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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六回 晉呂郤夜焚公宮 秦穆公再平晉亂
제36회: 진(晉)나라 여성과 극예가 밤에 궁궐을 불 지르고, 진목공이 다시 진(晉)나라 난리를 평정하다.
話說,狐毛狐偃兄弟,從公子重耳在秦,聞知父親狐突被子圉所害,搥胸大哭。趙衰臼季等都來問慰。趙衰曰:「死者不可復生,悲之何益?且同見公子,商議大事。」毛偃收淚,同趙衰等來見重耳。毛偃言:「惠公已薨,子圉即位,凡晉臣從亡者,立限喚回,如不回,罪在親黨。怪老父不召臣等兄弟,將來殺害。」說罷,痛上心來,重復大哭。重耳曰:「二舅不必過傷,孤有復國之日,為汝父報仇。」即時駕車來見穆公,訴以晉國之事。穆公曰:「此天以晉國授公子,不可失也!寡人當身任之。」趙衰代對曰:「君若庇蔭重耳,幸速圖之!若待子圉改元告廟,君臣之分已定,恐動搖不易也。」穆公深然其言。
한편, 호모와 호언 형제는 공자 중이를 따라 진(秦)나라에 머물다가 부친 호들이 진회공(懷公)에게 해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조쇠와 구계[胥臣] 등이 모두 와서 호씨 형제를 위로했다. 조쇠가 말하기를,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슬퍼만 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함께 공자를 만나 뵙고 대사를 상의합시다.” 하니, 호모와 호언이 눈물을 거두고 조쇠 등과 함께 중이를 만났다. 호모와 호언이 말하기를, “진혜공이 이미 죽고 그 아들 어(圉)가 즉위하여 망명한 사람을 따르는 진나라 신하에게 기한을 정하여 돌아오라고 불렀습니다. 만일 돌아오지 않으면 그 죄를 가족들에게 묻겠다고 했습니다. 부친께서 우리 두 형제를 부르지 않는 것을 미워하여 살해했습니다.” 하고, 말을 마치자 가슴이 메어 다시 통곡했다. 중이가 말하기를, “두 외숙은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귀국하는 날에 그대들의 원수를 갚겠소.” 했다. 중이는 즉시 수레를 타고 진목공을 만나 진(晉)나라의 일을 호소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진(晉)나라를 공자에게 주는 것이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과인이 마땅히 몸소 이 일을 맡겠소.” 했다. 조쇠가 대신하여 말하기를, “군주께서 만약 공자 중이를 도우려고 하신다면 속히 일을 도모하십시오. 만약 태자 어가 개원하고 태묘에 고하게 되면 군신의 직분이 정해져서 아마 동요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진목공이 그 말에 깊이 동의했다.
重耳辭回甥館,方纔坐定,只見門官通報:「晉國有人到此,說有機密事,求見公子。」公子召入,問其姓名。其人拜而言曰:「臣乃晉大夫欒枝之子欒盾也。因新君性多猜忌,以殺為威,百姓胥怨,群臣不服,臣父特遣盾私送款於公子。子圉心腹,只有呂省郤芮二人,舊臣郤步揚韓簡等一班老成,俱疏遠不用,不足為慮。臣父已約會郤溱舟之僑等,歛集私甲,只等公子到來,便為內應。」重耳大喜,與之訂約,以明年歲首為期,決至河上。欒盾辭去。重耳對天禱祝,以蓍布筮。得《泰卦》六爻安靜,重耳疑之。
중이가 감사하고 데릴사위 거처로 돌아와서 막 앉았는데 문을 지키는 관리가 들어와서 고하기를, “진(晉)나라에서 사람이 와서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고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했다. 공자가 불러들여 그 성명을 물으니 그 사람이 절하고 말하기를, “신은 진(晉)나라 대부 난지(欒枝)의 아들 난돈(欒盾)이라고 합니다. 새 군주는 시기하는 마음이 많아 사람을 죽여 위엄을 세우고 있어, 백성들은 모두 원한을 품고 여러 신하는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의 아버지가 저를 보내어 몰래 전갈을 보냈습니다. 태자 어(圉)의 심복으로는 오로지 여성(呂省)과 극예(郤芮) 두 사람뿐으로 옛 신하인 극보양(郤步揚), 한간(韓簡) 등의 원로대신들과는 사이가 소원하여 임용하지 않고 있어 (저항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의 아버지는 이미 극진(郤溱), 주지교(舟之僑) 등과 약속하여 가병을 모아 공자께서 도착하시면 곧 내응하기로 했습니다.” 했다. 중이는 크게 기뻐하여 내년 정초를 기한으로 하여 황하 가에 이를 것을 약속했다. 난돈이 진(晉)나라로 돌아갔다. 중이가 하늘을 향하여 축원하는 기도를 올리고 시초(蓍草)를 뽑아 점을 쳐 태괘(泰卦)의 여섯째 효 안정을 얻었다. 중이가 미심쩍어했다.
召狐偃占其吉凶。偃拜賀曰:「是為天地配享,小往大來,上吉之兆。公子此行,不惟得國,且有主盟之分。」重耳乃以欒盾之言告狐偃。偃曰:「公子明日便與秦公請兵,事不宜遲。」重耳乃於次日復入朝謁秦穆公,穆公不待開言,便曰:「寡人知公子急於歸國矣。恐諸臣不任其事,寡人當親送公子至河。」重耳拜謝而出。丕豹聞穆公將納公子重耳,願為先鋒效力,穆公許之。太史擇吉於冬之十二月。先三日,穆公設宴,餞公子於九龍山,贈以白璧十雙,馬四百匹。帷席器用,百物俱備,糧草自不必說。趙衰等九人,各白璧一雙,馬四匹。重耳君臣俱再拜稱謝。
중이가 호언을 불러 점괘의 길흉을 물으니, 호언이 절을 올리고 축하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하늘과 땅이 짝을 지어 같이 즐기고, 작은 것은 가고 큰 것이 올 대단히 길한 조짐입니다. 공자께서 이번에 행차하시면 나라를 얻을 뿐만 아니라 회맹을 주관하는 패업을 이루게 되는 괘입니다.” 했다. 중이가 이에 난돈의 말을 호언에게 전하자, 호언이 말하기를, “공자께서는 내일 당장 진목공에게 군사를 청하십시오! 일이 늦어지면 안 됩니다.” 했다. 중이가 다음날 다시 입조하여 진목공을 알현하니, 중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 않고 진목공이 문득 말하기를, “과인은 공자가 빨리 귀국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아오. 그러나 이런 일이란 신하들에게만 맡길 순 없소. 과인은 마땅히 공자를 친히 황하까지 전송할 생각이오.” 했다. 중이가 인사를 드리고 물러 나왔다. 비표가 목공이 중이를 진(晉)나라의 군주로 세우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선봉이 되어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자원하니, 목공이 허락했다. 태사가 길일을 택하여 그해 겨울 12월에 출병하기로 했다. 이보다 3일 전에 목공이 구룡산(九龍山)에서 중이의 출발을 전송하는 연회를 열고, 중이에게 흰 벽옥 10쌍, 말 400필을 하사하고 수레의 장막과 자리 등 온갖 기물을 준비하여 주고, 양식과 마초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조쇠 등 아홉 사람에게도 각각 흰 벽옥 한 쌍씩과 말 네 필을 주었다. 중이와 그 일행들은 목공에게 재배하고 감사했다.
