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3)
성도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완전함을 보여주는 콜로새서
2장 11-15절의 문맥에서 사도 바오로는 구원받은 성도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11절에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음을 밝혔으며,
12절에서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하였음을 밝혔다.
이제 콜로새서 2장 13절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콜로새 성도들이 전에는
잘못을 저지르고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사실을 밝힌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콜로새 교회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른 잘못과
육체의 비할례로 인해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던 자들임을 밝힌다.
여기서 '잘못'으로 번역된 '파랍토마신'(paraptomasin; your sins)의 원형
'파랍토마'(paraptoma)는 '~에서부터'란 뜻의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
'파라'(para)와 '넘어지다', '떨어지다'(마태17,15), '떨어지다'(마태10,29)라는
뜻이 있는 동사 '핍토'(pipt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문자적으로는
'정도에서 벗어남','이탈'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성경에서는 주로 추상적 의미로 사용되어 '허물', '과실'(마태6,14),
'잘못','허물'(에페2,1), '범죄'(로마5,15), '잘못', '죄'(2코린5,19)등으로
번역되며, 원죄뿐만 아니라(로마5,15.17) 본죄(갈라6,1)까지 포괄한다.
그리고 '육의 비할례'('테 아크로뷔스티아 테스 사르코스'; te akrobystia tes
sarkos;the uncircumcision of flesh)는 유다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하느님과
전혀 관계없는 이방인, 하느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 타락한 본성이
제거되지 않은 자, 하느님 대전에 단죄 및 진노의 대상, 비구원의 실재라는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던'
이방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여기서 '용서해 주셨습니다'로 번역된 '카리사메노스'(charisamenos; forgave ;
having forgiven)의 원형 '카리조마이'(charizomai)는 '기쁨','은혜'라는 뜻의
'카리스'(charis)에서 유래한 동사로서 '용서하다', '빚을 면제하다', '은혜로
무상으로(공짜로) 주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베푸는 자의 호의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살려서 그대로 돌려보내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에게 베풀어지는 새로운 생명,
성화은총(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초자연적 은혜)이 베풀어지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용어이다.
사도 바오로는 잘못을 저지른 범죄와 육의 비할례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이미 죽었고, 또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놀라우신 무상의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다시 살리신 것을 말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당시 콜로새 교회는 대부분이 비할례자들, 즉 이방인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고,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이것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혜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문서를 지워 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4)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율법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빚문서'로 번역된 '케리오그라폰'(cheriographon; written code;
handwriting)은 '손'이라는 뜻의 명사 '케이르'(cheir)와 '쓰다'라는 뜻의 동사
'그라포'(graph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손으로 기록한 문서를 가리킨다.
당시 채무나 노예와 관련된 법률적 계약을 체결할 때 채무자나 노예가 직접
기록하여 자필 증서를 만들었는데, 이 단어가 바로 이러한 관습을 반영한
표현이다.
여기서 '조항들을 담은 빚문서'로 번역된 '케이로그라폰 토이스 도그마신'
(cheirographon tois dogmasin; written code; with its regulations)은 '율법'을
가리킨다.
'조항들을'로 번역된 '도그마신'(dogmasin)의 원형 '도그마'(dogma)는 '법령'이라는
의미로서, 여기서는 복수 여격으로 쓰였으며, 이것은 '법령(조항)들을' 이라는
목적격적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조항들을 담은 빚문서'는 '법령들을 쓴 문서'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율법적 행위의 온전한 이행을 요구하는 법적 채무
증서와 같다. 그래서 한글 새 성경은 이것을 '빚문서'로 번역하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사도 바오로가 이것을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지적한 사실이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으로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과 요구를 담고 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죄로 인해 타락한 본성을 지닌 우리 인간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율법 준수의 절대성을 그토록 주장하던 바리사이들은 정작 율법을
준수하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들은 온전히 지키는 것처럼
위선을 떨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의 무거운 짐을 메도록 강요했다.
율법은 단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율법의 행위로는 의로워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게 하는 감시자 노릇을 할 뿐이다(갈라3,24).
그러한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준수하지 못할 때에 죄책감과 절망을 준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율법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단죄하는 이러한 율법을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천명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율법을 지워
버리시고 없애 버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박힌 대상은 예수님이신데,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율법이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이었다고 선포한 것이다.
여기서 '지워 버리시고'로 번역한 '엑살레입사스'(eksalleipsas)의 원형
'엑살레이포'(eksalleipho)는 '문질러 닦다', '제거하다', '지우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어떤 책의 글씨나 사람의 마음에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도록
깨끗이 지우는 것을 말한다. 즉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악성 때문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의 산물인 율법을 깨끗이 지워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없애 버리셨습니다'로 번역된 '에르켄'(erken)의 원형 '아이로'(airo)는
'들어 올리다', '나르다', '제거하다'라는 뜻으로 세례자 요한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 즉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묘사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요한1,29).
세상의 죄를 지고, 그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고발하고 단죄하는 율법의 모든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 것을 '에르켄'(erken)이라는 단어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못박아'로 번역된 '프로셀로사스'(prosellosas; nailing)의 원형
'프로셀로오'(proselloo)는 '못으로 ~에 고착시키다', '~에 못박아 고정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효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율법의 단죄(정죄)가
다 무효화되고 없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