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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0편
그분의 진노는 잠깐이고 은총은 한평생
(찬송 2장, 시편 30편)
2021-1-30, 토
맥락과 의미
시편 29편 “여호와의 소리”에 관하여 노래했습니다. 호와께서 비와 구름을 주장하실 뿐 아니라 바알의 본거지가 되는 헤르몬 산과 레바논 산을 심판하는 것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였습니다. 홍수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제시하면서 세상을 사랑하고 권력과 쾌락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어지는 30편은 성전 낙성가입니다. 또한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인이 자기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마지막 절에서는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이 시편은 대부분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호소하는 구절입니다. 6절은 “그러나 내가 말하였습니다. 나는 영원히 요동하지 않을 것이라” 자기가 했던 말을 소개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고 시인이 두려워 떠는 것으로 나타납니다(7절). 그는 회개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였고, 구원을 받은 후에 주님을 “영원히” 찬송하면서 시를 마칩니다(12절).
1. 하나님께 구함 (1-3절)
2. 자기를 돌아보면서 찬송할 것을 권함 (4-5절)
3. 평안을 말하는 시인과 얼굴을 가리시는 주님 (6-7절)
4. 하나님께 간구함 (8-10절)
5. 하나님의 응답 (11-12절)
1. 하나님께 구함 (1-3절)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30편은 주님을 높이고 찬송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찬송하는 이유는 첫째, 주님께서 이 성도를 끌어 내셨기 때문입니다. 스올(죽음의 세계)와 무덤에서 건져 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찬송하는 두 번째 이유는 원수가 이 성도를 두고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수는 이 성도가 멸망하는 것을 원했지만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서 원수로 잠잠케 하신 이유는 시인이 여호와께 부르짖었기 때문입니다. 점잖게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절박하게 구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구하는 시인을 여호와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죽을 형편에 있는 시인을 거기에서 들어 올려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2. 자기를 돌아보면서 찬송할 것을 권함 (4-5절)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이 성도는 자기만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성도들”도 함께 찬송하라고 합니다. 성도들(하시드)은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헤세드) 깨닫고 거기에 충실한 자들입니다.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 찬송을 드리라고 합니다. “이름”은 “기억”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찬송하되 특히 그분의 거룩하심을 생각하면서 찬송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교만하거나 죄를 지은 자에게는 진노를 베푸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동시에 그분은 은총을 평생토록 보여주시는 “거룩한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찬송하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5절은 “노염/은총”, “잠깐/평생”, “저녁/아침”, “울음/기쁨”을 날카롭게 대비시켜서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합니다. 두 가지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노염보다 은총이 더 큽니다. 울음보다는 기쁨이 더 강조됩니다. 저녁에 울음이 “깃들이는 것”은 나그네가 하룻밤 묵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은 평생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주님의 자비하심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3. 평안을 말하는 시인과 얼굴을 가리시는 주님 (6-7절)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6절은 “그러나 나는” 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려운 데에서 구원해 주심을 고백한 다음에는 “그러나 나는 평안할 때에 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30편의 “요동하지 않는다”는 말이 두 가지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표현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는 말씀이 좋은 예가 됩니다.
둘째, 자기의 자만한 마음으로 하는 말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시편 10편에서 교만한 얼굴로 말하는 악인이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시 10:6)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6절에에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어느 쪽에 속하겠습니까? 자기가 잘못한 일을 생각하며 하는 말입니다. 더구나 “영원”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지 영원과 관련된 것은 스스로 할 수 있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은 7절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은총을 내려 주셔서 어여삐 여겨 주시고 주님의 얼굴 앞에 한평생 두시고 교제를 나누기를 기뻐하셨습니다(5절). 은총으로 이 성도를 산처럼 든든히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평안하게 되었을 때에 이 성도는 “나는 영원히 요동하지 않을 것이라” 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평안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살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누리는 평안을 하나님과 분리하여 생각하고, 교만하게 영원에 관하여 말하는 시인에게서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가리셨습니다. 그 때에 시인은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병상에 누워서 죽음을 직면하였을 때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4. 하나님께 간구함 (8-10절)
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얼굴을 돌리시자 이 성도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은 어둠 가운데서 더 큰 방황을 하면서도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성도는 얼굴을 돌리신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교만을 회개하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8절과 10절에서 “은혜”를 구합니다.
성도가 구원해 주시기를 구하는 근거는 “찬송”입니다. 그가 피를 흘리면서 죽거나 무덤에 내려가서 티끌이 되면 주님의 진실하심을 찬송할 수 없습니다(시편 6:5).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기 입니다. 시편의 마지막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 150:6) 하는 말로 끝납니다. 이 성도는 주님을 찬송하겠다고 하면서 살려 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자기의 생명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찬송하는 데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자랑을 버리고서 이렇게 간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얼굴을 돌리신 것은 인생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기에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손으로 이룬 것을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것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분에 따라서 찬송하기도 합니다. 참된 찬송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그 사실 때문에 드리는 찬송입니다.