至日,穆公自統謀臣百里奚繇余,大將公子縶公孫枝,先鋒丕豹等,率兵車四百乘,送公子重耳離了雍州城,望東進發。秦世子罃與重耳素本相得,依依不舍,直送至渭陽,垂淚而別。詩曰:「猛將精兵似虎狼,共扶公子立邊疆;懷公空自誅狐突,隻手安能掩太陽?」周襄王十六年,晉懷公圉之元年,春正月,秦穆公同晉公子重耳行至黃河岸口。渡河船隻,俱已預備齊整,穆公重設餞筵,丁寧重耳曰:「公子返國,毋忘寡人夫婦也。」乃分軍一半,命公子縶丕豹護送公子濟河,自己大軍屯於河西。正是:眼望捷旌旗,耳聽好消息。
출병하는 날이 되자 진목공이 참모 백리해(百里奚), 요여(繇余), 대장 공자집(公子縶), 공손지(公孫枝), 선봉 비표(丕豹) 등과 함께 전차 400대를 직접 거느리고 공자 중이와 함께 옹주성(雍州城)에서 동쪽을 향하여 출발했다. 진(秦)나라 세자 앵(罃)과 중이는 평소에 서로 가까이 지냈던 관계로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여 차마 헤어지지 못하고 위양(渭陽)까지 따라와 눈물을 흘리며 작별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호랑이 같은 맹장에 이리와 같은 정예한 병사들인데, 모두가 공자를 도와 국경에 이르렀다. 진회공은 공연히 호돌을 죽였으니, 한 손으로 어찌 태양을 가릴 수 있겠는가?” 했다. 주양왕 16년(기원전 635년)은 진회공 어(圉)의 원년이다. 그해 봄 정월에 진목공과 진(晉) 공자 중이가 행군하여 황하 강변에 도착했다. 이미 강을 건널 배들이 질서정연하게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목공이 다시 전별연을 마련하여 중이에게 은근하게 말하기를, “공자가 귀국하여 군주 자리에 오르게 되면 과인 부부를 잊으면 안 될 것이오!” 하고, 곧 군사를 반으로 나누어 공자 집과 비표에게 명하여 공자 중이를 호송하여 황하를 건너게 하고, 자기는 나머지 대군을 거느리고 황하 서쪽에 주둔했다. 이야말로 눈으로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바라보며, 귀로 좋은 소식 듣기를 기다렸다.
卻說,壺叔主公子行李之事,自出奔以來,曹衛之間,擔饑受餓,不止一次,正是無衣惜衣,無食惜食,今日渡河之際,收拾行裝,將日用的壞籩殘豆,敝席破帷,件件搬運入船,有吃不盡的酒餔之類,亦皆愛惜如寶,擺列船內。重耳見了,呵呵大笑,曰:「吾今日入晉為君,玉食一方,要這些殘敝之物何用?」喝教拋棄於岸,不留一些。狐偃私嘆曰:「公子未得富貴,先忘貧賤,他日憐新棄舊,把我等同守患難之人,看做殘敝器物一般,可不枉了這十九年辛苦!乘今日尚未濟河,不如辭之,異時還有相念之日。」
한편, 호숙(壺叔)은 공자 중이와 그 일행들의 재물과 가재를 맡아 관리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진(晉)나라로부터 공자를 따라나서서 조나라와 위나라 사이에서 굶주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바꾸어 입을 옷도, 먹을 양식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황하를 건너게 되었으니, 그는 행장을 수습하고, 매일 사용하여 부서진 대나무 그릇과 남은 목기에 해진 돗자리와 찢어진 수레의 휘장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챙겼으며, 먹다 남은 술과 안주까지도 모두 보물처럼 아껴서 배 안에 옮겨 실었다. 중이가 보고 큰소리로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오늘 진(晉)나라에 들어가 군주가 되면 온통 맛있는 음식일 텐데, 이렇게 부서져 못쓰게 된 물건들을 어디에 쓰겠는가?” 하고, 큰소리를 쳐서 남김없이 강언덕에 버리게 했다. 호언이 몰래 한탄하기를, “공자께서 아직 부귀를 얻기도 전에 옛날의 어려웠던 처지를 먼저 잊고자 하니, 훗날 새것을 좋아하고 옛것을 버려 함께 고난을 겪었던 우리를 헌 물건같이 볼 것이니, 저 19년 동안의 고생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 아직 강을 건너기 전에 떠나는 것이 좋겠다. 후일에 다시 서로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다.” 했다.
乃以秦公所贈白璧一雙,跪獻於重耳之前曰:「公子今已渡河,便是晉界。內有諸臣,外有秦將,不愁晉國不入公子之手。臣之一身,相從無益,願留秦邦,為公子外臣。所有白璧一雙,聊表寸意。」重耳大驚曰:「孤方與舅氏共享富貴,何出此言?」狐偃曰:「臣自知有三罪於公子,不敢相從。」重耳曰:「三罪何在?」狐偃對曰:「臣聞『聖臣能使其君尊,賢臣能使其君安。』今臣不肖,使公子困於五鹿,一罪也;受曹衛二君之慢,二罪也;乘醉出公子於齊城,致觸公子之怒,三罪也。向以公子尚在羈旅,臣不敢辭。今入晉矣,臣奔走數年,驚魂幾絕,心力並耗,譬之餘籩殘豆,不可再陳,敝席破帷,不可再設。留臣無益,去臣無損,臣是以求去耳!」
호언이 즉시 목공이 준 흰 벽옥 한 쌍을 중이 앞에 무릎을 꿇고 바치면서 말하기를, “공자께서 지금 황하를 건너시면 바로 진(晉)나라 땅입니다. 안으로는 여러 신하가 있고, 밖으로는 진(秦)나라 장수들이 있으니, 진(晉)나라가 공자의 손에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신의 한 몸은 공자를 따라간들 아무런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원컨대 진(秦)나라에 남아서 공자의 나라 밖에 있는 신하가 되고자 합니다. 제가 받은 흰 벽옥 한 쌍을 바쳐 오로지 저의 조그만 성의를 표합니다.” 했다. 중이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내가 바야흐로 외숙과 같이 부귀를 함께 누리고자 하는데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십니까?” 했다. 호언이 대답하기를, “신은 공자께 세 가지 죄가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중이가 말하기를, “그 세 가지 죄가 무엇이오?” 했다. 호언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기에 ‘성스러운 신하는 능히 그 군주를 높일 수 있으며 어진 신하는 능히 그 군주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신이 불초하여 공자로 하여금 오록(五鹿)의 땅에서 곤궁하게 했으니, 그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조나라와 위나라의 두 군주에게서 모욕을 받게 했으니, 그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공자께서 술에 취한 틈을 이용하여 제나라에서 끌고 나와 공자의 분노를 샀으니, 그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저번에 공자께서 객지 생활을 하실 때는 제가 감히 떠나겠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으나, 오늘 진(晉)나라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신은 여러 해 동안 분주하여 놀란 혼이 거의 끊어져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 마치 저 대그릇과 목기같이 되어 진열할 수가 없고, 해어진 자리와 찢어진 장막처럼 쓸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머물러도 이로움이 없고, 신이 떠나도 손해가 되지 않으니, 이에 신이 떠나고자 합니다.” 했다.
