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
가고 歌稿
-고운 박광현
이슬이 내려앉는다.
가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겨울이 어김없이 와 있었다.
바닥에 처박힌 돌쩌귀처럼
가을을 줍는 뭇사람도
글을 줍는 섬사람도
사문 밖으로 나섰을 것이고,
옛 이야기 속, 시랑(豺狼)도
수선스럽지 않게
그림자처럼 엿들을세라
가을은 별스레 서리를 훔친다.
NO. 2
소멸(燒滅)
-고운 박광현
외면되어 온 외양보다
더 진실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자기기만을
순수한 영혼쯤으로 착각할 때마다
하다못해 엉터리 문법과 생경한 언어로
소멸(消滅)을 반복한다.
홀로 글을 쓰는 취미에
아직도 해석할 수 없는 것과
있는 많은 것을 꺼내놓고
까닭도 없이 짚어 넘긴다.
스으윽 쓱 슥슥
알 수 없는 소릴내며
정상적 궤도에서도
일탈된 와중에서도
아름다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을
그렇게 쓰라린 소멸(燒滅)을 시작했다,
NO. 3
봄날 오후
ㅡ고운 박광현
대지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봄은 開花하였다
덩달아 마루도 發光한다.
땀범벅이 돼버린
그 어떤 이유도 없어 보이는
너를 조용히 바라본다
여린 날들이 浮揚한다
깨복쟁이 사랑이 첫사랑이라
생각했던 날들도..
오순의 날에 찾아든
검은 꼬리 파랑새였던 그날도..
여린 추억도, 쉰 살의 사랑도, 가슴 한편에 묻어둔 오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훔칠 수밖에야
그렇게 너와 너를 훔치는 나를 마주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부양한다, 봄이 개화 하듯 첫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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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雲 朴廣賢
저는 '고운'이라는 호를 사용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문학 단체에서 저와 같은 이름의 시인이 계신데, 그분을 저로 착각하셔서 그분의 시집을 제 시집으로 알고 많이 사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와 그분을 혼선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저는 '고운'이라는 호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경북 의성 외가 근처 절에서 만난 스님과의 인연도 깊습니다. 많이 아팠던 저에게 찾아오신 스님과 그 절은 제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 절의 이름은 '고운사'였습니다
孤雲의
한자 풀이로는 '외로운 한 점의 구름' 또는 '청렴한 선비'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 문인 최지원의 자(字)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현대 문학인으로 대학자가 꿈이었기에 만학도가 되어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를 전공하고 작은 희망과 꿈을 향해 이렇듯 나는 나이기에
'孤雲'을 자(字)로 삼게 되었습니다.
버릇없고 싹퉁머리 없이 함부로 '고운'이라는 호를 쓰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 이 호를 지어주신 외숙부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孤雲 박광현