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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도지경 제7권
28. 제자삼품수행품(弟子三品修行品)
높고 큰 부처님 덕(德) 거룩하시고
위신(威神) 또한 헤아릴 수 없어라.
도법(道法)으로 때를 따라 교화하시어
시방세계 모든 중생 제도하셨네.
생사의 번뇌를 보시고
법의 교량(橋梁) 나타내 보이시어
생사[始終]의 괴로움 비판하시고
니원(泥洹:涅槃)을 찬탄하셨네.
제자의 근기를 분별하여
근기에 맞추어 행(行)을 보이셨나니
차츰차츰 열어 인도하시어
아주 안온한 곳에 이르게 하시네.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생사의 우환(憂患)을 보아야 한다.
지옥의 혹독함ㆍ축생의 괴로움ㆍ아귀의 괴로움ㆍ인간의 근심ㆍ천상의 무상함 등은 견딜 수 없는 것인데, 이리 저리 두루 도는 것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아,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고ㆍ배고프고ㆍ목마르고ㆍ춥고ㆍ더우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원수를 만나는 괴로움과, 근심하고 슬퍼하는 고통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여러 겁(劫)을 지나오는 동안 부모와 이별하고 형제와 이별하며 처자와 이별하면서 슬피 울고 흘린 눈물은 4해(海)보다 많고,
어머니의 젖을 마신 것은 5강(江)과 4독(瀆)의 흐름보다 더 많으며,
혹은 아비가 아들을 잃고 통곡하고, 혹은 아들이 아비를 잃고 통곡하며,
혹은 형이 아우를 잃고 통곡하고, 혹은 아우가 형을 잃고 통곡하며,
혹은 남편이 아내를 잃고 통곡하고, 혹은 아내가 남편을 잃고 통곡하는 등 위와 아래로 뒤바뀐 것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수행하는 사람은 온갖 괴로움의 뿌리와 어리석음의 근원을 관찰하여 모두 기피하고 싫어해야 한다.
다만 이 생사의 병고[病]를 해탈하려고 하면, 낮과 밤으로 정진하여 도의 이치를 버리지 않고 무위(無爲)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전생[宿命]에 한량없이 많은 겁(劫)을 따라 왔다갔다하면서 나고 죽었던 일들과,
가령 몸의 뼈들을 쌓아 보면 수미산(須彌山)보다 더 높다는 것과,
그 골수[髓]를 땅에 바르면 가히 온 천하를 두를 만하다는 것과,
죽었던 일들을 헤아려보면 삼천세계(三千三界)를 두를 만하다는 것과,
그 흘리고 떨어뜨린 피가 고금 천하에 내린 비보다 더 많다는 것을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천만 겁 동안 이루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곤액(困厄)을 관찰하였기 때문에,
출가하여 수염을 깎고 머리카락을 깎으며, 정진에 오로지 하여 도를 구하고 세간의 영화를 바라지 않음이,
마치 밝은 이가 죽은 시체의 모양을 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하였다.
수행하는 사람은 나고 죽음[始終]을 보나니
지옥의 고통과
축생과 아귀의 액난(厄難)과
천상과 세간의 이별과
나고 죽으며 전전하는 모습이
비유하면 수레바퀴와 같다네.
부자와 형제가 서로 헤어지고
아내와 자식이 이별하여 근심하며
슬피 울어 흘린 눈물은
사해(四海)의 물보다 더 많고
어머니의 젖을 마신 것은
다섯 강보다 더 넘치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가 출가하여
정진에 오로지 하여 도법을 위하고
세속의 영화 바라지 않는 것이
저 밝은 이가 독(毒)을 버리는 것 같다.
수행하는 사람은 혼자 생각하기를,
‘내 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 동안 만나고 떨어져 이별하며, 걱정하고 속상해 했던 아픔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이,
비유하면 마치 매우 취한 사람과 같아 아무 것도 깨달아 알지 못하고 그릇된 말과 지나가는 말로 스스로 진리를 살펴보았다고 하며,
은애(恩愛)에 집착함이 비유하면 마치 아교[膠漆]과 같아서 능히 스스로 제도하지 못하였으니, 곧 정진 수행하여 세속을 멀리하고 도를 가까이 해야 한다’라고 한다.
[장사를 하여 이익을 구한 것의 비유]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멀리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구한 것과 같다.