重耳垂淚而言曰:「舅氏責孤甚當,乃孤之過也。」即命壺叔將已棄之物,一一取回;復向河設誓曰:「孤返國,若忘了舅氏之勞,不與同心共政者,子孫不昌!」即取白璧投之於河曰:「河伯為盟證也!」時介子推在他船中,聞重耳與狐偃立盟,笑曰:「公子之歸,乃天意也,子犯欲竊以為己功乎?此等貪圖富貴之輩,吾羞與同朝!」自此有棲隱之意。重耳濟了黃河,東行至於令狐,其宰鄧惛,發兵登城拒守。秦兵圍之。丕豹奮勇先登,遂破其城,獲鄧惛斬之。桑泉臼衰,望風迎降。晉懷公聞諜報大驚,悉起境內車乘甲兵,命呂省為大將,郤芮副之,屯於廬柳,以拒秦兵,畏秦之強,不敢交戰。
중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외숙께서 나를 이렇듯 심히 책망하니 이는 나의 허물이오.” 하고, 즉시 호숙에게 명하여 이미 버린 물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거두어 배에 싣게 하고 강을 향해 맹세하기를, “내가 환국한 후에 만약 외숙의 노고를 잊고, 그들과 같이 힘을 합하여 정사에 힘쓰지 않는다면 내 후손들은 번창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즉시 흰 벽옥을 집어서 강물에 던지며 말하기를, “황하의 신은 이것으로써 내 맹세를 증명하시라!” 했다. 그때 개자추가 다른 배에 타고 있다가 중이와 호언이 맹세하는 것을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공자께서 환국하는 것은 곧 하늘의 뜻인데, 자범(호언)이 훔쳐서 자기의 공으로 하려는가? 이렇게 부귀나 탐하는 무리와 같이 조정에 나가서 벼슬을 한다는 것은 나의 수치로다!” 했다. 이때부터 개자추는 숨어 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중이가 황하를 건너 동쪽으로 행군하여 영호(令狐)에 도착했다. 영호 수령 등혼(鄧惛)이 군사를 동원하여 성에 올라 중이의 군사에 저항했다. 진(秦)나라 군사가 영호성을 포위하고, 비표가 용기를 떨쳐 먼저 성루에 오르더니 마침내 성을 함락시키고 등혼을 잡아 참수했다. 상천(桑泉)과 구쇠(臼衰)의 성주들이 멀리서 진(秦)나라 군사의 위세를 바라보고 중이에게 항복했다. 진회공이 첩보를 듣고 크게 놀라서 경내에 있던 모든 군사와 전차들을 소집하여 여성을 대장으로, 극예를 부장으로 삼아, 여류(廬柳)에 진을 치고 진(秦)나라 군사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진(秦)나라 군사의 강함을 두려워하여 감히 교전은 하지 않았다.
公子縶乃為秦穆公書,使人送呂郤軍中。略曰:「寡人之為德於晉,可謂至矣。父子背恩,視秦如仇,寡人忍其父,不能復忍其子。今公子重耳,賢德著聞,多士為輔,天人交助,內外歸心。寡人親率大軍,屯於河上,命縶護送公子歸晉,主其社稷。子大夫若能別識賢愚,倒戈來迎,轉禍為福,在此一舉!」呂郤二人覽書,半晌不語。欲接戰,誠恐敵不過秦兵,又如龍門山故事;欲迎降,又恐重耳記著前仇,將他償里克丕鄭之命。躊躇了多時,商量出一個計較來。乃答書於公子縶,其略云:「某等自知獲罪公子,不敢釋甲:然翼戴公子,實某等之願也!倘得與從亡諸子,共矢天日,各無相害,子大夫任其無咎,敢不如命。」
공자 집이 사람을 시켜 목공이 쓴 편지를 여성과 극예의 군중에 보냈다. 그 편지에 대략 이르기를, “과인이 진(晉)나라에 베푼 은혜는 가히 지극하다 하겠다. 부자가 은혜를 저버리고 우리 진(秦)나라를 마치 원수같이 대했다. 과인이 그 아비는 참았으나 다시 그 아들은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공자 중이는 어진 덕이 천하에 알려졌고 많은 선비가 보좌하고 있다. 하늘과 사람들이 번갈아 도우며 내외의 민심이 그에게 돌아갔다. 과인이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황하 가에 주둔하고 공자 집에게 명하여 중이 공자를 호송하여 진(晉)나라에 귀국시켜 사직의 제사를 주관하려 한다. 그대 대부들이 만약 어진 것과 어리석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다면 창을 돌려 잡고 나와서 중이 공자를 영접하여 이 한 번의 거사로 화를 복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했다.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이 편지를 읽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맞붙어 싸우고자 해도 참으로 진(秦)나라 군사를 대적할 수 없을까 두렵고, 또 옛날 용문산에서 싸울 때처럼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항복하자니 또한 중이가 전날의 원한을 기억하여 장차 이극과 비정보의 원수를 갚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한참 주저하다가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어 즉시 공자 집에게 답장을 썼다. 그 답장에 대략 이르기를, “우리가 중이 공자에게 죄를 지었음을 스스로 잘 알기에, 감히 무장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를 추대하려고 하는 것은 실은 우리도 바라던 바입니다. 만일 공자를 따라 망명했던 여러분들이 우리를 해치지 않겠다고 하늘과 태양에 맹세하고 대부께서 허물없음을 책임진다면 감히 명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했다.
公子縶讀其回書,已識透其狐疑之意。乃單車造於廬柳,來見呂郤。呂郤欣然出迎,告以衷腹曰:「某等非不欲迎降,懼公子不能相容,欲以盟為信耳。」縶曰:「大夫若退軍於西北,縶將以大夫之誠,告於公子,而盟可成也。」呂郤應諾。候公子縶別去,即便出令,退屯於郇城。重耳使狐偃同公子縶至郇城,與呂郤相會。是日,刑牲歃血,立誓共扶重耳為君,各無二心。盟訖,即遣人相隨狐偃至臼衰,迎接重耳到郇城大軍之中,發號施令。懷公不見呂郤捷音,使寺人勃鞮至晉軍催戰。行至中途,聞呂郤退軍郇城,與狐偃公子縶講和,叛了懷公,迎立重耳,慌忙回報。
공자 집은 그 답장을 읽고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알았다. 그는 즉시 홀로 수레를 타고 여류로 가서 여성과 극예를 만났다. 두 사람이 흔연한 마음으로 진영 밖에 나와서 마중하여 마음속 생각을 말하기를, “우리가 항복하여 중이 공자를 맞이하고 싶으나, 공자께서 용납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맹세하여 믿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니, 공자 집이 말하기를, “대부들께서 만약 군사를 서북쪽으로 물리친다면 제가 두 분의 진심을 공자께 고하여, 맹세가 이루어지게 하겠습니다.” 했다. 여성과 극예가 허락하고, 공자집과 헤어진 후 즉시 군령을 내려 군사들을 뒤로 물려서 순성(郇城)에 주둔했다. 중이가 호언을 시켜 공자집과 같이 순성으로 가서 여성과 극예 두 사람과 만나게 했다. 그날 희생을 잡아 입술에 피를 바른 후에 다 같이 힘을 합하여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중이를 군주로 추대하기로 맹세했다. 맹세를 끝내고 즉시 사람을 호언에게 딸려 구쇠로 보내어, 중이를 순성의 대군 속에서 영접하고 중이를 당진의 군주로 받들겠다고 군사들 앞에서 선포했다. 진회공은 여성과 극예로부터 이겼다는 소식이 없어 시인 발제를 시켜 진(晉)나라 군사에게 싸움을 재촉하게 했다. 발제가 여류로 가던 도중에, 여성과 극예가 군사들을 순성으로 물리고 호언, 공자 집과 강화를 맺은 뒤에 회공을 버리고 중이를 영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발제가 황망히 돌아와 진회공에게 보고했다.
