 없던 유딩 시절,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채....
유딩천지: 엄마엄마~ 다음번에 외갓집 갈 땐 그 기차 타고 가자~!
지금 생각해도 웃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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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 도시에서 떠나보내줄 #2167 통일호 열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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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이 열차의 운전석을 찍을 수 있었다. 기관사님이 밖에 계신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내 건너편 자리에서 신문을 읽으시고 계셔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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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img.image.yahoo.com/ygi/gallery/img/39/ee/4160f0bfeac79.jpg?4160f12b
열차가 익산역을 떠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아닌 도시....
난 이곳에 왜 왔을까.
뭘 위해서 거금 9700원을 들여 3시간이나 걸려 이 곳에 왔을까.
나는
이리역 앞의 지하도를 보고 싶었다.
30번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엄마 아빠의 손을 붙잡고 들어갔던 그 어두웠던 지하도와
갈 때 마다 길을 헷갈려 빙빙 돌며 수박을 사러 다녔던 시장과
그리고....
그래,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30번, 바로 그 빌어먹을놈의 버스
내가 갓난애기였을 때, 하루에 세번 장곤리에 들어오면서 장염에 걸린 나를 이리 시내의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던, 바로 그 버스,
저 위에 '이리시내버스'라고 큼지막하게 써 붙이고 이리 시내 한복판에서 '장곤리'라는 그 반가운 지명을 달고 다니던 그 버스....
일정이라는 운명 때문에 외갓집 마을에 갈 수 없는 나로써는 그 버스라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12시 35분 버스와 2시 35분 버스....
앞차는 내가 이리여고 근처를 뱅뱅 돌고 있을 때 이미 떠나갔고....
뒤에차는 내가 익산을 떠나고 5분 후에야 지나간다.
대체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위에서 잠시 거짓말을 했다.
익산역에 마지막으로 갔던 것은 중1때가 아니다.
바로 작년 여름, 내 생일 이틀 후에 나는 전주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익산을 지났다.
하지만.... 그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말이다....
그 이틀전, 내 생일에....
그렇게 나는 익산을 떠났다.
안녕, 익산이여
내게는 영원히 이리로 기억될
아무것도 아닌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을 남겨둔 도시....
와야 할 목적을 잃어버린,
언제 다시 올 지 알 수 없는 도시....
잘 있어....
내가 다시 오는 그 날까지....
#4. 군산, 어머니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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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을 떠나 처음으로 만나는 역, 오산리역....
보시다시피 저 버스정류장용 대합실(!)이 오산리역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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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임피역 전이다.
저 북쪽에 보이는 마을을 찍었다.
저기 어디에 우리 외가 마을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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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임피역에 들어서기 전....
잠시 임피 읍내를 찍었다.
어머니는 옛날에 임피와 대야, 성산이 읍이었다고 했다.
군산도 읍이었다고 하셨다.
아주 먼 옛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직 젊었을 때의 일이라고 했다.
어린 나에게는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
임피 역시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곳이다.
단지 그 가까운 서수면 마룡리에 우리 외할머니가 살았다.
어머니가 임피 대성중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빼면 나와는 관계가 없다.
다만 저 곳에서 우리는 외할머니의 생신 케잌을 샀다.
저 곳의 가게에서 외갓집의 막힌 변기를 뚫을 청소용 흡판을 샀고
저 곳의 방앗간에 외갓집의 깨를 가져다가 기름을 짰다.
다시 임피에 갈 일이 있을까....
외갓집에서 지내던 때 치고 저 곳에 들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서수보다도 가까운 곳이 임피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는 저 곳에 찾아갈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익산도, 군산도, 우리에겐 찾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는 곳이다.
더 이상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곳들....
왜냐하면....
외할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작년 내 생일 바로 그 날에....
그 날 새벽에 전주 전북대병원에서 목에 호스를 꽂고 투병중이시던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보다 1년 전에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 놀러갈 때 마다 밤이 되면 양은 광주리에 가마솥에서 통째로 긁은 거대한 누룽지를 가득 담아오시고, 나를 등에 업고 다시 외갓집으로 데려다 주시던 그 이모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때 울지 않았다.
그저 담담했다.
