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주민 여러분 ‘삭시마을’을 아시나요?
김포에서 서남쪽 약 12km에 위치한 이곳은 대명리 포구로 가는 방향에서 아래쪽 인천 방향 쪽으로 약 300m내려오면 대벽리 가는 데로
2차선 좁은 도로가 연결되어 이리구불 저리구불 한적한 야산자락을 지나 6km쯤 가다가 그곳이 ‘어무루’라는 마을 옛 인천을 가노라면
이곳에서 똑딱선을 타고 다니었던 교통수단이었다.
바로 좌측으로 논뚝 건너로 보이는 곳이 ‘선비골’ 삭시마을 이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담한 여는 농촌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서 마을
어귀에 수종 550여년의 노거수가 먼저 호령이라도 하듯 손짓하며 반겨주고 대여섯 가구의 농가가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으며
2년前 김포문화원 주관으로 설치한 최 항 선생의 석상과 유허비가 우뚝 서서 주위 자연경관과 어울려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최 항 선생은 김포의 영광
그리고 김포시내에서 83번 마을버스가 유일하게 마을 어귀까지 운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행정구역상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학운리로
되어 있으며, 우리 한글을 창제하신 최 항 선생께서 살고 계셨던 곳으로 옛날을 회고해 보고자 합니다.
나라에 큰 공이 있는 분에게 내려주는 사패지로써 그 후부터 삭녕최씨가 처음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하여 ‘삭’시라 하였으며,
근처에는 처남인 사가정 서거정 선생과 대포지에 목안정(木雁亭)을 짓고 사시는 눌재 양성지(대제학) 선생이 이곳에서 교육한다는 소식
을 듣고 삭시어귀 경치 좋은 곳에 태허정 정자와 집을 짓고 사시면서 윤자윤(영의정) 서석, 김국광(자의정)선생外 신숙주 구치관 한계
희 선생 등 많은 선비들이 시서(詩書)를 강록하고 국사를 논의 하셨으며 이처럼 많은 선비들이 구름처럼 오셨다하여 학운리라 지명되었고
화기애애한 선비마을로써 그 명성이 자자하였다.
또, 해수가 학운산에 부딪쳐 들리는 소리는, 노래곡조 같고, 석양에 갈매기 울음소리, 흥경운 가무를 즐기는 듯.....
석양의 붉은 노을이 어우러진 풍경은 선인의 터가 확실하구려!
오늘날 학운리에는 느티나무만 후손에 의하여 보호되고 태허정 최 항 선생이 사시던 집과 정자, 우물터, 향나무는 간 데가 없고
그 흔적만 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무상하고 허무한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회포의 가슴이 뭉클하지요.
이렇게 훌륭한 선비요 학자이신 선생께서 이 고장에 사셨던 것은 김포주민의 영광이요 또한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구 찬란한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을 생각하면 우리 한글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 고마움과 다행스러운 생각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우리 모두가 힘차게 정진하도록 새로운 각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문자도 없고 말도 없는 암흑에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알고 읽고 쓰고 말하기 편한 우리 한글을 창제하고 그 업적을 새롭게
추앙하고 역사의 발자취를 길이 보전하여 문화 발전의 초석으로 응용 하는 일이 먼저 우리가 할일이 아니겠는가?
정자터 복원, 자료전시관 신축
실로, 우리 김포의 주민으로써 이렇게 훌륭한 선비께서 이 고장에 사셨다는 사실을 모른 사람이라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먼저 집터 우물 정자터를 복원하고 정자나무를 보살피는 일이 먼저 우리 고장 주민들이 할일이며 자료 전시관을 신축하여 자라
나는 후손들의 견문을 넓히는 장으로써 그리고 정신적 문화 창달의 길잡이가 되는 교육의 산실로써 그 효과를 기대하여 봅니다.
이웃 남양주市에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자료 전시관을 신축하고 각종 자료를 전시하여 개관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에, 우리 김포에서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미래를 지향하고 또 빛나는 조상의 얼을 되살려 우리 모두가 ‘학운리 복원운동’에 함께
동참하여 늦었지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합시다.
축복받고 살기 좋은 우리 김포의 자존심을 걸고 하루 속히 그 실천을 다짐하면서 총궐기합시다!
올해 561돌 한글날에도 김포 문화원에서 10월 행사 때 최 항 선생 문헌 전시회도 같이 전시할 계획이니 많은 시민들께서 참여하여
김포의 문화 발전에 큰 힘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태허정 최항선생 17대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