懷公大驚,急集郤步揚、韓簡、欒枝、士會等一班朝臣計議。那一班朝臣,都是向著公子重耳的,平昔見懷公專任呂郤,心中不忿:「今呂郤等尚且背叛,事到臨頭,召我等何用。」一個個託辭,有推病的,有推事的,沒半個肯上前。懷公嘆了一口氣道:「孤不該私自逃回,失了秦歡,以致如此!」勃鞮奏曰:「群臣私約共迎新君,主公不可留矣!臣請為御,暫適高梁避難,再作區處。」不說懷公出奔高梁。再說,公子重耳,因呂郤遣人來迎,遂入晉軍。呂省郤芮叩首謝罪,重耳將好言撫慰。
진회공이 크게 놀라 급히 극보양, 한간, 난지, 사회 등 조정 신하들을 불러 대책 회의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조정 신하들 모두가 지난날 공자 중이를 따르던 사람들이었고, 진회공이 언제나 여성과 극예에게만 일을 맡기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불평하기를, “지금 여성과 극예마저 배반하여 일이 눈앞에 닥쳤는데 우리를 불러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병이나 일을 핑계하면서 어전에 나아가지 않았다. 진회공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몰래 스스로 도망쳐 돌아오면 안 되었는데, 그 일로 진(秦)나라의 환심을 잃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구나!” 했다. 발제가 아뢰기를, “여러 신하가 새 군주를 맞이하기로 몰래 약속했다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더 이곳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신이 말고삐를 잡겠으니 잠시 고량국(高梁國)으로 몸을 피하였다가 다시 변통하기로 하십시오.” 하니, 진회공이 고량국으로 도망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공자 중이는 여성과 극예의 영접을 받고 진(晉)나라 군 진영으로 들어갔다. 여성과 극예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자 중이가 좋은 말로 위로했다.
趙衰臼季等從亡諸臣,各各相見,吐露心腹,共保無虞。呂郤大悅,乃奉重耳入曲沃城中,朝於武公之廟。絳都舊臣,欒枝郤溱為首,引著士會、舟之僑、羊舌職、荀林父、先蔑、箕鄭、先都等三十餘人,俱至曲沃迎駕。郤步揚、梁繇靡、韓簡、家僕徒等,另做一班,俱往絳都郊外邀接。重耳入絳城即位,是為文公。按重耳四十三歲奔翟,五十五歲適齊,六十一歲適秦,及復國為君,年已六十二歲矣。文公既立,遣人至高梁刺殺懷公。子圉自去年九月嗣位,至今年二月被殺,首尾為君,不滿六個月。哀哉!寺人勃鞮收而葬之,然後逃回。不在話下。
조쇠, 구계[胥臣] 등 공자를 따라 망명했던 여러 신하와 서로 만나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토로하여 모두 걱정할 것 없음을 보증했다. 여성과 극예가 크게 기뻐하며 이에 중이를 모시고 곡옥성으로 들어가서 무공 사당에 참배했다. 도읍 강성에서 난지, 극진(郤溱)을 위시하여 사회, 주지교, 양설직(羊舌職), 순림보(荀林父), 선멸(先蔑), 기정(箕鄭), 선도(先都) 등 30여 명의 옛신하들이 모두 곡옥에 이르러 어가를 환영했다. 극보양, 양요미, 한간, 가복도 등은 따로 한 무리를 지어 함께 강성 밖 교외에 나와 영접했다. 중이가 강성에 들어가서 진(晉)나라 군주에 즉위하니, 이가 진문공(晉文公)이다. 중이가 43살에 적(翟)나라로 달아났고, 55살에 제나라로 갔으며, 61살에 진(秦)나라에 가서 진(晉)나라로 돌아와 군주가 되니, 나이가 이미 62살이었다. 진문공이 이미 즉위하여 고량국에 사람을 보내 진회공을 죽였다. 진회공은 그 전 해 9월에 군주 자리를 이어 당년 2월에 피살되었으니 군주로 있은 지 6개월이 되지 않았다. 슬프구나. 시인 발제가 진회공의 시체를 거두어 장례를 치른 후에 도망쳐 숨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卻說,文公宴勞秦將公子縶等,厚犒其軍。有丕豹哭拜於地,請改葬其父丕鄭。文公許之。文公欲留用丕豹,豹辭曰:「臣已委質於秦庭,不敢事二君也。」乃隨公子縶到河西,回復秦穆公。穆公班師回國,史臣有詩美秦穆公云:「轔轔車騎過河東,龍虎乘時氣象雄;假使雍州無義旅,縱然多助怎成功?」卻說,呂省郤芮迫於秦勢,雖然一時迎降,心中疑慮,到底不能釋然,對著趙衰臼季諸人,未免有慚愧之意。又見文公即位數日,並不曾爵一有功,戮一有罪,舉動不測,懷疑益甚。乃相與計較,欲率家甲造反,焚燒公宮,弒了重耳,別立他公子為君。
한편, 진문공이 연회를 열어 진(秦)나라 장수 공자 집 등의 노고를 위로하고 군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비표가 땅에 엎드려 통곡을 하고 그의 부친 비정보의 묘를 개장하고자 문공에게 청하니, 문공이 허락하고 비표를 머물러두어 임용하고자 했다. 비표가 사양하며 말하기를, “신은 이미 진(秦)나라 조정에 신하가 된 몸입니다. 감히 두 임금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했다. 이에 공자 집을 따라 황하 서쪽에 주둔하고 있던 목공에게 돌아가 복명했다. 진목공은 군사들을 돌려 귀국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진목공을 찬미하기를, “수레바퀴 소리 요란하게 전차를 몰아 하동을 지나가니, 영웅이 때를 만났으니 그 기상이 웅장하도다! 만일 옹주의 정의로운 군사가 없었다면, 비록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더라도 어찌 성공했겠는가?” 했다. 한편, 여성과 극예는 진(秦)나라 군사력에 압박을 받아 비록 일시적으로 항복을 했으나, 마음 속에 의심이 일어나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조쇠나 구계 등 여러 사람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도 없었다. 또 진문공이 즉위한 지 여러 날이 지나도 공이 있다고 작위를 올리지도 그렇다고 죄가 있다고 죽이지도 않아 그 거동을 예측할 수 없어 의심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이에 두 사람은 계책을 내어 가병을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태우고 중이를 죽인 후 다른 공자를 군주로 따로 세우기로 했다.
