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1장-42:6
여호와의 두 번째 말씀(2): 여호와의 의로운 통치와 리워야단(악어) 욥의 회개의 응답
(찬송 384장)
2020-8-13, 목
맥락과 의미: 리워야단(악어와 같은 바다괴물)=사단
40-41장은
여호와께서 욥에게 두 번째 나타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40장은
버헤못(하마)를 다스리는 것을 통해 여호와의 의로운 통치에
대해 말했습니다.
41장에서
리워야단(악어)에 대하여 묘사하는 내용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악어와 같은 구체적인 동물 묘사를 합니다. 우리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괴물과 같은 바다 동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괴물과 같은 바다 동물을 마음대로 통제하시 못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사는 곳 너머에 있는 이런 상한 동물을 통제하십니다. 사람이 리워야단을 자기 마음대로 잡아서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듯이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가르칩니다.
한편 성경에서 리워야단은 사탄적 존재에 대한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이사야 27:1). 이 짐승은 악의 세력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시편 74:14; 104:26 등).
욥기 41장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려는 사탄도 완전히 통제하시는 분이심을 말합니다. 그러한 사탄을 사용하면서까지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1. 리워야단을 다스리스는 것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41장)
1) 리워야단을 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항할 수 없음(1-11절)
물고기는 낚시로 잡고 끈으로 묶고 갈고리를 아가미에 걸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리워야단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힘으로 제압하여서 리워야단이
에걸복걸하게 할 수 없습니다. 리워야단과 언약을 맺고 종으로 삼아서 부릴 수 없습니다. 또한 리워야단을 사람의 노리개로 삼을 수 없습니다. 다른 짐승과
달리 길들일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을 잡아서 파는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창이나 작살로 잡는 싸움을 사람들이 피하려 할 것이고, 그것을 잡으려는
소망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을 길들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면, 어떻게 감히 그들의 창조주 앞에 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10절). 하나님 앞에 “선다”는
단어는 법정에서 고소하는 상대로서 서는 것을 가리킵니다(33:5). “누가 나에게 맞서서 갚으라고 할
수 있느냐?”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아무도 법정에 불러내어서 죄를 따질 수 없습니다. 요구할 수 없습니다.
온 우주를 소유하고 자기 뜻대로 하시는 분을 사람이나 다른 존재에게 빚진 것처럼 대우할 수 없습니다.
2) 리워야단은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12-34절)
리워야단은 비늘이 즐비해 있는 악어의 모습입니다(14-15절). 입에서 불이 나오고 코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은 용과 같은 모습입니다(18-21절).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신들”이라는
뜻)들도 달아납니다. 사람이 무기를 가지고 죽이려고 달려
가도 그 짐승은 사람의 무기를 종이처럼 찢어 버립니다(26-29절).
리워야단에 대한 묘사는 “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받았구나. 모든 높은 자들을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로다”(41:33-34) 하는 말로 끝납니다. 이
세상에서는 리워야단과 비교할 만한 것이 없고 사람에게 통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욥이나 모든 사람들(교만한 자)도 가볍게 여깁니다. 그런
피조물도 하나님이 다스립니다.
혼돈의 세력과 같은 것이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있고, 사람으로서는 그 넓이를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의 능력보다 크십니다. 사람의
지혜보다 크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로 인도합니다.
리워야단에 대한 말은 “모든 높은 자들을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로다”(41:34)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버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고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진토에 묻을 수 있는가?”를 물으셨습니다(40:11-14). 욥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버헤못과 리워야단과 같은 악의 존재를 발견하여 낮추고 진토에 묻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리워야단을 들어서 욥에게 질문을 하신 것은 욥을 넘어뜨리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욥에게 피조물의 한계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나타나서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을 보이셨습니다.
2. 욥의 두 번째 응답과 회개 (42:1-6)
38-39장에서
여호와쎄서는 욥에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의 끝에서 “너는 나에게 대답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욥은 입을 가리며 침묵하겠다고 했습니다(40:4-5). 40장에서 여호와께서 두 번째 말씀하셨을 때 욥은 자기가 먼저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찬송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마(버헤못)과 악어(리워야단)는 세상의 무질서를 가져오는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그 시대에 욥은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분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3-4절: 욥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물으셨던 것 두 개를 회상하면서 대답합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입니까?”(3절) 이 말은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신 것입니다(38:2). 그
질문에 대해 이제 욥은 대답합니다. “나는 깨닫지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3절)고 말합니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4절)는 앞에서 욥의 첫 번 대답을 듣고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40:7. 이 말을 회상하며 말합니다.
5-6절: 41장에서 버헤못과 리워야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욥은 주님을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자기 눈으로 주님을 뵙는다고 하였습니다. 듣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더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새롭게 보았습니다. 그분의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 앞에서 침묵하면서 티끌과 재에 앉아 회개하였습니다. 욥은 자기가 말한 것이 무지에서
나온 것임을 고백하고 자신을 낮추었고, 티끌과 재에 앉아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이러한 반응을 받으셨습니다.
욥은 처음 티끌과 재에서 자신의 고난의 문제를 하나님께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불의한 분이 아닌가? 의심까지 했습니다. 그 고난의 자리가 이제 회개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42장에서
욥이 어떤 것을 회개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의 죄를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지적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친구은 속죄제를 드려야 할 분명한 죄가 있었습니다. 욥에게는 제사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욥은 어떤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전체 흐름으로 볼 때 욥은 오히려 하나님을 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행한 그의
태도를 회개했습니다. 그는 그에게 고난을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고 이해하여서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1-2장에 기록된 천상의 회의의 내용은 여전히 그에게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태도를 돌이켰습니다. 구체적인 죄에 대한 회개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회개는 전에 욥이 알던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회개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가 아직도 부족한 경외함에서 성장하는 회개였습니다.
맥락과 의미:
하마(버헤못)과 악어(리워야단)는 괴물
같은 동물을 사람은 통제하지 못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욥에게 그것들이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짐승들은 도세상의 무질서를 가져오는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그 시대에 욥은 살았습니다. 무질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에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사단과 악의
세력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하심 앞에서 욥은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 회개는 특별한 죄에 대한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욥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 때문에 회개했습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또 하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넘는 무한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자기 생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교만에 대한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모든 사람이, 모든 성도가
매일 해야 할 회개입니다. 욥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깨닫으며 회개했습니다. 기쁨 가운데 있는 성도도 이런 회개를 계속해야 합니다.
이 회개는 요리문답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88문: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89문: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진노케 한 우리의 죄를 마음으로 슬퍼하고 더욱 더 미워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90문: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마음으로 즐거워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매일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에 도달할 수 없는 자신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합시다. 평생 해야 할 일이고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