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3,000번째 영화로 선택한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작이자 정서경 작가와 함께 한 5번째 영화입니다.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각본집과 관련된 영화(화영연화, 현기증) 두 편을 차례로 감상하며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헤어질 결심을 보며 알게 된 사소하지만 주용한 이야기들을 하고자 합니다.
1. 헤어질 결심은 지독한 사랑 영화(?)
헤어질 결심은 제목부터 사랑 영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면 이 영화가 사랑 영화인지, 수사극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드라마인 건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 영화의 이중적 구조를 파악하면 기막힌 수사 멜로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 속 형사로 나오는 해준은 수사를 통해 피의자인 서래를 심문 하는데, 그 과정이 마치 서로의 서사를 알아가는 밀당의 과정과 유사하고 해준이 서래의 집 앞에서 잠복하는 것 역시 수사라는 형식을 빌려 사랑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또 다른 방식인 것입니다.
즉, 해준은 서래를 수사하며 그녀가 자신과 같은 종족(해준과 서래는 바다에 가까운 종족)임을 깨닫고 순식간에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종국에 서래는 스스로 해준의 미결 사건으로 남게 되며 자신의 사랑을 미결 상태로 만들고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게 만드는 지독한 사랑을 보여주게 됩니다.
2. 낯섦과 문어체적 표현
"단일한" , "마침내" , "현대인" , "붕괴" , "꼿꼿해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많은 대사들이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리 생소한 문장과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어체적 표현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관객들을 오도하고 예상과 다른 전개를 즐긴다는 점에서 감독의 취향이 고스란히 느껴 졌습니다.
물론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그만큼 접근성이 떨어지고 영화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이점은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 영화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줌인 줌아웃을 사용하고, 50~60년대 영화 느낌이 담겨 있다는 것은 감독이 의도했던 그렇지 않든 오히려 이색적으로 다가오며 낯섦을 느끼게 했습니다.
3. 붕괴와 핸드폰
해준은 젠틀하면서 능력 있는 일 밖에 모르는 형사로, 투철한 직업의식을 바탕으로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그랬던 그에게 사랑에 눈이 멀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덮으며 스스로를 붕괴시키게 됩니다.
같은 종족으로 누구보다 해준을 깊이 알고 있던 서래는 사건의 결정적 증거품인 휴대폰을 아무도 못 찾게 깊은데 빠뜨리라는 해준의 말이 사랑 고백으로 들렸고 이를 녹음해 반복해서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깊은 바다속에 파묻어 들어 감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에 묻어두게 된 것입니다.
4. 정훈희의 "안개"와 이포의 "안개"
박찬욱 감독은 정훈희의 안개 노래 가사를 듣고 사랑이야기를 생각 했으며, 노래 제목처럼 안개가 있는 지역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해준과 서래가 바다종족이고 바다에는 항상 안개가 껴있고 이 둘의 관계 역시 안개 속 처럼 불투명할 뿐 입니다.
안개처럼 사라진 서래를 해준이 찾아 헤매는 모습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안개낀 도로를 달리는 해준의 위태로운 운전 장면까지 모든 것이 안개와 연결이 되어 있고 안개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안개는 영화의 메인 테마이자 영화를 설명하는 중요 키워드 입니다.
5. 닮은꼴 영화
헤어질 결심을 말하면서 주로 언급되는 두 편의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과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입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참고삼아 본 영화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49년 작품인 "밀회"라는 점에서 의도와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현기증을 보면, 형사와 비밀을 지닌 팜므파탈 여자, 여자의 죽음,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구성 등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나 직접적으로 모방하거나 따온 장면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느낌이 박찬욱 감독의 DNA에 히치콕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기 때문에 떠올리게 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 할것 같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배드신 장면 하나 없이도 작품의 관능미로 관객들을 녹여낸 영화로 헤어질 결심의 미장센과 관능미가 닮은 영화입니다.
단순히 닮은꼴로 생각이 날 뿐 헤어질 결심은 그 자체로 새로운 형식의 영화라는 점은 분명 합니다.
마무리하며....
박찬욱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 달리 노출과 폭력이 없이 내밀한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로 사운드에 대한 탐구도 놓치지 말아야 될 영화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최고 영화는 아니지만 그의 영화 필모에서 기억될 영화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