思想:「在朝無可與商者。惟寺人勃鞮,乃重耳之深仇,今重耳即位,勃鞮必然懼誅,此人膽力過人,可邀與共事。」使人招之,勃鞮隨呼而至。呂郤告以焚宮之事,勃鞮欣然領命。三人歃血為盟,約定二月晦日會齊,夜半一齊舉事。呂郤二人,各往封邑,暗集人眾。不在話下。卻說,勃鞮雖然當面應承,心中不以為然。思量道:「當初奉獻公之命,去伐蒲城。又奉惠公所差,去刺重耳,這是桀犬吠堯,各為其主。今日懷公已死,重耳即位,晉國方定,又幹此大逆無道之事,莫說重耳有天人之助,未必成事;縱使殺了重耳,他從亡許多豪傑,休想輕輕放過了我。不如私下往新君處出首,把這話頭,反做個進身之階。此計甚妙。」
여성과 극예가 생각하기를, “조정에 있는 사람 중에 더불어 일을 도모할 사람은 없다. 오직 시인 발제가 중이의 깊은 원한을 샀는데 오늘 중이가 즉위하였으니 발제도 잡혀 죽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그 담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니 불러와 같이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사람을 시켜 발제를 찾아오게 했다. 발제가 부름을 받아 오니, 여성과 극예가 궁궐에 불을 질러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중이를 죽이기로 한 계획을 발제에게 말했다. 발제가 흔쾌히 동의했다. 세 사람이 입술에 피를 발라 맹세하고, 2월 그믐날 서로 만나 한밤중에 일제히 거사하기로 약속했다.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은 각기 자기들의 봉읍으로 돌아가서 비밀리에 군사들을 모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발제는 비록 두 사람 면전에서 거사를 같이하기로 승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내키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당시에 진헌공의 명을 받들어 포성으로 가서 중이 공자를 잡으려고 했고, 또한 진혜공이 보내서 중이를 암살하려고 갔지만, 그것은 마치 걸왕(桀王)의 개가 요(堯)임금을 보고 짖는 것과 같은 이치라, 각기 그 주인을 위해 한 일이라. 지금 진회공이 이미 죽고 중이가 즉위하였으니 진(晉)나라는 바야흐로 안정되려는데, 또다시 이렇게 대역무도한 일을 일으키려 하니, 중이가 하늘과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아도 이일은 반드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중이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망명할 때 따랐던 수많은 호걸이 있는데 그들이 나를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새로 즉위한 중이를 몰래 찾아가 이 일을 알린다면 오히려 나의 위급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계책이 매우 훌륭하다.” 했다.
又想:「自己是個有罪之人,不便直叩公宮。」遂於深夜往見狐偃。狐偃大驚,問曰:「汝得罪新君甚矣!不思遠引避禍,而夤夜至此何也?」勃鞮曰:「某之此來,正欲見新君,求國舅一引進耳!」狐偃曰:「汝見主公,乃自投死也。」勃鞮曰:「某有機密事來告,欲救一國人性命,必面見主公,方可言之。」狐偃遂引至公宮門首,偃叩門先入,見了文公,述勃鞮求見之語。文公曰:「鞮有何事,救得一國人性命?此必託言求見,借舅氏作面情討饒耳。」狐偃曰:「『芻蕘之言,聖人擇焉。』主公新立,正宜捐棄小忿,廣納忠告,不可拒之。」
발제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죄인이라 직접 궁궐에 들어가기 힘들 것이다.” 하고, 마침내 밤중에 호언의 집을 찾아가 만났다. 호언이 크게 놀라 묻기를, “너는 새 군주에게 큰 죄를 지은 사람인데, 멀리 도망쳐서 화를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밤중에 이렇게 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니, 발제가 말하기를,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새 군주를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국구께서 저를 이끌어 새 군주에게 한번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했다. 호언이 말하기를, “네가 주공을 뵈려는 것은 스스로 죽으러 들어가는 일이다.” 하니, 발제가 말하기를, “제가 매우 중요한 기밀을 알고 있어 이를 고하여 한 나라 주군의 목숨을 구하고자 합니다. 반드시 주군을 뵙고서야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했다. 호언이 마침내 발제를 데리고 궁궐 문밖에 이르러, 문을 두드려 먼저 들어가 진문공을 알현하고, 발제가 뵙고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문공이 말하기를, “발제가 무슨 일로 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단 말이오? 이는 반드시 말할 게 있다고 뵙기를 청하는 것이니, 외숙께서 알아서 사정을 보아 죄를 주든지 용서를 하든지 하십시오.” 했다. 호언이 말하기를, “나무꾼의 말도 성인들은 가려들었습니다. 주공께서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마땅히 작은 원한을 잊으시고 충언을 널리 용납하셔야 합니다. 물리치시면 안 됩니다.” 했다.
文公意猶未釋。乃使近侍傳語責之曰:「汝斬寡人之袂,此衣猶在,寡人每一見之寒心。汝又至翟行刺寡人,惠公限汝三日起身,汝次日即行,幸我天命見祐,不遭毒手。今寡人入國,汝有何面目來見?可速逃遁,遲則執汝付刑矣!」勃鞮呵呵大笑曰:「主公在外奔走十九年,世情尚未熟透耶?先君獻公,與君父子;惠公則君之弟也。父仇其子,弟仇其兄,況勃鞮乎?勃鞮小臣,此時惟知有獻惠,安知有君哉?昔管仲為公子糾射桓公中其鉤,桓公用之,遂伯天下。如君所見,將修射鉤之怨,而失盟主之業矣。不見臣,不為臣損,但恐臣去,而君之禍不遠也。」
문공이 아직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 근시를 시켜 말을 전하여 꾸짖기를, “너는 옛날에 포성에서 과인의 소맷자락을 칼로 베었었다. 그 옷을 아직도 갖고 있다. 과인이 옷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서늘하다. 네가 또 적(翟)나라에 와서 나를 죽이려고 할 때 혜공이 너에게 3일의 기한을 주고 길을 떠나라고 했는데, 너는 다음 날 바로 길을 떠났다. 요행히 하늘이 도와 너의 독수를 피할 수 있었다. 지금 과인이 입국하여 군주가 되었는데 너는 무슨 면목으로 나를 만나러 왔느냐? 빨리 도망쳐서 몸을 피하지 않고 이곳에 얼씬거리면 너를 잡아 형벌을 내릴 것이다!” 하니, 발제가 크게 웃고 말하기를, “주군이 나라밖에서 19년 동안 망명을 했다는데 아직도 세상 물정에 통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선군 진헌공과는 부자지간이고 진혜공은 즉 주군의 동생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원수로 여기고, 동생이 형을 원수로 여기는데 하물며 발제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발제는 보잘것없는 신하라 그때는 오로지 진헌공과 진혜공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어찌 주군이 있는 줄 알았겠습니까? 옛날에 관중(管仲)이 공자규(公子糾)를 위해 활을 쏘아 환공의 허리띠 고리를 맞추었지만 환공은 관중을 임용하여 마침내 천하의 패주(覇主)가 되었습니다. 만약 주공의 소견이 허리띠 고리에 화살을 맞은 원한을 잊지 않으시면, 맹주가 되고자 하시는 뜻을 버리는 것입니다. 신을 보지 않겠다고 하니 이것은 신에게는 손해 볼 것이 없으나, 아마도 제가 가버리면 주공에게 닥칠 화가 멀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狐偃奏曰:「勃鞮必有所聞而來,君必見之。」文公乃召勃鞮入宮。勃鞮並不謝罪,但再拜口稱「賀喜!」文公曰:「寡人嗣位久矣,汝今日方稱賀,不已晚乎?」勃鞮對曰:「君雖即位,未足賀也。得勃鞮,此位方穩,乃可賀耳!」文公怪其言,屏開左右,願聞其說。勃鞮將呂郤之謀,如此恁般,細述一遍:「今其黨布滿城中,二賊又往封邑聚兵。主公不若乘間與狐國舅微服出城,往秦國起兵,方可平此難也。臣請留此,為誅二賊之內應。」狐偃曰:「事已迫矣!臣請從行。國中之事,子餘必能料理。」文公叮囑勃鞮:「凡事留心,當有重賞!」勃鞮叩首辭出。
