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있는축구] 서호정 기자= 독일판 CNN인 뉴스채널 n-tv는 23일 ‘분데스리가에 지진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바이에른 뮌헨(이하 바이에른)이 독일 축구의 미래로 꼽히는 92년생 미드필더 마리오 괴체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이하 도르트문트)로부터 영입한 내용을 전하면서 내 건 헤드라인이었다. 바이에른은 괴체를 데려오기 위해 바이아웃 금액인 540억원 가량을 도르트문트에 지불하기로 사인했다. 이는 분데스리가의 독일 자국 선수 최고 이적료 신기록이다. 바이에른은 지난 여름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미드필더 하비 마르티네스를 데려오며 580억원의 이적료를 지출한 바 있다. 분데스리가 최고 이적료 기록이고 지난 여름 유럽 축구 최고 이적료였다.
그리고 지난 이틀 동안 유럽 축구계는 독일발 지진에 깜짝 놀랐다. 바이에른과 도르트문트는 현재 세계 축구의 정상에 있다는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꺾었다. 그것도 각각 4-0, 4-1의 대승이었다. 물론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그들의 홈에서 반격과 역전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두 경기는 분데스리가가 지난 10년 간 준비해 온 프로젝트가 그 성과를 드러내고 있음을 만방에 알리기에 충분한 존재감이 있었다.
'바바리안의 거인'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부흥의 선봉이다 (사진=게티이미지) |
세계 최고의 리그로 돌아온 분데스리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의 엘 클라시코를 예상했던 많은 사람들의 오만은 이제 독일 축구의 저력, 그리고 부활로 눈길이 모이고 있다. 월드사커는 최신호에서 실시한 세계 축구리그 조사를 통해 독일 분데스리가를 최고의 리그로 선정했다. 관중, 재정, 스타플레이어, 경기장 등 총 8개 항목으로 평가해 합산 점수로 순위를 매겼다. 분데스리가는 이 조사에서 총 60점을 얻어 55점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46점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이하 라리가), 37점의 이탈리아 세리에A를 제쳤다. 특히 분데스리가는 관중 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난 시즌 평균 관중 4만5,116명으로 프리미어리그(3만 4,600명), 라 리가(2만8,796명)을 크게 따돌렸다. 재정(2위), 경기당 평균 골 수(3위), 최신 설비 경기장(2위) 등 전 부문에서 고른 배점을 받았다.
70, 80년대 최고의 리그로 평가 받았던 분데스리가는 2000년대 들어 추락을 거듭하는 듯 했다. 2002/2003시즌부터 2008/2009시즌까지 챔피언스리그 4강에 단 한 팀도 가지 못했다. 같은 기간에 EPL은 13회, 라리가와 세리에A는 각각 6회씩 4강 진출을 일궜다. 유명 스타들도 대부분 유럽 3대 리그로 꼽힌 EPL, 라리가, 세리에A로 향했다. 대외경쟁력과 화려함의 실종은 분데스리가의 쇠락처럼 표현됐다. 그러나 분데스리가는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눈 앞의 현실이 아닌 미래를 준비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유로2000에서의 잇단 실패가 자극제가 됐다. 국가의 장려와 지원 속에 유스 아카데미에 투자를 시작했다. 지난해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자체적으로 유스시스템에 투자한 금액은 1,100억원이 넘는다. 이것은 리그 총 매출의 4% 수준이다. 2001년부터 누적된 투자만 1조원이 넘는다. 2009년 유럽 U-21 챔피언십 우승으로 그 열매가 맺기 시작했다. 당시 멤버는 마누엘 노이어, 제롬 보아텡, 마츠 훔멜스, 사미 케디라, 메수트 외질, 데니스 아오고, 마르첼 슈멜처 등으로 현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얼굴들이다. 분데스리가에는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없다. 그러나 좋은 선수를 찾기 위해선 분데스리가로 향해야 한다.