그 나라에 간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큰 질에 걸렸다. 사망하는 이들이 많아서 열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죽은 시체가 낭자하여 그 시체 썩는 냄새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으며, 또한 이미 훌륭한 의원도 없고 게다가 좋은 약으로 치료할 수조차 없었다.
그 사람은 너무도 무서워서 그 나라에 간 것을 후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가령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환난은 당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밤낮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며, 그 걱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가령 내 병이 다 나아서 다시 한 번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돌아올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던 그 사람은 마침 어떤 훌륭한 의원을 만나 약을 마시고 침을 맞고 뜸을 떠서 병이 점차 낫고 기력을 되찾아 건강해졌다.
그는 곧 본국에 돌아와 가족들과 서로 만나자, 스스로 겪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곤액을 털어놓았다.
“지금부터 이후로는 끝내 나다닐 엄두도 나지 않고, 저 나라에도 가지 않을 텐데 의복과 양식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그러나 스스로 편안하면 그만이다. 어찌 다른 사람들을 알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 다음부터는 저 나라의 이름만 들어도 떨고 두려워하여, 집을 나오려 하지 않고 그 몸만 지켰던 것이다.
부처님 제자도 이와 같아서, 5도(道)의 괴로움과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병폐와 끊임없이 나고 죽는 것을 보아, 밤낮으로 정진에 오로지 하고 선정에 들어 도를 생각하며, 세존의 가르침을 얻어 니원(泥洹:涅槃)을 찬탄하고 생사를 비난한다면 이것이 훌륭한 의원이다.
좋은 약을 마셔 병을 고쳤다는 것은 부처님의 법을 설한 경(經)으로써 3독(毒)을 제거해버리는 것을 말한 것이요,
죽은 시체가 낭자하다고 한 것은 5음(陰)과 6쇠(衰)를 말한 것이다.
그 나라에 간 것을 후회하였다고 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많은 겁(劫)을 지내오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은애에 집착하고 오히려 마음에 잡다한 생각이 많아, 괴로움에 대한 진리[苦諦]ㆍ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진리[習諦]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盡諦]ㆍ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에 대한 진리[道諦]를 깨닫지 못하였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도를 수행하여 증득하였다면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이 몸뚱이를 싫어하여 빨리 반니원(般泥洹:般涅槃)에 이를 수 있을 터인데,
능히 가르침에 돌아가지 않고 고집스럽게 불길 속에 있나니,
반드시 불세존(佛世尊)께서 나타내 보이신 본래 무(無)하다는 진리를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고 물러나지 않아야 나아가고 물러남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멀리 장사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갔다가 병에 걸려
숱한 사람 다 죽어서 열에 하나만 남았고
죽은 시체 낭자하건만 묻어 줄 사람이 없었네.
마음으로 그 나라에 간 것을 후회하며
내 어찌 불우하게 이런 재앙을 만났는가 하다가
훌륭한 의원 만나 그 병이 나아서
본국에 와서는 다시 가지 않겠다고 말했네.
생사의 환난 두려워함도 이와 같이 하여
5도(道)에 돌고 도는 괴로움을 보고
본래의 잘못으로 도를 깨닫지 못한 것 자책하며
생사의 괴로움을 몹시 걱정해야 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진하여 열반을 구할 것이니
세간의 모든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나고 죽는 곤액의 해악 시체처럼 여겨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위의 성[無爲城]으로 향하라.
수행하는 사람은 목숨이 아차 다하게 되면 해탈을 얻지 못하고 도로 세 갈래 세계로 돌아가 헤어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마땅히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억측하는 것은 저 세간 범부들이 3보(寶)와 어긋나고 어두운 데로 빠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옛날의 많은 장사꾼들의 비유]
비유하면 옛날 많은 장사꾼들과 같다.
멀리 나다니면서 생활을 영위하느라고 다시 넓은 벌판과 사람이 없는 곳을 헤매게 되었는데, 길을 가느라고 피로가 심하여 그만 졸려 누워 잠을 자다가 시간도 지키지 못하고 또한 무기도 정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많은 도적 떼들이 몰려오는데도 깨닫는 이가 없어 활과 화살을 써보지 못하고 도적에게 살해를 당하였다.
그 가운데 어떤 힘센 사람이 곧 도망쳐 빠져 나오게 되어 몹시도 배고프고 피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 다시 계획을 세워 애써 용맹스러운 반려(伴侶)를 구해 가지고, 다시 먼저 갔던 길을 따라 다니면서 장사하여 이익을 구하였는데 언제나 어두워지면 곧 휴식하면서 매번 시간을 지켜 밤에 걸었고 활과 화살을 정비하곤 하였다.
