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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2:21-29 내게 축복하소서
호두나무 과수원을 하는 농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딱 1년 만이라도 날씨를 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과수원 지기는 호두나무에 가장 좋도록 날씨를 마음대로 조정했습니다. 햇볕이 필요할 때는 햇볕이 쬐게 했고, 비가 필요할 때는 비가 내리도록 조정했고, 덜 여문 호두가 떨어지게 하는 바람은 불지 못하도록 조정을 했고, 폭풍우나 천둥 치는 일도 없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한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수확의 계절을 맞아 예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 풍년을 이루었습니다. 주인은 기분이 매우 좋아서 산더미처럼 쌓인 호두 중에서 하나를 깨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커다랗게 잘 자란 호두는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빈 껍질뿐이었습니다. 잔뜩 성이 난 농부는 하나님을 찾아가 "하나님,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련이 없는 것은 알맹이가 없단다. 폭풍우 같은 방해도 있고, 가뭄 같은 갈등도 있어야 껍데기 속의 속알이 깨어나 알맹이가 여무는 법이지. 네가 좋은 날씨만을 준 것은 호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호두를 죽인 거란다.”
형통의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여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받는 것이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야곱은 배고픈 형에게 팥죽을 팔아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 형에게 줄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 일로 형을 피하여 라반 삼촌 집으로 도주하였습니다. 삼촌 집에서 20년을 보내면서 속고 또 속으며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은 온 식구들과 재산을 챙겨 삼촌 몰래 고향으로 도주합니다. 그런데 풀리지 않은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20년 전 형을 속이고 피해 도망 왔는데, 그 형을 다시 만나야 하니 마음에 걸리고 두렵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삼촌 집에 가서 피해 있으면 형의 분노가 누그러지면 너에게 기별할 테니 그때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약속을 했지만 20년의 세월 속에 좋은 기별은 오지 않았습니다. 형 에서의 마음속은 여전히 야곱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 명의 종들을 형에게 보냈는데 돌아와서 하는 보고가 큰일 났습니다. 에서 형이 군사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창 32:7)
심히 두렵고 답답한 밤에 아내와 자식들에게 얍복강을 먼저 건너게 하였습니다. 야곱 자신은 얍복강을 건너지 않고 혼자 남았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 32:24)
여호와의 사자가 야곱을 찾아와서 먼저 건 씨름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의도적으로 건 씨름입니다. 실제 씨름하듯 영육 간의 모든 힘을 쏟아 눈물로 붙들고 필사적으로 간구하는 야곱의 기도 모습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호 12:3∼4)
천사가 마침내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그러자 뼈가 부러졌습니다. 이 환도뼈는 엉덩이 아래쪽 넓적다리를 받들고 있는 좌골입니다. 고대 군인들이 이곳에 칼을 차서 ‘고리 환(環)’자에 ‘칼 도(刀)’를 써서 환도뼈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환도뼈는 몸의 중심으로 힘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치심으로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졌습니다. 씨름의 승패는 이미 끝났습니다. 더 이상의 씨름은 불가능합니다. 야곱은 이제 힘이 아닌 눈물로 매달리며 간구했습니다.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
끝까지 눈물로 매달렸습니다. 울고 또 울며 간구했습니다. 필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저는 야곱입니다.’ 야곱의 뜻은 ‘속이다’ ‘사기를 치다’ ‘빼앗는다’라는 말입니다. 그는 지금껏 자신의 이름처럼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기 치고 거짓말하고 잔꾀 부리며 자기 이름에 걸맞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환도뼈가 위골되었는데, 부러졌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림으로 이긴 것입니다.
야곱의 기도를 통해 기도의 중요성을 주님의 음성으로 듣겠습니다.
첫째, 기도하면 나부터 변합니다
에서 형이 동생을 환영하러 군사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올까요? 무장한 군사를 몰고 온다는 것은 20년 전의 원한을 갚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고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먼저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더는 야곱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눈물로 구하는 이스라엘처럼 살아라. 너 생각대로, 너 방식대로, 네 뜻대로 너의 힘대로 살지 말고 다 비우고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라. 그는 먼저 이스라엘로 변했습니다.
다음으로, 기도하면 기도 대상이 변합니다
동생을 향한 적개심이 가득한 에서의 마음, 원한을 갚겠다고 군사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 에서를 누가 터치하고 변화시킬까요? 절대 용서 못 한다는 마음을 누가 녹일까요? 죽어도 예수님 안 믿고 교회 안 나간다는 사람 누가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사람은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시고 녹여주시고 역사하십니다. 믿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여 은혜 입게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전도할 사람을 움직여 주십니다.
우리가 눈물로 기도할 때 믿다가 쉬고 있는 사람을 움직여 주십니다.
믿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365장
그다음으로, 응답받으면 새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창 32:31)
야곱은 홀로 남아 하나님께 밤새워 몸부림치는 기도를 했습니다. 자기 힘, 자기 중심의 환도뼈가 부러지자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아 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새 아침의 은혜는 자기 힘을 내려놓는 자, 자기 방법, 자기 아집과 고집을 버리는 자, 환도뼈가 위골되어 저는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정말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는 설교하도록 부르심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부르심과 명령은 받았습니다. 전도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전도는 반드시 해야 하는 성도의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시기 전에 밤샘 기도를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 중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처음과 끝이 기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본받아 열심히 성실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기도는 나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주님의 명령이니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눅 22:39)
예수님은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반복하면 습관이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는 습관이 길러지고 기도하고 기도하면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집니다. 새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기도하시길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32:26)
내게 축복해 달라고 울며 매달렸습니다. 분명한 목표, 분명한 기도 제목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밤중에 여행 중인 벗이 자기 집을 찾아 왔는데 집에 먹을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친구 집으로 급히 가서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친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눅 11:7)
배고픈 친구를 위해 염치 불고하고 계속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 소리쳤습니다. 결국, 떡 세 덩어리를 얻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눅 11:8)
벗 되므로 준 것이 아니고 계속 꾸어 달라 ‘간청함’ 때문에 준 것입니다.
“간청함”이란 말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라는 뜻입니다. 잠자리에 들었으니 안 된다고 거절해도 개의치 않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떡을 얻어 친구를 대접했습니다.
한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존경하거나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인성이 몹시 나쁜 재판관이었습니다. 그런 재판관에게 힘없고 약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눅 18:3) 간청을 했습니다. 그 호소에 대한 재판관의 태도는 완전 무시였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되는 간청에 재판관은 생각이 흔들렸고 마침내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눅 18:5)
그 여자의 간청은 분명했습니다.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라는 한 가지였습니다. 불의하고 나쁜 재판관도 들어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두 가르침 모두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두리뭉실하게, 폭넓게 구하지 마시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야베스는 기도로 존귀하게 된 사람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대상 4:10)
“나의 지역을 넓혀 주옵소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 두 가지 기도 제목으로 늘 기도했습니다. 인생을 건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대로 복을 주어 그의 지경을 넓혀 주었습니다. 기도대로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주었습니다. 야베스는 분명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서 성공한 사람,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늘비전 가족 여러분, 성도는 기도할 때 변합니다.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나부터 변합시다. 기도해야 변합니다. 또 기도할 때 상대을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십니다. 내가 기도할 때 새 아침을 맞이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빛나는 새 아침을 위해 “나에게 큰 축복을, 교회에 큰 부흥”을 달라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합시다. 그래서 기도로 성공하고 존귀해지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찬송가 36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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