그리고 외할머니
나와 내 동생을 언제나 강아지라 부르셨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마당에 내리면 부치시던 부채를 내려놓고 주름치마를 끌며 달려나오시던
이모가 쩨부선창에서 사 온 만원짜리 홍어를 토막내 홍어회를 만들어 주시던
그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울지 않았다.
그저
돌아가셨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담담하게 받아들여졌다.
하루라도 빨리 전주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에, 외할머니께서 장지로 가시는 것도 보지 않고, 내 생일, 할머니의 기일 이틀 후에 열차를 타고 광명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햇볕이 기세좋게 내리쬐는 그 오후에, 함라에서 용안 가는 711번 지방도를 타면서 외할머니댁을 떠나는 아쉬움을 곱씹을 일이 없을 거라는 사실이 와 닿지 않았다.
아니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그 기억을 다시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울지 않았다.
전북대병원 영안실 1층에 설치된 빈소에 가서도 울지 않았다.
전주를 떠나면서도 울지 않았다.
이곳, 임피와 우리 외갓집이 보이는 곳에 와서도 역시 울지 않았다.
그러나....
2004년 10월 4일 오후 4시 20분,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울었다.
이미자의 '아씨' 가사를 찾아내 노래를 떠올리면서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언제나 만났던 711번 지방도의 함라면사무소로 들어가는 사거리를 떠올리며 울었다.
왜 울지 못했는지....
그것이 한스러워 운다.
학교 컴퓨터실에서 다른 아이들이 볼까봐 대놓고 울지도 못한다.
울지 못하는것....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혹독한 형벌이다.
왜 이제서야 나는 그 형벌을 이겨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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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역....
말이 좋아 임피역이다.
임피 시내랑 한참 떨어져있다.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다니셨던 마룡국민학교는 군산으로 소풍을 갈 때 마다 이곳 임피역에서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군산까지 갔다.
마룡국민학교에서 임피역까지는....
꼬맹이들 걸음으로 꼬박 두시간+a
두시간이었던가 세시간이었던가....
사진은 여기까지다.
임피역 사진을 찍고 확인하던 그 순간에 배터리의 소멸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이런 긴 여행을 떠날 거면서 배터리를 충전해 오지 않은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수 밖에 없었다.
대야역과 개정역을 거쳐 군산역에 도착했다.
중2때 37번 버스를 타고 지나간 이후 처음으로 와 보는 곳....
플랫폼의 입구와 출구가 따로 분리되지 않아 사람들은 엄청난 병목 현상을 감내해야만 했다.
마침 번호를 까먹은 기관차 한 대가 세풍제지선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래서 사진기 없으면 서럽다.
익산이 아무것도 아닌 도시라면, 군산은 어머니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옥구군이었던 외갓집은 95년 이후 군산시가 되었고, 외갓집에 있을 때면 꼭 한번쯤을 군산시내엘 나왔다.
시내에 나오면 꼭 역 앞의 시장엘 들렀다.
시장에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 그 생각을 버렸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군산 시내는 과연 어디일까
무려 10년이 넘게 여길 들락날락거렸으면서도 나는 아직 별 신통한 답을 얻질 못했다.
역과 항구를 중심으로 한 구시가는 암만 봐도 시가지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렇다면 나운동 쪽의 아파트 단지일까
글쎄, 난 나운동쪽은 별로 안 가 봐서 말이다.
사실 가 본 횟수는 다섯손가락정도는 될텐데.... 아직 철이 없던 시절이라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원래 계획은 역 앞에서 7번 버스를 타고 도선장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계획은 바뀌었다.
암만 봐도 알 수 없는 이 낡은 거리를 직접 발로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얻어낸 것은 별로 없다.
다만 이 거리는 정말 휑하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아냈을 뿐....
저 멀리 보이는 도선장 이정표를 향해, 땀에 절어 착 달라붙은 어깨 부분을 손을 떼어내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월명산과 공원이 보인다.
엄마는 월명공원을 좋아하신다.
군산으로 소풍 올 때 마다 절대 빼놓지 않고 들렀던 저 공원이야말로 진정한 공원이라고 하셨다.
한번도 그 공원에 가 본 적이 없다.
도선장에서 배가 언제 뜨는지를 알지 못하는 나로써는, 아쉽지만 그대로 발길을 재촉하는 수 밖에 없었다.