도적들은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감히 맞서 겨루려 하지도 않고, 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곧 저절로 물러갔다.
깊고 어둡다고 한 것은 어리석음의 그물[癡網]을 말하는 것이니,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행(行)을 이루고 의식을 내어 집착하여 명색(名色)ㆍ6입(入)ㆍ갱락(更樂:觸)ㆍ통(痛:受)ㆍ애(愛) 등으로 몸을 받아[受身],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는 것과 근심ㆍ슬픔ㆍ고통 등의 뜻에 맞지 않는 행이 있게 된다.
생활을 영위한다고 한 것은 수행을 말한 것이요,
피로가 심하여 누워 잤다고 한 것은 무상함[非常]ㆍ괴로움[苦]ㆍ공함[空]ㆍ몸이랄 것이 없다[非身]는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며,
시간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한 것은 깊은 경(經)의 이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다.
무기를 정비하지 못하였다고 한 것은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지혜를 따르지 않고 제 자신만을 구제하려는 데 급급해하고 중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요,
도적에게 위험을 당하였다고 한 것은 선정의 생각에만 안주하여 공(空)하고 적정(寂靜)한 데에 들지 못하여,
5음(陰)과 6쇠(衰)에 미혹되고 네 가지 뒤바뀜에 떨어져 무상한 것을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괴로운 것을 즐거움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몸이랄 것 없는 데도 몸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공한 것을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목숨이 다하면 하늘에 태어났다가 그 복이 다하면 세상에 돌아와 3도(塗)를 여의지 못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힘센 이가 도망하여 빠져 나오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 것은 아라한(阿羅漢)을 얻었음을 말한 것이요,
곧 용맹한 반려를 구하여 다시 생활을 영위하였다고 한 것은 니원(泥洹:涅槃)에 이르러 아라한의 한계가 있어 구경(究竟)의 자리에 이르지 못함을 알고 부처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다시 큰 뜻을 일으켜 보살이 되는 것을 말한 것이며,
대중들과 더불어 반려를 삼아 서로 따라 걸었다고 한 것은 여섯 가지 도무극(度無極:波羅蜜)과 모든 평등한 행(行)을 말한 것이다.
무기를 정비하고 시간을 지켜 밤에 걸었다고 한 것은 대자대비로 공행(空行)을 분별하여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것을 말한 것이요,
도적이 저절로 물러갔다고 한 것은 생겨남이 없는 법인[不起法忍:無生法忍]과 걸림 없는 지혜로 삼계(三界)는 공한 것이라고 보아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체 네 가지 마군(魔軍)이 모두 항복함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목숨이 다하고 나면
삼악도(三惡道)에 들까 두려워하여
나라는 것을 억측하여 헤아리지 말고
삼보(三寶)에 귀의해야 한다.
비유하면 옛날 어떤 장사꾼과 같다.
멀리 떠나 재리(財利)를 구하였는데
졸려서 그만 누워 잠을 자다가
악한 도적에게 해를 당하였다.
그 가운데 힘센 이가 있어
온힘을 다해 도망쳐 벗어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액난을 당했다가
이제야 편안함을 얻었다고 말하였다.
이미 아라한의 도를 얻고 나서
스스로 그 한계가 있음을 알고
생사에 들지 않고서
니원(泥洹)으로 장애를 삼네.
다시 용맹스런 반려를 규합하여
무기를 정비하고 시간을 지켜 밤에 다니므로
도적이 보고 감히 맞서지 못하여
바로 물러나 제 소굴로 돌아갔네.
무위의 경계에 이르러
니원의 한계를 알고
보살의 뜻을 일으켜
대자대비를 행하네.
깊은 공행(空行)을 분별하여
집착도 끊음도 없이
돌고 도는 생사를 해탈하면
삼계의 환난이 있지 않으리.
[네 가지 평등심, 용의 비유]
수행하는 사람이 법을 받들어 네 가지 평등심(平等心)에 들어가서도 큰 자비가 없다면,
이를 비유하면 마치 조그마한 용은 능히 한 고을에만 비를 내리게 할 뿐, 골고루[周遍] 비를 내리게 하지 못하여 아무리 인민을 위하지만 그 혜택이 부족한 것처럼,
아라한이 행하는 네 가지 평등심도 그와 같다.
