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대에게 돌아가리라
최 화 웅
요즘 들어 한 번씩 죽음의 예감이 스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병이나 건강상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언젠가 병들고 늙어 죽을 자신에 대해서 솔직해야 한다. 아니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담담해져야 한다. 나는 처음 엄마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생명을 받았다. 탯줄은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내보냄으로써 생명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오는 날 탯줄은 끊겨 홀로 남겨졌다. 엄마와 이어진 탯줄이 끊기는 순간, 삶과 죽음은 그때부터 치열하게 이어졌다. 한 발 물러서 보면 생명은 죽음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날마다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면서 삶에 덧칠을 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모순되는 논리 속에 상반된 시각으로 수수께끼 같은 껍질을 벗긴다. 죽음에 대한 예감은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죽음에 이를 때까지 스스로를 뭉개고 착취하며 잔인하게 짓밟는다. 그만큼 죽음으로 가는 길은 오직 자신에게 달려있는지 모를 일이다.
나고 죽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 탯줄이 우리에게 생존의 이유인 것처럼 탯줄은 또 다른 가치를 지니고 다가선다. 삶과 죽음,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한 몸으로 다른 이름을 가졌을 뿐이다. 세상 여기저기서 “죽어야 산다.”고 외친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했고 불가(佛家)에서는 생사일여(生死一如), 생사불이(生死不異)라고 보았다. 우리의 일상은 삶과 죽음을 끝임 없이 넘나든다. 나고 죽는 것은 시간의 고리로 연결되어 반복을 거듭한다. 삶이란 죽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은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나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시간과 공간속에 존재한다. 마르틴 루터가 청소년시절 라틴어를 배우기 위해 머물렀던 아이제나흐에 세워진 기념비석에 “그리고, 내일 세상이 멸망함을 알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고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서 스피노자도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탈무드 편찬에 참여한 바 있는 마빈 토게이어는 최근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라는 책을 통해서 오늘에 충만한 삶을 우리에게 촉구했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단 한번 태어나 결국 죽지만 인문학적으로는 깨우칠 때마다 새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현실적인 의미의 부활이요, 우리가 영생하는 길이다.
성지순례 때 버스로 시나이반도를 가로질렀다.
무장한 초병들이 오가는 삼엄한 국경마을 타바에서 까다로운 입국절차를 거치고서야 버스는 다시 쿰란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는 두 곳의 바다 같이 넓은 호수가 있었다. 북쪽에는 ‘기적의 바다’ 갈릴래아 호수가 있고 남쪽으로는 ‘죽음의 바다’로 불리는 사해가 그것이다. 갈릴래아 호수는 하프 모양처럼 생겼다고 히브리어로 키네레트 호수라고 했고 겐네사렛 또는 티베리아 호수라고도 불렀다. 호수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마을 카파르나움, 베싸이다, 티베리아스 등 12마을이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다. 갈릴래아 호수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첫 제자를 부른 곳으로도 유명하고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을 비롯해서 물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잠재우신 기적의 현장이다. 기독교 순례객들에게는 ‘베드로의 물고기’와 ‘베드로의 배’가 덤으로 관심을 끈다. 갈릴래아 호수의 크기는 남북으로 21km 동서로 11.2km다. 사해는 갈릴래아 호수보다 훨씬 크고 넓다. 이 두 호수는 지중해의 해수면에 비해 갈릴래아 호수가 해발 -206m, 사해는 더 낮은 -400m다. 그만큼 두 호수의 낙차가 커서 요르단 강이 직선거리로 104km를 쉼 없이 남으로 흘러내린다. 갈릴래아 호수는 요르단 강이 발원한 헤르몬 산으로부터 들어온 물로 호수를 이루고 넘치는 물은 요르단 강을 통해 다시 사해로 흘러간다. 요르단 강은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이나 찬송가에서 요단강으로 소개된 바 있다. 갈릴래아 호수는 평상시에는 고요하나 큰 폭풍을 만나면 성난 파도가 이는 곳이다. 받은 것만큼 나누는 갈릴래아 호수는 생명의 현장을 이루고 있으나 받기만 하고 내놓지 않는 사해는 염도가 바다보다 8.6배나 높아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다.