이제는 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한 클럽대항전에서도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다. 분데스리가는 지난 네 시즌 동안 각기 다른 3개 클럽(바이에른, 도르트문트, 샬케)을 챔피언스리그 4강에 보낸 유일한 리그다. 세리에A는 2009/2010시즌 인터 밀란의 우승 후 심각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EPL은 내부 경쟁이 치열해진 반면 외부에서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느낌을 준다. 올 시즌 8강에 한 팀도 진출하지 못하며 충격을 경험했다. 라 리가는 바르사와 레알이라는 강력한 쌍웅이 있지만, 그만큼 그들이 받는 견제도 크다.
분데스리가의 대외 경쟁력 강화의 상징은 역시 바이에른이다. 그들은 올 시즌 도르트문트와의 내부 경쟁에서 다시 우위를 점했다. 23번째 분데스리가 우승을 조기에 확정했다. 리그에서 89득점을 하는 동안 14실점 밖에 하지 않았다. 리가(확정), DFB-포칼(결승 진출), 챔피언스리그(4강 진행 중) 모두 차지하는 트레블에 도전 중이다. 지난 1월 바이에른은 이미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지병으로 인해 올 시즌이 끝나고 물러나게 될 유프 하인케스 감독을 대신할 새 감독으로 펩 과르디올라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를 떠난 뒤의 무성한 루머를 뒤로 하고 과르디올라는 바이에른을 택했다. 바르셀로나의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만든 그가 바이에른을 새로운 도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 바이에른이 지난 밤 바르셀로나를 완파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바이에른은 완벽하게 준비가 된 팀이다. 그것이 과르디올라가 첼시, 맨체스터 시티 등을 거절하고 독일로 가는 이유다. 지난 세 시즌 동안 바이에른은 두 차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랐다. 물론 두번 다 우승엔 실패했다. 가장 뼈아팠던 것은 홈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첼시에게 당한 지난 시즌의 패배였다. 자신들이 키워낸 선수(필립 람, 토마스 뮐러, 다비드 알라바, 홀거 바트스튜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니 크로스, 디에고 콘텐토 등)에 분데스리가 내 다른 팀에서 자라난 선수(마누엘 노이어, 마리오 괴체, 제롬 보아텡, 마리오 고메스, 단테, 루이스 구스타보, 마리오 만주키치 등)를 영입하는 그들만의 방식을 이어가면서 리그 밖의 재능에도 주목하며 지갑을 열고 있다. 프랑크 리베리, 아르연 로번이 그렇게 왔고 하비 마르티네스, 샤키리 등이 최근 당도했다.
도르트문트는 리그 3연패와 유스 출신의 자랑이었던 괴체까지 바이에른에게 잃어 상실감이 있지만 여전히 강력한 클럽이다. 2010/2011, 2011/2012시즌 연속 우승의 저력은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열광적인 경기장인 지그날 이두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4-1로 꺾었다. 이미 조별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와 만나 승리했던 경험이 있었다. 도르트문트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무패(7승 4무)를 기록 중이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유럽을 대표하는 명장으로 거듭났다. 무료한 독주로 인해 자만감에 빠졌던 바이에른을 잠에서 깨게 해 준 것으로 도르트문트의 공은 특별하다.
