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봉을 찾아서
-2007년 1월 1일 완도의 진산 상황봉에서의 일출산행-
이상호 산행기
전남 완도에 가면 섬의 축을 이루고 있는 거봉들이 우뚝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해발 644m의 최고봉인 상황봉(象皇峰)을 비롯해 쉼봉(598m) 백운봉(601m) 업진봉(544m) 숙승봉(435m)이 완도의 등줄기를 형성하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완도하면 김의 생산지로 많이 알려졌고 신라 흥덕왕 때 해상왕 장보고가 장도 청해진을 중심으로 맹활약한 유적지가 남아 있고 관광명소인 보길도 청산도 등과 제주도로 가기위한 뱃길이 시작되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완도에 이런 거봉들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등산객들이 아직도 많다.
상황봉과 백운봉 주능선에 오르면 다도해 조망이 매우 뛰어나고 멀리 제주도 한라산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으며 서쪽에 펼쳐진 해남의 달마산 두륜봉 가련봉, 강진의 주작산 덕룡산,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천관산 등이 잘 조망되고 있다.
특히 상황봉 일대에는 국내 최대의 난대성 상록수림의 집단 자생지로 겨울철에도 푸른 원시림과 함께 산행의 묘미를 느껴보며 이른 봄철에는 검붉은 동백이 이곳저곳에 뒤덮여 즐거운 산행을 맛 볼 수 있다.
지난 31일 완도의 상황봉을 다녀왔다. 정우산악회가 새해를 맞아 떠오르는 해를 보기위해 일출산행에 나선 것이다. 밤 10시에 의정부를 출발한 전세버스가 7시간이나 걸려 새벽 5시에 완도읍 대야리 에덴농원에 도착했다. 산행 출발지인 이곳에는 벌써 대형버스 5대가 도착해 있고 다행히도 넓은 주차장에 화장실과 음수대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젊은 여성 안내자까지 밤샘하며 등산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산행은 상황봉과 백운봉을 축으로 5개의 주 코스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는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에덴농원을 기점으로 하는 관음사터 코스를 택했다. 더군다나 정상인 상황봉을 오르는 데는 제일 짧은 코스이며 완만한 산행로를 유지하고 있어 실버팀들에게 인기를 끄는 코스다. 54명의 우리 일행은 준비해온 죽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5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인원이 넘치는 바람에 대형버스 한 대로는 자리가 모자라 봉고승합차를 긴급 동원했다.)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산행로를 걷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듬듬이 손전등에 비쳐지는 동백꽃의 자태가 눈에 들어오고 빽빽이 들어찬 노리나무 등 난대림 상록수들이 푸른 빛을 띠고 하늘로 치솟고 있다. 에덴농원을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건드렁바위에 도착하고 이어 상여바위, 4계절 항상 샘물이 솟아나는 관음사터를 경유하여 황장사바위를 지나 임도를 가로질러 가파른 산행로를 숨가쁘게 오르기 시작하면서 산행로는 눈이 깔려있다. 짙푸른 숲길을 지나왔는데 눈이라니 역시 바닷가에서의 해발 644m의 고봉임을 실감케 한다. 조심스럽게 눈길을 오르니 상황봉 정상이다. 꼭 1시간 40분이 소요됐다. 이미 상황봉 정상 봉수대를 중심으로 해맞이 꾼들로 인산인해다.