갈릴래아 호수와 사해에서 하룻밤씩을 묵었다.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려고 이집트를 탈출했던 옛 이스라엘 민족의 탈출경로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마주하는 요르단 강가에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우선 갈릴래아 호수가 수평선이 보일만큼 큰 호수임에 놀랐다. 호숫가 앵 게브(Ein-Gev)호텔의 방갈로에 여장을 풀었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갈릴래아 호수의 풍광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호수를 스쳐오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새소리와 나무숲의 속삭임이 황홀한 분위기로 몰고 갔다. 서정이 짙게 드리운 저녁놀과 빛나던 호수의 잔물결이 온 몸을 감쌌다. 맑고 잔잔한 호수에 낮은 언덕과 숲이 병풍처럼 둘러친 스카이라인도 아늑했다. 서산에 기우는 해가 만들어 놓은 산 그림자와 그날따라 유난히 밝은 달빛이 피운 윤슬이 길게 펼쳐졌다. 풍요로운 갈릴래아 호수에 비해 사해는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뜨거운 모래들녘뿐 드물게 좁은 경작지가 눈에 띄었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현장이라는 기분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삶은 자신이 가진 사랑을 아낌없이 내놓는 것이고 죽음은 의혹과 미움을 안고 갈등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삶과 죽음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삶과 만남이 기쁨으로 넘치고 죽음과 헤어짐은 슬픔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찍이 탈무드는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게 3가지라고 가르쳤다. 물로 바다를 채울 수 없고 바람으로 하늘을 채울 수 없으며 욕망으로 인간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현실 앞에 맞닥뜨린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을 생각하고 깨닫게 한다. 매사에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卽死)’의 각오를 다시 새긴다. 아! 홀가분하여라. 악몽 같은 예감을 딛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 한다. 이제 피로에 찌든 나 그대에게 돌아가리라.
첫댓글 오늘은 부활성야이네요...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은 얼마나 용기를 주는 일인지요...부활 축하드립니다...^^*
마음지기님! Happy Easter
'필사즉생, 필생즉사' 마음에 간직하며 살고 싶습니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저 역시 부활절을 맞아 희망님의 가슴에 진정 거듭 태어나는 기쁨을 누리시길 빌겠습니다.
부활아침에 참 좋은 글 읽어 기분이 좋습니다.
참나리님! 기쁜 부활 맞으십시오.
어쩌면 예수님 말씀과 갈리래아 호수와 사해의 상황이 이리도 맞을까요?
정말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과 삶을 접하고 변화하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에로 넘어가기 위한, 참생명으로 넘어가기 위한 마지막 자신의 정화와 사랑의 승화의 마무리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냥 말이나 이야기로만이 아닌 이 자체도 훌륭하지만요 직접체험하신 쓰신 이글을 읽고 저의 마음이 정말 한결더 넗어 졌읍니다.
좋은 글들 의미있고 깊은생각 많이 하시면서 성심히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활 축화 드립니다.(지면이 없으면 모를까요 이 인사를 빼먹었었네용 (아이콘을 몰라서료 직접 글로 부끄부끄, sory요.) )
다시 한번 이집트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묵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다시 한번 더 이집트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기억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만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보고 싶은 성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순례의 원 의미는 "들판을 가로 질러"라고 합디다.
저의 경험으로는 저의 믿음과 삶을 돌아보는 계기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가졌던 값진 체험과 깨달음 속에서 은총받으시길 바랍니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부모님 산소가 있는 경주 천북에 갔다가 조금전에 도착했습니다.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욕망으로 인간을 채울 수 없다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명금당님! 부활 잘 맞으셨죠? 축하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예수님부활을!!!
오늘도 그대에게 돌아 가는 길에서 열심히 걷다 뛰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가고 있는데 아는 분을 만나 담소하며 또 가고 있는 중입니다. 좋은 글 감사 드려요.^ ^*
주님의 부활과 함께 님께서도 거듭 태어나시길 기도할께요.
비오 국장님,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건강히 잘 계시죠...엘리님은 미국에서 오셨나요?
5월의 어느 날 ...아데초이에서 한 조각의 빵과 함께 커피 한잔 할까요...^^*
예, 신부님! 지난 4월 1일 돌아왔습니다. 저는 지난 3월부터 술을 끊고 특별건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아데초이의 빵이 일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