호언이 아뢰기를, “발제가 틀림없이 들은 바가 있어서 왔을 것입니다. 주군께서 반드시 만나 보십시오.” 했다. 진문공이 이에 발제를 불러 들어오도록 했다. 발제가 진문공을 보자 죄를 빌지도 않고 다만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축하드립니다!”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군주 자리를 이은 지 오래되었는데 너는 이제야 축하의 말을 하니 너무 늦지 않았느냐?” 하니, 발제가 대답하기를, “주군께서 비록 즉위는 하셨어도 아직 축하의 말을 듣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제 말을 들어야 주군의 군주 자리가 비로소 안정될 것이라 이에 축하를 드립니다.” 했다. 진문공이 그 말을 괴이히 생각하고 좌우의 시종을 물리치고 그의 말을 듣고자 했다. 발제는 여성과 극예의 모의를 이러이러하게 자세히 서술하기를, “지금 그 무리가 성중에 가득 차 있고 두 도적이 자기들의 봉읍으로 가서 군사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만약에 이 틈을 이용하여 호국구와 같이 평복으로 갈아입고 성을 탈출하여 진(秦)나라에 가서 그곳의 군사를 이끌고 오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 반란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신은 이곳에 남아 두 도적을 죽이고 내응하겠습니다.” 했다. 호언이 말하기를, “일이 이미 임박하였으니 신이 전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나라의 일은 모두 자여(조쇠)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진문공이 발제에게 단단히 부탁하기를, “매사에 조심하여라. 마땅히 중상을 내릴 것이다.” 하니, 발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드리고 물러갔다.
文公與狐偃商議了多時,使狐偃預備溫車於宮之後門,只用數人相隨。文公召心腹內侍,吩咐如此如此,不可洩漏。是晚,依舊如常就寢。至五鼓,託言感寒疾腹病,使小內侍執燈如廁,遂出後門,與狐偃登車出城而去。次早,宮中俱傳主公有病,各來寢室問安,俱辭不見。宮中無有知其出外者。天明,百官齊集朝門,不見文公視朝,來至公宮詢問。只見朱扉雙閉,門上掛著一面免朝牌,守門者曰:「主公夜來偶染寒疾,不能下牀。直待三月朔視朝,方可接見列位也。」
진문공과 호언은 오랫동안 상의한 끝에 호언이 온거(溫車)를 궁궐 후문에 대기하게 하고, 단지 몇 명만 따르게 했다. 진문공은 심복 내시를 불러 이러저러하게 분부하고 누설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날 밤에 평상시대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경(새벽 4시경)이 되자 오한이 나고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어린 내시에게 등불을 밝혀 들고 측간으로 갔다. 곧 후문으로 나와 호언과 함께 수레를 타고 성문을 빠져나갔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궁중에는 주공이 병이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각각 침실 앞에 와서 문안을 올리려 했으나 모두 사절하여 뵐 수 없었다. 궁중에서 그가 밖으로 나간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되어 백관들이 모두 조문 앞에 모였으나 문공이 조회에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여 궁궐로 와서 소식을 물었다. 다만 궁궐 침실의 붉은 두 문짝이 꼭 닫혀 있고, 문 위에는 정사를 보지 않겠다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침실 문을 지키던 군사가 말하기를, “주공께서 어젯밤에 한질을 얻으시어 침상에서 주무시지 못했습니다. 3월 초나 되어야 정사를 보실 수 있어 그때나 여러분을 접견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했다.
趙衰曰:「主公新立,百事未舉,忽有此疾,正是『天有不測風雲,人有旦夕禍福。』」眾人信以為真,各各嘆息而去。呂郤二人聞知文公患病不出,直至三月朔方纔視朝,暗暗歡喜曰:「天教我殺重耳也!」且說晉文公狐偃潛行離了晉界,直入秦邦,遣人致密書於秦穆公,約於王城相會。穆公聞晉侯微行來到,心知國中有變。乃託言出獵,即日命駕,竟至王城來會晉侯。相見之間,說明來意。穆公笑曰:「天命已定,呂郤輩何能為哉?吾料子餘諸人,必能辦賊,君勿慮也!」乃遣大將公孫枝屯兵河口,打探絳都消息,便宜行事。晉侯權住王城。
조쇠가 말하기를, “주공이 새로 즉위하여 할 일이 많은데 갑자기 병이 나셨다고 하니, 이것은 마치 ‘하늘에는 바람과 구름을 예측할 수 없고, 사람은 재앙과 복이 아침저녁으로 변한다’라는 말과 같구나!” 했다. 여러 사람이 사실로 믿고 탄식을 하면서 각기 흩어져 돌아갔다.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은 진문공이 병이 나서 나오지 못하고, 3월 초나 되어야 조정에 나와 정사를 볼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말하기를, “하늘이 우리에게 중이를 죽이라고 하는구나!” 했다. 한편, 진문공과 호언은 함께 잠행하여 진(晉)나라 경계를 벗어나 진(秦)나라에 바로 들어섰다. 진문공이 사람을 보내 밀서 한 통을 진목공에게 전하여 왕성(王城)에서 만나기를 청했다. 진목공이 진문공이 미행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진(晉)나라에 변란이 일어난 것을 알았다. 진목공은 즉시 사냥을 나간다는 핑계를 대고 그날로 수레를 타고 왕성으로 와서 진문공을 만났다. 상견례를 마친 진문공은 온 연유를 설명했다. 진목공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천명이 이미 정해졌는데 여성과 극예의 무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여(조쇠)와 여러 신하들이 능히 도적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했다. 이에 진목공은 대장 공손 지에게 황하의 나루에 주둔하게 하고, 진(晉)나라 도읍인 강도(絳都)의 소식을 정탐한 후에 스스로 알아서 대응하도록 명했다. 진문공은 왕성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卻說,勃鞮恐呂郤二人見疑,數日前,便寄宿於郤芮之家,假作商量。至二月晦日,勃鞮說郤芮曰:「主公約來早視朝,想病當小愈。宮中火起,必然出外。呂大夫守住前門,郤大夫守住後門,我領家眾據朝門,以遏救火之人。重耳雖插翅難逃也!」郤芮以為然,言於呂省。是晚,家眾各帶兵器火種,分頭四散埋伏。約莫三更時分,於宮門放起火來。那火勢好不兇猛!宮人都在睡夢中驚醒,只道宮中遺漏,大驚小怪,一齊都亂起來。火光中但見戈甲紛紛,東沖西撞,口內大呼:「不要走了重耳!」宮人遇火者,爛額焦頭,逢兵者,傷肢損體。哀哭之聲,耳不忍聞。
한편, 발제는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의 의심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수일 전부터 극예의 집에서 붙어살며 대비하는 체했다. 2월 그믐날이 되자 발제가 극예에게 말하기를, “주군이 내일 아침 일찍 조정에 나와 정사를 볼 예정이라고 하니 아마도 병이 조금 나은 듯합니다. 궁궐에 불이 나면 반드시 밖으로 뛰어 나갈 것이니 여대부께서는 궁궐의 앞문을 지키시고 극대부께서는 후문을 지키십시오. 저는 가병들을 데리고 조정 문앞에 있다가 불을 끄지 못하게 막겠습니다. 중이가 비록 날개가 달려 있다고 한들 도망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했다. 극예가 그렇다고 생각하여 여성에게 그 말을 전했다. 그날 저녁 여성과 극예의 가병들이 각기 무기와 불씨를 가지고 사방으로 흩어져 매복했다가 대략 삼경쯤 되었을 때 궁궐 문에 불을 질렀다. 그 불길은 아주 세차게 타올랐다. 궁인들이 모두 잠결에서 깨어나 다만 궁중에서 실화로 일어난 불로 여기고 놀라기는 했으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고, 일제히 모두 어지럽게 일어났다. 불빛 속에 다만 무기를 든 무사들이 어지러이 여기저기 부딪치며 큰소리로 “중이를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불길을 만난 궁인들은 얼굴이 데고 머리를 태웠으며, 군사를 만난 사람들은 팔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슬피 곡하는 소리가 차마 귀로 들을 수 없었다.