만일 바다의 큰 용이 널리 온 천하에 비를 내리게 하여 적시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보살대인(菩薩大人:菩薩摩訶薩)의 대자대비는 널리 중생들에게 골고루 미쳐 제도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부처님이신 천중천(天中天)께서 마음을 보시는 것도 그와 같으시어, 나타내 보이신 한계가 니원(泥洹:涅槃)보다 더한 것이 없나니, 점차 앞으로 나아가면 큰 도에 이르러 본래의 미혹을 알게 될 것이다.
[세 아들의 비유]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세 아들을 둔 것과 같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그 아이들을 길러 어른이 되게 하였는데, 의복ㆍ음식ㆍ의약(醫藥) 따위를 일찍이 부족한 적 없게 해주었다.
아버지는 점차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약해지자, 여러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효성스럽지 못하다. 너희들을 낳아 길러서 이제는 성인이 되게 하였는데, 이젠 내가 이미 늙었는데도 너희들은 공양하여 어릴 적에 길러준 은혜를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핍박하여 재물과 의복과 음식을 요구하고 있으니,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하느냐? 마땅히 관청[縣官]에 알려서 너희들을 모질게 다스리리라.”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의 분부를 듣고, 곧 두려움을 품어 아버지에게 목숨 바쳐 다짐하였다.
“저희들 형제들이 어리석은 소치로 의리를 알지 못하고 부모가 길러주신 은혜와 덕은 돌아보지 않은 채 제 몸만 애중히 여기고 더 깊은 은혜가 있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잘못을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지엄한 가르침을 듣고 곧 마땅히 명을 받들어 효도를 하되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게 하겠으며,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아 저희 조상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때 모든 아들들은 각기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캐고 온갖 7보(寶)를 다 구해왔다.
그리하여 부모를 공양하는 지극한 효도가 높고 높아, 오직 두 어버이만을 생각하고 제 몸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 큰 빛을 띤 구슬을 얻었는데, 그 구슬의 이름은 조명(照明)이라고 하였다.
바로 그 구슬을 가져다가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버지는 그 조명주(照明珠)를 보자 하얗던 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빠졌던 이도 도로 났으며, 훌륭한 장자(長者)가 되었으므로 멀고 가까운 데서 모두들 우러러보았다.
이를 이른바 아버지의 자애로움에 아들이 곧 효도한다고 하는 것이니, 제자가 수행하게 되면 어찌 큰 자비가 없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고 한 것은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識]을 말한 것이요,
아들을 길렀다고 한 것은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삼계에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의복과 음식은 5음(陰)과 6쇠(衰:根)와 12인연의 속박을 말한 것이요,
아들이 자라서도 계속 공양을 바랐다고 한 것은 모든 정욕(情欲)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
아버지가 관청에 찾아가 알리려고 하자 두려워하였다고 한 것은 무상한 것임을 깨닫고 6입(入)을 끊으려고 한 것을 말한 것이요,
아들이 그 분부를 받고 효도를 다하여 봉행(奉行)하겠다고 한 것은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세 아들이 다시금 효순(孝順)하였다고 한 것은 보시ㆍ지계ㆍ지혜의 근원을 말한 것이다.
바다에 들어가 일곱 가지 보물을 얻었다고 한 것은 7각의(覺意)에 이르러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이룬 것을 말한 것이요,
마침내 효도가 지극해졌다고 한 것은 제자로서의 한계는 니원의 경계에 이른 것임을 알아 다시 큰 뜻을 일으켜 보살도(菩薩道)를 행한 것을 말한 것이며,
조명주를 얻어 아버지가 다시 젊어졌다고 한 것은 현재 세계에서 뜻을 안정시켜 시방의 부처님을 뵙고 장애되는 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옛날 어떤 사람이
세 아들을 낳아서
길러 어른이 되게 하였으나
예전처럼 아비한테 의식을 구하였네.
아비가 세 아들에게 말하기를
나도 이제 매우 늙었으니
너희들이 마땅히 아비를 공양해야 할 터인데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도 내 힘만 바라느냐?
너희들을 고을 관청에 알려서
5독(毒)으로 매를 때리게 해야겠다.
아들은 아버지의 분부를 듣고
곧 받들어 봉양하며 효도하였다.
곧 바다에 들어가 7보를 구해다
존엄하신 아버지께 공양하고
또 조명주(照明珠)를 얻어오니
아버지는 다시 젊어지게 되었네.
