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수록된 단편소설 '분홍 리본의 시절'은
잡지《황해문화 2005년 봄호》에 처음 발표됐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처음으로 내게 똑 떨어지는
반말을 했다. "내가 그렇게 만만했니, 니들?"
나는 무슨 변명인가를 하려 했지만 목구멍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조여들면서 혀뿌리가
갈라지는 듯한 통증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배의 아내가 떠난 후 나는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언니라고 살갑게 부르면서 선배의 아내를
기망한 나. 호시탐탐 선배에게 가랑이짓을
한 나. 쎅스광인 수림을 한없이 혐오하면
서도 온 정력을 다해 질투한 나. 모든 정보
를 모른 척 누설한 나. 고립이란 명분 뒤에
서 늘 추잡한 연루를 꿈꾸어온 나.
다시 이삿짐을 쌀 때쯤 내 혀는 원래대로
곱게 접착되어 있었다. 현실은 한 입 속에
두 혀를 갖지 않는다. 나는 노끈을 리본
모양으로 단단히 묶으면서, 그래도 혀가
한쌍이었다면, 비록 고통 속에서라도
철판 위의 곰을 춤추는 듯 보이게 하는
한쌍의 곰발바닥처럼 내 혀가 번갈아
내디딜 수 있는 찰나의 유예를 허락하는
한쌍의 분기하는 욕망이었다면, 내 삶은
지금과 아주 많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서른 살의 반이 지나가고 반이
남아 있는 갈림길에서였다.
*
몇년 후 나는 아는 사람에게서 주선배 부부가
이혼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볼일이었는지 그들 부부는 고사(枯死)한
은행나무가 있는 선배네 고향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상징적 의례를 중요시하는
선배의 성정으로 보아, 아마 이혼하기로 한
사실을 아버님 산소에 고하러 간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지프 뒷바퀴가
빠지면서 차체가 중앙선을 넘어 한 바퀴 핑그르
르 돌고 옆으로 쓰러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운전을 하던 선배의 팔이 비틀렸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선배의 아내가 잠깐 기절했다 깨어난
것뿐이었다. 견인하러 온 기사와 구급대원들
조차 그들 부부의 경미한 부상에 약간 속은
얼굴이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병원 두 군데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선배의 팔에 미세한 금이 간 것 말고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 후 그들은 계속 신(新)도시
에서 함께 살고 있고 아직도 아이는 없다고
했다. 매우 잘된 일이라고, 천만다행한 일이라
고, 차분한 내 혀는 거듭 중얼거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