군산-장항 연락선, 대인 1000원.
배는 5시 10분에 떠난다.
군산에서 매시 10분 출발, 장항에서 매시 50분 출발이다.
아직 20분 정도 남은 표를 사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어린 나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전라북도 제3의 도시 군산의 이미지는 굉장히 컸다.
언제나 큼직큼직한 도시들만 봐 온 수도권 꼬맹이의 한계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환상은 내가 국민학생이 되었을 무렵에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광명시만도 못해' 보였다.
하지만 크고 작고를 떠나서
나는 그 오래된, 시가지가 어딘지도 분간이 안 가고, 외갓집에서 이리보다도 먼 그 도시에 이상하리만치 끌리고 있었다.
지금도 끌린다.
장항을 떠난 배가 들어왔다.
나무 다리를 건너 배 안으로 들어갔다.
배 위에서 보는 군산은 또 다른 느낌이다.
5시 10분....
배에 시동이 걸린다.
드디어 배가 도선장을 떠난다.
군산을 떠난다.
뱃머리에 서서 군산을 돌아보았다.
작달막한 도시는 서서히 멀어져간다.
안녕....
안녕 군산....
우리 이모가 홍어를 사 오는 도시.
우리 엄마가 다닌 학교가 있는 도시.
하숙을 했던 도시.
엄마 친구가 사는 도시.
외할머니를 모시고 장을 보러 나오던 도시.
우리 엄마가 소풍을 오던 도시.
내 동생이 태어난 도시.
지금은 남의 집이 된 우리 외갓집 앞에까지 가는 33번, 지금은 37번이 되었다는 그 시내버스가 있는 도시....
그리고....
언제나 그리운....
우리 어머니의 도시....
#5. 장항, 궁금한 도시.
배는 널찍한 금강 하구를 가로질러 달린다.
배 한척이 가까지 지나가자 엄청난 파도가 일렁인다.
내가 서 있는 뱃머리에까지 물이 튄다.
배를 타는 것은 1년에 많아야 두번이다.
지금까지 7번 타 봤다.
인천항에서 연안유람선 한번
월미도<->영종도 카페리 왕복
부소산->구드래나루 백마강 유람선 한번
외포리<->석모도 카페리 왕복
그리고 오늘 탄 이 배까지....
장항은 처음이다.
군산에서 배도 있고 버스도 있지만 이상하게 이 도시에 올 일은 한번도 없었다.
언제나 궁금하기 짝이 없는 도시였다.
어렸을 때 아빠의 다이어리 뒤에 붙은 지도를 보는 것이 취미였다.
천안에서 갈라져 우리 부모님이 신혼여행 가셨다는 온양온천을 지나 구불구불 기어가는 철도를 쭉 따라가다 보면 맨 끝에 장항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 금강을 건너면 군산이고, 군산에서는 다시 이리로 가는 철도가 있다.
유딩천지: 엄마, 장항에서 다리 놓으면 군산까지 갈 수 있잖아?
엄마: 글쎄.... 왜 그 다리를 안 놓는걸까....
그리고 몇년 후였던가....
신문 기사를 보니 장항선을 군산까지 연장한다고 했다.
그게 나 초딩 3학년때였던가.
문제는....
그때가 언제인데 10년이 지나도록 완공이 안되느냔 말이닷! [화르륵!]
금강하구둑을 딱 한번 넘어보았다.
그 때 외할머니를 모시고 춘장대 해수욕장엘 갔었다.
춘장대는 정말이지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처음에는 무창포를 갈 생각이었는데 서천읍에서 우연히 춘장대 방면 이정표를 본 것이다.
하여간 행선지가 '무창포'였던 그 때, 처음으로 금강하구둑을 넘는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웠다.
그러나 심히 애석하게도 장항으로는 가지 않았다....
과연 얼마나 큰 도시일까.
환상같은건 애써 버리려 했다.
의외로 큰 소흘읍내를 발견하고 괜히 즐거운 것이, 기대와 달리 볼품 없는 포천시내를 보고 실망하는 것 보다는 낫다.
적어도 나한테는.
버리려 하길 차라리 잘 했던 것일까.
10분간의 짧은 항해를 마치고 내린 도선장에서 다시 5분 정도를 더 걸어가자 장항 읍내가 나왔다.