세 아들은 마음ㆍ뜻ㆍ의식을 말함이요
정욕에 만족할 줄 모르다가
아버지가 꾸짖자 곧 효도한 것은
보시ㆍ지계ㆍ지혜의 도를 말한 것이다.
7각의(覺意)를 따라서
아라한을 이루어 니원에 들었다가
부처님의 크고 깊은 가르침을 받고
다시금 보살심(菩薩心)을 내었나니
도덕이 매우 크고 높아
시방 부처님을 뵈옵고
4대의 몸에 장애되지 않음이
마치 허공이 걸림 없는 것과 같았네.
[자라와 여우의 비유]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한 마리의 자라[鼈]가 바다에서 나와 노닐다가 언덕까지 이르렀는데 큰 여우 한 마리가 그 자라를 쫓아와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자라는 여우가 오는 것을 보고 머리와 네 발을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추었다.
여우는 그곳에 머물러 기다리면서 만약 머리나 네 발이 껍질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내 마땅히 잡아먹으리라고 하였다.
자라는 위급해 꼼짝도 하지 않았으므로 여우는 지쳐서 내버리고 가버렸다.
자라는 큰 용왕 신에게 찾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했고 용왕의 몸이 되어서야 비로소 두려움 없음을 얻게 되었다.
그와 같이 능히 5음을 제어하여 마군에게 농락을 당하지 않아야 열반의 도를 얻는다.
용이 되었다고 한 것은 보살도(菩薩道)에 들어가 네 마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자라가 머리와 발을 웅크리고 두려워하지 않듯
아라한도 그와 같고
비상하여[飛] 신이 된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다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은 재물을 구하기 위하여 멀리 집을 떠나 추위와 더위를 겪으면서 큰 이익을 얻으려고 할 적에,
혹은 어떤 곳에서 도적을 만나 그 사업을 잃기도 하는데,
그러나 또 어떤 지혜로운 사람은 그냥 자기 나라에서 교묘한 방편으로 한량없는 이익을 얻어 4방에 공급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공을 쌓고 덕을 쌓아 무상한 것이고ㆍ괴로운 것이며ㆍ공(空)한 것이고ㆍ몸이랄 것이 없다는 것을 헤아려 알고,
바깥 온갖 물질의 성패(成敗)를 관찰하여,
혹은 선정을 얻어 나한도(羅漢道)를 이루고 다시 마음을 일으켜 보살도를 구하는 이도 있고,
혹 통달한 사람은 4대(大)가 공한 것이어서 안팎이 있지 않음을 알고,
큰 자비를 행하여 시방을 가엾이 여기되 비록 제도한 것이 있어도 제도한 바 없다고 하며,
도는 멀고 가까운 차별이 없고 지혜를 최상으로 삼으며,
평등각(平等覺)을 얻어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은 이도 있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어떤 사람이 먼 데 나가 장사를 하듯
제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공을 쌓고 악로(惡露)를 관찰하며
온갖 물질이 무상한 것임을 살피네.
보살은 멀리 나가지 않고도 이익을 구하는
현명한 사람과 같아서
생사와 니원(泥洹)도 없는
평등각을 이룬다네.
수행하는 사람은 생사를 두려워하고 삼계의 환난을 싫어하여,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몸을 싫어할 뿐, 본래 무(無)한 것이라는 이치를 알지 못하여 속히 환난만 초월하려 하고 중생을 생각하지 않는다.
비유하면 군대가 무너지면 모든 못난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만 구제하려고 하고 위험한 액난(厄難)을 구제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이런 마음이 있는 사람은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3독의 번뇌를 제거할 것과 니원(泥洹)의 쾌락을 말씀하시어 어둠을 여의고 밝은 데로 나아가게 하신다.
[많은 장사꾼을 거느리고 나아가는 길잡이의 비유]
비유하면 길잡이[導師]가 많은 장사꾼을 거느리고 나아가는 것과 같다.
먼 길을 가다가 크고 넓은 텅 빈 벌판을 만났는데 물과 풀[草]이 하나도 없었다.
장사꾼들은 울부짖으며 탄식하였다.
“길은 멀고도 먼데 어떻게 해야 갈 수 있을까? 궁지에 빠지게 되었구나.”
그때 그 길잡이는 총명하고 널리 배워 알았으며, 또한 도술(道術)까지 지니고 있었다.
길잡이는 장사꾼들이 마음속으로 길을 걸어가기를 걱정하고 짜증내고 있음을 알고 바로 중간 지점에 성읍(城邑)ㆍ인민ㆍ토지(土地)가 풍요(豊樂)롭고 5곡이 풍성한 어떤 나라를 변화로 만들었다.
