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이 1850년대에 쓴 단편소설인 '큰 바위 얼굴'은 우리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모두가 잘 아는 소설 중 하나다.
소설 속 '큰 바위 얼굴'은 마을 사람들에게 옛날 사람들이 예언했던 것처럼 언젠가 그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보길 바라는 동경의 대상으로 비춰진다.
"장차 언제고 이 근처에 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는 고아(高雅)한 인물이 될 운명을 타고날 것이며,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얼굴이 점점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간다" 는 것이다.
인자하고 장엄하게 생긴 얼굴을 가진 '큰 바위 얼굴'을 가진 인물을 이 마을 사람들은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 몇 명이 마을로 돌아왔지만 주인공인 '어니스트'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큰 부자가 된 거상 '개리골드'나 전쟁 영웅이었던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장군, 친구들이 대통령으로 추대하려 했던 '올드 스토니 피즈', 새로운 시인 등 그의 눈에는 옛날 사람들의 예언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봤다.
주름살이 많이 잡히고 탐욕에 가득찬 얼굴, 수없는 격전과 잦은 풍상에 찌든 얼굴 등 자신이 평생을 바라본 '큰 바위 얼굴'과는 딴 판으로 생겼음을 생각했다.
일생 동안 예언이 실현되기를 기다리던 어니스트는 정작 자신이 '큰 바위 얼굴'로 점점 변해 가고 있음을 알지 못하다 자신을 찾아온 시인에 의해 마을 사람들은 어니스트야말로 '큰 바위 얼굴'이 됐음을 알게 된다.
어니스트를 보면서 예언이 실현 됐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었지만 어니스트는 그래도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큰 바위 얼굴'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큰 바위 얼굴’은 부와 명예보다는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평생 동안 사람의 얼굴 형상을 닯은 바위를 바라보면서 그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이물이 나타나기를 바란 어니스트는 결국 자신의 큰 바위 얼굴을 닮게 되었다는 깨닫게 된다. 훌륭한 삶을 꿈꾸고 바란다면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큰 바위 얼굴’은 1850년에 단편작품으로 처음 소개되었지만 1852년에 『눈의 이미지 그리고 두 번 들은 이야기들(The Snow-Image, and Other Twice-Told Tales)』에 다른 단편들과 함께 다시 발표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권의 작품집으로 발표됐다. 현대 환상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는 호손의 단편이 “상징성이 빛나는 매혹적인 우화”라고 평하며 특히 ‘큰 바위 얼굴’은 연구자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연구 대상이 된다는 테마를 독창적으로 다루었다고 평가했다.
1850년대 미국은 뉴잉글랜드 지역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호손은 가상의 뉴잉글랜드의 산과 계곡을 배경으로 새로운 국가 미국에 등장할 가장 현명하고 위대한 인물을 그려냈다. 주인공인 어니스트(Ernest)는 계곡이라는 자연에서 항상 자신을 지켜보면서 인자한 웃음을 버리지 않는 거대한 자연의 가르침으로 자연의 순리를 배운다.
호손은 아무리 위대한 직업처럼 보이는 것에도 자연이 가르치는 진리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는 가르침을 제공한다. 어니스트는 계곡을 떠난 적도 큰 바위 얼굴로부터 멀어진 적도 없이 오롯이 자연의 일부로서 세상을 살아간 인물로 등장해서 그 가르침을 전파하는 인물이 된다.
문운님들 촉촉이 장마비가 내리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우리가 본받고 싶은, 그래서 장차 나 자신도 닮아가고픈 우리시대 큰 바위 얼굴은, 어쩌면 평범한 범인(凡人)들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역사에 주인공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어릴적 부터 저도 큰바위 얼굴이 되고 싶었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
대표님 한번 뵙고 싶어도 뵙지 못하고
불현듯 지나가는 삶이아니라 현명하고 순수하고 소박한 주님의 증거자로 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