글쎄.... 그렇게 작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니, 이 정도면 소도읍으로써는 큰 편이겠지만
이성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감성은 왠지 장항을 작다고 느끼고 있었다.
연천읍처럼, 차가 거의 없는 편도 2차선 도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는 너무 큰 것을 바랬던 것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그냥 철길을 중심으로 서쪽을 휘휘 돌아다니다가 다시 철길 동쪽으로 넘어갔다.
한시간에 700원짜리 피씨방이 나타났다.
내가 탈 장항발 용산행 #1398 열차가 출발하는 17:45까지 약 50분....
그냥 한시간에 1500원짜리 피씨방을 만난 셈 치고 30분 정도만 들어가서 카페나 들어가 보기로 했다.
17:25분인가에 피씨방을 나왔다.
장항터미널까지 가서야 다시 발길을 돌려 장항역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았다.
솔직히 말하면 장항터미널은 장항역 가는 길을 찾다가 헤메서 간 것이다.
근데 말이다....
이 도시는 시장이 어디에 있는걸까?
시장을 제대로 못 찾아본 것이 왠지 걸린다.
열차가 출발할 때 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발바닥이 지끈거린다.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오늘 내가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여기까지다.
여기까지만 생각하자.
역무원이 차단줄을 해제하자마자 내가 탈 3호차 57석을 찾아 걸어갔다.
놀랍게도 전량 신조 리미트 편성....
대뜸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머리를 기댔다.
피곤하다.
내 머릿속의 추억을 좇아 떠난 여행이다.
그 여행은, 이제 저기 산 너머 바다로 져 가는 해와 함께 마지막을 향한다.
아무런 표정도 지어지지 않는다.
열차가 드디어 장항역을 떠나기 시작한다.
저 멀리 폐교되었다는 정의여고 건물이 보인다.
장항이 내 뒤로 멀어져간다.
언제나 궁금했던 도시
그리고 이제 궁금함이 풀린 도시....
만나서 반가웠다....
이제.... 마지막의 시작이다....
#Epilogue
그 후로 바로 잠들었다.
서천과 홍성에서 잠시 잠을 깨었지만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
다른 때 같으면 도시의 생김새를 봐야 한다는 사명감에 오는 잠을 억지로 떨쳐내며 수십번을 봐 온 천안-용산 구간에서 잠시 잠을 청하고 말겠지만....
이미 내 목적을 모두 이루었다는 안도감과, 어차피 그 도시를 찍을 사진기도 없다는 태평함이 나를 잠의 늪으로 직행시켰다.
그 잠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은 온양온천에서였다.
우리 부모님이 신혼여행을 오신 곳....
천안역을 향해 왼쪽으로 커브를 돈다.
도시의 불빛은 휘황찬란하다.
그러나 그 불빛은 천안역을 떠난 지 얼마 후에 어둠으로 대체되었다.
그 이후는 달리 쓸 것도 없다.
다만 이 날 여행이 특이한 것은....
처음으로 용산까지 갔다는 것이다.
작년, 전주에서 올라 올 때에는 서울까지 간 적이 있긴 하지만....
역시 텅 빈 객차 안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야경은 남다른 맛이 있다.
용산역에서 삼각김밥 두 개를 사먹었다.
전철을 타고 가리봉역에서 내려, 다시 7호선을 타고 광명사거리역에서 내렸다.
집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10시 30분이었다.
기행문은 경험이 주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글은 기행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기행문이 아니면 여행 소감문이라고 하겠다.
애초에 보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라 느끼기 위해 떠난 것이었다.
그 어떤 여행보다도 소중하다.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내 머릿속의 많은 정보를 끌어냈다.
다시는 생판 갈 일이 없는 도시라며, 내가 익산과 군산 관련 기사들을 보여 줘도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엄마....
어쩌면 난 이날 엄마를 대신하기 위해 그곳에 갔던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나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 길을 되밟을 수 있을까.
아버지가 왔던 길이란다....
이 아버지가....
그리움을 좇아서 떠났던 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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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의 교훈
-여행 갈 때에는 반드시 여벌의 충전지를 만땅 채워서 가지고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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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게 했는데 그림이 안떠서요....
추억이 담긴 멋진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군산 사는 사람으로써 굉장히 반가운 여행기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