타 리그를 압도하는 관중, 분데스리가는 내수 시스템이라는 기본에서 출발한다 (사진=게티이미지) |
모두가 함께 크는 유럽축구의 새 파워하우스
다음 시즌 분데스리가의 중계권료는 6억 3천만 유로다. 1조에 근접한 거액이다. 전년 대비 17%가 상승했다. 아직은 자국 내 중계권료의 1/10 수준이지만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중계권료도 전 시즌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중계권료만 놓고 보면 EPL의 1/3수준이지만 라 리가와 리그앙은 넘어섰다. 세리에A 중계권료와 대등한 수준이다. 이 중계권료를 분데스리가는 최근 네 시즌 성적을 기준으로 배분하는데 대신 클럽 별로 큰 편차를 두지 않는다. 바이에른과 도르트문트, 레버쿠젠, 샬케 등 성적을 꾸준히 냈던 큰 클럽들은 다음 시즌 500억원 내외의 중계권료를 받아간다. 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 같은 하위권 팀들도 300억원 가량을 챙겨갈 수 있다. 함께 큰다는 분데스리가의 확실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중계권 수익의 1/3을 가져가는 라 리가를 비롯한 돈의 집중화가 벌어지는 타 리그의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분데스리가의 크리스티안 제이펠트 사무총장은 “오늘의 스포츠는 지나치게 경쟁을 심화시킨다. 이럴 경우 하루살이 밖에 되지 않는다. 분데스리가의 방식은 다르다. 한 경기로 감독을 판단할 수 없듯, 한 시즌으로 모든 걸 잃길 원치 않는다”며 그들의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분데스리가는 중계권료의 20%를 2부 리그에 할당하는데 이는 EPL처럼 1부 리그와 2부 리그가 연동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분데스리가는 리그 전체 비용의 38%만이 인건비에 쓰인다. 바이에른 정도를 제외하면 타 리그의 거물급 선수를 쉽게 데려올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독일차가 그렇듯 화려한 아웃테리어와 인테리어보다는 정숙성, 탄탄한 구조를 분데스리가는 택했다.
분데스리가는 전세계 축구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 확실하다. 안정성과 형평성에 기반을 둔 그들은 리그 전체가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장기적 관점의 성장을 가능케 한다. 한때 바이에른의 독주가 우려를 자아냈지만 그것은 경기력일 뿐이다. 리그 전체의 경쟁력은 결국 상향화되고 있다. 도르트문트가 언제 뒤집을 수 있다. 다른 클럽들에게도 기회가 있고 그들은 준비를 하고 있다. 하부리그의 작은 클럽에 재정 위기가 닥치면 바이에른을 비롯한 큰 클럽들은 자선경기를 열어 그들을 돕는다. 분데스리가, 그리고 독일 축구의 저력은 곧 독일이라는 국가와 사회가 지닌 힘, 성향과 비례한다. 저변의 강화, 국가 지원, 팬들의 합리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소비 말이다.
그들이 의중을 알 수 없는 러시아의 검은 돈이나 중동의 오일 머니 없이도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내수 효과로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 클럽들은 오프시즌에 아시아로, 북미로 투어를 가지 않는다. EPL이나 라리가처럼 동남아의 작은 나라에까지 자신들의 두터운 팬층을 구축하진 못하지만 그들이 택한 것은 자신의 마을, 동네, 도시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아시아 선수를 데려오는 것은 그들이 지닌 상업적 배경이 아닌 본연의 재능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정당한 값어치를 매겼다.
제이펠트 사무총장은 “분데스리가 대부분의 클럽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지역민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 그만큼 안정성이 보장되는 곳이다. 독일의 축구팬들은 자신들의 클럽이 재벌의 장난감이나 애완동물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돈을 쓰고 구단이 자립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라며 세계에서 가장 건전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분데스리가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지난 5년 간은 스페인 축구를 찬양하던 시대였다. 바르셀로나는 그들의 방식(티키타카)과 시스템(라마시아)을 통해 세계 축구에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숙적 레알 마드리드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 재능 있는 선수들을 끌어 모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발렌시아, 빌바오, 말라가 등은 두 클럽이 뿜어내는 찬란한 빛에 가려졌지만 클럽대항전에서 라 리가의 우월함을 증명해 보였다. 이제 그 존경과 배움의 시선은 분데스리가로 옮겨지게 될 것이다. 세계 경제가 흔들릴수록 분데스리가가 지닌 안정성은 빛을 발한다. 화려한 욕망과 빚더미로 점철된, 언제 위기가 닥칠 지 모르는 리그가 아닌 10년, 100년을 꾸준히 걸어갈 클럽들이 있는 분데스리가. 그들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