5. 하나님의 응답 (11-12절)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시자 시인은 베옷을 입고 통곡하면서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베옷을 기쁨의 옷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통곡과 기쁨의 춤” “베옷과 기쁨의 옷” “벗기시고 입히시고” 이전의 모습과 은혜를 받은 후의 모습이 너무나 대조됩니다.
이 성도는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온몸으로 찬송했습니다(시 149:3; 150:4). 포로에서 돌아오던 이스라엘 백성의 입에 기쁨의 웃음이 가득하였던 것처럼(시 126:1-2) 이 성도의 입에도 기쁨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내가 춤을 출 정도로 기쁩니다” 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베옷을 벗겨 주시고 기쁨의 옷으로 입혀 주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로 보고서 온몸으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영광”으로 찬송합니다. 원문은 “내 영광”이 아니라 그냥 “영광”입니다. “영광”은 사람의 마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라는 말을 빼면서 하나님을 높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높입니다. 6절에서 “내가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교만하게 말했던 이 성도는 하나님의 징계와 기도를 통해서 “당신께 영원히 감사하겠습니다”는 말로 마칩니다.
29편에서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한다는 말로 마쳤는데 30편도 영광이 찬송한다는 말로 끝납니다.
6. 찬송에서 찬송으로
1)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
30편의 다섯 부분 중 중심부분은 “그러나 나는” 이라고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평안을 자기의 것처럼 말한 것을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얼굴을 돌리시자 그는 크게 회개하였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 이렇게 사도 바울이 경고했습니다. 자기의 것을 가지고 교만하게 말해도 잘못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자기를 높이면 큰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
2) 진노는 잠깐이고 은총은 한평생임을 찬송함
이스라엘의 역사를 놓고 볼 때 하나님의 분노는 잠시였고, 은총은 영원하였습니다. 생명은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에 있고, 그 목적을 위하여서 영원히 보존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백성을 징계하시지만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살고, 주님을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교회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 말씀이 사실임을 봅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이 아니었다면 교회는 이 땅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교회가 계속 유지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주님을 평생 찬송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완성된 천국의 모습도 주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사람답게 늘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자기 자랑을 하려는 모습이 나오면 얼른 돌이키고 회개하면서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고 주님의 은총은 한평생”이라고 하면서 찬송하고 나아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계속 붙들어 주시고, 주님 앞에서 사는 은총을 영원토록 내려 주실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시편 30편은 찬송으로 가득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 찬송은 이 성도의 죄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징벌을 받을 때 그는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 삶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셔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는 마침내 찬송합니다. 성도의 삶은 찬송에서 찬송으로 이어 집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을 때 찬송합시다. 우리가 죄로 인해 넘어진 순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적임을 다시 기억합시다.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우리를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 기도를 들어시고 회복시켜 주셨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찬송합시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성전 낙성식
시편 30편은 “성전 낙성식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30편은 다윗의 시편이고 다윗 시대에는 아직 성전이 완공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제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 다윗이 예루살렘에 언약궤를 가져 오는 것: 다윗 시대에서 “언약궤”가 성소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언약궤를 옮기는 때와 이 시편을 붙여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2) 솔로몬 성전 낙성식: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와 관련하여서 이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성전의 핵심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하면서 제사를 드리고 주님의 환한 얼굴빛으로 만족하면서 “은총”의 상태 가운데서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3) 포로에서 돌아 온 후 성전 봉헌식: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성전 봉헌식을 행한 경우에도 30편은 적합합니다. 포로로 징계하신 주님의 징계는 잠시뿐이었고 그분의 은총은 한평생임을 그들은 깨닫고 주님의 큰 사랑을 노래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자들이 소리를 높여서 주님을 불렀을 것입니다(스 6:15-18).
4) 수전절(하누카, 주전 2세기): 또한 “하누카”라는 유대인의 절기도 이 시편을 읽는 데에 좋은 배경이 됩니다. 주전 2세기에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그것을 깨끗하게 한 일이 기원전 165/4년에 있었습니다. 그 절기를 “하누카” 곧 “수전절”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때에도 역시 주님께서 교만하였던 그들을 낮추시고 다시 회복하여 주심을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참고> 은총
은총은 기쁘게 받아들여 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에스더가 왕의 은총을 받은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더 5:8). 또한 가까이 두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잠 14:35). 왕이 지혜로운 신하를 자기 곁에 두고 대화를 나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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