어둠이 덜 걷힌 완도읍의 야경과 신지도를 건너는 신지대교의 불빛이 찬란하다. 완도는 202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날이 점점 밝아 오면서 다도해의 여러 섬들의 모습이 나타나고 다도해 동쪽은 흐림이다. 7시30분이 다가오면서도 환한 정도의 여명만이 비쳐지고 그 찬란한 해돋이의 연출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7시50분, 실망스러운 해돋이 행사를 마감한다. 7시간이나 달려온 보람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이어 후드득 내리기 시작하는 빗방울들이 점점 굵어진다. 어쨌거나 정상에서의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접근해보나 설자리가 없다. 우리 일행 한사람이라도 동행했으면 이루어 질 수 있었으나 이미 다음 목적지인 백운봉으로 모두 떠나버려 현장의 다른 사람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해 보려던 계획이 무산돼 버렸다. 붐비는 장소에서 사진촬영 부탁은 대 실례였다. 제법 떨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우리 일행과 합류하면서 빗발이 조금 수그러든다. 앞에 전개되는 백운봉의 웅장한 암벽과 그 뒤로 우뚝 솟은 업진봉과 숙승봉의 예봉이 왁연히 드러난다. 마치 봉우리가 잠자는 스님 같다하여 붙여진 숙승봉은 드라마 ‘海神’에 자주 등장하여 설지 않다.
서쪽바다 건너로 달마산이 산줄기를 이루고 있고 서북쪽으로는 두륜산과 가련봉이 웅장하게 솟아 있다. 비오는 흐린 날씨 탓으로 선명하게 보이지 않으나 그 모습만은 유명산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상황봉에서 1시간 정도 만에 백운봉에 도착한다. 백운봉으로 가는 길목에는 주위가 확 트인 조망처가 여러 곳 있으나 그 중에서 2군데의 경치 좋은 조망처를 선정해 목재로 지은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백운봉정상은 커다란 마당바위도 있고 네모진 바위들로 형성되어 있어 조형물을 보는 듯 특이한 형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운동 동쪽은 수십m의 아찔한 단애로 이루어져 있어 동서남북 조망처로 일품이었다. 정상에는 백운봉이라 이름 새겨진 바위가 우뚝 서있어 기념촬영을 했다.
정상에서 업진봉 방향으로 2분쯤 내려가니 철사다리를 만나고 이어 2분쯤 가니 철사다리가 다시 나타난다. 바로 앞쪽에 업진봉과 대야리 방향 이정표가 서있다. 우리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기로 했기에 대야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곳에서 대야리 에덴농원까지는 1시간30분정도 걸린다. 백운봉 동쪽 사면으로 내려서는 암벽지대는 두부를 칼로 베어놓은 듯 네모진 바위들이 차곡차곡 늘어서 있어 정상에서 본 조형물 같은 바위들을 다시 보게 된다. 푸른 산죽들이 수없이 들어찬 산행로는 다시 정비를 해 놓은 듯 나일론 끈으로 유도선을 쳐놓아 길 찾기에 어려움이 없다. 20분 정도 내려가자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가로 질러 산행로를 따르니 다시 산행로는 고도를 높인다. 해발 약 200m에서 477봉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에덴농원 도착지점을 30분정도 남기고 있는 곳에 약 15m 높이의 송곳바위가 정말 하늘을 찌를 듯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있다. 이곳 부터는 산행로는 크고 작은 암벽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간간이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우리는 5시간에 걸친 상황봉~백운봉~송곳바위 일주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에필로그 : 莞島의 象皇峰(일명 五峰山)을 우습게 보았던 인식을 새롭게 한 산행이었다. 우선 自生하는 국내 최대의 暖帶性 常綠樹林의 寶庫이고 겨울철에도 짙푸른 난대림으로 뒤덮인 珍貴한 산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른 봄에는 피 빛의 붉은 동백이 산 곳곳에 피어나 봄철 등산객들을 호사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조망, 이곳에서 바라보는 달마산 두륜산 가련봉 뒷면의 이색적인 雄姿함과 이 고장의 산들이 갖는 특이성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이곳의 아름다운 암릉 산 주작산과 덕룡산을 언제가 꼭 찾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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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직, 청춘! 참 대단하십니다. 멀리 완도까지 가서 해맞이를 하시다뇨.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우시기 바랍니다.
새해 아침을 정말 멋지게 맞이하셨군요. 부럽습니다. 올 한해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에 늘 웃음꽃이 만발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