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작화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작화 감독이 거의 모든 주목을 독차지하죠. 그러나 사실 배정된 원화가들이 얼마나 잘해주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드래곤볼 같은 배틀물에선 원화가로서 활약하는 액션 애니메이터들의 활약이 필수로, 이들의 결과물에 따라 해당 회차에 대한 평가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드래곤볼 슈퍼 못지 않게 제작 스케줄링 문제에 시달린 원펀맨 2기엔 ‘아오키 켄이치로’라는 원화가가 맹활약하며 영웅으로 떠올랐는데요. 마찬가지로 슈퍼에도 구원투수 역할을 한 원화가들이 있었습니다.
• ‘니카이도 아츠시’
니카이도 아츠시는 1화에부터 바로 투입되어 오천, 트랭크스와 거대 뱀의 현란한 액션을 담당하고 화려하게 슈퍼에 데뷔했지만 그 후엔 슈퍼 특유의 스케줄 문제로 한동안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좀 나아진 우주 서바이벌 편에서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 때 니카이도는 여러 훌륭한 전투씬을 선사하며 단번에 슈퍼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죠. 슈퍼에서 니카이도의 대표적인 액션으로는 100화의 오공 대 폭주 케일과 109화의 블루 오공 대 지렌의 싸움이 있는데요.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에선 초사이어인 갓 오공 대 분노 브로리 파트를 담당했으나 아쉽게도 ‘타카하시 유야’에게 전부 수정당했습니다. 이후 원피스 스탬피드에도 참여한 그는 결국 능력을 인정받아 작화 감독으로 승격되어 디지몬 어드벤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니카이도의 가장 큰 장기는 오오라나 기공파 등이 나올 때인데, 보면 이펙트가 확실한 형태도 없이 사방팔방으로 튀는 것을 알 수 있고 니카이도는 이것을 이용해 액션의 화려함과 역동성을 살리는 데에 매우 능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펙트를 그리는 방식에 있어 아주 과감하고 전투씬의 속도감과 무게감 전달도 훌륭하죠. 액션 애니메이터로서 갖춰야 할 모든 걸 갖춘 인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히가시데 후토시’
월드 트리거에 몸 담다가 슈퍼에 투입된 히가시데 후토시는 순식간에 노예가 되었는데, 약 20화가 되는 미래 트랭크스 편 중 16화에나 투입되며 말 그대로 슈퍼의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미래 트랭크스 편을 거의 혼자 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히가시데가 보여준 놀라운 작업 속도와 작업량은 그야말로 미친 수준이었죠. 이 활약상은 우주 서바이벌 편에서도 이어졌지만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던 미래 트랭크스 편 때에 비하면 좀 더 휴식을 부여받았습니다. 슈퍼에서 히가시데의 대표적인 파트로는 48화에서 미래 트랭크스 대 오공 블랙의 전투씬과 116화에서 극의 징조 오공이 에네르기파를 준비하며 케프라의 공격들을 다 피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히가시데는 기탄과 스모크의 생김새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기탄을 보면 히가시데는 기탄 주변에 꼭 몇 개의 추가적인 선을 그린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모양이 약간 성게를 연상시킵니다. 또한 스모크가 매우 동그랗고 심플한 게 만화스럽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죠. 참고로 히가시데가 슈퍼에 참여하던 때엔 워낙 빨리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액션을 넘어 세세한 작화에까지 신경을 쓸 수는 없었고 이에 따라 작화 감독이나 총 작화 감독이 히가시데의 원화를 대폭 수정해야 했는데요. 그래서 액션에 비해 히가시데의 캐릭터 작화는 밝혀진 게 거의 없는 편입니다.
• ‘투 용서’
투 용서는 슈퍼 내내 원화가와 제 2원화가 자리를 오가며 활약한 중국인 애니메이터입니다. 제 2원화가로서는 스케줄 문제로 작화를 다듬지 못한 다른 애니메이터들의 원화를 수정하였고 직접 원화가로 참여했을 때엔 여러 번 훌륭한 액션씬을 선사했는데요. 특히 골든 위크 기간이 겹쳐 준비 일정이 상당히 빠듯했던 90화에 배정되자 혼자 11일만에 무려 100컷을 담당하며 엄청난 작업 속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를 인정받아 슈퍼 극후반기에 들어서부터는 원화가로만 투입되었으며 슈퍼의 종영 후엔 원피스의 핵심 원화가로서 활약 중이죠. 이후 투 용서는 자신이 원피스에선 콘티를 받으면 여러가지를 시도하고 그려보고 싶은 데에 비해, 과거 드래곤볼 슈퍼에 참여하며 콘티를 받았을 적엔 원작 만화가 없으니 어디부터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몰라 매우 난감했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투 용서는 슈퍼 드래곤볼 히어로즈 애니 2화를 끝으로 드래곤볼에 발을 담구고 있지 않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투 용서는 드래곤볼 슈퍼의 작화진 전체를 통틀어 캐릭터 디자이너인 ‘야마무로 타다요시’의 작화체를 제일 잘 소화하는 애니메이터였습니다. 제 2원화가로서도 활약한만큼 스타일이 군더더기 없이 매우 깔끔하죠. 또한 스모크의 휘날림이 인상적인 편이며 전투의 묵직함을 잘 전달할 줄도 압니다. 원피스에서는 자신의 장기를 더 유감없이 발휘 중으로 미래가 제일 기대되는 애니메이터입니다.
가끔 가다 보면 애니 작화에 대한 모든 포커스가 지나치게 작화 감독이나 총 작화 감독, 혹은 캐릭터 디자이너가 누구냐에만 가는 경향이 있는데 작화 감독이라고 작화나 액션의 모든 걸 담당하는 게 아니며, 참여한 원화가들의 역량 역시 매우 중요해집니다. 원화가들도 많은 주목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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