장사꾼은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의논하였다.
“어찌 이렇게도 유쾌한가? 본래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 어느 때나 이런 환난을 벗어나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당도할 것이냐고 하였었는데, 마침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곧 이런 성에 이르게 되었으니, 마땅히 무엇을 또 두려워하겠는가?”
그때 모든 장사꾼들은 바로 그 나라에 머물면서 유쾌하게 서로 오락하고 음식을 실컷 먹으면서 마음껏 휴식을 취하다가 싫증이 나자, 성곽도 없어지고 국토도 보이지 않았다.
장사꾼들은 모두 괴상하게 여겼다.
“무슨 까닭에 이런 일이 있는가?”
길잡이가 대답하였다.
“그대들이 걱정하고 짜증내면서 길이 너무도 멀어서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기에 내가 일부러 성ㆍ국토ㆍ인민들을 변화로 만들어 그대들을 편안히 쉴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대들이 싫증을 내기에 그것을 없애버린 것이다.”
부처님 말씀도 이와 같아서, 제자의 수행은 시작과 끝남의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 즉 생사의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삼계의 환난을 두려워하여 재빨리 멸도에 들려고 하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나한(羅漢)의 도를 나타내 보이시어 손쉽게 얻게 하시며,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유도(誘導)하여 생사를 해탈하게 하고 세 가지 번뇌[垢:毒]를 다 없애게 하시며,
무위도(無爲道)를 얻어 스스로 통달하고 성취하여 원만하게 갖추게 하시며,
멸도(滅度)할 때에 다다르면 부처님께서는 곧 앞에 계시면서 큰 도를 나타내신다.
이는 아직 통달하지 못하였으므로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를 일으키게 하신 것이니,
생겨남이 없는 법인(法忍)을 얻고 일체지(一切智)에 이르러야 비로소 통달하게 될 것이다.
[어떤 나라가 만난 세 가지 액난의 비유]
비유하면 어떤 나라가 세 가지 액난을 만난 것과 같다.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도적이고, 둘째는 흉년이며, 셋째는 질병(疾病)이다.
여러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나라가 안정되자, 혹은 돌아오는 이도 있고, 혹은 세 가지 어려운 환난을 두려워하여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이도 있었다.
부처님 말씀도 그와 같아서,
그 나라라고 한 것은 삼계를 말한 것이고,
세 가지 액난을 만났다고 한 것은 3독의 번뇌를 말한 것이며,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갔다고 한 것은 나한을 말한 것이고,
나라가 안정되자 돌아왔다고 한 것은 보살이 생겨남이 없는 법인과 심오한 일체지[一切深慧]를 얻고 삼세(三世)에 다시 들어가 일체를 제도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세 가지 액난을 당할까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 것은 나한이 무위도(無爲道)를 얻고는 세 가지 액난을 만날까 두려워하여 능히 돌아와 중생을 해탈시키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여러 장사꾼들이
크고 넓은 벌판을 걷다가
너무도 피로하여 도달하지 못할까 걱정하므로
이에 길잡이가 성곽을 변화로 만들었네.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쉬면서
편안히 세월을 보내다가
그 마음 싫어짐을 알고서
바로 없애어 나타내지 않았네.
불세존께서도 그와 같이
생사의 환난을 두려워하는 것 보시고
곧 그들 위해 무위도를 나타내어
삼계의 괴로움을 해탈하게 하셨고
반니원(般泥洹:般涅槃)에 임할 때에는
큰 도의 교화를 보이시어
생겨남이 없는 법인을 체득하게 하고
널리 일체를 제도하게 하셨네.
또한 비유하면 큰 나라가
갑자기 세 가지 액난의 환난을 만난 것과 같아서
각기 흩어져 다른 나라로 갔다가
나라가 안정되자 돌아오기도 돌아오지 않기도 했으니
생사의 환난을 두려워하는 것
이것은 제자를 말하는 것이고
나라에 돌아오길 두려하지 않는 것은
보살이 시방세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다.
지혜의 방편으로 교화 인도하여
각기 그 곳을 얻게 하시는 것이
마치 큰 배의 사공이
왔다갔다 휴식이 없는 것처럼
불세존도 그와 같아서
법신(法身)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일체에 두루 돌아다니시며
햇빛처럼 온통 비추어 주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