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중국
(中國)
예기란 중국고대 귀족들이 종묘와 궁실등에서 의식을 거행할때 사용한 도구이다. 사용자의 지위,신분,권력에 따라 엄격한 제한을 두어 사용하였으며 옥,청동,목재등으로 만들어졌다. 옥예기는 원시사회 말기 씨족사회의 출연 당시부터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에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정신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주술적인 의미를 띠는 벽,종,규,장 등을 제작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옥예기는 장신구 역활도 겸하였다. 청동예기는 하대 기의 형성과 함께 출연 하였으며 상주시대 이후 정치권력의 상징물이 되었다. 종류는 쥐기,식기,주기,수기,악기 가 있다. 예기에 의하면 신분계급에 따라 청동기의 매장수량을 달리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허난성 산시성등지의 왕 제후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기에 의해 역사적 사시로 증명되고 있다.
경덕진요 (景德鎭窯) 경덕진요는 장시 성 (江西省) 경덕진 (京德鎭)에 위치하며 오대 (五代)부터 청자와 백자를 생산하였다. 송대에는 영청 (影靑)이라 불리는 청백자를 제작하기 시작 하였다. 청백자를 대량생산 하기 위해 정요 (定窯)의 엎음 포개구이 기법을 사용하여 원대 (元代)에 경덕진요는 중국전체 자기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 원대에는 청화 (靑花) 유리홍 (釉里紅)등이 제작되고 명,청대에는 투채 (鬪彩) 오채 (五彩) 분채 (粉彩) 법랑채 (琺瑯彩)등의 채색자기 (彩色磁器)가 제작 되었다.
자주요 (磁州窯) 자주요는 송,원대 대표적인 민요 (民窯) 히베이성 (河北省) 츠힌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주요의 특징은 흰바탕에 검은 신으로 그림을 그리는 백지흑화 (白地黑花)장식기법이며 허난 성, 산시 성 등에서도 제작되었다. 자주요의 도자기는 일반시민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이다. 자주요의 태토는 정요 백자와는 달리 거칠고 조잡하여 짙은색을 띤다. 기형은 접시,대접,병,항아리,베개등이 있다.
해서대련 (楷書對聯) 유환지는 청대 대표적인 서예가 유용의 조카이며 관료이자 문인 서화가로 벼슬은 혀부상사에 이르렀다. 일찍이 우리나라의 유득공 이덕부등과 북경에서 만나 교유하기도 하였으며 이덕부 등과 북경에서 만나 교유하기도 하였으며 아들인 유희태도 추사 김정희 등과 교분이 투터웠다.
증장천왕 (增長天王) 이 신상은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불법을 수호하고 세상을 지키는데 에 명의 천왕중 하나인 증장천을 표현한것이다. 현재 지물이 없어졌지만 오른손에 캉을쥐고 왼쪽손에 칼을 받치고 있었던 것으로보아 남방의 유리지방을 지배한 증장천왕 임을 알수있다.
길주요 (吉州窯) 장시성 (江西省) 지안(吉安)에위치한다. 남송시기 이후 북방에서 이 지역으로 내려온 자주요 (磁州窯) 도공의 기술로 흰바탕에 안료로 문양을 그려내는 흑화갈채자기와 흑색 유약을 입힌후 문양을 긁어내는 척화지가 유명하다.
감주요 (감州窯) 장시성 (江西省) 간저우 (한州)위치한다. 유두문소호는 감주요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안쪽에는 흑색 유약이 입혀져 있으나 겉면은 유약을 바르지 않은채 타원형 무늬가 겹겹으로 새겨져 있다.
건요 (建窯) 푸젠성 지엔양에 위치한다. 토끼털 무늬 기름방울 무늬가 있는 흑유잔은 건요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북송시대 황제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차도구 (茶道具) 14세기 무렵동아시아에는 차 문화열풍이 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다도구의 수요가 많아 중국에서 차 관련 문물을 많이 수입하였다. 신안선에서는 흑유찻잔,찻물을 끓이는 주자 그리고 찻잎을 가는 맷돌등이 발견되었다. 그 중맷돌은 일본 큐고우시에 소장되어 있는 정화오년 명맷돌과 비슷하다. 당시 찻잎을 가는 맷돌은 매우 귀해서 서로 빌려썼다고 하며 이를톨해 당시 사원에서 말차가 유행하였음을 알수있다.
철점요 (鐵店窯) 철점요는 저장성 진화 티에디엔에 위치한다. 진화지역은 한나라 때부터 원나라 때까지 청자를 주로 만들었으며 특히 철점요에서는 원나라 때 불투명한 유약을 사용하는 균요의 유탁유자기를 모방하여 제작하였다.
노호동요 (老虎洞窯) 노호동요는 저장성 항저우에 위치한다. 노호동요는 남송시기에 관요를 제작한 곳으로 원대에도 남송관요 풍을 이어받은 청자를 생산하였다.
용천요 (龍泉窯) 용천요는 중국저장성 서남부 룽취안에 위치하고 있다. 영어로 청자색을 뜻하는 셀라돈이 바로 이 용천요 청자에서 유래되었을 만큼 용천요는 아름다운 청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용천요의 뛰어난 청자 빛깔을 흔히 분청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남공관요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유약을 여러번 발라 옥과같은 청아한 질감을 느끼게 한다.
실생활도자 (實生活道瓷) 주방서반 오른쪽에는 칠기받침 흑유찻잔 등의 다기가 놓여있고 그 아래 칸에는 술이 담겨진 매병이 있으며 주방 왼쪽의 요리사 주변에는 술이 담겨진 청자 주자와 음식이 담겨진 청자접시가 보인다. 이 그림에 묘사된 도자기와 비슷한것들이 신안선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명기와도용 (明器와道龍) 중국은 전국시대 경제와 사회의 발전으로 순장제도가 사라지고 예기제도가 무의미해지면서 부장품의 종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한대에는 후장제도가 유행하면서 귀족무덤의 부장품 종류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한대 이전에는 옥기 청동그릇등의 에기와 실생활에 사용된 토기,무기,마구류가 주로 매장되었지만 한대 이후에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활상을 실감내게 표현한 인물과 동물도용 제작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매장 수량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따라서 박산향로등 실제 사용된 생활용품과 함께 중국인의 생활을 그대로 묘사한 인물,가축,가옥,부뚜막,축사등이 명기와도용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당나라때는 한대 후장제도가 부흥하여 삼채로 진묘수 말 낙타 등을 화려하게 매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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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密城 朴 善 泳 원문보기 글쓴이: 峰移 朴先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