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
도산서원의 봄
이정연
산모롱이 돌아서면
바람도 쉬어가는 양짓녘
고목 한 그루
그리움으로 앉아 있습니다
발 아래 흐르는 강물도 외로워
산 그림자 안고
한낮의 정적을 깨웁니다
수백년 흙담이
두꺼비 등 같은 기와를 이고
유생들 드나들던
문지방 바라보며
불그레 눈시울 적십니다
주인 잃은 서재는
은은한 묵향에 마음 달래고
사랑채 앞 매화나무
사무치는 꽃 망울 터뜨리니
아련한 님의 향기 인가
스치는 바람결에
풍경소리 울립니다.
시2)
가을 마중
이정연
코발트 빛 하늘에
그리움 하나 던지던 날
봉선사 뜨락은 오색 물들일
채비에 분주하다
둘레길 숲내음
코끝을 간지럽히며
엷은 미소 띤
바람 한 점 불러온다
산모롱이 돌아 굴참나무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놀던 물봉선
풋밤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세운다
호젓한 길가
막 물들기 시작한 산수유
발그레한 새 각시
볼인사 건네오고
호수가 모래밭에
솔향에 취한 학
한 폭의 그림으로 내려 앉는다
둘레길 끝나갈 무렵
피어나기 시작한 갯국화
부푼 마음으로
저만치 앞서 마중 나선다.
시3)
주말농장 풍경
이정연
그곳에 가면
막내녀석 네 살적 고사리손이
밭고랑에 속삭이고
큰 아들 어릴적
그림일기에 엄마 주먹만한
감자를 신나게 캐는 날도 만난다
애들 아빠가 일주일 내내
흘린 땀방울로 재워 온
양념바베큐 고기와
그날 보태는
풍로소리로 타닥거리는
숯불아래 엉덩이 깔고 앉은
고구마도 빠질세라
한몫한다
어느새 잉걸볼 되어버린
아빠얼굴에 아이들이
개걸스레 흘린 군침이
번들거리고
남은 상추쌈에
바쁜 손이 간 딸아이
눈빛이 아빠에게 달려간다
나는 곁에서 그 풍경 바라보며
사그라 들어가는 숯불아래
익은 고구마 찾고 있다
초록이 춤추는 밭
한켠에 우리가족도 춤추고 있다.
약력
* 시인•시낭송가
* 2019년 시부문 등단
* 2020년 국자감 문학상 수상
* 2022년 노원구 시낭송대회 은상수상
* 2022년 윤동주 문학상 외 다수
* 서울중구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