呂省仗劍直入寢宮,來尋文公,並無蹤影。撞見郤芮,亦仗劍從後宰門入來,問呂省:「曾了事否?」呂省對答不出,只是搖頭。二人又冒火覆身搜尋一遍,忽聞外面喊聲大舉,勃鞮倉忙來報曰:「狐、趙、欒、魏等各家,悉起兵眾前來救火,若至天明,恐國人俱集,我等難以脫身。不如乘亂出城,候至天明,打聽晉侯死生的確,再作區處。」呂郤此時,不曾殺得重耳,心中早已著忙了,全無主意。只得號召其黨,殺出朝門而去。史官有詩云:「毒火無情殺械成,誰知車駕在王城!晉侯若記留袂恨,安得潛行會舅甥?」
여성이 검을 빼 들고 침실로 뛰어들어 진문공을 찾았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극예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극예도 역시 칼을 빼 들고 후문을 통하여 궁궐로 들어와 여성에게 묻기를, “일이 끝났습니까?” 했다. 여성이 대답하지 못하고 단지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두 사람이 불을 무릅쓰고 진문공을 두루 찾다가, 갑자기 궁궐 밖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발제가 황망 중에 뛰어와 두 사람에게 알리기를, “호씨(狐氏), 조씨(趙氏), 난씨(欒氏), 위씨(魏氏) 등의 각 종족들이 모두 가병을 일으켜 불을 끄기 위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만약에 날이 밝아 나라 안의 사람들이 모두 모이게 되면 우리가 빠져나가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혼란한 틈을 타서 성을 나갔다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진(晉)나라 군주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한 후에 다시 대책을 세우는 편이 좋겠습니다.” 했다. 여성과 극예가 이때 중이를 죽이지 못하여 마음이 이미 초조하게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무리를 불러서 조문을 통하여 궁궐을 빠져나왔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무정한 화마는 궁궐을 불사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주군은 이미 왕성에 가 있음을 누가 알랴? 중이가 만약 소맷자락의 한을 기억했더라면, 어떻게 몰래 탈출하여 장인과 만날 수 있었겠는가?” 했다.
且說,狐、趙、欒、魏等各位大夫,望見宮中失火,急忙歛集兵眾,准備撓鉤水桶,前來救火,原不曾打帳廝殺。直至天明,將火撲滅,方知呂郤二人造反。不見了晉侯,好大吃驚!有先前吩咐心腹內侍,火中逃出,告知:「主公數日前,於五鼓微服出宮,不知去向。」趙衰曰:「此事問狐國舅便知。」狐毛曰:「吾弟子犯,亦於數日前入宮,是夜便不曾歸家。想君臣相隨,必然預知二賊之逆謀。吾等只索嚴守都城,修葺宮寢,以待主公之歸可也。」魏犨曰:「賊臣造逆,焚宮弒主,今雖逃不遠,乞付我一旅之師,追而斬之。」趙衰曰:「甲兵,國家大權,主公不在,誰敢擅動。二賊雖逃,不久當授首矣。」
한편, 호모, 조쇠, 난지, 위주 등 여러 대부는 궁중에 불이 난 것을 바라보고 급히 군사들을 모아 갈고리와 물통을 준비하여 불을 끄기 위해 달려왔다. 원래 그들은 싸우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날이 밝기에 이르러 불길이 잡히자 비로소 여생과 극예 두 사람이 반역을 꾀한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진(晉)나라 군주가 보이지 않자 모두 크게 놀랐다. 문공이 궁궐을 나갈 때 당부했던 심복 내시가 불길 속에서 뛰어나오며 고하기를, “주군께서 수일 전 새벽 4시경에 평복을 입으시고 궁궐 밖으로 나가셨는데 어디로 가셨는지는 모릅니다.” 했다. 조쇠가 말하기를, “이 일은 호국구께 물으면 알 것이오.” 하니, 호모가 말하기를, “동생 자범(호언)도 수일 전에 입궁하더니 그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생각건대 주군과 신하가 같이 갔으니 이것은 반드시 두 역적의 역모를 미리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도성을 엄중히 지키면서 궁궐을 수리하고 주군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될 것입니다.” 했다. 위주가 말하기를, “역적이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불태우고 주군을 시해하려고 했으니 지금 아마도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 것이오. 나에게 한 떼의 군마를 내주시면 뒤를 쫓아가 역적놈들의 목을 베어 오겠소!” 하니, 조쇠가 말하기를, “군사를 동원하는 일은 나라의 큰 권력입니다. 주공이 계시지 않은데 누가 감히 멋대로 군사를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두 역적이 비록 도망갔더라도 머지않아 그들의 목을 벨 수 있을 것이오.” 했다.
再說,呂郤等屯兵郊外,打聽得晉君未死,諸大夫閉城謹守;恐其來追,欲奔他國,但未決所向。勃鞮紿之曰:「晉君廢置,從來皆出秦意。況二位與秦君原有舊識,今假說公宮失火,重耳焚死。去投秦君,迎公子雍而立之,重耳雖不死,亦難再入矣。」呂省曰:「秦君向與我有王城之盟,今日只合投之。但未知秦肯容納否?」勃鞮曰:「吾當先往道意,如其慨許,即當偕往。不然,再作計較。」勃鞮行至河口,聞公孫枝屯兵河西,即渡河求見,各各吐露心腹,說出真情。
한편, 여성과 극예는 성 밖에 주둔하여 탐문해 보니, 진문공이 죽지 않았으며, 여러 대부가 성문을 닫고 엄하게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이 추격해 오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다른 나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단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발제가 두 사람을 속여 말하기를, “진(晉)나라의 군주들을 폐하고 세운 것은 모두 진목공의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더구나 두 분은 원래 진목공과 면식이 있으시니, 지금 거짓으로 궁궐에 불이 나서 중이가 타 죽었다고 하고 진목공을 직접 찾아가서 공자 옹(公子雍)을 맞아들여 군주로 세우십시오. 중이가 비록 죽지는 않았다고 해도 또한 다시 들어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니, 여성이 말하기를, “진목공과는 옛날에 나와 왕성에서 맹세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찾아가는 것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진목공이 우리를 용납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했다. 발제가 말하기를, “제가 먼저 가서 뜻을 전하고, 만약 허락한다면 마땅히 모두가 가기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대책을 세웁시다.” 했다. 발제가 황하의 나루에 당도하여, 공손 지가 강 서쪽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시 황하를 건너 공손지를 찾아가 만나서 마음속의 진정을 말했다.
公孫枝曰:「既賊臣見投,當誘而誅之,以正國法,無負便宜之託可也。」乃為書託勃鞮往召呂郤。書略曰:「新君入國,與寡君原有割地之約。寡君使枝宿兵河西,理明疆界,恐新君復如惠公故事也。今聞新君火厄,二大夫有意於公子雍,此寡君之所願聞。大夫其速來共計!」呂郤得書,欣然而往。至河西軍中,公孫枝出迎。敘話之後,設席相款。呂郤坦然不疑。誰知公孫枝預遣人報知秦穆公,先至王城等候。呂郤等留連三日,願見秦君。公孫枝曰:「寡君駕在王城,同往可也。車徒暫屯此地,俟大夫返駕,一同濟河何如?」
공손 지가 말하기를, “이미 역적이 우리에게 투항하려 하니 마땅히 유인하여 죽여서 국법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적당한 구실을 붙여 그들을 이곳으로 유인하십시오.” 하고, 편지를 써서 발제에게 주어 여성과 극예를 불렀다. 편지에 대략 이르기를, “새 군주가 귀국으로 들어갈 때 원래 우리 주군과 귀국의 땅을 할양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주군께서 본인에게 황하의 서안에 주둔하도록 명하신 것은 국경을 명확히 정하여 새 군주가 옛날의 혜공의 일을 반복할까 걱정해서입니다. 지금 들으니 새 군주가 화재를 당하여 두 대부께서 공자 옹을 추대하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저희 군주께서도 원하시는 일입니다. 대부들께서는 속히 오셔서 같이 대책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했다. 여성과 극예가 편지를 보고 흔연히 하서의 군중으로 갔다. 공손지가 마중을 나와 상견례를 한 후에 좌정하여 환담을 나누었다. 여성과 극예는 편안히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손지는 이미 사람을 진목공에게 보내어 여성과 극예의 일을 보고하여 먼저 왕성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성과 극예는 공손지의 군영에 3일을 머문 후에 진목공을 접견하고자 했다. 공손지가 말하기를, “저희 군주님은 왕성에 가 계시니 함께 가서 뵐 수 있습니다. 전차와 군사들은 잠시 이곳에 머물러 두고 대부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황하를 건너가면 어떻겠습니까?” 했다.
呂郤從其言。行至王城,勃鞮同公孫枝先驅入城,見了秦穆公,使丕豹往迎呂郤。穆公伏晉文公於圍屏之後。呂郤等繼至,謁見已畢,說起迎立子雍之事。穆公曰:「公子雍已在此了!」呂郤齊聲曰:「願求一見。」穆公呼曰:「新君可出矣!」只見圍屏後一位貴人,不慌不忙,叉手步出。呂郤睜眼看之,乃文公重耳也。嚇得呂省郤芮魂不附體,口稱「該死!」叩頭不已。穆公邀文公同坐。文公大罵:「逆賊!寡人何負於汝而反?若非勃鞮出首,潛出宮門,寡人已為灰燼矣!」
여성과 극예는 공손지의 말에 따랐다. 일행이 왕성에 도착하여 발제와 공손지가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서 진목공에게 고했다. 진목공은 비표를 시켜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을 마중하게 했다. 진목공은 진문공을 병풍 뒤에 숨어 있게 했다. 여성과 극예 등이 진목공을 알현한 후에 공자 옹을 맞이하여 세우려는 계획을 말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공자 옹은 이미 이곳에 와 있소!” 하니, 여성과 극예가 동시에 말하기를, “원하옵건대 한번 뵙고 싶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부르기를, “새 군주는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니, 바로 병풍 뒤에서 한 귀인이 서두르지 않고 두 손을 맞잡고 걸어 나왔다. 여성과 극예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바로 진문공 중이였다. 여성과 극예가 억하고 놀라 혼비백산하여, 입으로 “죽여주십시오.”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진목공이 진문공을 맞아 나란히 앉았다. 진문공이 큰 소리로 꾸짖기를, “이 역적 놈들아! 내가 너희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어찌 반역을 꾀했느냐? 만약 발제가 미리 고하여 궁궐을 몰래 빠져나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불에 타서 재가 됐을 것이다!” 했다.
呂郤此時,方知為勃鞮所賣。報稱:「勃鞮實歃血同謀,願與俱死。」文公笑曰:「勃鞮若不共歃,安知汝謀如此?」喝叫武士拿下,就命勃鞮監斬。須臾,二顆人頭,獻於階下。可憐呂省郤芮輔佐惠懷,也算一時豪傑,索性屯軍廬柳之時,與重耳做個頭敵,不失為從一忠臣!既已迎降,又復背叛,今日為公孫枝所誘,死於王城,身名俱敗,豈不哀哉!文公即遣勃鞮,將呂郤首級,往河西招撫其眾;一面將捷音馳報國中。眾大夫皆喜曰:「不出子餘所料也!」趙衰等忙備法駕,往河東迎接晉侯。
여성과 극예는 이때 비로소 발제에게 속은 것을 알고 보복하여 일컫기를, “발제도 실은 삽혈을 행하여 우리와 공모하였습니다. 원컨대 같이 죽여주십시오!” 하니, 진문공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발제가 만약에 너희들과 같이 삽혈을 하지 않았다면 어찌 네 놈들의 모의를 알 수 있었겠느냐?” 했다. 진문공이 무사에게 소리쳐 잡아 내리게 하고, 다시 발제에게 명하여 참수형을 감시하라고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목을 가져와서 층계 아래에 바쳤다. 불쌍하게도 여성과 극예는 진혜공과 진회공을 보좌하였으나 그래도 당대의 호걸이었다. 차라리 그들이 여류(廬柳)에 주둔하였을 때 중이에게 맞서서 싸웠더라면 충신이라는 이름은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중이를 맞이하여 투항했다가 다시 배반하여, 오늘 공손지에게 유인당하여 왕성에서 죽게 되어 몸과 이름을 모두 보존하지 못했으니 어찌 애달프다고 하지 않으리오! 문공이 즉시 여성과 극예의 수급을 발제에게 주어, 황하 서쪽에 가서 그 무리들을 달래게 했다. 한편으로 여성과 극예를 잡아서 죽였다는 소식을 진(晉)나라에 전하게 하니, 여러 대부는 모두 기뻐하며 말하기를, “자여(조쇠)가 예측한 데서 벗어나지 않았구나!” 했다. 조쇠 등이 서둘러 어가를 준비하여 황하의 동쪽으로 가서 진문공을 영접했다.
要知後事如何,且看下回分解。
그 뒷이야기가 어찌 될지 궁금하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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